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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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민강은 아버지 민영덕(閔泳德)의 삼종숙(9촌 아저씨)이다.
2. 생애
민금봉은 1913년 1월 7일 충청북도 청주군 남이면(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양촌리에서 동화약품 제2대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아버지 민영덕(閔泳德)[4] 과 어머니 이씨의 장녀로 태어났다.#[5] 이후 상경하여 경기도 경성부 화천정(현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6][7] 에 거주하였으며,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梨花女子高等普通學校)[8]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초 광주학생항일운동 동조 시위 계획에 동참하여 1월 15일 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러다가 그해 2월 21일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성부 서대문경찰서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다가 3월 2일 훈계 방면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민금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1930년 2월 28일, 경성부 서대문경찰서에서 촬영된 사진.[2] 평의사공파 29세.[3] 여흥 민씨 평의사공파-노천파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민강도 이 마을 출신이다.[4] 1887년 ~ 1959년 10월 12일.# 충청도 청주목 남이면 양촌리에서 아버지 민상현(閔相賢, 족보명 민구호(閔久鎬))과 어머니 영해 박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부터 수년간 극심한 가뭄과 흉년으로 남이면민들이 기아에 허덕일 때 양곡 1만석을 풀어 주민들을 구휼하였고 또한 소작료를 면제 해주고 면민 746가구에 대해 토지세와 지방세를 대신 내주는 등 은덕을 베풀었다.# 이에 1929년 6월 남이면민들에 의해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후 같은 평의사공파 문중 종원으로 9촌 숙부(삼종숙) 민강이 경영하는 동화약방주식회사에 소액주주로서 투자하면서 1931년 이사에 취임했다가# 그해 11월 4일 창업주 민강이 옥고의 여독으로 별세하자 제2대 사장으로 취임하여 1933년까지 역임했다.[5] 여흥민씨세보에는 무슨 연유에선지 민영덕의 부인에 이씨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평산 신씨·보성 오씨·남원 양씨 등 3명만 등재되어 있다. 또한 민금봉도 족보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6] 화천정 5번지, 즉 지금의 순화동 5-1번지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다. 이곳에는 현재 덕수궁 롯데캐슬 민영 주차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본디 동화약품주식회사 본사가 창립 이래로 117년간 있었던 곳이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대동단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또한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의 생가터이기도 해서 여흥 민씨 가문으로서는 꽤나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7] 현재 동화약품주식회사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631번지 LG서울역빌딩에 있으며 2014년 5월 12일 이전했다.#[8] 현 이화여자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