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Ewha Girls' High School'''
'''梨花女子高等學校'''

[image]
'''교 훈'''
'''자유 · 사랑 · 평화'''
'''自由 · 愛情 · 平和'''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
(Mary Scranton)
'''국가'''
[image] 대한민국
'''분류'''
광역단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개교'''
1886년 5월 31일 이화학당 (138주년)
'''교장'''
제15대 김혜정
'''학생 수'''
36학급 1,279명
'''교직원 수'''
82명
'''성별'''
여자고등학교
'''설립정신'''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전인적 인간
미래를 선도할 능력 있는 여성 지도자 양성
'''교화'''
배꽃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26 (정동 32-1)
'''학교법인'''
이화학원
(梨花學園)
'''관할교육청'''
서울특별시교육청 (중부)
'''홈페이지'''
이화여자고등학교 공식 홈페이지
이화여자고등학교 총동창회 공식 홈페이지
이화여자고등학교 공식 블로그[1]

1. 설립 배경 및 역사
2. 학교 연혁
3. 학교 시설
3.1. 화암 신봉조관 (본관)
3.2. 백주년기념관
3.2.1. 지하1층
3.2.2. 1층
3.2.3. 2층
3.2.4. 3층
3.2.5. 4층
3.2.6. 5층
3.3. 심슨 기념관
3.4. 도서관
3.5. 체육관
3.6. 운동장
3.7. 이화교회
3.8. 이화학사(김점동관, 기숙사)
3.9. 유관순기념관
3.10. 노천극장
3.11. 부재시설/건물
4. 출신 인물
5.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5.1. 지하철
5.2. 버스
6. 이모저모


1. 설립 배경 및 역사


이화는 1886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이다.
1885년, 미국인 감리회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이 조선 땅을 밟았다. 당시 그녀는 52세의 과부였으며, 의사인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러 조선에 왔다. 스크랜튼 부인은 조선 여성들이 너무나도 지위가 낮고 억압받으며 사는 것을 보고, 여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정동에 한옥 몇 채를 사들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인들은 낯선 서양인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강했고,[2] 이전에는 여자들이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스크랜튼 부인은 아주 어렵고도 어렵게 여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 1명의 여학생으로 학교를 시작했을 정도.
이후로 버려진 여자아이, 도저히 부모가 기를 형편이 되지 않아 스크랜튼 부인에게 맡겨진 여자아이, 학교에서 일하는 고용인의 딸[3] 등이 스크랜튼 부인의 학생이 되었으며, 차츰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고종황제명성황후 내외는 스크랜튼 부인의 학교에 배꽃이라는 뜻의 이화(梨花)라는 교명을 하사하며 격려했다.
스크랜튼 부인은 교장직에서 퇴임한 후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펼쳤고[4], 소천 후에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다. 이후로도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교장을 맡으며 이화학당을 발전시켰다. 차츰 교과목이 체계화되고 학년도 체계화되어 유치원, 보통과, 중등과, 고등과 등으로 나누어졌다.
1910년, 제4대 교장 룰루 프라이는 "아직 한국에서 여성의 고등교육은 시기상조"라는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이화학당에 대학과까지 개설했다. 대학과는 1925년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되었고, 1935년 정동을 떠나 신촌으로 이전되었다. 1943년에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재단(학교법인 이화학원)[5]이화여자전문학교의 재단(학교법인 이화학당)[6]이 분리되었다.
1988년에는 예술학교인 예원학교서울예술고등학교가 이화학원에서 분리되어 학교법인 이화예술학원으로 독립했고, 1992년에는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2. 학교 연혁


1886년 5월 31일
미국감리회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여사(Mrs. Mary F. Scranton)에 의해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창립.
1887
고종황제이화학당이란 교명을 하사.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保救女館)[7] 설립.
1890
미스 로드와일러(Miss Lousia C. Rothweiler) 학당장에 취임.
1893
미스 페인(Miss Josephine O. Paine) 학당장에 취임.
1900
메인홀(Main Hall, 구 교사와 기숙사 및 강당) 준공.
1904
4년제 중학과 설치
1907
미스 프라이(Miss Lulu E. Frey) 학당장에 취임.
1910
대학과 설치.
1915
심슨기념관(Simpson Hall) 준공.
1920
유관순 열사 순국.
1921
미스 월터(Miss A. Jeanette Walter) 학당장에 취임.
1922
미스 아펜젤러(Miss Alice R. Appenzeller)[8] 학당장에 취임.
1923
프라이기념관(Frey Hall) 준공.
1925
이화학당 대학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
1929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여자보통학교의 행정을 분리하고 미스 처치(Miss E. Church) 교장에 취임.
1935
이화여자보통학교를 폐지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를 대현동 신촌 교사로 이전.
1938
신봉조 교장 취임. 미스 처치 명예교장으로 추대.
1943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보육학교ㆍ이화여자전문학교의 재단을 분리
1946
4년제 이화고등여학교[9]를 6년제 이화여자중학교로 학제 개편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자대학교로 개편(한국 최초의 종합대학)
1950
4년제 중학교와 3년제 고등학교를 병설하고 다시 3년제 중학교와 2년제 고등학교로 개편.
한국전쟁으로 메인홀 소실.
1951
부산 영도에 가교사를 설치하고 수업 재개
바뀐 교육법에 따라 3년제 이화여자중학교와 3년제 이화여자고등학교로 개편
1953
서울로 환도하여 완전 복교.
이화예술고등학교 신설.
1954
교지 「거울」창간
1955
대천 해양 훈련장 개설, 순화동 1번지 대지 구입. 교지 확장.
1956
석조 노천극장 준공.
1958
스크랜튼 기념관 준공
재단법인 유하학원을 이화학원으로 개칭.
1961
신봉조 교장 정년퇴임. 서명학 교장 취임
1963
신봉조 전 교장 학교법인 이화학원 이사장에 취임.
1964
이화여자중학교 30학급, 이화여자고등학교 27학급 인가.
1968
문교부 지시에 의하여 1968학년도 재학생의 최종 졸업연도인 1971년 중학교가 폐지되고[10] 고등학교가 각 학년 20학급씩 총 60학급으로 인가.
1970
본관 신축교사 준공
1971
서명학 교장 정년퇴임. 정희경 교장 취임.
1974
유관순기념관 준공
1975
프라이기념관 화재로 소실.
1976
「이화 90년사」 간행.
1982
정희경 교장 퇴임. 심치선 교장 취임.
1986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 거행. 전인향동창 기념 도서관 준공. '여성 신교육의 발상지' 기념비 건립.
1988
학교법인 이화학원에서 예원학교서울예술고등학교 분리(학교법인 이화예술학원)
1989
신봉조 이사장 퇴임. 강병훈 목사 이사장 취임
1990
싱가폴 Anglo-Chinese Junior College와 자매결연
1992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신설
고등학교 학급이 각 학년 10학급씩 30학급으로 인가
1994
「이화100년사 간행, 호주 Strathcona Baptist Grammar School과 자매결연
1995
심치선 교장 정년퇴임. 최종옥 교장 취임
1996
고등학교 학급이 각 학년 12학급씩 총 36학급으로 인가
창립 110주년 기념행사 거행
설립자 메리 스크랜톤 여사와 신봉조 명예 이사장의 흉상 건립.
1999
이화 옛 정문 복원
2000
최종옥 교장 정년퇴임. 정창용 교장 취임
2003
일본 야마나시 에이와 여자고등학교와 자매결연
2004
이화 100주년 기념관 준공
2005
강병훈 이사장 퇴임, 조영준 목사 이사장 취임
2006
창립 120주년 기념행사 거행, 이화박물관 개관.
유관순 열사 동상 건립.
2007
이화 체육관 준공
2008
조영준 이사장 퇴임, 김고광 목사 이사장 취임
2009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정창용 교장 퇴임, 강순자 교장 취임
2012
김고광 목사 이사장 퇴임, 이기우 목사 이사장 취임
2013
이화 기숙사 김점동[11]관 준공.
2016
창립 130주년 기념행사 거행

3. 학교 시설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와 캠퍼스를 나눠 쓰고 있다. 넓고 미관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학교 부지가 18,000평이나 된다. 외부인이 들어와도 넓고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일은 거의 없다. 고대 로마의 양식의 노천극장[12]과 여러 동상들, 잔디밭길, 넓은 운동장, 분수대, 개울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봄에 꽃이 필 때, 가을에 단풍 떨어질 때 풍경이 아주 예쁘다.

3.1. 화암 신봉조관 (본관)


지하에는 매점, 자습실이 있다.
지하와 1층 사이에는 동연회실이 있다.
1층은 학생회실, 사회교육실, 생활인성부, 창의체험부, 진로진학부 교무실, 상담실, 보건실, 109호 자습실[13], 로비, 행정실, 인쇄실이 있다.
2층은 3학년 교무실, 큰 교무실, 방과후학교부 교무실, 교장실, 방송실
3층에는 교목실, 여사님 휴게소
3층부터는 교실. 1학년은 3~4층, 2학년은 4~5층, 3학년은 5~6층을 사용한다. 사이사이에 교과 교실이 있다.
기도실은 3층, 5층에 하나씩 있다.
7층에는 학생 식당, 8층에는 교직원 식당이 있다. 건물 자체도 높아서 학생 식당에서도 서울 도심 전체가 많이 보인다.
출구가 2층에 있는 서문 쪽으로 1개, 1층 로비 앞과 지하에 있는 동문 쪽으로 2개, 총 3개가 있다. 이렇게 모두 층이 달라 길을 잃기 쉽다.[14]

3.2. 백주년기념관


구름다리로 이곳의 3층과 본관의 1.5층이 이어져 있다. 1, 2학년들은 이동수업이 잦은 편이라 이 구름다리를 이용할 때가 많은데, 1.5층에서 갑자기 3층으로 이동하는데다가 백주년기념관은 층마다 구조가 달라서 신입생들이 자주 길을 잃는다. 입학한 지 꽤 됐어도 다니다 보면 이곳이 몇 층인지 헷갈리기 쉽다. 구름다리로 백주년 기념관 들어가면 3층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쉽다.

3.2.1. 지하1층


이화 아트 갤러리가 있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미술 교사, 미술 관련 동아리의 전시회가 열린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서 철문 두 개를 열면 갤러리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교복 공동 구매를 진행한다. 2021학년도 신입생들은 기존 안내된 이곳이 아닌 체육관 1층 무용실에서 교복 공동 구매를 진행한다.

3.2.2. 1층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져 있는 화암홀과 카페(La green)가 있다. 화암홀은 정동길 쪽으로 나 있는 동문 바로 앞이라 찾아오기도 쉽고 시설이 꽤 괜찮아서 가끔 외부에서 이곳을 대관해 영화 시사회나 공연, 팬미팅을 하기도 한다. 한 학년이 앉으면 딱 맞을 정도의 크기. 신입생OT나 한 학년끼리만 모이는 행사를 이곳에서 진행한다.
La green는 비싸서 학생들은 잘 가지 않고, 외부에서 오는 손님을 주로 받는다. 학생들에겐 커피를 판매하지 않는다. 일과 시간에 카페에 가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비싸도 한국에서 최초로 생겼던 카페가 있던 터라서 찾아오는 사람이 꽤 있다.

3.2.3. 2층


음악실1, 음악실2, 개인연습실, 기도실이 있다. 음악 수업 때는 주로 음악실1을 이용하고, 조별 활동을 해야 할 때 음악실2를 사용한다. 개인연습실은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3.2.4. 3층


컴퓨터실, DSD[15]교실, 시청각실, 프라이홀[16], 그리고 본관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있다.

3.2.5. 4층


물리실, 화학실, 생물실, 지구과학실(이라 쓰고 박물관이라 읽는다), 교사연구실--, 거울 동아리실이 있다.
정말 이과스러운 층이라서 문과생들은 1학년 때만 몇 번 가보고 그 후에는 딱히 갈 일이 없지만, 이과생들은 1주일에 3~4번씩 지학실에 가야 한다. 수업 말고도 IR, 관련 동아리까지 하면 아주 힘들다. 이 곳에서부터 이과생이 생활하는 본관 5층까지는 평보로 약 4분이 소요된다.
4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way to be a scientist, the way my dream comes true라는 글자가 붙여져 있는데 교사들이 기획하고 붙인 스티커라고 한다.

3.2.6. 5층


영어교과실, 예절실, 가정과학실, 회화실, 공동작업실, 도예실로 이루어져 있다.
영어교과실은 1학년과 2학년 문과 과목에 있는 영어 회화 시간에 이용한다.
예절실은 종교 시간에 가끔 조별 작업을 할 때 이용한다. 뷰가 아주 끝내준다.
가정과학실은 1학년 때 들어있는 가정 시간에 실습을 할 때나 가끔 이용한다. 오븐도 있고, 여러 가지 시설이 괜찮다.
공동작업실은 평소에는 학생들이 잘 이용하지 않으나 가끔 교과수업이나 외부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미술실은 2개가 있어 하나는 교과 미술 수업용으로, 하나는 전공 수업용으로 사용한다.
미술실에는 정말 가마가 있다.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라 열선이 깔려 있는 기계다. 때문에 학생들은 봐도 가마인 줄 모른다. 실제로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울 수 있다.

3.3. 심슨 기념관





이화박물관. 주말에는 외부인이 자주 들어온다. 주중에도 관람객이 꽤 있다. 가끔 구름다리를 지날 때 손을 흔들면 같이 인사해 준다.
이화학당 건물이었기 때문에 국가등록문화재 제3호로 지정돼 있다. 때문에 문을 수리할 때도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지하 1층과 3층은 자습실이다. 지하 1층에는 인강실도 마련되어 있다. 2층도 원래는 자습실이었지만 창립 130주년을 맞아 자습실을 없애고 박물관을 2층까지로 넓혔다.

3.4. 도서관


  • 1층: 학교법인사무실[17]
  • 2층: 누리터[18] (자료열람실)
  • 3층: 자율학습실. 심화반 학생들이 이곳에서 자습한다. 2016년부터는 심화반이 없어지고 3학년들이 쓴다. 그리고 토론방[19](사랑방, 평화방)도 있다. 2층 자료열람실에서 책 읽다가 간혹 물 뜨러 본관까지 가는 이화인들이 있는데, 3층 자율학습실 앞에 정수기 있다.
원래 거울 동아리방이 이 건물에 있었는데, 백주년기념관으로 이사 갔다.

3.5. 체육관


무용실, 체육실(헬스장), 골프연습실, 실내체육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화외고와 함께 쓴다. 2021학년도 신입생들은 이 곳 1층 무용실에서 교복 공동 구매를 실시할 예정이다.

3.6. 운동장


본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고, 이화외고 바로 앞에 있다. 기숙사 입사/퇴사날이나 교내행사가 있을 때 주차장으로 쓰인다.
3년에 한번 크게 운동회를 운동장에서 한다.
2016년 5월 13일에 창립 130주년 기념 전학년 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2019년 133주년에도 개최됨.

3.7. 이화교회


유관순기념관에 딸려 있다. 체육관 바로 옆에 있는데, 교내에서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라 데이터를 다 쓴 기숙사생들이 모인다. 옆에 있는 평상에서 동아리 회식이나 반 단합대회를 하는 편. 미리 말하면 부르스타를 대여할 수 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는데, 뭘 먹든 뒷정리를 잘하자. 외부에 피아노가 있다.

3.8. 이화학사(김점동관, 기숙사)


2013년 완공되어 5월부터 사생을 받았다. 총 수용인원은 450명이며 매 학기 입사 신청을 받아 성적70%, 거리 20%, 그 외 특별사유 10% 비율로 학년별 140명의 사생을 선발한다. 성적은 신입생의 경우 2월 말에 치르는 반배치고사로, 재학생은 전 학기 성적을 기준으로 뽑는다. 거리 사유 신청은 네이버 지도 기준으로 집에서 본교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단 시간 기준으로 적어내면 된다. 보통 1시간 이후면 대부분 선발된다는 듯. 또한 입사생들은 매 학기마다 결핵 검사 결과지를 제출해야 한다. 2인 1실, 4인 1호실이며 룸메이트는 1, 2학년은 임의 배정되어지고 3학년은 선택이 가능하다. 호실마다 2개의 방과 2개의 샤워실, 2개의 화장실이 있다.
이화외고와 함께 쓴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이화학사는 여고만 사용한다. 여고 학생들끼리 외고와 기숙사를 같이 쓸까 하는 문제에 대해 투표를 했는데 부결되었다고 한다.
처음 입학한 신입생들 중 기숙사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자습과 잠 때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곤 한다. 적응하지 못하고 입사한 지 얼마지나지 않아 퇴사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글쓴이의 룸메는 버릇처럼 "퇴사하고 싶다"를 항상 중얼거린다.
BCR[20]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방이 더러우면 도장 못 받는다. BCR목록에는 계절별로 창문 열고 닫기가 정해져 있고 블라인드의 올라감, 이불정리, 신발장 정리, 문 열림 문 닫힘, 호실 책상의 정리 유무 등을 본다. 1주일에 도장이 3개 이하면 벌점, 또 1주일 내내 도장을 모아 5개가 있으면 상점. 정말 사소한데 정신 차려 보면 경고까지 간다. BCR은 룸메를 잘만나자, 룸메가 더러우면 같이 벌점받는다.
주중에만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으며, 금요일 방과후에 퇴사해 일요일에 귀사해야 한다. 금요일 귀사는 8시 15분부터 50분까지. 금요일 조기 귀사를 신청하면 학교가 끝난 4시 20분부터 1교시 야자 시작 전인 6시 40분까지도 나갈 수 있다. 지방 학생의 경우 입학할 수는 있으나 주말마다 지낼 곳이 없는 기이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학교 근처의 바비엥에서 주말마다 지내는 학생들이 꽤 있다. 학원이나 병원에 가기 위한 외출/외박은 신청하면 주 1회 가능하다. 3학년이 되면 주 2회도 가능하다.
지하에는 자습실이 있다. 원래는 학생들을 위한 탁구대같은 여가 물품들이 있던 장소라고 한다. 하지만 기숙사생들의 성적 하락에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인해 급조한 자습실이어서 조금 좁다. 시설은 꽤나 좋은 편. 1층에는 컴퓨터로 인강을 듣거나 테이블에서 자습을 할 수 있는 다목적실이 있고, 1층부터 7층까지 숙소가 있다. 5~7층 기숙사생들은 한번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꽤 시간을 보내게 된다.
통학을 하는 학생에게 방을 보여주겠다며 이화학사 안으로 데려오면 퇴사해야 한다.
아침 6시 20분부터 7시까지 아침 노래가 울리는데 이 노래는 6시쯤 일어나 1층에 내려가면 신청할 수 있다. 기말고사를 볼 때 트러블메이커의 <내일은 없어>가 나오기도 하고, 만우절이면 <오빠는 풍각쟁이야> 같은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학생들이 신청하기 때문에 시즌별로 유행하는 노래가 매일 반복해 나온다. 스밍기간이 되면 신청하려고 5시 30분 즈음부터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2014년도 1학기에는 인피니트의 노래나 에디킴의 '너 사용법'이 주로 나왔는데, 안 그래도 아침인데 맨날 같은 노래가 나오니 진저리가 난다며 짜증내는 학생들이 많았다. 2017년에는 사무라이 하트가 종종 나온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부터는 클래식만 신청할 수 있다. 비-La Song, SS501-U R Man, PRODUCE101-PICK ME 등의 금지곡들이 지정되었다. 6시 20분 기상 알림과 함께 노래가 나오는데, 7시까지 노래가 재생되며 7시까지 기숙사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벌점이다.
층마다 2대씩 냉장고가 있다. 이곳에는 유제품류나 과일류만 넣을 수 있다. 훔쳐가는 학생이 있어 CCTV까지 설치했다. 그 외에 다른 음식을 소지하는 것도 벌점. 2017년 이제는 젤리 반입이 가능하다!! 다만 설탕 묻은 건 안 된다.
기숙사 자습 시간은 4시 40분부터 5시 30분까지 0교시 (방과후 신청 학생들은 방과후를 듣자), 6시 30분까지 석식을 먹고 들어가 6시 40분부터 8시까지 야자 1교시, 8시 20분부터 10시까지 야자 2교시, 10시 15분부터 11시 15분까지 야자 3교시. 11시 40분부터 12시 10분까지 점호 후 심야 자습이 있다. 시험기간에는 심자를 4시까지도 한다. 자습 시작 5분 전 착석이 예의며 자습 시간에 지각 시 벌점이다.
야자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에는 1교시에 도서관을 신청해서 컴을 쓰고, 2, 3교시는 인강이나 다목적실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 단, 도서관 신청은 6시 30분 전까지, 인강과 다목적 신청을 하려면 6시 15분부터 신청 대기해야 한다.
기숙사의 끝방인 5호 라인에는 귀신이 출몰한다는 민원이 자주 들어온다고 한다. 5호라인의 많은 기숙사생들이 귀신을 보았다고 증언했고, 가위에 눌렸다고 말한다. 한 호실에서 가위에 눌리기 시작하면 점점 퍼져 그 주위 호실 학생들도 가위에 눌린다는 소문이 있다.
7층에 한 방에는 화장실을 7번 막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학생의 첫 룸메는 그 이유로 인해 퇴실을 하였고, 지금 룸메도 고민중이라고 한다. 변기가 문제인지 그 학생이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룸메는 조심하길 바란다.
2015년 11월 19일 이화학사 제 1대 자치회 운영위원회가 출범하였다.
2016년 3월 14일 이화학사 제 2대 자치회 운영위원회가 출범하였다.
2017년에 이화학사 제 3대 자치회 운영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자치위원회는 회장, 부회장, 층장 등으로 구성된다. 층장을 하면 매일 점호를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3.9. 유관순기념관


1974년 완공 이후 여러 차례 증축을 통해 현재 1700석 규모의 강당으로 되어 있으며, 이화인의 시작과 끝인 입학식과 졸업식이 이곳에서 거행된다. 또한 유관순 상 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매주 수요일 4교시에 있는 예배시간에 전교생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
3층부터는 동아리방과 이화 동창회실이 있다. 2층에 선교중창단[21], 3층엔 이화 동창회실, 4층엔 성극반[22], 5층엔 한맥, Flight, AnC의 동방이 있다. 한여름엔 찜통이고 한겨울엔 바닥이 얼음장이다.
여담이지만 공연장이라 1층과 2층 사이가 넓다 보니 그 사이에 두 층 정도가 더 있는데, 이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과거의 물건들이 먼지에 둘러싸여 있다. 밑 부분이 썩은 박스에 담겨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트로피, 박제되어 있는 새 두어 마리 정도, 고문서 급으로 오래 된 <거울>지 등. 그리고 성극반이 무대를 세울 때 사용하는 가벽들과 무대장치들[23]을 두는 곳이기도 하다. 무대 옆 측면에서 쏘는 조명방도 있다.

3.10. 노천극장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실내라는 오해를 사지만, 야외원형극장이다. 수학 교사가 설계하고 학생들이 돌을 날라 만들었다고 한다.
횃불예배, 창립기념식을 이곳에서 한다. 창립기념식은 2017년도 이화 131기부터는 유관순 기념관에서 시원하게 하고 창립기념 축제가 열린다. 횃불예배는 밤에 진행해서 괜찮지만, 창립기념식은 5월 말 땡볕 밑에서 진행해 학생들의 불만이 높았다.
창립 133주년 기념 체육대회 응원전과 공연이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이곳에서 넘어지면 대학을 못 간다는 소문이 있다. 어차피 넘어지면 크게 다쳐서 대학 가기 힘들다. 규모 자체가 일반 3층 건물 정도의 크기라 넘어지면 사망이라고 봐도 괜찮다. 다닐 때 조심하자.
지금은 1주일에 1번 들어있는 예배를 유관순 기념관에서 진행하지만, 과거에는 이곳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3.11. 부재시설/건물


그 외에 테니스장 등의 시설과 옛날 이화학당의 교문이었던 사주문, 유관순 열사께서 빨래를 했다는 유관순 우물터 연자방아 등이 있다.
이외에도 기숙사 앞과 심슨홀 앞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의 동상, 이화의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 부인의 흉상, 배구장 터에 있는 이화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이자 유일한 남성 교장이었던 신봉조 전 교장의 흉상, 도서관 앞의 두 남녀 직장인 동상이 있으며 신교육 발상지 비석이 있다.
그 밖에도 별별 것들이 많다. 교사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화는 재활용을 좋아해서 누가 버리려던 것도 가져와서 쓰는 경우가 많다고... 예로 도서관 앞의 직장인 동상이나 배구장 터의 맷돌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노천극장의 돌 중에는 옛 서울성곽의 돌이 섞여 있다고 한다.
기독교 미션스쿨답게 믿음, 소망, 사랑 총 3개의 바위가 교내 곳곳에 놓여 있다.
본관에서 도서관 가는 길 쪽에 방공호가 있다.

4.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매년 5월 말에 있는 창립기념식에 '이화를 빛낸 상'이라고 졸업생에게 상을 준다.

5.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5.1. 지하철


[image] 수도권 전철 1호선 : 시청역
[image] 서울 지하철 2호선 : 시청역
[image] 수도권 전철 5호선 : 서대문역

5.2. 버스



6. 이모저모


  • 고종황제가 이화(梨花, 배꽃)란 이름을 내려준 것, 그리고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것으로 유명하다.
  • 반 구성은 일반적인 학교처럼 숫자로 되어있지 않고 총 12반인 인, 의, 예, 지, 진, 선, 미, 신, 희, 애, 효, 제로 되어있다. 2학년 때부터는 과 선택 비율에 따라 문과, 예체능/DSD, 이과 순으로 반이 편성된다.[25][26]
  • 야간자율학습은 교실에서 진행하지 않고 심슨 기념관의 지하 1층, 3층, 매점 앞 야자실, 도서관 자습실에서 한다. 자습실 배정은 그 해마다 운영이 조금씩 다른 듯. 그리고 기숙사생들은 기숙사 지하 1층에 있는 자습실에서 자습한다.
  • 다른 학교보다 이런저런 행사가 많다. 신앙부흥회, 횃불예배[27], 학생의 날 행사, 부활절예배, 크리스마스 기념 예배[28], 창립기념식 등.
- 2014년 봄에는 랄라스윗을 초청해서 점심시간에 유관순우물터에서 런치 콘서트를 진행했고, 그 외에도 CA시간에 여러 인디밴드를 초청해 학생들이 즐길 수 있도록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 축제가 따로 없고, '이화의 추수'라는 동아리 발표회가 있다. 그러나 교내외에서는 그냥 축제로 통한다. 동연회가 주최하며, 이것도 나름 돈 들여서 크게 하는 편.[29]
- 체육대회도 학생들끼리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찬조들을 많이 부른다. 2014년부터 매년 찬조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학생들이 왔다.
  • 과거에는 종류에 상관없이 체육 쪽에 강했다. 그의 증거로 유관순기념관 1층과 2층 사이, 먼지투성이 속에서 마구잡이로 밑 부분이 썩은 박스에 담겨 있는 트로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체육관 2층 안쪽에도 트로피들이 있다. [30]
  • 교정이 넓고 복잡해 정말 길을 잃기가 쉽다. 3월 한 달이 지나도 교내 지리를 다 알지 못하는 1학년이 나올 정도. 학교 내에 놀리는 공간이나 쓸데없는 공간이 엄청나게 많다.
  • 졸업생들이 기부금을 상상 이상으로 많이 내서 학교 장학 재단에 정말 말 그대로 돈이 넘쳐난다고 카더라. 그래서 그 돈들의 이자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뿌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카더라 물론 장학금을 기부하는 졸업생들이 정말 많은 것은 사실이다.
  • 1학년 말에 다음 해의 자신과 같은 반, 같은 번호의 1학년에게 편지를 쓴다.[31] 보통 편지와 함께 여러 가지 선물을 같이 보내는 경우가 많다. [32] 교사들은 익명으로 하라고 하지만, 핸드폰 번호를 적거나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짝동생, 짝언니라고 부르며 시험기간에는 서로 주전부리도 챙겨주는 등 사이가 좋은 편. 처음 자사고로 지정되었을 당시 자사고로서의 신입생들이 일반고로 재학 중이던 선배 학생들과 잘 지내지 못 하여서 후배들은 외롭지 않으면 좋겠다고 내년에 본인의 학번을 쓸 신입생에게 편지를 쓴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 신입생 합격자 발표, 정기고사 기출자료가 업로드 된다.[2] 서양인들이 조선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괴담마저 돌았을 정도였다.[3] 한국 최초의 근대 여의사박에스더(김점동). 그녀의 아버지 김씨는 이화학당에서 일하는 일꾼이었다.[4] 경기도 수원삼일소학당이라는 여학교도 세웠다.[5]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팔렬중학교, 팔렬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6] 이화여자대학교, 이대부속유치원, 이대부속초등학교, 이대부중, 이대부고, 이대병설영란여중, 이대병설미디어고를 운영하고 있다.[7] '여성을 보호하고 구하는 집'이라는 의미로 고종황제가 지어준 이름. 現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8] 헨리 아펜젤러 목사의 딸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9] 일제강점기 때 여학생을 위한 중등교육기관은, 처음에는 여자고등보통학교였다가 나중에는 고등여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10]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면서 소위 '명문 중학교'들이 폐교되던 시절이었다.[11] 한국 최초의 근대 여의사[12] 수학 교사들이 설계했다는 말이 있다[13] 109호 자습실을 없애고 선생님 휴게실을 만들었다. 자습은 매점 옆 자습실에서 자율적으로 하거나, 도서관 또는 심슨홀에서 한다.[14] 외부인의 시각으로는 지하도 1층, 1층도 1층, 2층도 1층이 되는 것.[15] 현재 PASCH로 이름이 바뀌었다.[16] 1학년 때 반별로 성화그리기 대회를 하는데, 이곳에 전시한다.[17] 로비와 멀티미디어 자료실[18] 약 27,000권의 장서[19] 이곳에서도 자습 가능[20] Best Clean Room의 약자[21] 무대대기실로 사용하기도 한다[22] 이화 100주년 집필실이 같이 있다.[23] 쇼파, 책상, 전화부스, 의자, 창문, 기둥 등등 별게 다 있다.[24] 졸업하지 못하고 순국했으나, 1996년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25] 과거에 학생이 더 많았을 때는 한 학년 당 인, 의, 예, 지, 진, 선, 미, 신, 희, 애, 원, 형, 이, 정, 효, 제, 성, 경, 현, 숙의 총 20반이 있었다.[26] 예체능 인원이 부족해 예체능반이 따로 편성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DSD는 같은 반 내에 편성된다. [27] 재학생 외에 졸업생, 외부인들도 많이 온다. 노천극장에서 열린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양초를 준비해 와야 하는데, 불이 다 켜지면 정말 예쁘다.[28] 학생들이 공연을 하기도 하고, 교사들이 연극을 하기도 한다.[29] 남녀공학인가 싶을 정도로 남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이 온다. [30] 지금 기숙사가 있는 자리에, 원래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쓰는 테니스장이 있었다고 한다.[31] 2014년의 1학년 인반 1번 학생이 2015년의 1학년 인반 1번 학생에게 쓰는 식.[32] 교내에서 쓸 수 있는 복사 카드나 주전부리, 어떤 경우는 현금을 넣어놓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