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돈
methadone
1. 개요
마약성 진통제의 일종. 발음 문제로 메사돈이라고도 한다.
자연에서 추출된 것이 아닌 합성 마약으로, 중독성이 낮아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 마약 중독자를 치료할 때 금단증상을 방지하기 위해 의학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최초의 사용은 세계 2차 대전으로, 진통 효과가 있어 진통제로 사용되었다. 이후 1960년대부터 헤로인 중독에 대한 치료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헤로인 중독이 메타돈 중독이 되는 거라, 논란의 여지는 있다. 다만 헤로인이 중독(overdose)으로 사망할 확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치료를 위한 시간을 번다는 측면에서는 이점이 있다.
최근에는 암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보고가 올라오고 있다(특히 백혈병). 다른 마약에 비해서는 탐닉성도 적고 육체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도 적어 그야말로 '최악보다는 차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마약. 물론 반대로 심장병에 의한 의문의 급사가 유발된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하루에 120mg 이상씩 섭취하는 환자에 한해서다. 보통 사람들은 10mg 한 알만 먹어도 이틀 동안 헤롱댄다.
어쨌거나 마약이라 중독성이나 인체의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티가 덜 날 뿐. 약하긴 해도 일단은 마약인 데다 먹다가 심장병으로 급사할 확률도 있으니 절대 손대지 말 것. 위에서도 말했지만 심장병 관련은 하루에 120mg 이상의 dose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120mg이면 보통 사람들은 눈도 뜨지 못한다.
역시 닥터 하우스에서 하박사가 시즌5 에피소드16에 손대는 약물이다. 고질적인 다리 통증을 완전히 없앤 덕분에 면도도 하고 넥타이도 매는 등 사람이 바뀔 정도였다. 그러나 약기운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환자부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했던 행동이, 환자를 거의 죽일 뻔 한 것을 알게 되자 스스로 끊었다. 평소라면 놓치지 않을 것들을 놓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스스로도 죽을 뻔 했다.
2. “메사돈” 파동
1960년대 초부터 한국에서 마약중독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하였지만, 주무부처인 보건사회부는 정확한 원인 및 유통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1964년경, 섬이나 탄광처럼 육체 노동이 많고 의료 접근성이 낮은 무의촌을 중심으로 일반적인 진통제로 위장한 먀약성 주사약이 퍼져나가는 것이 사회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는 마약범죄조직이 마약을 진짜 의약품인 것처럼 위장하여 유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정작 이런 짓을 하는 마약범죄조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또한 보건사회부에서는 일부 제약사가 시중에 판매중인 몇몇 주사약에 “이상한 물질”이 섞여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무려 3년이나 그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특히 심각한 특정 약품 또는 제약사는 ‘이물질 혼입’을 명분으로 허가취소하는 조치를 할 뿐이었다.
한편 내무부 소속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약무사로 일하던 이창기[1] 는 약국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표기된 성분[2] 은 특별한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진통효과가 좋아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는 주사약’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마약 성분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동물 실험을 통해 이러한 의심을 확신으로 굳힌 그는 1년 이상 상당한 사비까지 들여가며 연구한 끝에 메타돈 검출에 필요한 표준물질[3] 및 메타돈과 디펜히드라민을 분리할 수 있는 용매, 그리고 종이 크로마토그래피 및 박층 크로마토그래피를 사용한 메타돈 검출절차 등을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주사제 중 가장 대표적이었던 유니온제약의 ‘설파디메톡신’ 2cc 주사제를 경찰로부터 감정의뢰받아 분석한 결과 의심하던 대로 메타돈 성분이 검출되었다. 이 결과는 1965년 5월 7일에 정식으로 보고되었다.
이 보고로 보건사회부가 발칵 뒤집혔다. 보고 사흘 뒤인 5월 10일자로 보사부 약정국장이 전병수에서 허용(당시 보사부 약무과장)으로 교체되었다. 허용은 5월 23일 충북 청주시에 있는 국도제약에 보사부 마약과장을 포함한 단속반을 보내어 출고되지 않은 ‘염산프로카인’ 주사제 19만개를 압수하고 국도제약 사장 박인선(당시 50세)을 마약법 위반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5월 25일에는 국립보건원에서도 메타돈 검출기법을 획득하였고, 그 다음날인 26일에는 유니온제약, 국도제약, 영남제약, 백십자제약 4곳에서 만든 의약품 5종에서 메타돈이 검출되었다는 국립보건원 측 감정 결과가 발표된다. 그 중 영남제약에서 만든 것은 영양제인 비타민 B1에서도 메타돈이 검출되었다.
보사부는 경찰, 검찰, 세관으로 구성된 부정약품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수사를 개시했다. 수사 결과 메타돈을 실제로 제조한 주범은 관서제약의 임국선[4] 이라는 약사였으며, 무려 '''16개 제약회사의 23개 의약품'''에 메타돈 성분이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1965년 3월을 기준으로 정부에서 추정한 이 사건의 피해자 수는 1만 5천명에서 3만명 수준이었으나, '''전문가들은 적어도 10만~23만명이 피해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메타돈을 만드는 데 사용한 원료물질은 화공약품이라는 명목으로 상공부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수입되었다는 점도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으로 152명이 입건되었는데, 이 중에는 뇌물을 받고 뒤를 봐준 보건사회부 약정국장 전병수, 충청북도 약무계장 이재욱,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 신관우 등 공무원과 정치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 제약회사 23곳이 문을 닫았고, 보사부 장관이나 약무국장, 국립보건원장 등 관료 7명도 옷을 벗거나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임국선을 비롯한 가장 중요한 주범 8명은 해외로 도피하여 잡지 못하였다. 또한 몇 년 뒤까지도 산발적으로 메타돈이 들어간 약품이 유통되는 사례가 적발되곤 했는데, 심지어 그 중에는 메타돈이 들어간 약을 팔았다가 이 사태로 잡혀 형을 살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다시 메타돈 함유 약품을 만든 제약회사 사장도 있었다.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시중에 유통중인 항생제 중 실제 항생물질 함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많다는 점 또한 도마에 올랐다. 결국 제약업계에 피바람이 불었으며, 의약품의 허가관리 규정 및 마약법 등이 개정되었다. 한편, 이 사건을 최초로 밝혀낸 이창기는 그 공로로 옥조소성훈장을 수여받았다.
[1] 1965년 당시 31세. 1959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뒤 보건사회부 소속 화학연구소에 들어갔으며, 2년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1975년 원광대학교에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2] 디펜히드라민과 에페드린이었다고 한다.[3] 크로마토그래피 등의 화학실험으로 어떤 물질을 검출할 때는 기준이 되는 순수한 물질이 필요한데, 이를 표준물질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시절 보건사회부 소속 국립보건원에서는 당시 알려진 합성마약 56종(그 중 국내 마약법상 합성마약은 39종) 중 불과 7종의 표준물질만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국립보건원에서는 1963년 10월경 메타돈 샘플 3g을 이미 확보하였으나, 그저 받아만 둔 채 이 사건이 드러날 때까지 그 샘플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어서 의심스러운 약품에 대한 감정 의뢰를 받고도 메타돈을 계속 검출하지 못하고 있었다.[4] 당시 28세.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