맹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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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獲
(? ~ ?)
1. 개요
중국 삼국시대 남만 지역 부근에 자리잡았던 호족. 흔히 남만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후술되어있듯 정작 맹획이 남만계 이민족이었단 기록은 중국 역사서엔 없다.
2. 정사
정사 삼국지에 배송지가 주를 달 때 인용한 <한진춘추>에서 처음 언급되는 인물. 화양국지와 양양기에도 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건녕에 거주하는 한족과 소수민족 모두의 지지를 받을 정도로 인망이 두터웠으며 익주 남부에서 옹개가 반란을 일으키자 월준군 수족의 왕 고정 등과 연합했고 촉한과 적대했는데, 225년에 제갈량이 남방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출병하자 이에 대항하였다. 여름 5월에 제갈량이 노수를 건너 익주군을 평정하자 맹획은 이때 사로잡히고 제갈량이 군대와 진영을 보여주면서 군대가 어떻냐고 묻자 자세히 보아 알게 되었으니 이길 수 있다고 했으며, 제갈량은 맹획을 용서한 후에 돌려보내 싸우게 했다.
맹획은 여러 번 싸웠지만 일곱 번 사로잡히고 일곱 번 용서받자 제갈량에게 복속했으며, 제갈량이 다시 묻자 나쁜 뜻을 갖지 않겠다고 했으며, 맹획은 관리로 등용되어 어사중승에 이르렀다.
사서에는 칠종칠금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있는데, 딸랑 한 줄만 언급될 뿐, 칠종칠금 과정의 상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칠종칠금 문서 참조.
기록상으로는 맹획이 이민족이라는 말이 없고 같이 반란을 일으킨 고정이 이민족 족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고정은 제갈량에게 처형당했고 맹획은 촉에 항복한 후 높은 관직까지 올랐다고 한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고정과 지위가 뒤바뀌어 수족의 왕이었던 고정이 뜬금없이 월준태수가 되고 자신은 남만의 어느 부족의 왕으로 등장한다. 225년에 10만 대군을 이끌고 익주에 침입했고 군의 태수들도 많이 그에 협력했으며, 촉한의 전권을 맡아 있던 승상 제갈량은 먼저 역내의 주군을 평정하고 남중의 풍부한 물자를 얻고자 직접 원정에 나섰으며, 맹획은 제갈량에게 대항하면서 자신이 싸우다가 남만 주변의 여러 세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끝에 모두 패배하고 일곱 번 사로잡히고 일곱 번 풀려나자 그 은의에 감복해 진심으로 항복하면서 제갈량은 그로 하여금 남만의 땅을 다스리게 하였다는 칠종칠금 일화로 유명하다. 잡힐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승복하지 못하는 찌질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축융이 장억과 마충을 잡았을 때 제갈량이 전에 풀어줬던 은혜를 생각해서 살려주기도 한다. 후에 축융이 촉군에 사로잡혔을 때 포로교환으로 이 둘을 돌려보낸다.
맹획이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한족이 아닌 운남의 소수민족 수장으로 이미지가 남으면서 정체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었는데 그중에서 미얀마 북부, 후베이성에 속하는 민족인 "와족(佤族, Wǎzú, 바족)"이라는 설도 있다.[1] 사천(촉), 운남 지방의 "이족(夷族, Yízú)"[2] 에게는 맹획이 제갈량을 사로잡았다는 전설도 있다.[3] 그 외 몇몇 부족에게도 맹획의 전설이 있는데, 맹획이 유명 인물이었기 보다는 역으로 중국에서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 여하간 남만인이라고 죄다 베트남인이 아닌데, 당시 베트남 북부는 엄연히 오나라의 땅이었다. 그래서 남만을 해석하면 남쪽의 오랑캐라는 뜻으로 단순히 베트남인이 아니라 중국 남부에 사는 소수민족이나 호족들을 뜻하는 걸로 추측된다.
창작물에서는 흔히 단순무식한 인물로 나오지만 연의 원작에서는 의외로 힘싸움보다는 두뇌플레이를 더 자주 시도하는 편이고 본인도 내가 남만인이지만 이래봐도 병법을 통달했다고 자뻑하기도 한다. 하필 상대가 제갈량이라서 매번 역으로 당할 뿐, 실제 맹획이 그저 단순무식하기만 한 인물이었다면 제갈량도 굳이 애써 개고생하며 맹획을 어떻게든 복종시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맹우, 축융부인, 올돌골, 대래동주, 타사대왕, 목록대왕 등 남만정벌 관련으로 나오는 다른 인물들은 모두 삼국지의 가공인물이다.
모종강본 삼국지연의 기준으로, 87회에서는 맹획이 권모적토마[4] 라는 말을 탔다고 나온다. 그런데 89회에서는 맹획이 적모우[5] 를 탔다고 적혀있다.[6]
4. 기타
이문열처럼 맹획을 중화사상에 대항하는 소수민족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려는 이도 있지만[7] 정사에서 맹획이 이민족이라는 이야기는 없다. 연의를 기준으로 해도 이러한 서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연의의 맹획은 결국 전사하거나 잡혀서 처형당하는 대신, 촉에게 항복하고 지위까지 보장 받았다. 설사 연의의 맹획에게 중화사상에 저항하는 독립투사의 이미지를 부여해본들, 맹획은 현실에 타협하고 중화의 앞잡이가 된, 타락한 영웅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제갈량이 남중을 평정했을 때 등용되고, 5차 북벌 때 사마의가 1만 기병으로 기습을 가하자 제갈량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이에 대적한 맹염이라는 인물이 언급되는데, 정황상 맹획의 친족으로 보인다.
5. 미디어 믹스
[1] 다만 20세기까지 사람 사냥을 한 종족이라 아닐 수도 있다. 인구 70만명.[2] 티베트계 민족으로 강족의 후예다. 인구 776만명.[3] 혼전중에 제갈량을 바로 앞에 두고 촉나라 장수와 싸우다 목이 잘렸는데, 맹획이 도술을 써서 잘린 목을 다시 붙이자 촉나라 군대가 놀라 도망가는 바람에 제갈량을 잡았다는 이야기.[4] 捲毛赤兔馬. 털이 곱슬곱슬한 적토마[5] 온 몸에 붉은색 갈기가 난 황소[6] 축융도 모종강본 삼국지연의 90회에서 권모적토마를 타고 나와서, 삼국지 시리즈에선 맹획이 적모우, 축융이 권모적토마를 가지고 나온다.[7] 평역 삼국지에서도 남중 평정 에피소드를 제국주의 침략자 제갈량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우직한 독립투사 맹획인 것처럼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