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1983)

 




이병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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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KBO 퓨처스 북부리그 타격왕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0번}}}
이봉우
(2002)

이병규
(2006~2008)


백창수
(2009~2010)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24번}}}
최승환
(2003~2008)

이병규
(2009~2011)


정의윤
(2012~2015)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7번}}}
오지환
(2010~2011)

이병규
(2012~2017)


정주현
(2018~)
{{{#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6번}}}
임종혁
(2017)

이병규
(2018~2020)


김진욱
(2021~)
{{{#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번}}}
신본기
(2017~2020)

이병규
(2021~)


현역


<colbgcolor=#002955> 롯데 자이언츠 No.7
이병규
李柄奎 / Byung-Kyu Lee

생년월일
1983년 10월 9일 (40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image] 대구광역시 동구
학력
율하초 - 경상중 - [image] 경북고 - [image] 한양대[1]
신체
178cm, 90kg
현 포지션
1루수
과거 포지션
외야 유틸리티[2]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6년 신고선수 (LG)
소속팀
[image] [image] LG 트윈스 (2006~2017)
[image] 롯데 자이언츠 (2018~)
등장곡
랜덤[3]
응원가
LG 시절: 도시의 아이들 "달빛 창가에서"[4]
링크
자작곡 [5][6]
롯데 이적 후: 멕시코 민요 "라 쿠카라차"[7][8]
자작곡[9]
연봉
5,000만원 (47.4%↓, 2020년)
1. 소개
2. 별명
3. 플레이 스타일
4. 선수 경력
4.1.1. 2010년
4.1.2. 2011년
4.1.3. 2012년
4.1.4. 2013년
4.1.8. 2017년
4.2.2. 2019년
4.2.3. 2020년
4.2.4. 2021년
5. 연도별 성적
6. 여담

[clearfix]

1. 소개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 겸 내야수. 1974년이병규(이하 라뱅)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등번호를 0번으로 달고 있었지만 2009년부터는 24번으로 변경했다. 2010년에 7번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이쪽은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에서 태어난 연습생 출신이다. 사람 헷갈리기 딱 좋게 좌투좌타[10] 외야수다. 거기에 응원가마저 라뱅의 그것을 재탕했다는 썰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이후 이진영FA로 LG에 입단하면서 이 응원가를 사용했다가 라뱅이 2010년에 LG로 컴백하면서 응원가가 원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은근히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유리몸만 아니었다면 풀타임 뛰던 전성기의 활약은 라뱅에 비견될 법한 활약을 선보였으며, 신고선수 출신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성공한 선수라고 볼 수 있겠다. 대부분의 신고선수 출신이 얼마 못 가 사라지는걸 봤을 때 15년간 1군에서 팀의 간판타자로도, A급 백업으로도 있던 선수에 억대 연봉도 여러 번 진입했으므로 성공한 게 맞다.

2. 별명


먼저 입단한 이병규가 '라뱅', '큰 병규' 등으로 불린다면 이쪽은 키가 더 작다는 점에서 '작뱅(작은 병규)', '뢰뱅(벼락같은 스윙, 혹은 뒤에 나오는 뇌뱅의 변화), '뇌뱅((무)뇌주루 병규)' '컵라뱅', 내지는 '짭뱅(짭퉁뱅규)' 등으로 불린다. 유망주 시절에는 루킹삼진 많이 당한다고 밀랍인형(...)[11] 언론에서는 1과 구분하려는 목적으로 '큰뱅(큰 병규)', '작뱅(작은 병규)'으로 나누었다. 또한 큰 이병규의 별명이 '적토마'라서 이쪽 이병규는 '작토마'(…) 로 부르기도 한다. 본인은 작은이병규, 작뱅이란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체격이 작다는 게[12] 야구선수로서도, 외모적으로도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2016년 라뱅이 은퇴하고 소속 팀도 바뀐 후에는 굳이 두 사람을 구분할 필요성이 줄었으므로 언론에서도 이젠 수식어 다 떼고 그냥 이 쪽을 이병규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팬들이 쓰는 별명도 다른 건 잘 안 쓰이고 제일 대표적인 작뱅만 주로 쓰인다.
2013년 빅뱅이라는 별명을 선수단에서 공식적으로 밀어주기도 했는데, 기사 등에서 간간히 쓰이고 팬들사이에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2014년에는 맹활약을 하면서 미디어에서는 9번 이병규와 7번 이병규로 구분했다.
2015년 초반 결장 때문에 담병규라고 불리기도 했다.
2018년 롯데로 이적하고 나서는 초반에 잘 해서 빛병규 또는 빛뱅 이라고 불리웠지만 2019년에는 부상 후 실종되면서 "빚뱅"이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우선 출루율이 굉장히 높다. 통산 타율이 .280 근처에서 노는 것에 비해 출루율은 거의 .400에 육박한다. 코너 외야수임을 고려할 때 장타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조금 처지나 그 처지는 장타력을 출루율로 만회하는 OPS형 히터라고 보면 된다. 장성호의 약간 하위 선수라고 보면 되는데 어쨋든 출루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LG에서 몇 안되는 출루를 중시하는 타자이다.
타격 성향은 동명이인의 라뱅과 정반대로 상당히 신중하다.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인 라뱅과 달리, 당시에 쳐서 나가려는 성향의 타자들이 많은 LG에서 눈야구를 하는 몇 안 되는 선수였다.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잡고 그 존 안으로 들어오는 공이 아니라면 설령 2스트라이크로 몰려 있을지라도 방망이가 거의 나가지 않는 편. 그 때문에 볼넷도 많지만 답답할 정도로 루킹 삼진이 많아, 볼넷/삼진 비율은 LG의 배드볼 히터들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2010년의 훌륭한 활약으로 LG 팬들은 이후 작뱅에게 3할 타율과 4할대의 출루율, 두자릿수의 홈런을 기대하고 있지만, 타율과 출루율은 어느 정도의 수치는 보여주는 데 비해 장타능력은 X존의 폐지 및 잦은 무릎부상의 후유증으로 2010년 이후 한동안 기대치를 밑돌고 있었다.
그런데 2014년에는 순장타율(ISO)이 .250이 넘을 정도로 2010년의 장타력을 회복, 아니 능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홈런이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밀어쳐서도 홈런이 나올 정도로 타격 기술이 더더욱 좋아졌으며, 특히 2루타를 생산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높은 출루율에,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이기는 하지만 LG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던 OPS 10할을 8월 현재까지도 기록하는 등,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LG 입장에서는 현재 가장 이상적인 중심 타자가 되었다.
수비 포지션은 외야 전 포지션과 1루. LG 시절에는 코너 외야수(주로 좌익수)를 주로 소화하며 종종 1루수를 봤었다. 그러나 본래 1루수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루 수비는 가히 절망적인 수준. 차라리 과거 이택근의 1루 수비가 나아 보일 지경이다(…). 1루수로서의 캐치 능력, 타구에 대한 수비 능력 등이 모두 극악이며 가끔은 집중력을 상실한 듯한 어이없는 플레이도 나온다. 2012년 LG 코칭스태프는 그의 무릎 부상 경력과 팀내 과포화된 외야수 로스터의 정리를 위하여 작뱅을 아예 전업 1루수로 기용할 계획이었으나, 1년간 주전 1루수로서 지옥의 수비력을 똑똑히 본 후 1년만에 다시 외야수로 돌아왔다. 이에 더하여 1루수로 주로 출전하는 것이 생각보다 무릎 상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외야 수비는 매년 발전하면서 2014년 현재는 보통 수준의 외야수비는 된다는 평. 과거 타구 판단에 약점이 있었으나 경험이 쌓이면서 많이 괜찮아졌다. 특히 송구 능력은 외야수로서의 평가가 나빴던 시절에도 장점으로 평가받던 부분으로, 제법 강한 송구를 뿌릴 수 있다. 라뱅이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하는 2013년부터는 LG의 주전급 외야수들 중에서는 이진영과 함께 주자의 진루를 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롯데 이적 이후에는 1루 수비는 꽤 볼 만 하다. 물론 LG 시절에 비해서.
2014년에 들어와서는 심지어 박용택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간간히 출장했으며 여기서도 이따금씩 호수비가 나올 정도로, 외야 수비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위에서 언급한 무릎 부상은 과거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은 이후 작뱅의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고질병으로, 매 시즌 풀타임 출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인이었다. 그나마 이 부상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는 것이 나름의 위안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심각한 유리몸 체질이 되고 말았으니 선수 개인에게는 몹시 불운한 부분. 2014년 규정 타석을 채울 때까지 규정타석을 채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부상을 하도 많이 달고 살아서 타격 성적이 좋았음에도 묻히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5년 이후에는.... 아예 타격 성적도 하향세를 타면서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헌데 매년 부상을 호소하고 고생하는데도 주루플레이는 공격적이고 은근슬쩍 도루시도도 많다. 그래서 그걸 볼 때마다 팬들은 가슴이 철렁할 지경. 안 그래도 햄스트링에 십자인대 고질병 있는 선수인데(...) 주루 속도가 똥차급은 아니고 평균 수준은 되지만 앞서 말한 고질적 부상과 유리몸, 그리고 높지 않은 도루성공률 때문에 제발 안뛰었으면 하는 선수..
롯데에서도 엄청난 눈야구를 과시하고 있는데 제한된 출전 기회로 6월 초까지 타율은 2할 9푼~3할 1푼 사이를 왔다갔다하는데 출루율은 4할 5푼에 이른다. 같은 팀에 이적한 채태인도 역시 출루율이 괜찮아서, 보통 노장 선수는 감독이 투입을 하면 조금이라도 부진할 때믿음을 주는게 일반적이어서 계속 출전, 그 사이클대로 욕을 먹기에 바쁜데 오히려 제한된 출전 기회에도 이정도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할 정도. 일단 이병규는 타율만 받혀 주면 무조건 밥값을 하는 선수다.

4. 선수 경력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에 입학하여 대학야구 최고 수준의 타자 중 하나로 각광받았으나, [13] 작은 키가 문제여서 결국 프로 구단에 지명받지 못하고 2006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사실 대학 4년간 통산 성적은 타0.271/출0.362/장0.433/OPS 0.795로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다. 졸업년도에도 통산 성적과 비슷한 수준으로 작은 체구를 감안한다면 스카우트들이 외면할 만한 성적이다.
하지만 신고선수 입단 후 2군을 초토화시키며 타격 능력 하나는 진퉁임을 보여줬다. 이 당시 LG의 감독이었던 이순철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뭔가 이종환과도 비슷한 케이스. 좋은 선구안과 준수한 뱃 컨트롤, 강한 손목힘 덕분에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장타력을 보여줬다. 또한 스카우트 및 2군 감독 경험으로 유망주를 키우는 안목이 있음을 증명한 박종훈 감독이 2010년에 부임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2군 시절에 라뱅과 동명이인인데 2군에 있는 것에 주목한 방송국 PD에 의해, 1군을 꿈꾸는 유망주의 내용으로 인간극장 비슷한 다큐멘터리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4.1. LG 트윈스 시절


[image]

4.1.1. 2010년


[image]

2010년 시즌을 앞두고 복귀한 라뱅 이병규와 같이 쌍병규 모드로 외야에서 맹활약했다.
5월 1일 문학 SK전에서 라뱅과 함께 한 이닝 동반 홈런을 때렸다. 이걸 보고 사람들은 뱅투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팀은 스코어 3:21로 개털렸다.
오히려 2010 시즌 5월 중순부터는 되려 라뱅보다 이쪽이 더 잘해서 '작뱅이 일낸다'라면서 엄청난 칭송을 받았다. 6월 7일 붙박이 좌익수로 뛰면서, 타율 0.276에 5홈런 20타점을 올리고 있다. 현재 헬게이트매치였던 5월 29일과 30일 경기에서도 끝내기를 막는 보살 + 맹타를 휘두르면서 5월에 LG의 이병규하면 작뱅이라고 생각하는게 편할 정도. 오죽하면 가끔 뉴스에 라뱅이 나온다면 '큰뱅'이라고 따로 수식어가 붙어야될 정도로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규정 타석에 50타석 미달했지만,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 소화하며 타율 .300, 출루율 .389, 장타율.479, OPS 0.868, 12홈런 53타점이라는 매우 준수한 성적을 냈다. 타석 수의 차이도 있고 해서 누적 스탯에서는 차이가 크지만, 장타율과 OPS에서는 KIA의 최희섭과 비슷할 정도이다. 규정 타석을 못 채웠기에 의미는 없지만.
전통적으로 좌타 외야수가 많은 LG라지만, 소위 외야 빅5를 뚫고 이렇게까지 성장할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기대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겨울 이적 시장 당시 넥센 히어로즈이장석 구단주가 그 해 세이브왕을 차지한 손승락의 트레이드 카드로 작뱅 을 원했다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1년만에 엄청난 입지 상승을 보였다. LG 팬들도 손승락↔작뱅 트레이드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손승락을 얻더라도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란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발 빠르기가 아니라 주전경쟁으로 이대형의 5년 연속 도루왕을 저지시킬 유력 후보로 손꼽히는 작뱅이었다. 당시 타팀 감독 & 코치들은 이대형보다 작뱅을 훨씬 높게 치는 분위기였다. 트레이드 협상때 작뱅을 주구장창 요구하는 반면 이대형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안 줄 정도였다. 풀타임 주전으로 뛴다면 20홈런 이상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작뱅이었다.

4.1.2. 2011년


2011년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 기간 중 무릎 부상을 당해 4월 9일 현재까지 1군 출장기록이 없었다. 설령 복귀하더라도 시즌 초반이지만 펄펄 날고있는 LG 외야진의 두꺼운 벽을 넘을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5월 5일 기준으로 LG 외야수들이 잘 했고 부진하던 이진영마저 타격감이 살아났다. 부상이 생각보다 깊었던데다 6월에 복귀한다고 해도 타격감 찾으려면 시간도 걸리기 때문에 이병규로서는 불운한 한해다. 타팀에서는 서동욱#s-1과 함께 매의 눈으로 노리는 선수이다.
무릎 부상이 고질병임이 밝혀졌고, 2011 시즌 직전 부상을 당했을 때 수술 소견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신 연봉제로 인해 연봉이 1억까지 상승한데다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어찌어찌 재활로 해보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2010 시즌 때도 무릎 때문에 문제가 있었는데, 내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게 표면화됐다. 여담으로 트레이드설이 나돌았던 손승락을 작뱅과 바꾸지 않았던 이장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더라.
박종훈 감독이 복귀가 더딘 작뱅에게 쓴소리를 날렸다. 수술 이후 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린다는 이유로 작뱅의 분발을 촉구했는데, 시즌 전에 큰 이병규 혹은 이대형을 밀어낼 거라는 전망까지 나왔던걸 생각하면 뼈아픈 쓴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찌어찌 재활을 마치고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잠실 경기부터 다시 출장하기 시작했고, 박용택이 타격 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간 틈을 타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였다. 8월 28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 2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 4회초 복귀 후 처음으로 우월 솔로홈런을 기록했다. 스코어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 동점을 만드는 천금같은 홈런. 게다가 위의 이병규, 즉 라뱅 항목에 언급했지만 라뱅도 이어서 투런포를 시전하며 쌍뱅 쓰리런을 기록, LG팬들을 환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군 복귀 후 살이 많이 찐 듯한 모습으로 "무릎 부상 때문에 운동이 부족해서 살이 찐 게 아니냐"라는 얘기를 듣자,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붙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관련기사 당시의 활약상을 보면 작뱅의 말이 맞는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팀의 가을야구는 거의 요단강 건너기 직전이었지만 복귀 이후 작뱅은 나름대로 타선의 중심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9월 14일 두산 베어스 와의 잠실 홈경기에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는데, 1회말 1사 2, 3루 상황에서 김승회의 6구째를 받아친 것이 우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작뱅 쓰리런을 쳐서 2011 시즌 3호째 홈런을 기록했다. 이날 팀이 3연패를 벗어남과 동시에 5위 자리를 간신히 지키는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작뱅의 무릎 상태가 고질병이라는 게 드러났고, 선수를 하는 동안은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부상이라는 카더라도 있는지라 내구성에 대한 의구심은 앞으로도 떨치기 힘들 듯했다. 당연히 시즌 후 연봉이 삭감됐다.

4.1.3. 2012년


새롭게 취임한 김기태 감독에 의하면 다시 본래 포지션인 1루수로 되돌아간다는 듯했다. LG에 복귀한 최동수와 함께 1루수 훈련을 했고 초반에는 최동수와 같이 플래툰으로 1루를 보다 타격감이 좋아지자 테이블세터나 중심타선으로 출장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6월 30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 스코어 1:0으로 팀이 앞선 2회초 2사 1, 3루 기회에서 상대 선발 투수 박정배#s-1의 3구 직구를 그대로 밀어 좌측 담장을 넘는 시즌 마수걸이 작뱅 쓰리런을 작렬시켰다. 여담으로 김무관 타격코치와 김기태 감독이 정의윤과 작뱅 중 누가 먼저 홈런을 칠지 내기했는데 정의윤한테 걸었던 김무관 코치가 이겼다. 정의윤은 6월 28일 KIA 선발 김진우를 상대로 마수걸이 솔로 홈런을 쳐서 작뱅보다 이틀 빨리 시즌 첫 홈런을 등록했다. 이날 작뱅은 4타수 1안타 1홈런 1볼넷 3타점 1피삼진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1로 승리했다.
7월 2일까지 217타석으로 당시까지의 규정 타석 210타석을 겨우 넘긴 상태에서 타율 .343으로 2위, 출루율 .468로 2위를 기록했지만 득점권 타율이 2할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팬들에게 까였다.
이후, 8월에 1군에 다시 올라와 잠실 삼성전에서 적시 2루타를 치고 바로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가는등 유리몸 기질도 다분해보였다.
결국 1군 69경기에 출전하여 71안타 .318, 2홈런 21타점 23득점, 장타율 .422, 출루율 .435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몸관리를 잘 하여 풀타임 출장을 했다면 더 좋은 성적을 냈으리라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다.
시즌이 끝날 때쯤 오른쪽 무릎 관절 수술을 받았으며, 3개월의 재활 기간이 소요될 거라고 하였다.

4.1.4. 2013년


다시 외야수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기사 참조. 시범경기 삼성 2연전에서는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시즌이 시작된 후, 컨디션 난조 때문인지 며칠 지나지 않아 2군행. 2군에서 5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리그를 씹어먹었지만, 부상으로 잠시 빠지기도 했다.
시즌 초에는 외야에 자리가 없던 터라 2군으로 내려가도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이진영의 부상으로 외야에 구멍이 나면서 많은 이들이 작뱅의 복귀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2013년 6월 8일 SK와의 2군 경기에서 발목에 직격사구를 맞고 엠뷸런스에 실려갔다고 한다. 하필이면 부상으로 고생하던 부위였고 시즌아웃까지 점쳐지고 있다. 그리고 사구를 맞춘 SK 투수는 지난해까지 LG 선수였던 김영롱이라고 한다. 다행히 6월 10일자로 1군 엔트리에 합류한 것으로 보아 큰 부상은 아닌 듯했다.
초반에 활약해줬던 문선재김용의의 부진으로 선발 1루수로 자주 출전하였다. 지표는 적긴 하지만 팀내 출루율 1위를 기록하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하였다.
9월 4일 SK전에서 9회말 끝내기 안타를 때려 팀의 영웅이 되었다. 이 승리로 LG는 1위에 등극하여 1일천하를 누렸다.
최동수의 은퇴식이 열린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플레이오프 직행 팀이 결정될 수 있었던 10월 5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2:0으로 지던 6회말 1사 1, 3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 노경은에 이어 등판한 유희관을 상대로 1-2루 간을 빠지는 안타를 기록하여 LG 트윈스가 2:5로 역전승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귀중한 타점을 올렸다. 이 날 최하위 한화가 넥센에게 승리함에 따라 LG 트윈스는 정규 리그 2위를 차지하며 극적으로 2013년 플레이오프에 직행, 11년 동안의 비밀번호를 끊는 쾌거를 이루었다. 플레이오프 엔트리에도 합류함에 따라 이병규는 데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출전하게 되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 2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6번타자, 3차전은 선발 1루수 겸 6번타자, 4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12타수 3안타 1홈런[14] 3볼넷 2타점 2득점, 타율 .250, 장타율 .500, 출루율 .4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4.1.5. 2014년




4.1.6. 2015년




4.1.7. 2016년




4.1.8. 2017년


[image]
이 사진은 이사만루2017에서 17이병규 사진으로 쓰이고 있다.
개막 엔트리에서는 제외됐으나 2군에서 5할을 치면서 리그를 폭격했고 4월 중순 쯤 콜업되었다.
4월 21일 기준 .190이라는 타율에 여전히 어슬렁어슬렁 수비를 시전 중임에도 감독과는 무슨 관계인지 꾸준히 나오고는 있다. 그래도 중심타선에 두기에는 기량이 영 좋지 못해 주로 6번 타순 정도로 출장 중. 부상과 폼 하락으로 2군 간 이천웅이 콜업 가능해질 때까지는 계속 보게 될 듯하다. 4월 21일 잠실에서 열린 vs기아 3연전 첫 경기에 좌익수-6번타자로 선발 출장, 8회말 대량 득점 과정에서 1사후 2루 땅볼을 치고 산책러닝하다가 아웃될 뻔 했다. 김선빈의 1루 악송구가 아니었다면 아웃되는 상황이었고 이후 추가점도 없어질 뻔. 해설인 이순철이 프로로서의 자세가 안 되어있다며 극딜을 했다.
4월 23일, 잠실에서의 기아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채은성과 함께 선발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직전까지 타율이 .148이니 양상문도 계속 기용하기는 애매했을것. 7회말 7-0까지 LG가 앞서가자 7회말 선두타자 대타로 출장했는데 또 잘하지도 못하는 눈야구 하다가 한가운데 직구를 멀뚱히 쳐다보면서 루킹 삼진. 상대투수 한승혁이 빠른 볼로만 상대했고 점수가 크게 벌어진 상태라 마음껏 스윙을 해봤어도 될 텐데 여전히 아무 생각 없는 본인 스타일을 고집 중이다.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는 LG 타자들 중 유일하게 아무 의욕도 없는 플레이로 일관중이다.
결국 4월 26일 SK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서 빠지고 말았다. 쏴리쥘럿!! 대신 등록된 선수는 안익훈. 하지만 5월 9일 삼성 원정경기 전에 1군에 다시 왔다... 10일 경기에서는 3안타를 기록했고, 5회말에는 조동찬의 타구를 펜스 앞에서 잡아내는 호수비 또한 기록했다. 이후 주전 붙박이는 아니더라도 띄엄띄엄 주전 출장 및 지명타자로도 나오는데 1군 콜업후 타율이 .205에 그쳐 결국 양상문도 포기, 5월 24일부로 2군으로 내려갔다.
MBC에서 중계한 2군 이천 두산전 경기에서도 주루를 하다가 부상(.....)으로 교체된 적도 있다.
그러다가 이승엽의 은퇴식에서 코멘트를 적어둔 것이 잠시 포착되었다.
시즌 종료 후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4.2. 롯데 자이언츠 시절



4.2.1. 2018년


[image]
해당 문서로.

4.2.2. 2019년


롯데에서 맞는 두 번째 시즌. 시즌 전 수염을 깎았다.
작년말의 종아리 부상 때문에 재활군에서 시즌을 시작한다.
5월 23일 퓨쳐스리그에서 대타로 출전하며 복귀했고, 이후 6월 29일 두산전을 앞두고 1군에 복귀해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하지만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7월 7일에는 아쉽게 파울홈런을 기록했고 결국 7월 10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1군으로 콜업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이번시즌 1군 출전은 고작 8경기에 그쳤다. 성적은 8경기 22타석 3안타, 타율 0.158/출루율 0.273/장타율 0.263.

4.2.3. 2020년


[image]
다른 선수들은 근황이라도 나왔는데 이병규는 아예 생사조차 확인 불가능이었다. 유일하게 확인되는 건 3군에 있다는 것 정도였다.
드디어 8월 21일 2군에 등록되었다.
8월 26일 2군 NC전에 대타로 등장해 안타를 기록했고, 27일 2군 kt전에는 3타수 2안타를 기록해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이에 팬들은 빨리 이병규가 1군에 올라와서 허일을 밀어내고 결정적일 때 한 방 쳐주기를 기다렸다. 허문회 감독에 따르면 9월 초 콜업할 예정이라고 했다.
8월 31일 2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1군 엔트리에 신용수가 말소되면서 이병규가 9월 1일 1군에 등록됐다. 거의 2년만에 부상을 딛고 부활한 것이다. 1군에 등록되자마자 kt전에 8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는데, 지명타자가 아니라 1루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허문회 감독은 종아리 부상을 막기 위해 시즌 끝까지 이대호, 정훈 등과 돌아가며 1루를 맡길 것이라고 밝혔다.
9월 4일 기아전 DH1에서 7회말 만루 상황에 대타로 출전하여 볼넷으로 2년만의 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날 DH2 6회말 2점 홈런으로 2년(726일)만의 홈런을 기록했다.
9월 7일 LG전에 선발 출장해 1회 볼넷을 얻어냈고 2회 딕슨 마차도의 투런포 이후 초구 솔로포로 백투백 홈런을 쳤다. 시즌 2호 홈런. 현재까지 복귀 후 안타 2개 모두 홈런이다.
9월 10일 삼성전에서 7회 이전까지 부진하다 7회 2번 타석에 들어서 모두 안타를 기록했다.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타율 자체는 .227로 낮은 편이지만 22타수 5안타 2홈런 7타점을 기록하며 클러치 상황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2할 2푼대의 타격에 비해 높은 0.370의 출루율을 바탕으로 OPS는 0.870을 찍는중. 8월까지만 하더라도 어디서 뭐하는지 알 수 없었던 선수가 9월에 팀에 합류하자마자 타격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만약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합류하게 된다면 이병규의 경험과 타격은 천군만마가 될 것이다. 다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상했지만 예상치 않은 콜업과 활약으로 알 수 없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9월 16일 경기에서는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18일 LG 트윈스 전에서 8회초 팀의 역전승에 보탬이 되는 2루타를 기록했다.
19일 NC 다이노스 전에서 5회말 결정적인 2점 홈런을 기록했다.
9월 20일 더블헤더에서는 모두 1안타씩 기록했다.
9월 22일 KT 위즈 전에서 2회말 선제 솔로포를 기록했고, 6회말에는 도망가는 적시타를 쳐냈다. 그러면서 시즌 타율은 0.271까지 상승했다. 현재까지 주로 6번타자로 출전하며 타선에 큰 힘이 되고 있다.
9월 26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는 2루타를 2개 기록하며 2타점 경기를 펼쳤다.
16일 고척 키움전부터 12경기 연속 안타를 치고 있다. 27일 광주 KIA전에서도 8회 포문을 열어 동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9월 29일 LG 트윈스 전에는 5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10월 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1회말 장시환을 상대로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시즌 비율스탯은 타율 0.322/출루율 0.435/장타율 0.533이 되었다. 이 당시 오윤석과 함께 타격감이 가장 좋았다.
그러나 그 뒤 계속 삼진만 적립했고 득점권 찬스에서 번번이 말아 먹었지만 허문회는 계속 이병규를 기용했고, 이 고집은 결국 기동력이 떨어지고 타선이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4.2.4. 2021년


나이도 이제 39세가 되는 데다 부상 경력도 많다 보니 포지션을 어디로 정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대호는 앞으로의 활약과는 별개로 수비는 이제 거의 볼 수 없고, 외야수의 경우에는 민병헌이 큰 부진을 겪었었던 데다 뇌동맥류 수술로 인해 시즌을 날려먹게 생겼고, 전준우도 젊은 선수는 아닌지라 외야와 1루를 번갈아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외야도 김재유, 강로한, 추재현, 신용수 등 젊은 선수들이 많으므로 선발로 출장한다면 1루수나 지명타자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본기kt wiz로 이적하면서 LG 시절에 사용했던 등번호인 7번을 롯데 이적 후 처음으로 달게 됐다.

5. 연도별 성적


연도별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6
LG 트윈스
7
8
.125
1
0
0
0
0
7
0
0
.125
.125
2007
1군 경기 기록 없음
2008
33
78
.231
18
6
1
1
9
7
0
7
.372
.294
2009
16
17
.176
3
2
0
0
4
0
0
4
.294
.333
2010
103
307
.300
92
17
1
12
53
57
5
47
.479
.389
2011
33
88
.250
22
3
0
4
14
13
1
21
.420
.387
2012
69
223
.318
71
17
0
2
21
23
8
46
.422
.435
2013
73
172
.291
50
6
1
2
26
24
1
29
.372
.393
2014
116
360
.306
110
28
3
16
87
66
5
79
.533
.423
2015
70
230
.243
56
9
1
12
35
42
2
46
.448
.370
2016
103
290
.272
79
12
2
7
37
43
8
57
.400
.389
2017
19
44
.205
9
0
1
0
5
5
0
4
.250
.27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8
롯데 자이언츠
103
198
.273
54
11
1
10
39
31
0
57
.490
.432
2019
8
19
.158
3
2
0
0
0
1
0
3
.263
.273
2020
53
194
.274
45
4
0
9
32
28
0
29
.463
.381
<color=#373a3c> KBO 통산(12시즌)
806
2198
.279
613
117
11
75
362
340
30
429
.444
.394

6. 여담


  • 잠실만 나가면 20홈런 뻥뻥칠 선수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잠실에서도 풀타임만 뛰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 똥군기의 피해자이다. 2009년 8월 23일, 서승화가 2군에서 작뱅의 이마를 배트로 밀어 상처를 낸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았다.[15] 업보인지 서승화는 1군 2패만 기록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문제는 동명이인이자 팀 대선배 큰 이병규의 네임밸류에 밀려 큰 이병규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16]
  • 무릎 부상 탓에 병역면제를 받았을 정도로 무릎이 좋지 않다. 한술 더 떠 유리몸인지라 코치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롯데로 이적할 때 LG 팬들이 농담삼아 하이파이브 함부로 하다가 부상당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 성격이 겸손해 4번타자감은 아니라는 소리를 듣지만, 14시즌에 이를 조금 고치면서 나아졌다.
  • 수비 실력은 좌익수, 1루수 모두 좋지 못하다. 목동구장에서만 일시적으로 호수비를 펼치는 경우가 있었다. 단 어깨는 꽤 좋은 편.
  • 손목 힘으로 잠실구장을 넘길 정도로 손목 힘이 좋다. 그리고 선구안도 좋아 볼넷을 많이 골라 나간다.[17] 동명이인인 LG 트윈스의 영원한 9번 이병규와는 정반대의 케이스.
  • 믿기 힘들겠지만 이대형과 동갑이다! 같은 팀이었던 동갑내기 류제국과 2살 아래인 우규민과 비교해봐도 확실히 노안이다.
  • 배우 명계남과 닮은 꼴이다. 위에 언급된 대로 잠실만 나가면 20홈런 칠 타자라고 되어 있듯이 담장 근처에서 잡히는 타구가 많아서 담계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근데 명계남은 52년생(...)
  • [image]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저격하는 눈빛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사진. 이 사진으로 방송을 탔다.
[1] 2002학번[2]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으나, 현재는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사실상 1루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우익수는 LG 시절에도 거의 소화하지 않았다.[3] 2011년엔 4minute의 Who"s Next, 2012년에는 소녀시대의 유닛 태티서의 "Twinkle", 원더걸스의 "Like This", 그리고 2013년엔 딕펑스의 선글라스를 썼다. 2014년 전반기에는 2NE1 "Come Back Home" 을 썼고, 후반기에는 걸스데이 - Darling을 썼다. 2015년 5월까지는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를 등장 음악으로 썼다. 이후 6월부터 시즌 끝까지 빅뱅의 뱅뱅뱅(BANG BANG BANG)을 등장 음악으로 썼는데, 자기 별명에 맞는 노래가 나와서 바꾼 듯. 2016년 현재는 싸이의 "I Remember You"를 등장음악으로 쓰고 있다. 아마도 등장음악을 자주 바꾸는 듯하다.(등장곡은 선수 본인이 선택) 참고로 작뱅과 비슷하게 등장곡을 엄청 자주 바꿔대서 서술이 불가능한(...) 선수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마츠다 노부히로야나기타 유키가 있다. 다만 저 둘은 1년에도 등장곡을 5~10개씩 쓰고 고정적으로 쓰는 한두곡을 제외하면(그나마 야나기타는 고정적으로 쓰는 노래도 없다) 몇달마다 바꿔대서 작뱅보다도 등장곡이 많다.[4] 오오오 이병규 LG의 이병규(안타!) LG의 이병규 이병규 안타를 날려라 (안타!)[5] 달빛 창가에서 응원가가 저작인격권에 걸려서 만든 응원가다. 무적LG 이~병~규~ 오오오오 워어어어어~ LG에 이~병~규~ 오오오오 워어어어~ X2[6] 김재율에게 응원가가 넘어갔다. # 이후 김재율이 은퇴하면서 박재욱에게 다시 넘어갔다.[7] 이병규 안~타 이병규 안~타 롯데 승리 위하여~ X4[8] 이우민이 은퇴하면서 물려받게 되었으나 2018 시즌 반 정도 쓰고 새 응원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9] 안타 안타 이병규 롯데의 이병규 자이언츠 이병규 롯데의 이병규 X2[10] 필기 및 식사는 오른손으로 하는것으로 확인됨.[11] 지금은 발전해서 선구안이 좋아졌고 출루율도 높아졌다.[12] 거기다 178cm로 작은 키도 아니다. 큰병규(188cm)가 상대적으로 더 클뿐.[13] 재학 시절 조순권과 입학 동기생이다. 입학 당시 좌병규, 우순권으로 불릴 만했다.[14] 이 홈런이 LG 트윈스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나온 유일한 홈런이다.[15] 알고 보니, 배트로 민 수준이 아니라, 대가리를 깼다고 한다.[16] 다만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큰 이병규는 일본 주니치에서 뛰고 있었다.[17] 단 이 점은 루킹 삼진이 많다는 점이기도 한다.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을 두고 침착하게 볼을 골라내며 타격을 하는 김태균, 최준석 등과 비슷한 유형의 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