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구

 

'''민무구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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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구 閔無咎'''
'''생몰년'''
(? ~ 1410년)
'''가족'''
아버지: 민제,
누나: 원경왕후,
동생: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
'''본관'''
여흥 민씨
1. 개요
2. 생애
2.1. 관련 문서
3. 매체에서
3.2. 그 외 작품


1. 개요


여말선초의 인물. 민제의 아들. 원경왕후의 남동생이자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의 형.

2. 생애


1392년 이방원정몽주를 죽이려 할 때 모의에 참여했으며 1398년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민무질과 함께 1398년 이방원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 이방원과 이숙번이 만나도록 주선했고 이 때의 공으로 여강군에 봉해졌다.
1401년 중군 총제를 지내다가 병으로 사직했고 1402년 참지승추부사에 임명되었으며 1405년 참찬을 지냈다. 1407년 의안대군(이화)으로부터 '민무질, 신극례 등과 함께 외척이 되어 지나치게 교만하고 방자하다'고 해서 탄핵을 당했다. 탄핵을 당한 부분이 왕이 경계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었지만 그들의 불충은 완벽한 사실이 되었다.

이방원(태종): 임금에게는 아들이 하나만 있어야 한다고 했느냐?

민무구: 그렇습니다. 전하! 세자 외에는 영특한 아들이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옵니다.[1]

결국 민무질과 함께 국문을 당한 후에 황해도 연안으로 유배되었고 이후에도 공신, 백관, 대간, 형조 등으로부터 법에 따라 다스려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갔으며[2] 민무질과 함께 직첩이 거둬지고 민제의 요청에 따라 경기도 여주로 옮겼다.
이후에도 꾸준히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왔고 1408년 10월 옹진으로 옮겨졌으며 1409년 10월 민무질과 함께 제주로 유배되었다가 1410년 3월 민무질과 함께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아 사사되었다. 충녕대군, 효령대군 등 왕자들을 제거하려 한 것이 주요 죄목이 되었는데 누나인 왕비도 변호해주기 어려운 것이었다. 태종은 민무구, 민무질 사후 동생들인 민무휼, 민무회를 잊지 않고 죽인다.

2.1. 관련 문서



3. 매체에서



3.1. 용의 눈물


조선 시대 초를 다룬 레전드급 사극답게 가장 행적이 잘 표현된 작품 중 하나로, 배우는 신동훈[3]. 초반부터 등장해 누나인 원경 왕후, 동생 민무질과 함께 매형의 왕위 등극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돕는데, 이 과정에서 아버지 민제의 반대도 무시하고 권근에게 접촉하여 사돈을 맺는 등 세력 불리기에 사활을 걸며 이방원이 권력을 잡는데 온갖 도움을 준다. 2번의 왕자의 난과 조사의의 난 때 동생과 함께 직접 갑옷을 입고 군사들을 끌고 참여했다. 하륜, 이숙번, 조영무 등과 함께 가장 충성스럽게 이방원을 도운 공신으로, 조영무, 이거이 등이 이방원의 사병 혁파에 격분해 반발하다 귀양을 갈 때도 기꺼이 사병 혁파에 찬성하며 사병을 내놓는 등,[4] 이방원이 왕위에 오를 때까지의 행보는 분명 원경 왕후가 늘상 하는 "아우들이 아니었다면 전하가 왕위에 오르실 수 있었겠느냐"란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방원이 태종으로 왕위에 오르고 나서 왕권 강화를 위해 외척을 경계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창창해 보였던 앞날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그 징조는 아직 태자 시기의 이방원이 사병 혁파 과정에서 반발하던 공신들을 귀양보낸 후 가진 동생 민무질과의 술자리에서 나타나는데, 이방원은 술자리에서 흥겹게 놀면서도 권력을 위해 자신에게 충성했던 공신들마저 냉정히 귀양보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워 민무질에게 "처남, 권력이 무엇인지 아는가?"라 묻는데, 민무질은 눈치없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옵니까, 사내로 태어나 그것 하나 손에 못 쥔다면 그게 어디 사람이겠습니까"란 답변을 해버리고, 기가 찬 이방원은 술자리를 들어엎으며 "나 이방원의 치세가 계속되는 한 권력을 가진 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제도, 아버님도 내친 판에 처남이라고 별 수 있을 것 같은가"라 꾸짖는다. 아마 조만간 외척이 될 처가에 대해 잘 처신해서 숙청의 명분을 피하라는 일종의 경고였을 듯. 그러나 민무질은 후에 형과 누이에게 이 발언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무서운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했고, 원경 왕후와 민무구 또한 "어째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 심기를 건드리나"와 같이 면박만 주었을 뿐, 권력을 얻은 후의 처신 또한 별 다를바 없이 행동하면서 화의 씨앗을 틔우고 만다.
결국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처신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권력을 틀어쥐고 부귀영화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에 공신이 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공이 있는데다 외척이라는 뒷배경까지 있는 이들을 견제하고자 한 이숙번이 태종에게 간언하지만, 태종은 '사람이 변했구먼, 제 몸 보신을 위해 남을 헐뜯는 법도 배웠는가'라며 무시한다.[5] 하지만 태종은 이미 이전부터 보아둔 이들의 행동이 결국 왕권을 저해할 강력한 외척으로 성장할 것임을 예측하고 있었고, 결국 1차 양위 소동을 일으킨 뒤, 양위 반대에 소극적이었던[6] 이들의 행동을 트집잡아 세자를 내세워 국정을 농단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귀양을 가고 만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일관하다 갑작스레 이들을 찍어내버리는 태종의 행동에 둘을 견제하고자 했던 이숙번마저 '그들을 견제하고자 했지, 파멸시키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며 경악하면서도 한탄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세상이 온 줄 알고 부귀영화를 즐기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귀양을 간데다, 이러한 사건의 정치적 의미를 파악할 능력도 없었던 두 사람에게는 그저 억울한 마음 뿐이었고, 귀양 도중 아버지 민제의 죽음으로 장례를 위해 일시적으로 도성으로 오는 것이 허용되어, 민제의 장례식에서 매형을 마주한 자리에서 억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민무질이 실언을 했다가 태종에게 "장인은 훌륭한 분이시지만, 그건 그분에게만 해당되는구만. (어찌하여 장인 어른은 자신과 같은 자식들을 얻지 못하셨단 말인가)"이라는 사실상의 최후 통첩을 받고 회생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애초에 민제는 태종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식들을 살려보려 귀양 도중 자진해서 귀양지를 먼 곳으로 옮겨달라 했으며 죽기 직전에도 태종에게 "자식들을 잘 부탁드린다"며 큰절을 올리는 등 여러 노력을 했지만, 두 형제의 짧은 식견은 끝내 아버지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 셈.
결국 장례가 끝난지 얼마 안 되어 옹진진을 거쳐 제주로 옮겨지고, 그 곳에서 해안가를 바라보며 동생과 함께 "그 때는 참 좋았었지..."라 회상만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말 안해도 두 형제의 한때는 좋았던 과거랑 참 비교가 되는데다, 그런 말을 하는 제주도 해안가의 분위기가 참으로 처량해서 두 형제의 심정에 절로 공감이 간다.[7] 그러나 두 형제의 기구한 운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제주로 유배간지 얼마 후 태종에게서 사약이 내려오고[8], 이를 본 민무구는 "우리보고 죽으라구?"란 말만 반복하며 할 말을 잃고 만다. 원경 왕후가 태종의 면전에서 발악을 하며 막으려 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고, 둘은 태종을 원망하여 저승에서 반드시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긴 뒤 사약을 마시고 극중에서 퇴장한다.[9][10] 이들이 죽은 뒤 남긴 말을 들은 태종은 "아무렴,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리가 있나. 나라도 그랬을 게야."라며 복잡한 감정을 내비쳤지만 동시에 이 말을 '''절대 잊지 않고 있다가''' 뒷날 이 말을 떠올리며 민무휼민무회도 죽여버린다.

3.2. 그 외 작품


정도전에서는 조재완[11]이 맡았다. 비중이 높지는 않으나 조연으로 꾸준히 얼굴을 비추며, 무인정사에서는 정도전을 찾기 위해 최씨 부인을 붙잡고 협박하거나 편전에서 의안군, 정진(정도전의 장자)를 끌어내고 의안군을 참수하는 등의 활약을 한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마지막 회에서 후일 이방원에 의해 사약을 먹고 죽는(..) 장면만 연출되는 단역으로 등장.
박시백 판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민씨 4형제가 제 나름대로 몸을 사렸다는 해석을 하였다. 아버지 민제가 '주상께서 우리를 보시는 눈이 썩 좋지 않으니 자중하여라'라고 충고하자, 민무구와 민무질이 긴장하며 물러나는 모습이 나온다. 둘은 '주상께서 우리를 (먼저 숙청당한) 이거이 부자처럼 보시는 것 같다'라며 뒷일을 걱정하고, 걱정대로 태종은 반역을 빌미삼아 둘을 숙청한다.
[1] 태종의 삼촌인 이화는 이 말에 대해 "이것은 왕실의 자손을 제거하려는 뜻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쳐도 이화가 주장한 뜻으로 보긴 어렵다. 후계자 문제로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등극한 임금이 바로 태종이니 앞으론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우려로 보는게 타당하다.[2] 태종은 하륜에게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하륜은 가볍게 처벌해도 된다고 했는데 태종이 "곧은 말이 아니다."라고 하며 태종의 숙청 목적이 드러난다.[3] 태조 왕건에서 배현경 역을 맡았다.[4] 사실 이들도 내심은 사병을 내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인 민씨도 강력하게 요구하다보니, 이방원의 처남인 처지에서 반기를 들 순 없는 노릇이라 순순히 사병혁파에 따른다.[5] 태종이 세자위에 오른 이후부터 집 앞에 각종 재물을 든 세력가들이 장사진을 치고 줄을 대려 했다. 민제는 이를 질색하여 방문객들을 모두 내치려 하지만 아들들은 민제의 당부와 호통을 듣는둥마는둥했다.[6] 반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저하가 왕이 되면 우리에게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 양위 파동 직전에 중궁전에 들렀다가 트집 잡히기 좋은 이들의 행동에 흠칫한 원경 왕후의 꾸지람을 듣고 입궁한 뒤 대신들의 반대 분위기에 마지못해 반대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던데다 중궁전에 들렀던 뻘짓까지 걸려서 태종에게 꼬투리를 잡히고 만다.[7] 이때까지도 진짜 죽일거란 생각은 못하고 시간 좀 더 지나면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권력을 꿈과 같다며 한탄하는 민무질에게 민무구는 언젠가 다시 그 꿈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며 위로했다.[8] 사약과 교수형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해서 사약을 택한다. 참고로 후에 같은 형을 받게 되는 동생들인 민무휼과 민무회는 교수형을 택한다.[9] 이로 인해 한동안 원경왕후는 자다가 민무구 형제가 자신에게 살려달라며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을 보는 꿈을 꾸게 된다.[10] 심지어 145화에선 세자빈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던 중 무당이 민무구의 혼이 빙의했는지 원경왕후를 부르짖을 때도 민무구의 환청으로 연출한 바 있었다.[11] 추노의 김성환 역을 맡았던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