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헨더슨

 

'''리키 헨더슨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펼치기 · 접기 ]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989'''
'''1993'''



'''명예의 전당 헌액자'''
[image]
'''리키 헨더슨'''
헌액 연도
200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4.8% (1회)

'''199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로빈 욘트
(밀워키 브루어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1980 ~ 198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도루왕'''
윌리 윌슨
(캔자스시티 로열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헤롤드 레이놀스
(시애틀 매리너스)
'''1988 ~ 199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도루왕'''
헤롤드 레이놀스
(시애틀 매리너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케니 로프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도루왕'''
브라이언 헌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브라이언 헌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보유 기록
통산 득점
2295점
통산 도루
1406개
최다 100도루 시즌
3회[35]


<colbgcolor=#00383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No.24'''[1]
<color=#373a3c> '''리키 넬슨 헨리 헨더슨
(Rickey Nelson Henley Henderson)
'''[2]
'''출생'''
1958년 12월 25일 (65세)
일리노이시카고
'''국적'''
[image] 미국
'''신체'''
177cm, 84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우타
'''프로입단'''
1976년 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96번 (OAK)
'''소속팀'''
'''[image]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79~1984)'''
'''[image] 뉴욕 양키스 (1985~1989)'''
[image]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9~1993)'''
[image]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3)
[image]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4~1995)
[image]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6~1997)
[image] 애너하임 에인절스 (1997)
[image]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8)
[image] 뉴욕 메츠 (1999~2000)
[image] 시애틀 매리너스 (2000)
[image]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1)
[image] 보스턴 레드삭스 (2002)
[image]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3)
'''수상'''
'''10회 올스타 선정 (1980, 1982~1988, 1990, 1991)
2회 월드시리즈 우승 (1989, 1993)
AL MVP (1990)
AL 챔피언시리즈 MVP (1989)
골드글러브 (1981)
3회 실버슬러거 (1981, 1985, 1990)
12회 AL 도루왕 (1980~1986, 1988~1991, 1998)'''
1. 개요
2. 선수 생활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4. 기행 및 일화
5. 연도별 성적
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좌완 투수 상대로 도루하는 게 더 쉽다. 눈빛으로 제압할 수 있으니까.'''[3]

''' "헨더슨은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다"라는 말은 '하늘은 파랗다'나 '불은 뜨겁다'는 명제와 같다. '''

ㅡ 역대 랭킹에서 헨더슨을 스탠 뮤지얼루 게릭보다 더 높은 순위에 올린 '토탈 베이스볼'의 설명


2. 선수 생활


그의 경이적인 기록들
리키 헨더슨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야구 역사상 최고의 1번 타자'''로 빠른 발과 도루, 출루능력을 가진 선수이다. 오히려 도루기록과 그 위엄때문에 도루만 잘하는 선수로 알기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모름지기 도루를 하려면 1루 베이스부터 착실하게 밟아놔야 한다. 1루는 도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라디오 전담 아나운서 빌 킹은 "리키 헨더슨이 활약하던 1980년대초 오클랜드 팬들은 1-0으로 리드한 상태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일이 다반사[4]였는데 그것은 오로지 리키 헨더슨의 영향이었다."라고 했을 정도. 세이버메트릭스의 창시자인 빌 제임스는 '''"그를 둘로 나눠도 두 사람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것"'''이라고 극찬했다. 2009년 첫 투표에서 94.8%의 득표를 받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5]
통산 성적은 '''득점(2,295점)''' 역대 1위, '''도루(1,406개)'''[6]) 역대 1위,[7][8] 통산 볼넷(2190개) 역대 2위,[9] 통산 안타(3055개) 역대 21위, 타율 0.279, 출루율(0.401) 역대 56위, 장타율 0.419, OPS .820, 순장타율 .140, BB/K 1.29, wRC+ 132이며, 단일시즌 역대 2위인 130도루(1982)[10] 기록을 가지고 있다. 도루왕은 무려 12회. 첫 도루왕은 2년차이던 1980년에, 마지막 도루왕은 20년차인 1998년에 기록했다. 2년차부터 7년 연속 도루왕, 1년 쉬고 4년 연속 도루왕으로 11번을 채우고, 6년 쉬고 마지막 도루왕을 달성했다. 39세 도루왕은 당연히 역대 최고령이다.

게다가 저런 전설적인 출루, 도루능력을 가진 선수 치고는 한방도 있는 선수로 통산 297홈런을 기록했다. 20홈런을 4차례나 기록했으며 3-4-5 시즌도 두 번 기록했다. 거기에 메이저리그를 대표할만한 거포들이 기록할 만한 OPS 1.0을 넘긴 시즌도 있고(1990년 시즌), 0.9를 넘긴 것만 해도 3번이다. 또한 통산 리드오프 홈런 갯수에서 ML 1위(81개)를 기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리드오프의 고질적인 약점인 장타 생산력 역시 매우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70년도부터 92년도까지의 메이저리그는 전형적인 투고타저의 시대로, OPS 0.8만 넘겨도 슬러거로써의 가치를 인정받는 정도인데 이 선수의 경우 그 시대 동안에 0.8이하를 기록한 적이 단 한번[11]밖에 없다는 점은 가히 놀라울 지경.1990년 AL MVP, 1989년 ALCS MVP, 올스타 10회, 도루왕 12회(1980~1986,[12] 1988~1991, 1998[13])의 화려한 성적을 남긴 1번 타자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나마도 출루율이나 장타율 등의 비율 스탯은 선수로서 기량이 쇠퇴한 시기에도 계속 선수로 뛰면서 까먹었음에도 이런 성적이 나온 것 [14]
또한 현재에 와서는 그 경이롭다는 베이스러닝 기록조차 실제보다 저평가(!) 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세이버매트릭스 이전 시기의 경우 UBR(도루를 제외한 타격 후 주루 능력)과 wGDP(더블 플레이 회피 능력)을 BsR에 합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 BsR 수치만 비교해도 이전 시기의 원조 도루왕[15], 호프집 계속 못가시다가 막턴에 입성에 성공한 분[16], 대표적인 공수겸장 2루수[17] 최근 3000안타 찍은 2000년대 최고의 리드오프[18]을 가볍게 제친다[19]. 보통 한 시즌에 BsR수치를 2를 찍으면 평균보다 우수한 주자, 6을 찍으면 압도적인 주자, 8 이상은 그냥 '신'으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리키 핸더슨의 경우 8을 능가한 시즌만 무려 8번에 10을 넘긴 적이 4번 포함, 게다가 제일 높았을 때 BsR 14를 찍은 적도 존재한다.[20] 저 두개의 값이 빠진 결과만으로도 압도적인 1위를 점유하고 있는데 저 값이 채워지면 WAR 수치가 대략 5~15정도 더 늘어난다. 이게 채워지면 바로 윗단계인 루 게릭을 제치며,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WAR 수치와 비슷하거나, 혹은 앞지른다!!! 가히 빌 제임스의 평이 과장이 아닌, MLB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단연 최정상급에 해당하는 전설적인 대선수.
리키 헨더슨의 볼넷 기록과 출루율이 경이적인 것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투수 입장에서 본즈 같이 몰린 공 주면 담장 너머로 넘겨버리는 거포 파워히터를 상대할 때는 그래도 홈런 맞는 것보다는 1루로 보내는게 나으니까 최대한 맞지 않게 거르는 방법[21]으로 상대하지만, 리키 헨더슨처럼 발빠른 타자는 1루를 밟는 순간 투수들의 악몽 그 자체이므로 차라리 똑같이 1루로 보낼거면 공이라도 덜 던지고 안타를 맞겠다는 식으로 상대하기 마련인데도 '''자신에게 볼넷을 내줄 의향이 전혀 없는 투수들을 상대로 이만큼의 볼넷을 얻어낸 것이다.''' [22]
[image]
리키 헨더슨은 상체를 대폭 낮추는 타격 자세를 취했는데, 이는 스트라이크존을 최대한 좁혀서 볼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23] 이와 같이 볼넷을 선호하는 플레이 스타일때문에 리키 헨더슨은 많은 볼넷을 얻어내는 한편, 공을 지켜보다가 삼진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24]
아울러 메이저리그 역사상 통산 출루율 4할을 찍은 '''1번 타자'''는 헨더슨이 유일하다.[25] 주구장창 볼넷 얻어내서 출루율 올리는 강타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 도루 역시 2위인 루 브록과의 차이가 무려 468개다. 야구 통산기록 중 배리 본즈의 고의사구를 제외하면 1-2위 사이의 격차가 이 정도로 넘사벽인 것은 없다. 그러다 보니 도루자(CS)도 335개로 당연히 통산 1위이지만, 통산 도루성공률은 81%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라는 것을 이런 기록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왼손잡이였으나 야구를 시작할 무렵 또래 아이들이 오른손으로 배팅하는 것을 보고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줄 알고 부단한 노력끝에 오른손 타자로 성장했다. 좌투우타, 그것도 리드오프로써 몇배는 유리한 좌타가 아닌 우타 야수로 리그에서 성공한 케이스는 거의 없다. 신시내티 레즈의 라이언 러드윅이나 보스턴 레드삭스의 코디 로스가 현역중엔 대표적인 좌투우타 야수이며, 투수들이 좌투우타를 시도한 경우는 아주 많진 않아도 자주 있다. 랜디 존슨이나 마이크 햄튼, 류현진 같은 선수가 대표적.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일 그가 처음부터 왼손 타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면 내야안타 확률이 올라갔을 것이기에 투수들이 느꼈을 공포는 배가 되었을 것이다.[26][27][28]
그렇게 뛰어난 실력의 타자였지만 의외로 커리어는 복잡하게 굴곡이 심하다. 강철심장을 가졌다는 말과 달리 신체는 의외로 잔부상이 많았고, 600타석 이상 소화한 적이 9번 정도에 그친다. 프로 5년차던 1984년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 되어 4시즌을 뛰다가 1989년 토니 라루사감독의 의향[29]으로 데뷔팀 오클랜드로 재트레이드. 그런데 오클랜드가 갑자기 재정난을 겪으면서 헨더슨을 다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하고 1995년 FA자격을 얻어 '''세번째로''' 오클랜드에 입단하지만 이미 오클랜드는 이전의 위상을 잃은 가난한 팀으로 37세인 노장 헨더슨을 장기계약할 의사가 없었다.[30] 그때부터 헨더슨은 저니맨이 되어 매년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도 현역으로 활약하며 44살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다 2003년 LA 다저스를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31] 2006년까지 독립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한때 뉴욕 메츠의 코치[32]로도 있었지만 독립리그의 선수제안을 받고 바로 달려갔을 정도. 이정도면 야구 중독이다. 이 때문에 그는 명예의 전당 헌액 때도 '은퇴 후 5년'이라는 자격 조건에 해당하는지를 두고서 논란이 있었다. 46세에 독립 리그 골든 베이스볼 리그를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확실히 끝냈다.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리키 헨더슨
50
143
181
53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Left Field (3rd)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리키 헨더슨
110.8
57.4
84.1
좌익수 HOF 입성자 평균
65.2
41.5
53.3

4. 기행 및 일화


야구장 밖에서는 의외로 순박하고 약간 모자란 동네형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몇몇 일화에 따르면...
  • 도미니카 공화국 선수들의 ML 진출 러시를 지켜보며 동료에게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도미니카 공화국에 갈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도미니카는 카리브해 한가운데 떠있는 섬나라.[33]아이티에서 출발하면 육로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갈 수는 있다. 아이티도 섬나라라서 문제지...
  • 2004년 월드시리즈가 10월 27일 4-0으로 끝나서 미국의 모든 언론이 보스턴의 '밤비노의 저주' 극복 스토리를 대서특필한 날에(10월 28일) 월드시리즈 6차전 티켓을 구해달라고 보스턴 구단에 전화를 걸어 보스턴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 그가 2001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뛸때,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통산 2999안타를 기록한 상태였다. 마지막 경기에서 안타 하나만 치면 3천 안타 달성이 확정적인 가운데, 같은 팀의 전설적 선수이자 파드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토니 그윈이 은퇴발표후 현역 고별경기를 치르게 되자 자신이 안타를 쳐서 관심이 쏠릴 것을 걱정해 자신을 선발명단에서 제외해줄 것을 자청했었다. 그런 사실을 듣게된 토니 그윈은 헨더슨이 경기에 나오도록 직접 설득했으며 결국 헨더슨은 최종전에 출장해 3천번째 안타를 쳐냈고, 두 레전드 모두 파드리스 팬들의 찬사를 받는 명장면을 만들었다.
  • 원정경기에 가서 호텔에 체크인 할때 항상 가명을 썼다고 한다. 이에 소속팀의 단장들은 그의 여러 가명을 숙지해야 했다고 한다.
  • 3인칭화를 쓰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1995년 오프시즌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케빈 타워스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Kevin, this is Rickey. Calling on behalf of Rickey. Rickey wants to play baseball(케빈, 리키입니다. 리키 대신 전화하는 거예요. 리키는 야구가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정도. 여기에 확인된 소스는 아니지만, 그는 타격연습 전 라커룸 거울 앞에 알몸으로 서서 "Rickey's the best! Rickey's the best!(리키는 최고야!)"를 외치면서 스윙연습을 했다고 한다. 또한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자신의 배트를 보고 "자 다음 안타를 선물해 줄 녀석은 누구냐."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또한 오클랜드 시절 모 동료 선수는 삼진을 당하고 들어온 헨더슨이 "괜찮아 리키 너는 여전히 최고야."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고. 다만 리키 헨더슨 본인은 이런 3인칭화와 관련된 에피소드에 대해 '누굴 바보로 아느냐' 면서 불쾌해 하는 상황. 그의 말로는 위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날조된 것이며, 그는 3인칭화를 오로지 자책할 때에만 썼다고 한다. 경기에서 실수를 저지른 뒤 덕아웃에서 '리키, 이 바보같은 놈!' 같은 말만 했다는 것.
  • 양키스에서 활동하던 시기 어떤 팀메이트에게 'Empire States Building'의 전망이 좋다고 말했다가 그 선수를 폭소하게끔 만들었다. Empire가 아니라 Entire(전체)로 발음했기 때문.
  • 뉴욕 메츠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존 올러루드에게 '내가 토론토에 있을 때 너처럼 수비할때도 헬멧썼던 애가 있었지 ㅋㅋㅋ' 이랬다가 올러루드가 어이가 없어서 '그게 전데요'라고 응답했다. 참고로 이 둘은 93년도에 같은 팀이었다(...) 심지어 올러루드가 그 당시 존재감 없는 듣보잡 후보급 선수였냐면 그것도 아니다. 93년도면 올러루드가 무려 타율 .363을 찍고 MVP 3위까지 한 시즌이다.. 단 MLB.COM의 기사에 따르면 올러루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부정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메츠 시절이 아닌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있었던 일로(헨더슨은 2000년 시즌 중에 메츠에서 방출된 뒤 시애틀과 계약했다.) 매리너스 팀 소속의 트레이너가 지어낸 농담이었다고 한다.
  • 아이싱을 하다가 잠들어서 동상에 걸려 3경기 동안 못나왔다.
  • 96년도에 스티브 핀리가 '님은 대선배이니 (You have Tenure) 버스 아무 자리나 차지해도 됩니다'라고 했는데 자신은 '응? 난 10년 (Ten years)이 아니라 17년간 야구했는데' 라고 잘못 알아들어 핀리를 당황케 했다고 전해진다.
  •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계약하고 받은 100만 달러짜리 수표를 자신의 계좌로 입금 하지 않고 액자로 만들어 집에 전시했다고. 그래서 구단은 분명히 선수 인건비로 지출해야 할 100만불이 그대로 장부상에 남아있어서 그 이유를 찾느라 경리직원들이 고생했다고 한다.
  • 랜디 존슨의 신인 시절에 제대로 신고식을 치러준 케이스가 있었는데. 1989년 당시 신인이던 랜디 존슨을 상대로 1회 말에 등장해 6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어나간 뒤 다음 공에 2루를, 그 다음 공에 3루를 훔쳐버렸고, 이에 멘탈이 승천한 존슨은 2번타자의 투수 땅볼까지 놓치면서 헨더슨에게 홈까지 내주고 말았다. 그 후 3회에도 볼넷 후 2루를 훔쳐냈고, 5회에도 볼넷 후 또 다시 2루를 훔쳤으며, 6회에서는 2사 2루에서 볼넷으로 걸어나가 더블스틸로 또 다시 도루에 성공. 그리고 모두 홈을 밟는데 성공했다. 이 날 헨더슨은 4타석 4볼넷 5도루 4득점으로 랜디 존슨을 가지고 놀았다.(...) [34]
  • 은퇴 직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단장인 톰 워너가 기념품으로 무엇을 갖고 싶은지에 대한 답변으로 구단주가 가진 메르세데스 라고 답변했다. 단장은 같은 모델의 차를 단기간에 구하는것이 어렵다고 말하자 헨더슨이 '아니, 구단주가 가진 메르세데스 달라고' 라고 했다. 결국 승낙을 받아 구단주의 차를 필드로 끌고왔으나 이에 헨더슨이 '와 ㅅㅂ 이 존나 못생긴 차 누구거임' 이라고 말해 단장과 구단주의 화를 돋구었다고 한다(...).
  • 명예의 전당 입성 연설에서 고등학교때 까지만 하더라도 미식축구 선수가 되는게 꿈이었고 야구는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어머니가 축구는 몸싸움이 심하고 해서 다칠 가능성이 있으니 야구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시작했다고. 그리고 여러 흑인 선배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때 당시 연설회장에 초대를 받고 참석했던 대선배 레지 잭슨과의 일화를 소개했는데, 무명 시절 사인을 받기 위해 주차장에서 기다렸는데 쌩까고 지나갔다고... 잭슨은 이 말을 듣고 몸을 숨겼다. 어디까지나 웃자고 한 얘기였다. 관련 포스팅
  • 등번호 24번에 대한 집착이 대단해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시절 먼저 그 번호를 달고 있던 터너 워드에게 현금 2만 5천달러를 주고 번호를 바꾼적이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영문 위키에 그의 수많은 기행과 괴짜발언이 기록되어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79
OAK
89
398
96
13
3
1
49
26
33
34
39
.274
.338
.336
.675
-0.7
1980
158
722
179
22
4
9
111
53
'''100'''
117
54
.303
.420
.399
.820
7.8
1981
108
493
'''135'''
18
7
6
'''89'''
35
'''56'''
64
68
.319
.408
.437
.845
6.7
1982
149
656
143
24
4
10
119
51
'''130'''
'''116'''
94
.267
.398
.382
.780
5.8
1983
145
622
150
25
7
9
105
48
'''108'''
'''103'''
80
.292
.414
.421
.835
7.0
1984
142
597
147
27
5
16
113
58
'''66'''
86
81
.293
.399
.458
.857
5.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85
NYY
143
654
172
28
5
24
'''146'''
72
'''80'''
99
65
.314
.419
.516
.934
'''9.7'''
1986
153
701
160
31
5
28
'''130'''
74
'''87'''
89
81
.263
.358
.469
.827
6.4
1987
95
440
104
17
3
17
78
37
41
80
52
.291
.423
.497
.920
5.0
1988
140
647
118
30
2
6
118
50
'''93'''
82
54
.305
.394
.399
.793
5.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89
NYY / OAK
150
674
148
26
3
12
'''113'''
57
'''77'''
'''126'''
68
.274
.411
.399
.810
'''8.4'''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0
OAK
136
594
159
33
3
28
'''119'''
61
'''65'''
97
60
.325
'''.439'''
.577
'''1.016'''
'''10.2'''
1991
134
578
126
17
1
18
105
57
'''58'''
98
73
.268
.400
.423
.823
3.8
1992
117
500
112
18
3
15
77
46
48
95
56
.283
.426
.457
.883
5.6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3
OAK / TOR
134
610
139
22
2
21
114
59
53
120
65
.289
.432
.474
.906
4.8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4
OAK
87
376
77
13
0
6
66
20
22
72
45
.260
.411
.365
.776
2.8
1995
112
487
122
31
1
9
67
54
32
72
66
.300
.407
.447
.855
2.6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6
SD
148
602
112
17
2
9
110
29
37
125
90
.241
.410
.344
.754
2.2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7
SD / LAA
120
509
100
14
0
8
84
34
45
97
85
.248
.400
.342
.742
1.8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8
OAK
152
670
128
16
1
14
101
57
'''66'''
'''118'''
114
.236
.376
.347
.723
1.9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9
NYM
121
526
138
30
0
12
89
42
37
82
82
.315
.423
.466
.889
2.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00
NYM / SEA
123
519
98
14
2
4
75
32
36
88
75
.233
.368
.305
.673
0.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01
SD
123
465
86
17
3
8
70
42
25
81
84
.227
.366
.351
.717
0.4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02
BOS
72
222
40
6
1
5
40
16
8
38
47
.223
.369
.352
.721
0.6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03
LAD
30
84
15
1
0
2
7
5
3
11
16
.208
.321
.306
.627
0.1
<color=#373a3c> '''MLB 통산'''
(26시즌)
3081
13346
3055
510
66
297
'''2295'''
1115
'''1406'''
2190
1694
.279
.401
.419
.820
106.3

6. 관련 문서


[1] 헨더슨은 위 사진에서 35번을 달고 있는데, 데뷔한 해인 1979부터 오클랜드 1기 마지막 시즌인 84년까지 35번을 달았고, 1985년 양키스로 이적한 뒤부터 24번을 달기 시작해 1989년 트레이드로 오클랜드와 재회한 직후에 22번을 단 걸 빼면 오클랜드 2기 시절 내내 24번을 달았다.[2] 원래는 헨리가 성이었으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고교때 어머니가 재혼하여 양아버지의 성인 헨더슨을 받았다.[3] 참고로 한국의 대도 전준호김일권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얼굴을 직접 마주보는 만큼 대략적인 견제 타이밍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나... 그러나 실제로 통계를 내보면 당연히 좌완 투수를 상대할 때의 성공률이나 도루 수가 더 떨어진다. 그 차이를 얼마나 줄일수 있느냐의 문제. 단지 도루를 잘하는 선수들이 좌완투수 상대로 도루할때 "어차피 좌완투수 상대 도루가 더 어려운 걸 다른 사람들도 아니까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만다"는 편한 마음으로 도루할 때가 많아서 더 편하게 느낄 뿐이다.[4] 안타든 볼넷이든 간에 출루→도루→진루타→희생플라이 혹은 선두타자 홈런.[5] 통산 도루 1위, MVP수상(1990),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개, 3,000안타 달성 등 통산 성적뿐만 아니라 존재감도 화려한 역사상 최고의 선두타자 치고는 의외로 높지 않은 득표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후술하겠지만 헨더슨이 저니맨이라는 점, 그리고 은퇴 시기가 굉장히 애매했다는 점(공식적으로는 2003년)이 방해요소가 되면서 득표율이 깎인 부분도 감안해야 한다. 참고로 깎여서 저 정도 득표율인 것이다.[6] 당연하지만 세계 1위 기록이며, 통산 1,000도루는 '''메이저리그 유일, 세계에서 단 2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 나머지 1명은 바로 일본프로야구 한큐 브레이브스의 황금기를 이끈 슈퍼스타 후쿠모토 유타카.[7] 2위는 938개의 루 브록으로 헨더슨의 기록이 1.5배이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통산기록 중에서 1위와 2위의 차이가 가장 큰 기록이다.[8] 물론 위와 같이 누적 개수로 비교해 볼 수도 있지만 비율로 보면 1위와 2위의 차이가 가장 큰 누적 기록은 배리 본즈의 통산 고의사구 1위(688개)로서 2위 알버트 푸홀스의 기록(302개)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푸홀스의 몰락을 생각하면 이 간격은 절대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9] 1위는 배리 본즈다. 그래도 역대 고의적이지 않은 볼넷 수(2129개)를 계산하면 베리 본즈보다 우위에 있다.[10] 1위는 138개인 휴 니콜이다(1887).[11] 1982년: .780. 근데 이 성적으로도 OPS+ 122를 기록했다. 평균점을 가진 선수보다 22% 뛰어난 타격을 가졌다는 말[12] 1987년에는 95경기 출장에 그치며 41도루로 5위를 차지했다. 단 150경기 출장 가정시 64도루 페이스로 해당시즌 1위인 60개를 넘어서기는 한다.[13] '''39세'''에 66도루를 기록했다.[14] 전성기 기준인 93년까지의 기량만으로 확인했을때 BA: .291, OBP: .406, SLG: 443, OPS+: 140, 도루성공율 81%, 볼삼비 1.42, 2139 안타/220 홈런을 기록했다. 핸더슨의 도루성공율 81%는 1류 대도라면 누구나 비슷한 수치를 기록하지만, 중요한 건 핸더슨은 1,406개를 성공시키는 동안의 성공율이라는 것과 그가 40이 다 되어서도 펄펄하게 뛰었던 선수라는 사실이다.[15] 75[16] 100.6[17] 79[18] 95.3[19] 144.4[20] 1983년. 당시 최고 기록. 다만 8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리드오프 빈스 콜맨이 15.7을 기록하면서 3년만에(...) 경신되었다[21] 약즈시절의 본즈는 약빨고 벌크업을 하면서 파워는 업그레이드 했지만 그 댓가로 주력을 상실해 과거 피츠버그 시절의 호타준족이 아니었다. 때문에 본즈와 땅꼬마들이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2000년대 초중반, 본즈의 고의사구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고의사구가 아니더라도 발 느린 슬러거를 상대 할때는 포볼을 줘도 상관 없다는 각오로 장타를 치기 어려운 유인구 위주의 승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타자가 약하면 약할수록 병살타 처리도 쉬워지고.[22] 헨더슨의 장점은 용규놀이 스타일의 커트보다는 좁은 스트라이크존을 아주 정확히 보는 선구안에 있었는데, 이로 인해 커트 위주의 선수들보다는 선채로 삼진을 당하는 일이 많은 편이었다. 용큐놀이 분야의 최고봉은 헨더슨에 이어 역대 리드오프 출루율 2위에 빛나는 루크 애플링을 꼽을 수 있다.[23] 스트라이크존의 범위에 타자의 어깨가 기준이 되기 때문. 물론 일반적인 타격 자세를 취했을 때를 기준으로 하므로 아예 엎드려서 타격을 한다고 거기에 존이 맞춰지는 것은 아니고 심판 본인이 생각하는 일정한 존을 정해두고 판정을 하지만, 심판도 사람인 만큼 선수의 키나 자세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다.[24] 이러한 그의 플레이 스타일때문에 사람들은 리키 헨더슨의 스트라이크존은 히틀러의 심장만큼 좁다고 이야기했다.[25] 이 부문 2위는 통산 .399의 루크 애플링.[26] [image]
자신의 메이저리그 통산 도루 신기록 20주년을 기념하는 2011년 4월 30일 경기의 시구를 왼손으로 던졌다.
[27] 참고로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이종범도 왼손잡이인데 어렸을때 야구는 오른손으로 해야하는줄로 잘못알아서 우타자가 되었다는 점이다.한국과 메이저의 넘버원 1번타자가 똑같이 야구는 오른손으로 해야하는줄 잘못알고 우타를 했다니...[28] 여담이지만 왼손으로도 타격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헨더슨은 스위치 히터로의 전향을 시도해봤으나 이미 오른손으로 타격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좌타석에서의 성적이 너무나도 형편없어서 스위치 히터는 포기하고 그냥 커리어 내내 우타자로 생활했다.[29] 이 시절 오클랜드는 지금의 머니볼 이미지와는 달리 돈을 잘 쓰던 팀이었다.[30] 그래도 1998년에 다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하며 4번째로 애슬레틱스의 유니폼을 입는다.[31] 사실 이때문에 비율스탯을 엄청 까먹었고, 말년에는 장타가 아예 실종됐기 때문에 통산스탯을 보면 그냥 똑딱이로 보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거의 300홈런을 친데다 전성기 때는 장타율 5할도 넘길 수 있는 선수였음에도.[32] 호세 레예스에게 주루 스킬을 가르치는 전담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다.[33] 물론 섬나라라고 아예 차로 못 가는 건 아니다.채널 터널처럼 해저 터널만 뚫는다면...[34] 이때의 영향 때문인건지 아니면 이후에도 몇번 당한 모양인건지 랜디 존슨은 농담으로나마 고의 死구를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