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만

 

1. 중국에서 부른 남방 이민족의 호칭
2. 한국에서
3. 일본에서
4. 무협소설에 종종 언급되는 지역
5.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남만무역


1. 중국에서 부른 남방 이민족의 호칭



북적

서융
중화#s-2
동이

남만

南蠻. 직역하면 '''남쪽의 야만인'''이란 뜻인데 사실 만()자는 원래 단순히 남쪽 이민족을 호칭하는 글자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남쪽 이민족에 대한 나쁜 인식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에 가깝다. 즉 기원을 따지면 폄하적 의미로 지은 호칭이 아니다.
중화사상에 따라 중국을 기준으로 남쪽에 있던 이민족들을 부르던 이름. 고대에는 주로 형만(荊蠻)으로 호칭되었는데, 춘추시대에는 초나라(楚), 오나라(吳), 월나라(越) 등이 남만으로 취급되었다. 초나라장강 문명권의 묘족이 기원이라 오랑캐 개념이 처음 나온 상나라주나라의 후신인 중원한족 직계 선조와는 기원부터 달랐다.
초나라가 중원에 진출하면서 중국 문화권에 편입된 후 중화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 한나라 시대에는 형만이라 하면 대체적으로 무릉만(武陵蠻)을 의미하게 되고, 남만은 이민족을 의미하는 4개의 개념어가 다 그렇듯 지금의 푸젠성,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구이저우성, 윈난성, 베트남 북부(교주) 일대에 거주하는 이민족을 남만 또는 서남이(西南夷)로 범위가 확장되어 불리게 되었으며, 동남아시아 일대의 임읍, 부남 등의 국가도 남만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한국일본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같은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제갈량이 저술한 제갈량집의 남만편에서는 그 특성과 공략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南蠻多種,性不能敎,連合朋黨,失意則相攻,居洞依山,或聚或散.

남방의 이민족은 종족이 많고 성질이 교화하기 어려우며 서로 연합했다가 붕당을 이루며[1]

여차하면 서로 공격한다.[2][3] 동굴에 머물거나 산에 의지해 때마다 모이고 흩어진다.

西至崑崙,東至洋海,海產奇貨,故人貪而勇戰

서쪽으로는 곤륜산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다다르며, 바다의 산물은 진기한 것이 많다, 고로 사람이 탐욕스럽고 용감하게 싸운다.

春夏多疾疫,利在疾戰,不可久師也

봄과 여름에 역병이 많으므로 빨리 싸우는 것이 유리하며, 오래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4]

16세기에 들어서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서양 세력도 남만으로 호칭하게 된다. 이는 당시 유럽 세력이 지중해 - 대서양 - 인도양 - 남중국해 등을 거쳐서 중국이나 일본에 도착했는데 중국과 일본 입장에서는 이들이 남쪽에서 왔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한 서양 물품들을 "남만~"이라고 부르게 된다. 아래 참조.
특이하게도 설악전전 등 중국의 고전소설에서는 북방 유목민족들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한 한인들을 남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선 남만인하면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 맹획이 유명한데, 사실 항목에도 있지만 정사 기준 맹획이 '''이민족이라는 기록은 없다'''(...). 즉, 오히려 한족일 가능성도 있는 것. 그리고 이들이 머물던 곳 역시 지금의 중국 윈난성(운남) 일대였는데, 연의에선 이 지역이 밀림과 독천의 고장으로 나오지만, 실제론 여름에도 서늘한 봄 날씨인 고원 지역이다. 운남성 최남단 시솽반나 지역은 그나마 고도도 낮고 열대지역이라 조금 더 비슷하긴 하다.[5]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에선 무력도 지력도 어정쩡한 똥덩어리만 모여있는 세력. 사섭 일가나 교주#s-5가 나오는 시리즈가 아닌 이상 필연적으로 촉을 뚫고 나가야 하는데, 영지인 운남과 건녕은 금이 많이 나지 않는 가난한 땅인데다가 쓸만한 인재들도 없어 상당히 어렵다. 예외로 삼국지 9에서는 남만이 맹획과 별도의 세력으로 존재하는데 병력이 무려 30만이나 되는데다 보병계 최강 병법인 분신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꽤나 성가시다. 자세한 건 맹획(삼국지 시리즈) 문서 참조.
토탈 워: 삼국 에서는 '흉폭한 야생' 확장팩으로 맵이 이 지역까지 크게 확장되었다. 남만인들은 이 지역에서 다양한 보너스를 받는 반면 한나라 세력은 이 지역에서 이동 속도 등 각종 페널티를 받는다.

2. 한국에서


한반도 정남향에 위치한 나라나 민족들을 남만으로 부른다. 백제의 경우는 탐라, 혹은 전라남도 일대를 남만이라고도 했다. 백제는 한성경기도와 이후 웅진, 사비가 있는 충청도 일대가 중심이었으며, 전라도는 남부의 토착인 삼한 계열 사람들이 많아 고구려부여에서 남하한 북방계랑은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백제가 전라남도를 남만이라고 했을거라는 추측은 일본서기 신공기 기록에 남만 침미다례라는 표현을 근거로 하는데, 여기에는 백제가 직접 마한을 언급한 것도 아니고, 침미다례가 마한 전체를 뜻하는 것도 아니며 침미다례를 마한 한 국가 또는 가야의 한 국가로 추측하기도 하고, 침미다례 위치도 탐라(제주도), 전라남도 해남, 강진, 경상남도 남해로 보는 설도 있고 여러가지 설이 있으므로 확실한건 아니다.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경상도를 두고 남만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상주로 가는 길에 들른 황려현(지금의 여주) 근곡촌에서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남만 억양 같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류큐 왕국, 필리핀, 자바 섬, 시암과 조공 무역을 했는데 이들을 남만이라 부르고 선박은 남만선, 상품은 남만물산이라 하였다. 16세기 이후에는 중국과 일본처럼 마카오에서 유입된 유럽 세력을 남만이라 칭하며 그 때 들어온 문물 앞에 남만을 붙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남만초, 남만대포.
포르투갈은 동방확장을 위해서 마카오명나라 시대부터 지배했는데, 당대에는 극동까지 세력 투사가 불가능했기에 중국 조정에다 조공을 바쳐가며 빌리는 형식으로 수백 년 동안 이 형식을 유지했는데,[6]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열강들의 먹잇감이 되자 아예 꿀꺽 했다가 훗날 중국에게 돌려준다.

3. 일본에서


일본은 큐슈 남부 및 오키나와 지역을 만(蠻)이라 호칭했었다. 고대 큐슈 남부지역은 하야토구마소라고 일컷는 남방계 종족들이 야마토와 별개의 성읍국가를 구성했고, 야마토 조정에서 이들을 만이라고 비하했던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16세기에 들어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서양 세력도 남만으로 호칭하게 된다. 일본은 이들과의 무역을 남만 무역이라 호칭하며 이들한테 들여온 물건에 남만(南蛮)~이란 단어를 붙이는데 그 예로 남만시 (남만의 감, 토마토), 남만과 (남만과자, 카스테라) 등이 있다. 포르투갈마카오를 본부로 일본중국을 드나들어서 당시 광둥성이었던 마카오=남만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추정된다.
단추로 앞을 여미는 면직 셔츠를 흔히 "남방"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남만"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유럽식 셔츠를 일본에서 "난반(南蛮)"이라고 했고, 그것이 근대에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남방"이 된 것이다.
근대 일본에서는 탈아론을 신봉하는 성향이 우세했지만, 이 때에도 오히려 서양인들에게 만(蠻)이라는 멸칭을 붙여서 칭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7] 실제로 일본 학계 내에서도 역사적으로 일본인들 사이에 알타이 콤플렉스와 같은 정서가 생겨난 것은 19세기 어느 시점에 갑작스럽게 퍼진 것이라고 본다. 다만 그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 아직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할 뿐이다.
서양식 요리를 접목한 일본 요리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용어를 사용한 요리로는 치킨난반이 있다.

4. 무협소설에 종종 언급되는 지역


중원에서 한참 남쪽에 있는 세외 지역으로, 남만 지역의 문파들은 주로 야수들을 다루거나 독을 다루는 문파로 묘사된다. 거의 아마존 밀림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삼국지에서 묘사된 남만의 이미지가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주로 까무잡잡한 피부의 천연 속성 미소녀 캐릭이 히로인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5.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남만무역




[1] 혹은 연합해 붕당을 이루다가[2] 참언하자면 현대에도 대만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언어를 쓰는 대만 원주민들이 살고 있고, 중국 남부에서 어족이 다른 몽몐어족과 타이카다이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을 쓰는 종족들이 살고있다. 현대에도 어족 자체가 다른데 그 당시에야 다 같은 정체성을 지닐리는 없었다.[3] 악명이 높은 김운회의 경우 이 기록을 옮기면서 또 그 이전 장에서는 붕당이 중국의 종특이자 중화사상에 매몰된 한국의 종특이란 식으로 운운했다. (동이 항목에서도 보면 알지만 상하가 화목하니 어려운데 이간하면 이길 수 있다 이야기를 그 자체가 이간이 잘 된다는 식으로 이해한 경우) 빠르게 통일과 중앙집권을 확립한 국가에서 여타 세력을 바라보면 당연히 비교적 분열된 모습일텐데,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말이다.[4] 원문에서 질(疾)은 병이 아닌 신속함을 의미하고, 사(師)는 스승이 아닌 군대를 말한다.[5] 다만 지금 기준으로는 그렇지만 2~3세기경에는 '로마 온난기'라고 해서 지구 기후가 전체적으로 더 더웠기 때문에 아마 제갈량과 맹획이 살던 시절에는 진짜로 독천과 밀림을 볼 수도 있었을 지 모른다. 유럽은 이때 프랑스, 독일까지 지중해성 기후였다.[6] 즉,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매 시기 임대료를 주는 식으로 수백 년 단위의 토지임대를 한 셈이다.[7] 실제로 일본은 한창 중화문명을 수용하던 시절에도 중국을 '''서남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