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회
1. 삼국시대의 인물
龐會
생몰년도 미상
위나라의 장수로 방덕의 아들.
평구장군, 임위정후를 지내면서 257년에 제갈탄의 난을 진압할 때 노번과 함께 부하를 이끌고 성문을 뚫고 나와 조정으로 돌아왔다는 것으로 보아 어쩔 수 없이 제갈탄에게 가담했다가 제갈탄의 진압에 참가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위나라에서 향후로 봉했다.
263년에 종회가 촉한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자 방회는 종회의 부장으로 촉 토벌전에 참가했으며, 부에 도달하자 종회의 명령으로 전속, 호열 등과 함께 강유를 추격했다. 촉한의 유선에게 항복을 받아내자 아버지 방덕이 관우와 싸워 패하고 붙잡혀 전사하여 관우를 아버지의 원수로 여기고 있었던지, 이 때 방회는 이 기회를 틈타 촉한 지역을 샅샅이 뒤져서 관이를 포함한 관우의 후손들을 모두 찾아내 멸족시켰다고 한다.
방회는 용렬(勇烈)함이 아버지 방덕에 버금갔고 관위는 중위장군까지 올라 열후에 봉해졌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방덕이 우금을 따라 갈 때 어머니 이씨와 함께 울면서 배웅하는 장면에서 나오는데, 이 때 방덕이 자신이 죽으면 아들을 잘 기르라면서 특이한 상이 있으니 자라서 자신을 위해 원수를 갚을 것이라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며(모종강본 74회) 한참 지나서 종회가 촉을 치기 위해 장수들을 모았을 때 장수 중 1명으로 잠깐 언급된 것이 전부다.(116회)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이 장면 뿐만 아니라 방회가 관이를 포함한 관우의 자손을 멸했다는 언급이 잠시 나온다.
1.1. 의혹
하지만 배송지가 주로 달아놓은 이 내용의 출처가 어환의 위략만큼이나 진실성을 의심받는 왕은의 《촉기》인지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방회의 기록이 그 이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관씨 일가를 몰살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성도대학살 당시 살해당한 인물들 중에는 장익, 유선(유비 손자) 일가, 장완의 아들들이 있다. 물론 성도대학살은 서주대학살이나 사마의의 요동성 학살 마냥 계획적으로 일어난 학살이 아니라 강유가 종회를 부추겨 위나라 병사들을 갱살하는 짓거리를 계획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역으로 터진 사태였던지라 처벌할 이유가 없는 사건이었다.
방회의 관씨멸족설이 말 그대로 아무근거 없는 낭설이었다면, 그것을 짐작할만한 기록이나 반박을 하는 주석이 있을 법도 한데[1] 그것도 찾기 힘들기 때문에 관씨멸족설이 나올 정도의 언동은 실제로 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있다.
1.2.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아버지 덕에 나오는 무장. 아버지 덕에 무력이 70대인 것을 제외하면 별거 없다. 관우의 자손을 멸했다는걸 반영하였는지 매력도 좋지 못한 편. 삼국지 8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0/73/48/46으로 그저 그렇지만 돌진 하나는 쓸만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8/75/45/44/61에 특기는 4개.(치안, 화시, 반목, 반격) 위나라에 이 정도 인재는 암만 후기 시나리오라도 넘친다.
삼국지 11에서는 매력이 크게 하향되어 69/75/49/42/52.
삼국지 12에서 등장한 그의 일러스트에서는 방덕의 아들임을 나타내기 위함인지 방덕의 두건을 쓰고 있다. 자세히 보면 말을 타고 고삐를 쥔 채 검을 들고 돌진하는 모습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매력만 빠진 상태에서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훈련 1, 순찰 2, 신속 2, 공성 4, 일기 1. 전수특기는 공성이며 전법은 부동.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8, 무력 75, 지력 47, 정치 42, 매력 52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 지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과감, 주의는 패도, 정책은 시설개발 Lv 3, 진형은 봉시, 투석, 전법은 대갈, 투석, 친애무장은 없고 혐오무장은 관우, 관이, 관통, 관흥이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아버지 방덕의 패러디인 슬래시를 이어받았다. 덤으로 검각 전투(12)에서 서촉에 들어온 후 방덕이 한 복수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최훈은 이 학살을 언급하며 세상에 착한 침략자는 없고, 점령당한 이는 어떤 식으로든 짜먹히게 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 평하며 무작정 항복한 유선과 그에 동조한 사람들를 비판했다. 물론 애초에 위에 언급한 대로 강유와 종희의 작당질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유선의 항복 결정 때도 유비가 칭제할 때의 표문을 들어 뜬금없는 비판을 할 정도로 촉에 우호적이었던 최훈이 비슷한 맥락으로 한 소리인지라 적당히 걸러 들을 필요는 있다. 애초에 유선이 무작정 항복한 것도 아니었고. 어쟀든 연재 당시 촉까니 뭐니 하며 별의별 해괴한 프레임에 악의적으로 비난 받았던 최훈의 이런 묘사들과 평이 악의적으로 최훈을 까댔던 극성 촉빠들을 상당히 뻘쭘하게 만들었다.
2. 중국의 이익단체
중국에서는 방(幫)이나 회(會)라고 하여 이익단체를 결성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이익단체는 흔히 폭력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려 하기 마련인데, 역사상의 청방이나 삼합회과 같은 경우가 이렇다.
무협소설에서는 이런 이익단체를 무림의 문파로 재포장하기도 한다. 거지들의 결사체인 개방, 소금장수들의 결사체인 염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익추구가 조정의 법을 거스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비밀결사의 성격도 띠게 된다. 거기에 이익단체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우선 추구하는 경향 때문에 잘 해야 중도, 그렇지 않으면 사파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개방의 경우 거지가 남에게 원한을 살면 밥 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작품에서 정파 세력으로 나온다.
원래 이익단체이므로, 문파의 수익은 그 이익원에서 얻게 된다. 예외적으로 개방의 경우 본디 거지인지라 수익을 탐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2]
구성원의 숫자가 많고 조직력이 뛰어나다고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력이나 방회의 특성을 살려서 독특한 전법을 쓰는 묘사를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익단체이므로 사용하는 무공은 종교단체와는 달리 심오한 원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구성이 잡다하고 무공수준도 낮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아예 핵심 구성원들(방주나 장로 등)이 다른 문파 출신이거나 다른 문파에서 무공을 배워오는 경우도 있다.[3]
실존하는 중국계 폭력조직도 ××방(幫)이라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중화민국 시대에 막강한 영향을 발휘했던 청방(靑幇)이 대표적이며, 또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장쩌민의 영향력 아래 있는 정치가들을 상해방(上海幇)이라고 부른다. [4]
[1] 유선벤허설 같은 근거없는 헛소리였다면 배송지가 "일단 사서에 기록된 이야기니 써넣기는 한다만 내 생각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식으로 주를 달았을 가능성이 높다.[2] 물론 국내무협에선 정보를 팔아 거금을 가지고 있어서 행색만(더 심하면 무늬만) 거지일뿐 부자인 경우가 많다. 또 이걸 나눠서 개방이 정보판매 수익을 최소한의 조직유지 수단으로만 이용해야 한다는 파벌과, 우리도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파벌로 내분이 일어나는 설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3] 《천룡팔부》의 교봉(소림사에서 배움)이나 《사조영웅전》의 황용(도화도 출신), 야율재(전진교 계열).[4] 후진타오와 시진핑도 넓게 보면 상해방이다.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셋 모두 상하이시 당 서기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