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나 왕국

 

'''메리나 왕국'''[1]
'''Fanjakan'Ime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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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1540년 ~ 1897년
'''위치'''
마다가스카르
'''국가'''
메리나 왕국의 국가
'''수도'''
안타나나리보
'''정치체제'''
전제군주제입헌군주제
'''국가원수'''
국왕
'''언어'''
말라가시어
'''종교'''
전통종교
개신교(성공회)(1869년 이후)
'''성립 이전'''
메리나 부족사회
'''멸망 이후'''
프랑스령 말라가시
1. 개요
2. 역사
2.1. 역대 국왕
2.2. 총리대신


1. 개요


오늘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있었던 왕국으로 중부 고원 지역의 메리나족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나, 근대화를 하려다 도중에 뒤엎는 등 지그재그의 모습을 보였으며 1897년 프랑스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이메리나 왕국(Kingdom of Imerina)이라고도 한다.
왕위계승이 부자간보다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여왕이 많이 배출되었다. 사실 라소헤리나 이후로는 실권은 총리대신에게 있었지만.

2. 역사



2.1. 역대 국왕


마다가스카르 섬을 모두 통일하여 메리나 왕국 치하에 두었다.
생몰년 1793~1828.
생몰년 1778~1861. 라다마 1세의 15살 연상의 아내로 남편을 계승해 여왕이 되었다. 본명은 라마보(Ramavo)로 "접혀진/치워진"이란 뜻의 라나발로나를 왕명(王名)으로 삼았다. 1833년에 새 남편 라이니하로를 첫 총리로 임명했으며 그는 19년간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서구 열강이 '배후에 있는' 기독교를 혐오하고 탄압하였다. 여러 면에서 흥선대원군과 비슷하다. 고립주의 노선과 기독교 탄압으로 당대에 비판을 받았지만 현대에는 메리나 왕국을 서구 열강으로부터 보호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 시기 메리나 왕국 인구가 500만에서 250만으로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이게 자연 재해나 전쟁 역병 탈출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여왕이 시행한 숙청이나 학살 착취 동원 노예화 등 전적으로 여왕 자신의 무도한 폭정으로 인한 죽음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사악한 여자라는 악평을 얻었다. 현실판 타노스.
생몰년 1829~1863. 라나발로나 1세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했다. 아버지는 라다마 1세라고는 하지만 실제 아버지는 다르다고 한다.[2] 재위 2년 만에 군인들의 쿠데타로 암살되었으며 그의 사후에는 아내들인 라소헤리나와 라나발로나 2세가 연이어 왕위를 계승한다.
생몰년 1814~1868. 본명은 라보도(Rabodo)로 남편이 암살되고 나서 왕위에 올랐다. 이쪽도 15살 연상의 아내(...)
생몰년 1829~1883. 본명은 라모마(Ramoma)로 성공회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고, 삼피(Sampy)라고 불리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부적들을 불태웠다.
생몰년 1861~1917. 라나발로나 2세의 조카딸이다. 마지막 여왕으로 1897년 프랑스에 의해 왕국이 멸망하였으며, 레위니옹 섬에 유배되었다가 알제리로 유배되었고 그 곳에서 서거했다. 왕위계승자인 마리루이즈[3]는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1948년 사망. 이 시점에 이미 이 왕조는 잊혀져서 왕조가 사라졌는데도 관심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2.2. 총리대신


  • 라이닐라이아리보니 : 라나발로나 1세의 새남편이자 첫 총리인 라이니하로의 차남으로, 1864년 36살에 형의 지위를 이어받아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프랑스에 의해 쫓겨나는 1895년까지 무려 31년간 라소헤리나, 라나발로나 2세, 라나발로나 3세 세 명의 여왕을 모셨다. 아버지처럼 여왕의 국서(國壻) 겸 총리였긴 한데, 비범한 건 세 여왕들을 계속해서 그렇게 모셨다는 것.[4][5]

[1] Kingdom of Merina[2] 라다마 1세의 서거가 1828년 7월인데 라다마 2세는 1829년 9월에 태어났다(...) 그런데 그게 맞다면 어머니는 51세에 그를 낳았다는 소리가 된다. 이 동네에 기록 같은 게 제대로 있을 리 없으니 진실은 저 너머에...[3] 애당초 이 인물의 조카딸과 이름모를 프랑스 병사 사이의 사생아로서 프랑스가 이 동네 왕조 혈통을 바꾸고자 계승자로 임명한 것이다. 자손은 없었으나 2차대전 때에 자유 프랑스군에 종군하여 간호업무에 종사하여 나름 구실은 했다.[4] 물론 라다마 2세의 왕비 출신인 라소헤리나, 라나발로나 2세와는 재혼한 것이다.[5] 새남편을 총리로 임명한 건 라나발로나 1세 때와 같았지만, 라다마 2세 왕이 백주대낮에 암살당하고 나서 왕권이 땅바닥에 떨어져 총리가 정권을 전횡하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사실상 여왕 = 총리 영부인에 지나지 않았다. 자손들은 많았으나 대부분 어리석고 무능해서 이 사람이 죽자 모두 존재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