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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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용오(朴容旿)
출생
1937년 4월 29일, 경성부
사망
2009년 11월 4일 (향년 72세) 서울특별시
본관
밀양 박씨
가족
슬하 2남 (박경원- 1964년생, 박중원- 1968년생)
1. 개요
2. 생애
3. 사건·사고
4. 가족 관계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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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스포츠행정가이다.

2. 생애


1937년 4월 29일,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연강 박두병두산그룹 회장의 2남으로 태어났다.[1] 이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2]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뉴욕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다.
1965년 두산산업에 입사하였다. 이후 두산산업 전무이사, 동양맥주 전무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83년 OB 베어스 사장에 임명되었다. 큰 형인 박용곤이 은퇴하자,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박용오가 회장 자리에 오르기 전 두산그룹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경제위축과 경영오판으로 심각한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었고 결국 1995년 주력부문인 음료사업을 코카콜라에 넘기고 부동산 등 자산을 매각해야 했다.
직후 터진 외환위기로 내수기업인 두산에 한계가 오자 박용오 회장은 식음료, 경공업, 생활문화 등 전형적인 내수기업인 두산을 과감한 인수합병과 매각으로 중공업을 바탕으로 한 수출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2001년 한국중공업, 2005년 대우정밀공업의 인수로, 두산을 재계서열 10위의 대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KBO 총재를 겸임하기도 했다.[3]
이후 두산산업개발 분리와 두산그룹의 차기회장 문제를 두고, 큰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을 위시로 한 형제들간의 갈등 끝에[4] 결국 동생인 박용성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야했다. 이후 동생인 박용현, 박용만에게 경영권을 완전히 빼앗겼으며 형제들과는 완전히 의절하였다.
이후 남은 두산의 지분을 처분하고 2008년에 성지건설을 인수하여 경영했지만, 차남인 박중원 부회장의 횡령과 국제금융위기로 인한 실적 부진으로 그마저도 반쯤 망했고, 2009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72세.#

3. 사건·사고


한편 1998년 9월 비리로 구속된 정대철의 뒤를 이어 KBO 총재대행으로 임명되었다가 11월 사임하였다. 다음 달인 12월 KBO 리그 구단주들에 의해 제12대 KBO 총재로 선출되었고 2005년까지 3선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 당시 방송에 나와 "선수협이 생기면 우린 그날부터 (프로야구) 안 한다."고 극언을 퍼부어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05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4. 가족 관계




5. 관련 문서



[1] 형은 박용곤, 동생은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박용욱, 박용언이 있다.[2] 52회 졸업생. 동기생으로 고건 전 국무총리, 이종찬 전 국정원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탤런트 신구,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이 있다.[3] 정대철 총재가 구속되면서 OB 베어스 구단주였던 그가 총재대행이 되었다가, 정식 총재로 임명되었다. 구단주들끼리 돌아가면서 총재직을 맡을 계획이었지만, 막상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박용오 총재가 7년이나 집권했다.[4] 2005년 7월 박용곤 명예회장을 필두로 두산 가는 ‘공동소유, 공동경영’이라는 선대의 유훈에 따라 회장직을 3남 박용성 씨에게 물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용오 회장은 되려 형제들의 비리를 검찰에 고발했다. 가족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자신의 업적을 내세워 일반 주주들로부터 지지를 얻으려는 전략이었지만 끝내 주주들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