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네사 메이

 

'''이름'''
바네사-메이 바나콘 니콜슨(陳美[1], 陈美[2])
Vanessa-Mae[3]Vanakorn[4]Nicholson[5]
'''국적'''
영국[image], 태국[image](복수국적)[6]
'''출생'''
1978년 10월 27일, 싱가포르
'''악기'''
일렉트릭 바이올린
'''종목'''
알파인 스키
'''링크'''

1. 개요
2. 생애
4. 영상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


싱가포르에서 출생하고 영국 국적으로 귀화한 크로스오버 일렉트릭 바이올린 아티스트이다. 태국 국적도 있기 때문에 태국의 국가대표 알파인스키 선수로 출전하기도 하였다.

2. 생애


1978년 싱가포르에서 태국인 아버지(Varaprong Vanakorn)와 중국인 어머니(Pamela Soei Luang Tan)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모가 헤어진 후,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하여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였고, 어머니가 영국인인 그레이엄 니컬슨(Graham Nicholson)과 재혼하면서 그에게 입양되었다.
일렉트릭 바이올린과 파격적인 의상으로 클래식풍의 팝을 연주하는 복잡하면서도 힘있는 음악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중후반 전세계를 강타한 유명한 바이올리스트이다.
특히 1990년대에는 자넷 잭슨 등과 같은 거물급 아티스트들의 곡에 피쳐링 하며 공동 음악작업을 하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음악을 바이올린 어쿠스틱-테크노 퓨전 이라고 칭하고 있다. 지금이야 흔해 빠졌지만[7] 그녀가 처음 데뷰하던 1990년대만 해도 테크노 장르 자체도 생소했고, 그 이전에 클래식의 상징이던 바이올린으로 테크노 영역을 접목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시절이라 더더욱 파격적인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이올린으로 낼 수 있는 풍부한 영역으로 감수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주로 하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 사랑받고있으며,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는 1999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의 내한 공연 때 지상파를 라이브로 탄 적이 있고 2004년 내한한 것이 가장 최근 내한이다.
대중성 있는 음악으로 성공을 거둔터라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그저 파격만 노린, 클래식의 모양만 베낀 일렉트릭 바이올린 연주자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양쪽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이며 13세에 베토벤차이콥스키 협주곡을 무대에서 솔로로 연주하여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영재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바네사 메이의 일부 앨범에는 클래식 곡들도 같이 수록되어있다. 어쿠스틱 바이올린과 일렉트릭 바이올린은 피아노와 키보드이상으로 연주법이 다른 악기로 양쪽 다 수준급 이상으로 다루는 것은 거의 두 가지 악기 다루는 수준으로 어렵다.

대표곡은 1995년의 앨범인 'Violin Player'에 수록된 '''"Contradanza다."''' 마성의 BGM이기도 하며, '티피코시' 광고 삽입곡으로도 유명하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TV방송사에서 심심하면 배경음악으로 깔아주기도 했던 곡이다. KBO 리그에서는 SK 와이번스 박정권 선수의 등장곡으로도 쓰였고,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가 '영원하라' 역시 이 곡을 약간 편곡하여 쓰여지고 있다. 그 밖에도 'Storm'[8], 'Red Hot#s-3', 'I feel Love'[9], 'Sabre Dance' 등 여러 노래들이 로고송으로 쓰여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곡이 상당히 많다.
3살부터 피아노를, 5살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어머니의 가혹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서 음악을 배웠다. 그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가 20살 때까지 그녀의 어머니는 화가 나면 그녀의 얼굴과 팔을 때렸고, 그럴 때면 그녀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찧는 중국식 절을 하며 반성해야 했으며, 취미로 배우던 스키는 물론이거니와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도 포기하라고 강요받았고, 침대 정돈이나 아침식사 준비, 혼자 길을 걷는 법 등도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21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그녀의 어머니가 더 이상 그녀의 매니저 역할을 하지 못하게 했고, 어머니와의 연락을 끊었다. 이제는 거의 의절을 한 상태라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한가 하면 남자 친구와 15년 넘게 연인으로만 지내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자신 역시 아이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엄마가 될까봐 두려워서라고 한다.

3.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


생부의 국적을 따라 Vanessa Vanakorn이라는 이름으로 '''태국 국가대표 알파인 스키 선수'''로 출전했다. 그녀는 원래 4살 때부터 스키를 탔다고 하며, 음악을 하기 위해 스키 선수의 꿈을 접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올림픽 출전의 꿈을 위하여 1년간 음악활동을 중지하고 올림픽을 준비했다고 한다. 2월 18일 벌어진 여자 대회전 경기에서 1,2차 레이스 합계 3분 26초 97로 경기를 마쳐, 완주한 선수 '''67명 중 67위'''로 경기를 마감했다.[10] 본인은 올림픽에서 완주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인터뷰를 하였다.[11] 이 부분은 2018년 2월 4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올림픽 출전자격을 얻기 위한 포인트 기록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게 되었고 결국 2014년 11월 11일 국제스키연맹(FIS)으로부터 4년 간 선수자격 정지라는 징계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바네사 메이는 조작 의혹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며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했고, 결국 2015년 6월 22일에 무죄판결과 함께 징계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나왔다.

4. 영상



5. 기타


  • 서구권 팬덤에서는 바네사 메이가 이 곡을 연주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한때 널리 퍼지기도 하였다.
> '메이'라는 한 소녀가 있었다. 메이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었지만 항상 실력이 형편 없다고 타박을 받아 슬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는 한 할아버지를 길에서 만나 자신의 늘지 않는 바이올린 실력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는데, 할아버지는 메이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정말 아름다운 소리다'라고 칭찬해 준다. 메이는 그 칭찬을 듣고 자신감을 얻어 실력을 키우게 되고, 결국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된다. 몇 년 뒤 그 할아버지를 찾던 메이는 할아버지의 아들에게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또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셨기 때문에 음악 소리를 들으실 수가 없으셨다'라는 말도 듣는다. 메이는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자신감을 주려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아름답다고 칭찬해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메이는 할아버지의 무덤에 가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 이후 내레이션으로 "이 메이가 바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이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과연 진실일까, 거짓일까?"라는 말이 나온다. 많은 시청자들이 실제 인물을 데려와서 제시했기 때문에 해당 이야기가 진실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거짓이었다.

6. 관련 문서


[1] 번체자[2] 간체자이며, 한국 한자음으로는 '진미'다.[3] 중국어 미들네임이다. 중화권에서는 천메이라고 하며 여기서 천은 어머니의 성이다.[4] 태국인 친부 성[5] 영국인 양부 성[6] 출생 당시에는 태국, 싱가포르의 이중국적이었다. 싱가포르는 성인이 되면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으며 영국과 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영국으로 귀화하면서 싱가포르 국적은 포기하게 되었고 태국 국적은 포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여 영국과 태국의 이중국적이 되었다.[7] 국내에도 비슷한 컨셉으로 활동하는 바이얼리니스트가 적지 않다. 유튜브로 떠서 스타가 된 미국의 린지 스털링 같은 연주자도 바네사가 없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8] 안토니오 비발디사계여름 3악장 부분을 리메이크한 곡이다.[9] 조르조 모로더가 만들어 도나 서머가 불렀던 곡의 리메이크곡이다.[10] 다만 경기를 중도에 포기(DNF)하거나 기문을 지나쳐서 실격(DQ)해 등수 자체가 없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완전한 꼴찌는 아니다. DNS, DNF, DQ, 를 포함한 전체 참가자는 90명이었다.[11]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올림픽 경기 코스는 급경사에 2번의 점프 구간까지 있기 때문에 천천히 타는 것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