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성

 

1. 북두칠성의 여섯째 별
2. 한국의 독립운동가


1. 북두칠성의 여섯째 별


'''묘호'''
'''태조(太祖)'''
'''시호'''
고황제(高皇帝)
'''성씨'''
장(張)
''''''
아자(亞子) / 휘(揮)
'''생몰기간'''
? ~ ?
북두칠성 중 첫 번째 별. 뛰어난 문장가는 이 별과 응하고 있다 하며 문창성에 소원을 빌면 과거 시험에 급제한다는 전설이 있다. 명나라, 청나라 시기 학문의 신 문창제군(文昌帝君)은 이 별을 신격화(의인화)한 것이며 일설에는 삼황오제황제의 아들 공손휘(公孫揮)가 문창제군이라고 한다.
문창제군은 후에 장헌충대서(大西)를 세운 후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로 추존되었다.

2. 한국의 독립운동가


성명
문창성(文昌星)
생몰
1883년 ~ ?
출생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정대리
사망지
미상
추서
대통령표창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문창성은 1883년생이며,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정대리 출신이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종이제조장의 고용주 박남권(朴湳權)이 면내 유지들과 함께 1919년 3월 28일 읍내 장날에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준비에 나서자, 이에 뜻을 같이 하였다. 그는 3월 28일 오후 3시 박남권과 함께 합천군 야로면 읍내시장에서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어 '대한제국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기를 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장에 모인 군중도 호응하여 일제히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도를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19년 5월 28일 대구복심버부언에서 기각되어 형벌에 처해졌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문창성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