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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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대구 FC의 창단멤버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원클럽맨으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대구를 떠난 적이 없는 대구의 레전드이지만, 불행히도 워낙 대구 FC가 하위권에서 전전한 탓에 상당히 저평가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도 대구팬 사이에서 최소 진골 대접은 받는다.
2. 선수 생활
곡성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한 그는 광주북성중, 금호고등학교, 호남대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호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동기인 박성홍 선수와 함께 대구 FC의 창단 선수단 입단 테스트를 지원하여 3개월간의 훈련을 소화한 끝에 입단할 수 있었다. 계약금은 1억 5천만원, 연봉은 2천만원이었다.
2003년부터 대구의 수비를 책임졌다. 대구 FC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그는 본래 대학 시절까지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나, 박종환 감독은 그의 활동량을 높이 사서 김덕중 선수와 함께 좌우측 풀백 선발 라인을 맡겼다. 그 결과 데뷔 시즌에 39경기를 뛰며 총 7년동안 대구에서 꾸준히 활약, 2014년까지 대구 FC에 유일하게 남은 창단 멤버로 활약했다.
2007 시즌을 마치고 2년 동안의 병역 의무를 위해 상무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박종진은 이강조 상무 감독의 눈에 들며 2008 시즌 고창현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28경기를 소화했고, 2009 시즌에는 주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시작 전 가진 연습 경기에서 부상[3] 을 당하며 결국 그라운드를 떠났어야 했다. 주장 완장도 강민혁 선수에게 양보했다.
2008 시즌에는 상무에서 다수의 경기에 출전하였지만 2009 시즌에는 부상으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였다. 돌아온 즉시 2009 시즌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였다. 2010년 7월 25일 경남 FC를 상대로 통산 200경기 출전을 달성하였다. 2010년 대구 FC가 최하위를 기록하자 군입대 전 5년 동안 대구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최하위를 한 적이 없고, 그것이 자신의 자부심이었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2009년 복귀 후 1경기를 뛰고 리그 꼴찌를 경험했고, 2010년 한 시즌을 소화하고 다시 리그 꼴찌를 경험했다.[4]
2012년 여름 다시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7월 7일 광주전에서 경기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느낀 것. 이후 두 달간 재활에 매진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상위 스플릿에 도전하는 중요한 시기에 부상을 당해 팀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2013년 당성증 감독 아래에서도 꾸준히 경기를 뛰었으나, 당성증이 이끌던 대구는 부진을 거듭한 끝에 역사상 유례가 없는 9경기 만에 감독 경질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와해되었다. 이후 당성증의 후임으로 부임한 백종철 감독은 전술적인 이유로 박선수를 중용하지 않았고, 결국 경남전만 소화한 채[5] 시즌을 마쳤다.
2013년 5월 9일 부친상을 당했다고 한다.[6] 5월 12일 경남전에서 송창호 선수가 골을 넣은 후 모든 선수들이 한 곳에 모여 어깨동무를 한 채 잠시 묵념을 한 후, 하늘을 향해 양 손을 가리키는 세레모니를 했다. 박종진 선수와 박 선수의 아버지를 위한 세레머니였다.
2013 시즌까지 K리그 통산 263경기 42교체 1득점 4도움 46경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리그 컵 기록도 포함된 기록이다.
플랫 3 에서는 좌측 윙백과 좌측 풀백을 전담하고, 플랫 4에서는 좌측 풀백을 소화한다. 박종진 선수의 활동량과 성실함은 리그내에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때문에 신체적 조건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K리그 200경기 출장을 돌파했다. 다만, 상무 복무 중에 당한 부상 이후에는 약간 활동폭 면에서 처지는 느낌이 든다.
프로 데뷔에서 지금까지 군 입대를 제외하면 대구 FC의 창단 멤버로서 데뷔해서 현재까지 대구 FC에서 뛰고 있다. 아무것도 몰랐던 신인 시절 대구에 입단한 그는 유경렬 선수에 이은 서열 2위의 고참이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함께 선수 생활을 해온 김현수는 대구의 코치로 부임해 있었으며[7] , 가장 막내인 1992년생 김흥일 선수와는 무려 12살의 차이가 난다.
데뷔부터 주전으로 활약하고, 대구 FC의 첫 강등 이전까지 오직 대구 FC에서만 뛴 선수로 그야말로 대구 FC의 전설이라 할 수 있다. 2013 시즌이 끝나고 지도자 강습회에 참여하며 다가올 시즌을 코치로 보낼 준비 중이다.
2013년 10월 대전 시티즌과의 창단 10주년 기념 경기에 대구의 서포터석에는 8벌의 유니폼이 걸렸다. 지금가지 대구에 뛰어온 박종진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이었다. 박종진을 향한 대구 팬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모습. 박종진 선수도 지난 10여 년간 한결 같이 응원해 준 팬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2014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은퇴이후 대구FC U-15인 율원중학교 유소년 코치로 새 축구인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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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K리그 챌린지 대구 홈 개막전에 은퇴식을 가졌으며, 또한 창단 멤버로 12시즌 동안[8] 대구 FC에 적을 둔 박종진 선수를 기리기 위해 배번 ‘24번’을 앞으로 12년 동안 결번하기로 했다.
2.1. 기록
3. 지도자
은퇴 후 대구 FC의 유소년 산하 학교인 율원중학교 축구부의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대구신흥초등학교의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2018년 과거 스승이였던 당성증 감독의 부름을 받고 천안시청 축구단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면서 축구인 생활을 하면서 처음 대구를 떠났다.[10]
[1] 2014년부터 2026년까지 12년간 결번한다.[2] 호남대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좌우측 미드필더였으나 박종환감독의 눈에 띈 이후 측면 수비수로 전업[3] 아킬레스건 파열을 당했다.[4] 인터뷰에 따르면 한 시즌을 소화 후 꼴찌를 경험하니 정말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고 한다.[5] 이 경기는 대구가 승리를 거두며 팀 통산 100승 경기로 기록되었다.[6] 박선수의 부친은 폐암 투병 중이셨는데, 박 선수를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유는 팀에 누가 될까봐였다.[7] 2013년 시즌 이후 계약 만료[8] 상무 복무 포함[9] 리그컵 폐지[10] 군복무 때문에 상무에 있었던 것은 예외로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