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면
1. 개요
1914년 4월 1일부터 1994년 12월 26일까지 경기도 수원군-화성군에 있었던 면.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반월동의 모태가 되는 면이며 안산선 반월역의 유래가 되는 면이기도 하다.
2. 역사
조선 시대에는 광주군의 견아상입지로서 북방면[1] , 성곶면[2] , 월곡면[3] 의 3개 면으로 나뉘어 있었다가, 1906년 월경지 정리에 따라 안산군에 편입되고 1914년 4월 1일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수원군에 편입되면서 3개 면이 통합되어 설치된 면이다. 1949년 수원군의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면서, 화성군 반월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사무소 소재지는 현재의 반월동 주민센터가 있는 곳이다. 1970~80년대 반월면 서부 및 시흥군 군자면·수암면 각 남부에 반월신공업도시가 조성되면서 이들 지역을 관할하는 반월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반월출장소 지역을 '''신'''반월로, 기존 반월면 동부 지역을 '''구'''반월로 불렀다. 전통적으로 평온한 농촌 지역이었으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42번 국도(수인로), 47번 국도 등 온갖 도로들이 만나고 안산선이 개통되면서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며 조금씩 변화의 기미를 보이는가 싶더니...
1983년 월암리, 초평리가 시흥군 의왕읍으로, 1986년 반월출장소가 안산시로 승격되면서 서부 지역이 안산시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지방자치제 시행 직전인 1994년 12월 말 면의 잔여지역이 안산시, 군포시, 수원시에 3분할 편입되면서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행정구역
1949년 8월 14일[4] 기준으로 반월면은 17개의 리를 관할하고 있었으며, 다음과 같다.
4. 분할
주변 지역의 확장 등으로 인해 반월면은 1983년을 시작으로 1986년과 1994년까지 면의 지역을 주변 도시에 넘겨 주었으며, 최종적으로 1994년 면의 전 지역을 안산, 군포, 수원에 3분할시켜 넘겨줌으로써 공중분해 되었다.
5. 기타
반월면이 3분할 되는데는 주민들의 입김도 작용한듯 보인다. 링크[16]
한 지역으로 몇십년 묶여 있다 분리된 것 치고는 분리 이후의 부작용이 없는 편이다. 분할 편입 당시 인접 도시들과의 생활권을 고려하여 행정구역을 조정해 준 것이기 때문.
참고로 시외전화 통화권은 1983년 일찍이 의왕(안양)에 포함된 월암, 초평과, 수원이 코앞이었던 입북동을 제외하고 모두 안산 통화권에 속한다.[17] 통화권이 1980년대 말 시외전화 보급과 함께 정립되면서 당시 반월면(입북동 제외)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안산 일부의 모체를 이뤄서 안산 통화권에 들어갔기 때문. 또한 당수동은 수원농협이 아닌 반월농협이 있다.[18]
[1] 둔대리, 속달리, 도마교리, 대야미리, 건건리, 팔곡일리, 팔곡이리에 해당된다.[2] 본오리, 일리, 이리, 사리에 해당된다.[3] 입북리, 당수리, 사사리, 월암리, 초평리에 해당된다.[4] 수원군이 화성군으로 개칭된 날짜[5] 월암동+초평동 : 부곡동(행정동)[6] 구 반월면 지역 중, 의왕시 편입 지역은 유일하게 자체 행정동이 설치되지 않았다.[7] 일동+이동 : 일동(행정동)[8] 사동 : 사1~3동(행정동)[9] 본오동 : 본오1~3동[10] 본오1동 관할[11] 안산시 승격일[12] 1988년 당시 군포읍에서는 건건리도 이듬해 군포시 승격 때 편입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건건리는 결과적으로 안산시에 편입되었다.[13] 건건동+사사동+팔곡일동 : 반월동(행정동)[14] 대야미동+둔대동+속달동+도마교동 : 대야동(행정동)[15] 입북동+당수동 : 입북동(행정동)[16] 모바일에서 링크를 열면 인터넷 익스플로어가 아니어도 동영상이 재생된다.[17] 현재 수원에 속한 당수동과 군포에 속한 대야동 포함.[18] 다만 당수동에 반월농협 지점이 생긴것은 반월면 해체 이후인 99년이다. 반월면 시절엔 당수리에 농협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