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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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2010년대부터는 자연치유사로도 활동 중이다.
2. 생애
당시 갓 성인으로 접어든 1973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시험에 교복 차림으로 참가하여 최종 선발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면서 사회 초년생은 너무 어려서 특채라면 몰라도 공채는 뽑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1]
TBC 하얀정원 등의 단역으로 시작하여, 그녀가 21살이였던 1974년, ‘세나의 집’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 당시 문숙은 ‘오세나’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문숙’을 예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만희 감독을 만난 이후이다. 1974년 5월 영화 '태양 닮은 소녀' 오디션 자리에서 만난 이만희 감독과 연인관계가 된다. 갓 데뷔한 파릇파릇한 신인 여배우가 23살 연상의 애 딸린 이혼 남과 연애 한다는 사실은 당시 매우 화제가 되었다. 이만희 감독은 ‘충무로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명감독 중 하나였으며, 전처 오흥순 사이에서 아들 하나, 딸 둘을 두고 있었다.[2]
‘문숙’이란 예명은 이만희 감독이 직접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만희 감독은 본래 자신과 같이 작업했던 배우에게 ‘문’이 들어간 예명을 지어주는데, 문숙의 본명 ‘오경숙’에서 ‘숙’을 붙여 ‘문숙’이라 지었다고
1974년 ‘태양 닮은 소녀’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을 수상한다.
이만희는 문숙과 만나기 전, 여배우 문정숙과 약 7년 가량 사귀는 상황이었다 (문정숙과는 전부인과의 이혼쯤부터 교제하기 시작함). 20대 배우와 40대 남감독의 연애는 더러운 불륜이 아니였음에도 불륜으로 오해받고는 했다. 세간의 눈초리 때문이었는지 그들은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다. 작은 절에서 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던 1975년, 삼포 가는 길의 마무리 작업 중 이만희 감독은 간경화로 인해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그대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만희 감독의 유작인 ‘삼포 가는 길’로 문숙은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한다. 감독의 사망이후에도 ‘미스영의 행방’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 출현했으며, 1977년 미국인과 결혼을 올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문숙은 당시 감독의 어린 아내였던 자신을 주변에서 쉬운 사람, 함부로 건드려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 가지고 놀아보겠다 등 각종 성추행에 시달렸다고.자신을 함부로 여기는 한국 영화계와 이만희 감독을 갑자기 잃은 슬픔과 미움, 이만희 감독의 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미안함 등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문숙은 미국으로 건너가 딸 하나(1984년), 아들 하나 (1978년)[3] 를 낳았다. 미국에서 문숙은 플로리다주의 링에링 예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총장대상을 받으면서 졸업한다. 이후 싼타페 등 다양한 미술업계에서 화가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