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철

 


'''백민철의 역임 직책'''




'''백민철의 수상 이력'''

'''대구 FC 10주년 베스트 XI '''
FW
산드로
FW
이근호
MF
진경선
MF
오장은
MF
하대성
MF
에닝요
DF
황선필
DF
유경렬
DF
김현수
DF
박종진
GK
'''백민철'''


'''성남 FC 골키퍼 코치 '''
'''Seongnam FC'''
<colcolor=#fff><colbgcolor=#000> '''이름'''
'''백민철'''
'''白珉喆 | Baek Min-Chul'''
'''생년월일'''
1977년 7월 28일 (47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코치
'''소속'''
<colcolor=#fff><colbgcolor=#000> '''선수'''
안양 LG 치타스/FC 서울(2000~2005)
상무(2003~2004/군복무)
대구 FC(2006~2011)
경남 FC(2012~2013)
광주 FC(2014)
강릉시청 축구단(2015)
'''지도자'''
FC 서울 (2016~2019/GK코치)
성남 FC (2020~/GK코치)
1. 소개
2. 선수 시절
2.1. 클럽
2.1.1. 안양 LG / FC 서울
2.1.2. 대구 FC
2.1.3. 경남 FC
2.1.4. 말년
3.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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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백민철은 대한민국의 축구 지도자다. 선수 시절에는 골키퍼였으며, FC 서울의 골키퍼 코치를 담당하다가 2020년부터 성남 FC의 골키퍼들을 지도하고 있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2.1.1. 안양 LG / FC 서울


2000년 드래프트에서 백민철은 5순위로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안양은 GK 코치로 데려왔던 신의손이 은퇴를 번복하고 주전 골키퍼로 뛰어야 했을 정도로 골키퍼 스쿼드가 열악했는데, 때문에 안양은 2000년 드래프트 당시 원종덕과 백민철을 잇달아 지명하는 등 골리 유망주 확보에 주력했었다.
그러나 신의손이 41세의 나이로 왕년의 선방 퍼포먼스를 재연하며 안양의 붙박이 1선발을 차지했고, 2선발 골리는 원종덕에게 돌아간 상황이었기에 백민철 선수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다. 결국 안양 2군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낸후, 백선수는 상무 입대를 결심하게된다.
상무에서 박호진, 이광석과 함께 로테이션 멤버로 1군 무대를 뛴 백민철 선수는 2004년 광주 상무에서 프로 입단 4년차만에 1군 데뷔전을 치루었고, 군복무 2년동안 11경기 출장 13실점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전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역 후 돌아온 소서울은 원종덕, 박동석 등이 이미 1선발과 2선발을 차지하고 김호준 등 유망주 골키퍼들이 즐비한 골리 포화상태였던지라 백민철 선수가 주전을 잡을 기회가 요원했다.

2.1.2. 대구 FC


2006년 자유계약으로 대구 FC 이적을 택하였다.
당시 대구 FC는 2003년 이래 1선발을 도맡아온, 김태진 이외에 골리가 마뜩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백민철을 2선발 정도의 지위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김태진은 2006년 5월까지는 붙박이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으나, 2006년 5월 14일 경남 FC전과 17일 부산 아이파크전에서 잇달아 3실점, 5실점을 헌납해 주전에서 제외되었고, 이때부터 백민철 이 붙박이로 출장하며 그 해가 끝날때까지 1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잔여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였다.
처음으로 1시즌을 통으로 뛴 백민철 선수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매경기마다 서넛차례 선방 퍼레이드를 펼치는 등, 놀라운 활약으로 대구 FC 경기당 평균 실점을 1.1점으로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줬다.[1] 이에 대구 팬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듯한 복덩이 백민철 선수를 '''민철신'''이라 이름 붙이며 찬양하기에 이른다.
2007년과 2008년 대구 FC는 소위 공격 축구를 모토로 센터백 2명을 제외하고 모든 선수가 공격진에 가담하는 고교 축구에서나 볼법한 극단적인 득점 지향적 축구를 구사했는데, 이래서야 골키퍼가 경기 때마다 신기에 가까운 선방 능력을 보인다한들 대구의 실점을 막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천하의 민철신도 이러한 악조건에서는 별수 없었던지 2008년에는 36경기 출장 77실점이라는 경기당 평균 실점율이 2점을 초과하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이후 이근호, 에닝요, 하대성 등 공격 축구를 이끌던 선수들이 모두 이적하고, 장남석의 부상 이후 대구의 공격 축구는 사라지면서 백민철의 부담도 한층 덜었다.
2009년 백민철과 로테이션 경쟁을 의도하고 영입했던 조준호가 플레잉 코치로 전력 외가 된 상황이라 2010 시즌도 백민철의 활약은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2010시즌 이후 경남 FC에서 데려온 젊은 골키퍼 박준혁이 빠른 속도로 성장함과 동시에 백민철은 부상으로 박준혁에게 완전히 밀려버렸다.

2.1.3. 경남 FC


2012시즌 개막을 1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2012년 2월 27일 경남 FC로 이적하였다.
언제든지 1선발로 활약할 수 있는 실력이라 김병지와 함께 선의의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정망되었다.
한편 대구 FC는 백민철과 재계약에 실패하자, 2005년 이전 계약자라 FA 이적료가 발생하지만 이적료 없이 자유계약으로 풀어주었다고 한다.[2]
하지만 경남에 와서도 2012시즌은 김병지에게 밀렸고, 2013시즌에는 신인 박청효에게 시즌 초반 밀리며 후보 골키퍼로 내려 앉았다.
하지만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박청효가 불안불안 모습을 보여주자 전격적으로 주전으로 재기용되어 0점대 실점율을 보여주며 골문을 틀어막아 호평을 얻었다.

2.1.4. 말년


2014년 광주 FC로 이적하였으며, 1년간 6경기에 출장하였으며, 수원 FC와의 리그 9라운드에서 개인 통산 20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다.
2015년 강릉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해 1년간 소속된 뒤 은퇴하였다.

3. 지도자


은퇴 후에는 FC 서울에서 골키퍼 코치를 했다. 황선홍 감독의 사퇴로 김일진 GK 코치가 R리그팀으로 내려간 이후 1군 코치가 됐다.
2020년부터 성남 FC로 팀을 옮긴다. #

[1] 김태진이 2006년 남긴 평균 실점은 1.8점이었다.[2] 다른 팀에서 부담없이 뛸수있도록 배려한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