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철

 

[image]
'''이름'''
박지철(朴志喆 / Ji-Chul Park)
'''생년월일'''
1975년 4월 13일 (49세)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동삼초 - 토성중 - 동래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롯데 자이언츠 연습생 입단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4~2007)
LG 트윈스 (2009)
'''지도자 경력'''
신정중학교 야구부 감독 (2010.8~)
1. 프로 선수 시절
2. 지도자 시절
3. 연도별 주요 성적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의 투수.
2000년대 초반 롯데 자이언츠의 암흑기 시절에 고군분투했던 에이스였다.[1]
등번호는 45번을 달았다.

1. 프로 선수 시절


주형광과 입단 동기로 1994년에 입단했는데, 실제 입단할 때는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무도 불러 주는 구단이 없어서 입단 테스트를 거친 다음에야 연봉 600만원의 연습생으로 입단했던 철저한 무명 투수였다. 1994년은 롯데 주축 선수들의 상당수가 방위병으로 복무하며 홈 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해 선수층이 많이 얇은 관계로, 성적보다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해로 방향성을 잡은 해였다. 그로 인해 개막전 선발을 프로 입단 후 투수로 전업한 1차지명 신인 강상수가 맡았고, 그제껏 거의 원 포인트 릴리프나 패전처리로만 기용되던 가득염이 그 시즌 풀타임 선발로 활약했을 정도였다. 박지철도 그런 팀 사정 덕택에 연습생 신분이었음에도 개막전부터 1군 엔트리에 들 수 있었고, 실제로 개막전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며 1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이라는 나름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신인 첫 해 주로 중간계투나 패전처리로 1군 14경기에 등판, 32 2/3 이닝을 던져 2.2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같이 입단했던 600만원의 연습생 멤버들 중 유일하게 정식 계약으로 살아남은 케이스.
1995년에 롯데는 위에서 언급한 방위병들이 대거 제대하여 돌아와 전력이 급상승한 덕택에 1995년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박지철은 이해 중간계투 겸 땜빵 선발로 활약하며 팀에서 없으면 아쉬운 레귤러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2] 당시만 해도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팀이 아닌 포스트시즌 진출을 놓고 다투는 팀들은 잡을 경기는 확실히 잡고 버리는 경기는 버려 버리는 전략이 대세였는데, 이 해 롯데에서는 이렇게 버리는 경기의 선발 투수를 박지철이 거의 전담해서 맡았다. 아직 주축 선발투수들보다 기량이 모자라 많은 피안타와 사사구를 허용하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5~6이닝을 꾸역꾸역 버텨준 덕택에, 롯데로서는 당초 버리려 했던 경기들이 해 볼만한 경기로 바뀌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으며, 실제로도 심심찮게 승리를 따내곤 했다. 시즌 성적은 5승 4패 3.9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96년부터 에이스 윤학길의 부상과 염종석의 시즌 아웃으로 인해 풀 타임 선발로 활약했는데, 약간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지만 위에서 내리꽂는 투구폼으로 약 145 km/h 언저리의 직구 스피드를 기록했다. 하지만 성적은 대단히 좋지 모해 이 해 1승 9패 평균자책점 4.70의 안습한 성적을 남기며 밑천이 드러난 게 아니냐는 의심도 들었지만, 1997년에 드디어 포텐이 터졌다. 이 해 특유의 낙차 큰 커브를 앞세워 14승 5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해 롯데의 에이스로 대활약했다. 올스타전에서 당시 최고 타자 이종범을 풀 카운트 끝에 폭포수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잡았던 장면이 그야말로 백미. 이 때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시즌이 한창일 때 김현욱과 박지철은 다승왕을 비롯한 여러 타이틀 경쟁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박지철이 농담조로 "너무 열내지 말고 사이좋게 타이틀 나눠먹자"라고 했는데, 그 말이 있고 나서 갑자기 김현욱이 폭풍처럼 승을 쓸어담아 버렸다(...).
1997년의 대활약을 밑바탕으로 자신감을 얻었지만, 그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오른쪽 어깨 부상. 이 심각한 오른쪽 어깨 부상 때문에 1998년 2승 11패 방어율 7.73의 극도의 부진을 보였고, 어깨 수술로 1999년 시즌을 통으로 날렸다. 때문에 전설의 1999년 플레이오프 때도 불참.[3] 영상
2000년에 복귀하여 6승 9패 방어율 4.60을 기록했다. 2001년에는 다승왕 손민한을 받치면서 13승 7패 4.03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선전했으나, 야구 팬이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롯데의 암흑기인 '''8888577'''이 시작된 때라 결국 가을 야구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리고 은퇴할 때까지 가을야구는 더 이상 못 했다.
박지철은 이 시기 손민한과 함께 롯데 선발진의 축으로 고군분투하지만, 2004년 이후 어깨 부상이 재발하여 많은 이닝을 던지지 못하게 되었다. 은퇴 후 본인의 말에 의하면, 2002년부터 어깨 통증이 재발했으나 참고 던졌는데, 그게 일이 커졌다고. 2005년에도 여전히 안습한 행보를 이어가다가 2006년에는 롱 릴리프로 꽤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2007년 갑작스런 구위 저하로 거의 2군에만 머물다가 시즌 후 롯데에서 방출당했다. 롯데 방출 당시 나이가 고작 32세밖에 안 된 것으로 미뤄서, 짐작컨대 더 이상 재기하기 힘들다고 구단 측에서 판단한 듯.
1년 휴식 후 2009 시즌을 앞두고 LG 트윈스에 입단 테스트를 받아 입단했는데, 노쇠화의 여파로 2군에만 머물렀다. 8월 23일 사직 롯데전에 시즌 첫 선발로 등판했는데, 원래 이 날 경기는 서승화가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승화가 2군에서 작뱅을 폭행한 사건이 드러나 잔여 시즌 출장금지 처분이 내려지면서 서승화 대신 선발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친정 팀 앞에서 2와 1/3이닝 동안 4안타 3실점하고 조기 강판당하며 패전의 멍에를 썼다. 2009년에 3경기에만 등판하여 2패만 기록했으며, 시즌 종료 후 LG에서 방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의 기준으로도 꽤나 준수한 외모를 가진 선수였고 특히 배우 박용우와 상당히 닮아서 많은 여성팬을 몰고 다녔다.

2. 지도자 시절


현역에서 은퇴한 후 귀향한 그는 2010년 8월에 새로 창단한 부산 신정중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1994
롯데
14
32⅔
'''2.20'''
0
1
1
0
28
3
21
18
1995
28
77⅓
3.96
5
4
0
0
73
7
46
36
1996
26
99⅔
4.70
1
9
2
0
98
8
57
53
1997
40
157⅔
(7위)
'''2.45'''
(3위)
'''14'''
(3위)
5
7
(9위)
0
118
8
67
96
1998
36
80⅓
7.73
2
11
2
0
114
12
54
63
1999
1군 기록 없음
2000
29
109⅔
4.60
6
9
0
1
99
9
44
87
2001
34
156⅓
4.03
13
(7위)
7
1
2
163
13
64
104
2002
5
24⅔
5.11
1
2
0
0
25
4
10
20
2003
28
129⅔
3.89
8
7
0
0
128
16
66
78
2004
27
139⅔
3.87
(8위)
9
7
0
0
131
9
66
94
2005
13
49
6.06
1
5
0
0
58
9
32
39
2006
18
48⅓
'''2.98'''
0
1
0
0
43
0
32
23
2007
6
7⅓
6.14
0
1
0
0
9
0
6
5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09
LG
3
5⅓
13.50
0
2
0
0
11
2
6
3
<color=#373a3c> '''KBO 통산'''
(14시즌)
307
1117⅔
4.22
61
72
13
3
1098
100
573
719
[1] 2013년 부산을 방문한 호세가 박지철에 대해 그 당시 우리 팀 최고의 투수였고 다른 투수들은 모두 아플 때 혼자 잘해줬다며 그를 기억했다.[2] 한국시리즈에서는 3차전 연장전에서 김상현의 뒤를 이어 패전처리로 등판했으나 실점하지는 않았다.6차전에도 등판하였다.[3] 그렇긴 한데, 2013년 6월 26일 사직 NC전에 있었던 1999년 레전드(펠릭스 호세, 박정태, 주형광, 마해영 등)들이 롯데 구단의 초청을 받은 행사에 초대되어 참석하기도 했다. 예우 차원에서 초청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