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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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무용 중 하나인 '무당춤'을 추고 있는 무당.[1]
'''명칭'''
한국어
무교(巫敎), 무(巫), 무속(巫俗)
영어
Muism, Korean shamanism[2]
1. 개요
2. 역사
3. 참고 문헌
4. 무교 관련 성지
5. 관련 개념
6. 같이보기


1. 개요


'''무교는 한국의 무속신앙을 타 종교와 대등한 종교 현상'''으로써 인식할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3] 무속(巫俗)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는 무속신앙을 종교로 보지 않고 좀 더 격이 낮은 미신으로 취급 하는 역사적 천시의 의미가 내포 되어 있기에[4], 해당 신앙을 종교학의 입장에서 바라 보는 동시에 존중과 배려를 표현하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무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무교가 지칭 하는 대상인 무속신앙은 다른 이름으로는 무속(巫俗)이나 무(巫)라고 일컫는 신앙으로, '''무당을 중심으로 신행 되는 대한의 민속신앙'''이다[5].
巫가 ‘무당이 춤 출 때 소매의 모양을 본 뜬 글자’라고 틀리게 잘못 돼 있는 사전도 있는데, 巫는 원래 '''‘내림대(工)를 두 손(从'''<人人>''')으로 잡은 모양인 상형자’'''다(工+从=巫). 무당은 고유어로, 과거에는 한자를 빌려 巫堂으로 적었다. 격覡은 박수라는 뜻으로, 남자 샤먼을 뜻한다. [6][7]
무巫·격覡이 사용 하는 무구(巫具)로는 장구 자바라 따위 악기 포함 하여 신 내리게 하는 가지인 내림대¸ 원귀(冤鬼)의 한(한恨)을 달래는 방울¸ 잡귀(雜鬼)를 쫓는 부채¸ 칼¸ 작두 등이 있다.
무(巫)란 무속신앙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표현 하기 위한 또 다른 용어다. 무(巫)의 경우 해당 신앙에 대한 가치표현을 나타내는 표현이 부과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교나 무속에 비해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 해석 되며, 무업에 종사 하거나 무를 신봉 하는 이들에게 주로 쓰인다. 무교가 해당 신앙의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종교학적인 관점에 한정된 개념이라는 점에서 ‘무’가 ‘무교’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8].
무종교(無宗敎)도 흔히 무교(無敎)라고 줄여서 표현하나, 전혀 다른 뜻인데다 나무위키에서는 본 문서와 동음이의를 피하기 위해 구별해서 표기한다.

2. 역사


무교의 역사는 고조선 시기에서부터 이미 존재 했다. 단군신화에는 천황환웅이 신시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신시는 제왕이 하늘에 제사 하는 장소자 굿당으로, 천황환웅과 단군왕검은 제천의식을 주관 한 무당으로 해석 할 수 있다[9](제정일치였던 것이다.). 상고시대의 무교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 되었기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무당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신라에서는 무당을 왕자의 호칭으로 삼았고(남해 차차웅), 고구려에는 사무(師巫)라는 명칭이 있었다. 가장 오래 된 대한국 제례나 풍속의 기록으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이 있다. 마한의 천군·예의 무천·가락의 계욕·백제의 소도·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이 모두 당신의 제례다[10].본래 그 위상이 높았던 무교는 후세에 문화가 진화 하고 거기다 유교·불교·도교를 비롯 한 외래종교들이 들어 오자 점차 쇠락 하며 다른 종교와 융합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공톰점이 강한 도교와 융합이 이루워졌고, 불교, 유교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삼국시대에서의 무속은 시조제(시조에게 드리는 제사), 농신제(풍년을 기원 하는 제사), 산천제(산과 강에 드리는 제사)의 모습으로 나뉘어져 전승 된다. 삼국통일 이후로도 신라의 왕들은 새해를 맞이 하여 시조제를 지냈는데, 이는 그들이 하늘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의례였다. 고려에서도 황실의 안녕과 복을 비는 공적인 제천의식과 예언적 기능을 갖춘 무속이 자리를 잡았다. 조선 전기까지도 국무당을 비롯 한 산천에서 국행 및 내행기은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국가 운영의 주요 이념이 되어 유교가 아닌 기타 사상의 대표주자 불교가 탄압을 받은 것처럼, 무교도 최소한 권장되지는 않는 것이었고[11] 사회적 영향력이 다소 축소되었다. 그에 따라 민간의 신앙으로만 존속되어 왔다. 일제시대대한민국 시대에 들어서서는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기도 했다.
무교는 다른 나라의 모든 종류의 신령을 모실 수 있을 정도로 유연성과 포용력이 높은데, 대표적인 얘로는 도교, 불교, 유교의 신령들을 받아들인 것 부터, 근대에 이르러서는 예수(!), 조지 워싱턴, 더글러스 맥아더[12], 잔다르크 등의 서양 인물들을 무신(巫神)으로 숭배하는 무당들도 있는 모양.

3. 참고 문헌


  • 최준식. 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모시는 사람들. 2009
  •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분도출판사. 1999
  • 차옥승.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97
  • 이능화. 조선무속고. 창비. 2008
  • 박명희. 한국 무교 의례에 나타난 꽃의 의미와 상징성에 대한 연구. 한국화예디자인학회. 2004

4. 무교 관련 성지



5. 관련 개념



6. 같이보기



[1] 위의 사진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 표시+상업적 이용 금지+변경 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출처:영상역사관[2]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무교"를 지칭 하는 표현.[3] 차옥승.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97: 15~16.[4] 조흥윤. 巫와 민족문화. 1994: 95[5]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1999: 14.[6] 무당과 박수의 어원은 불분명하다. 국어학자 서정범 교수는 무당이 '묻(묻다:問)+앙(접미사)'에서 유래하였다고 추측하였다. 참조. 박수는 알타이 제어에서 남자 무당을 부르는 명칭과 흡사하기 때문에 여기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자 무당은 만주어에서 faksi, 나나이 어에서는 paksi, 어원키 어(또는 예벤키 어)에서는 baksi, 몽골 어에서는 baksi 혹은 balsi, 터키 어에서는 baksi, 키르기스 어에서는 baksa로 불린다. 참조.[7] 심방은 무당의 제주도 사투리인데 ‘신방(神房)’의 자음동화인 것으로 추측된다. 참조. 또한 과거에 무당을 부르던 옛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말이다.[8] 차옥승.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97: 15~16.[9]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분도출판사. 1999: 22[10] 이능화. 조선무속고. 창비. 2008: 71~72[11] 이를 숭유억불로 흔히 설명되지만, 포인트는 '숭유'에 있었다. 즉 불교뿐 아니라 중국식 도교나 고유 무교도 당시 교세가 불교만큼 크지 않아 덜 부각될 뿐 조선왕조에서는 유교 이외의 사상은 모두 억제의 대상이었다. 이후 조선의 천주교 박해도 마찬가지.[12] 웹툰 도사랜드에서도 다룬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