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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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금호석유화학그룹의 대표이사 회장이다.
2. 상세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창립한 박인천 전 회장의 5남 3녀 중 네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등학교(42회),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형들처럼 대학 졸업 이후에는 바로 금호실업에서 근무를 시작해, 금호건설 상무,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이 되었고,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 부문 회장이 되었다. 둘째 형의 작고 후 셋째 형이 회장직을 승계 받았는데, 문제는 이 형이 그룹의 전통이였던 형제경영을 깨뜨렸고, 무리한 M&A의 외형확장으로 인한 그룹의 위기가 현실화 되자 두 형제간의 책임공방 다툼이 점화되었다. 박삼구는 원칙대로라면 그의 나이 65세인 2010년에 동생 박찬구 석유화학 부문 회장에게 경영을 승계했어야 했지만, 아들 박세창[8] 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주려 했다. 그러기 위해 형제들끼리 합의한 서류 내용을 해마다 조금씩 수정해가며 갈등이 심화되었다. 금호그룹을 패망으로 몰아간 2건의 M&A는 전적으로 박삼구가 주도한 반면 박찬구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였고 M&A 실패로 금호가 휘청거리자 두형제간의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결국 형편없고 무능한 형의 경영능력으로 인해 박찬구 회장은[9]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 등 계열사들의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10] 매각대금으로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늘려서 2011년 석유화학 부문을 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신청, 최종적으로 2015년 12월에 계열분리를 마무리 하였다.
이 계열분리 작업은 박찬구 당시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비밀리에 단독으로 추진하였고 그 결과 오늘 날의 금호석유화학그룹을 만들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원래 금호석유화학에서 주로 근무할 정도로 화학산업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많았다. 박삼구는 아시아나항공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를 용납할 수 없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졌던 건 덤. 외형확장을 중시하다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하게 되어 중견기업 회장으로 추락한 박삼구 회장과 달리 박찬구는 계열 분리 후 안정적이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영업이익 수천억대를 꾸준히 내는 실적을 올려 이제는 형보다 더 큰 회사를 거느리게 되었다.[11] 세간의 경영 평가를 보면, 박찬구는 내성적이고 언론 노출을 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재무 흐름과 현금 창출을 중시하는 안정적 경영 스타일로 M&A병자인 박삼구와 완전히 판이한 경영 스타일이다. 금호그룹이 예정대로 박찬구에게 회장 자리가 주어졌더라면 적어도 금호그룹이 이렇게까지 패망하지 않았을 것이라 모두 단언한다. 박삼구의 문제는 M&A뿐만 아니라 빚잔치를 벌이며 그룹을 파멸로 몰아넣는 독불장군이라 기업인으로서 할 수 없는 짓만 골라서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회장이 되지 못한 점에 대해선 비운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으나 현재 사실상 그룹해체 수준으로 완전히 몰락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형을 손절한 것이 오히려 박찬구 및 떼어내온 석유화학 계열사들에게 큰 호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12]
3. 상훈
- 철탑산업훈장 (2000년)
- 금탑산업훈장 (2005년)
- 이웃돕기 유공자 대통령표창 (2010년)
4. 여담
- 박찬구 회장의 둘째형인 박정구 회장의 아들인 박철완은 두 숙부인 박삼구VS박찬구 형제의 난에서 박삼구 회장측과 손을 잡고 박찬구 회장을 함께 공격하였다가 2010년 워크아웃 직후 주가가 곤두박질하여 위기에 처하자 박삼구 측으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하게 된다. 이후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을 달라고 산업은행 측에 요구하였다가 채권단에 혼쭐이 나고 박찬구 회장측에 백기투항하였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의 특수관계인으로 박찬구 회장(6.7%), 박 회장의 아들 박준경 전무(7.2%), 박철완은 상무로서 10% 지분을 가지고 있으나, 2021년 1월 27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철완 상무가 우군을 끌어들여 박찬구 회장측에 경영권 분쟁을 걸어, 조카의 난이 개봉되었다고 한다.
- 오늘날 박찬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유화학그룹은 국내 최고 수준의 석유화학 기업으로 우뚝 발전했고, 금호아시아나 시절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 당시 형을 말렸다고 하니 어느 정도 선구안이 있는 셈이다. 차라리 3남 말고 정도경영을 중시하는 박찬구 회장이 후임 회장이 되었다면 금호는 건실한 대기업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몰락하면서 이제 박찬구의 금호석화그룹이 직계가 된거나 다름없어졌다.
- 소탈하고, 더불어 검소한 생활습관은 선친인 박인천 창업회장과 비슷하다는 평을 듣는다. 또한 박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전무 역시 재벌 회장 아들이라는 티를 찾아볼 수 없다고...
- 다른 재계인사들과 달리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간담회에서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간단명료하게 한 두마디 정도 발언을 한다. 다만, 사내에서 임직원들과의 소통과 의견 조율을 중요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바둑 마니아다. 박찬구 회장의 바둑 실력은 아마추어 3급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둑을 접하게 된 것도 아버지인 박인천 창업주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범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국내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 지역 경제를 조금이나마 살리자는 취지로 그룹 전 계열사 직원에게 격려금 100만원을 지급했다. 박찬구 회장은 힘든 시국을 의연하게 견디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에게 이번 격려금이 작게나마 보탬이 되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3월엔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지역에 약 3억원 상당의 의료용 라텍스 장갑 200만장을 기증했고 네팔의 쩌우리저하리 병원에 코로나19 구호금 1억 원을 기부했다.
- 의전 차량으로 기아 더 뉴 카니발 하이리무진과영상 제네시스 EQ900을 사용 중이다. 사진 과거 금호아시아나그룹 시절에는 1997년도에 1세대 체어맨, 2011년도에는 2세대 체어맨W 리무진을 사용했었다.
5. 어록
'''"금호 명맥을 지키기 위해 금호리조트 인수전에 참여했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골프장을 인수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수하지 않으면 대한항공이나 제3자에게 넘어간다. 금호그룹 계열사들이 모두 매각됐는데 금호리조트라도 지키겠다는 명분에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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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1일, 금호리조트 인수전에서 금호석유화학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 中 #
'''"그동안 고생해준 직원에 감사하다. 우리 손으로 직접 꽃피우지 못해 아쉽지만 SK머티리얼즈가 맡게 되었으니 더이상 바랄게 없다. 최고의 포토레지스트 제품을 만들어 전세계를 석권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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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7일, 자사의 포토레지스트 소재사업부문을 SK머티리얼즈에 매각하면서 #
'''"요즘 세대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합리적이고 꼼꼼한 소비자이다. 직원들이 동반성장몰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제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 제품의 인지도와 경쟁력 또한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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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7일, 임직원 대상으로 중소기업 제품을 판매하는 동반성장몰 이용을 독려하며 #
'''"좀 안타깝습니다. 박삼구 회장님의 은퇴시점 까지의 마음이 좀 안타까워요."'''
2019년 3월 28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자진 사퇴 결정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답 영상
'''"영업력 강화와 원가절감, 기술개발 등 우리의 핵심역량을 재점검하고 강화시켜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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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일, 금호석유화학 신년사 中 #
'''"나도 이제 지쳤고 더 이상 싸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계열분리도 다 된 상황에서 서로 각자 잘 경영하면 된다. 더 이상 치고받고 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해서 마음 터놓고 해버렸다. 오해할 것 없다. 나도 편하게 살고 싶어서 마음을 풀었다. 강자가 자비를 베풀라고 하지 않느냐. 그쪽(박삼구 회장)은 아직 재무구조도 약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아 내가 강자니깐 베풀어주는 식으로 했다. 때가 되면 (박삼구 회장과) 만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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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의 설립 주주로 지난 28년 동안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형제갈등 모습을 보이면서도 주주 행동에 나선 것은 회사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정도경영을 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경영 감시자로 활동하기에 아시아나항공이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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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7일,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상황에 대하여 평가해달라는 머니투데이 기자의 질문에 #
'''"아버지가 만든 상표권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문제 될 수 없으며 비용을 모두 지급했는데 어떻게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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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7일, 상표권 소송 관련 질문에 대한 답 #
'''"우리가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출범하는 올해는 공교롭게도 금호그룹이 7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70년간 우리는 금호그룹이 있어 태어날 수 있었고 또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금호그룹’이었기에 할 수 없었던 것들도 많았다. 과거 우리를 성장시켰던 것들은 더 이상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우리는 과감히 옛 방식과 결별해야 한다.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그 길에서 실패를 겪는다 해도 이겨내서 후대에 물려 줄 정신이나 가치를 남긴다면 그것이야말로 금호를 계승발전시키는 진정한 유산일 것이다. (‘남에게 진실되게 살아라’라는 아버지 박인천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반평생, 40년을 금호인으로 살아온 저로써는 아직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씀이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새로운 창업에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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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2일, 금호석유화학 신년사 中 #
'''"이러실 것 같아요. 찬구야, 잘했다. 석화라도 살린 것은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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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5일, 선친께서 박찬구 회장을 보시면 계열분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 #
'''"한 업종이라도 세계에서 1등 하자는 것이다. 난 그것이 선친께서 늘 강조하신 정도경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형과는 경영철학이 너무 달랐다. 대우건설 인수 전부터 간격이 있었다. M&A도 시장상황을 보면서 해야 하는 데 너무 진보적인 경영을 했다. 대우건설 인수가 결정될 때는 반대했었고 대한통운 인수 때는 유동성 악화를 우려해 더욱더 강력하게 반대했다.하지만 내 의견을 철저히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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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5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부터 계열분리를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 #
'''"나는 회사에 지금과 같은 천문학적 손실을 입혔으면 반드시 책임지고 물러났을 것이다. 당신은 무책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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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일, 박삼구 회장과 경영권 다툼 도중에 박찬구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 부문 회장이 이사회에서 강제 해임 당하자 법무법인 산지에서 박찬구 회장을 대리해 내놓은 입장문에서 이사회 해임 당시 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