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 쇼월터
1. 개요
[1]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감독. 통산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 상 3회의 수상에서 보이듯이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나 하위권의 팀을 빠르게 우승권으로 끌어올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정작 우승복은 없어서 양키스와 애리조나 감독 시절 모두 그가 감독에서 물러난 바로 다음해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와도 꽤나 인연이 깊은데 애리조나에서는 김병현, 텍사스에서는 박찬호를 지도했으며 볼티모어에서 김현수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2. 경력
2.1. 선수
1956년 플로리다에서 교사의 아들로 출생했다.[2] 미시시피 주립대학교에 다니면서 대학 리그를 평정한 뒤 1978년 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에게 지명을 받지만 끝끝내 메이저리그 콜업에는 실패한 채 1984년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는다.
2.2. 감독
2.2.1. 뉴욕 양키스 감독
1984년 은퇴 직후 양키스 산하의 싱글 A팀의 감독으로 임명된 쇼월터는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3] 1992년 뉴욕 양키스의 감독으로 선임된다. 당시 양키스는 1981년 월드 시리즈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월드시리즈 진출은 고사하고 플레이오프에조차 진출하지 못하는 처절한 암흑기였는데, 쇼월터의 지도 하에 차근차근 리빌딩을 진행하여 마침내 감독 4년차[4] 였던 1995년에 와일드 카드를 따내며 양키스의 14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1등 공신이 된다.[5]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상 수상은 덤. 다만 빅유닛이 이끌던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완패했고, 인내심 없기로 유명했던 보스는 그를 쿨하게 해고시킨다(...) '''15년만에 플레이오프를 진출시킨 감독'''이 단박에 목이 달아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타인브레너는 쇼월터에게 계약 연장을 제시하긴 했다. 하지만 그 조건으로 그의 측근이자 당시 양키스의 타격 코치였던 릭 다운을 해고할 것을 요구했고 여기에 발끈한 쇼월터가 '차라리 나도 자르십쇼'라고 했던 것. 여담으로 벅 쇼월터 다음으로 임명된 감독은 저 상황에서 12년간 감독직을 유지하는데[6] , 그게 조 토레이다.
여하튼 쇼월터는 양키스에서 4년간 감독 생활을 하면서 통산 313승 268패를 기록했고,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있었던 양키스를 리빌딩시킨 그는 메이저리그 전체의 주목을 받게 된다.
2.2.2.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
이후 1998년 당시 새로 창단한 신생팀이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초대 감독으로 임명되는데, 첫 해야 신생팀들이 으레 그렇듯이 처절한 성적을 맛보았지만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름신 하에 애리조나는 랜디 존슨, 루이스 곤잘레스, 커트 실링과 같은 쟁쟁한 슈퍼스타들을 영입하고 서부지구 최고의 컨텐더 팀으로 우뚝 선다. 하지만 1999년 디비전시리즈에서 뉴욕 메츠에게 패배한데 이어 2000년에는 아예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하자 우승이 조급했던 구단 측은 그를 잘라버린다.[7] 애리조나에서의 통산 성적은 250승 236패.
2.2.3.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
이후 2003년 텍사스 레인저스의 감독으로 임명됐지만 에이로드와 마이클 영 등의 핵타선에 비해 투수진이 개판 오분전이었고 [8][9] 여기에 에이로드 마저 2003 시즌 종료 후 징징거리다 양키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아아 망했어요.[10] 평균자책점이 5점은 사뿐히(...) 넘어가는 텍사스의 투수진은 결국 쇼월터의 마지막 재임연도였던 2006년까지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2006 시즌을 끝으로 쇼월터는 다시 한 번 해고된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해고된 이후 쇼월터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고문으로 활동하는 한편 ESPN의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2.2.4. 볼티모어 오리올스 감독
그러던 2010년 7월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감독으로 임명된다. 취임할 당시 오리올스는 32승 73패(...)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쇼월터는 빠르게 팀 분위기를 추슬려서 남은 57경기에서 34승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시즌을 마감한다. 2011년에는 투수진이 폭망하면서 다시 말아먹었지만 새로 가세한 천웨인 의 호투에 힘입어 2012년 와일드카드를 손에 넣으며 15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다. 커리어 1000승은 덤. 2013년에도 85승 77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알동이라는 저주받은 지구 탓에 3위에 그친다(...) 하지만 이는 숨고르기였고 2014년에 다시 한번 96승을 거두면서 아메리카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한편으로 쇼월터 본인은 커리어 통산 3번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우승복은 없어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ALCS에서 석패하고 만다. 2015년에는 투타진이 모두 폭망하는 가운데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딱 반타작은 거두었다.
2016년은 불안한 선발진으로 인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렵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불펜과 홈런타선의 분전으로 7월까지 예상외로 지구 1위를 마크했고, 8,9월에도 토론토 블루제이스, 보스턴 레드삭스와 치열하게 지구 우승을 두고 경합하다 결국 힘이 빠져서 9월 막바지에 11연승을 달린 보스턴에게 지구 우승을 내줘야했다. 와일드카드도 위험했지만 정규시즌 마지막 날에 뉴욕 양키스를 제압하고 최종성적 89승 73패로 지구 3위, 와일드카드 2위의 쾌거를 이루어 쇼월터 감독은 다시한번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2016 아메리칸 리그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지면 내일이 없는 단판 승부임에도 연장전에서 리드를 못잡아서 시즌 최고의 마무리 투수 잭 브리튼을 끝까지 아꼈는데, 결국 브리튼은 써보지도 못하고 시즌 막바지에 살아나나 했던 우발도 히메네즈의 방화로 탈락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쇼월터 감독의 오판(?)에서 교훈을 얻은 포스트시즌 진출팀은 자기팀 투수들을 모두 살려조로 만들어냈다(...)
2017년은 당초 와일드카드 안정권이라는 시즌 전 평가답게 4월 내내 선두를 질주했으나, 5월 중순부터 선발진이 붕괴되면서 4위까지 추락했고, 8월달에 다시 살아나는 듯 했으나, 9월달에만 3연패와 5연패를 각각 2번씩 하면서 거짓말같은 DTD를 시전, 탬파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역전패하며 개인통산 다섯번째 디비전 꼴찌로 시즌을 마감한다(...) 내년이 계약기간 마지막 해인만큼 내년에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내지 못하면 사실상 감독생활 은퇴일 듯 싶다.
2018년은 예상대로 팀이 일찌감치 탱킹을 하는거나 마찬가지인지라 감독생활도 다른 일이 없는 한 은퇴는 확정으로 보인다. 성적이 47승 115패 0.290으로 메이저리그 꼴찌에 그쳤다.[11] 결국 2018년 10월 3일, 댄 듀켓 단장과 함께 계약 만료와 동시에 물러났다.
3. 기타
레인저스 시절 국내 한정 별명은 '''송월타올''' 감독 혹은 '''벅 송월터'''. 엑스포츠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던 당시 메이저리그 방송국인 엑스포츠에서 조여정이 모델로 나오던 송월타올 광고를 주구장창 내보냈기 때문에 이게 쇼월터와 엮여서 저런 별명이 붙었다.
박찬호와는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당시 박찬호가 굉장히 부진하기도 했고 강판 타이밍 등 기용 문제로 인해 충돌이 많았던 편. 여기에 윤석민까지 한국인 먹튀 2명을 연달아 겪었다.[12]
2016시즌엔 '''4번째 한국인'''[13] 김현수가 볼티모어에 입단해 한솥밥을 먹게 됐다. 하지만 김현수가 시범경기에서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구단에서 한국 리턴설을 언론에 퍼뜨리고 마이너행 권유를 함으로써 김현수가 두 번째 노폭전드이자 세 번째 한국인 먹튀가 되어 악연으로 남나 했지만 김현수가 마이너 거부권을 사용하여 일단락됐다.
마이너로 갈 줄 알았던 김현수가 안 내려가고 버티자 쇼월터는 김현수를 벤치에 짱박아 놓고 가끔씩 대타로만 기용했는데, 의외로 좋은 모습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주구장창 리카드만 기용함으로써 한국팬들한테 욕을 먹었으며 이는 리카드가 점점 성적이 떨어지고 김현수가 맹타를 휘둘러도 변함이 없어 날이면 날마다 까이고 있다.
그러나 리카드가 계속해서 삽질을 하자 김현수가 선발로 출장하더니 그 횟수가 많아지고 타순도 올려줬으며 김현수의 활약에 대해 칭찬도 해주는 등의 행동으로 인해 쑈월터를 까는 빈도는 좀 줄었다. 김현수가 좌완상대로 시즌 끝까지 무안타로 남고 전반기에 쌓아논 바빕 거품이 후반기에 꺼지자 결국 3할이 간당간당 하는 상황임에도 악질 감독이라고 마구 까이는 중. 2016년은 쇼월터가 과거 박찬호와 함께 텍사스에 있던 시절 이후 오랜만에 여러 의미에서 많은 말을 듣는 시즌이다.
2017 시즌에는 여전히 리카드, 그리고 노망주에 가까운 만치니[14] 를 중용하여 김현수 팬들에게 욕을 먹다가 만치니가 터지고 김현수는 부진하자 오히려 김현수 안티들의 옹호와 반격이 나왔고, 김현수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를 빙자한 쫓겨남을 당하며 이번에도 한국 선수와는 악연으로 끝났다.
벅 쇼월터가 별다른 트러블 없이 무난하게 대한 한국인 선수는 오직 김병현 밖에 없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이었던 시절 락커에서 애리조나 선수들에게 '너희들 쟤를 봐라. 고작 스무살밖에 안됐고 저 멀리서 메이저리그로 왔는데도 굉장히 잘 하잖냐. 다들 쟤 좀 보고 반성해라.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발언했는데, 정작 김병현은 쇼월터의 발언이 너무 오버하는것 같아서 낮뜨겁고 창피했다고....
LG 트윈스에게는 어쩌다보니 간접적인 도움을 줬는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LG의 외국인 선발로 뛴 타일러 윌슨은 벅 쇼월터의 볼티모어 감독 시절 선발로서 자리잡을 가능성을 몇 차례 보여줬음에도 벅 쇼월터는 불펜으로 굴리며 선발은 오로지 임시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결국 윌슨이 선발로 풀타임을 뛸 수 있는 KBO로 와서 활약해 선발진이 붕괴해가던 볼티모어가 쓴입맛을 다시는 상황이 됐다.
4. 감독 성적
5. 둘러보기
[1] 박찬호와 윤석민 투수먹튀 2명은 둘째치고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진출한 이후 시범경기때부터 저조한 타격을 선보이면서 마이너리그 거부권때문에 고통받았고 김현수 팬들에게 김현수 선수는 꾸준한 기회만 주면 잘 하는 선수인데 플래툰으로만 쓰는 감독이라며 디스당했다. 하지만 2017년 시즌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김현수가 타격, 주루, 수비 3박자 전부 폭망하면서 쇼월터 감독은 재평가를 받았고 오히려 2016년시즌 김현수의 플래툰 기용이 엄청난 용병술이었다고 평가받음과 동시에 오히려 김현수에게 기회를 많이 준 감독으로 재평가 되었다.[2] 교사였지만 대학교 시절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특히나 미식축구에 소질을 보여서 피츠버그 스틸러스에게 러브콜을 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심사숙고 끝에 교사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3] 1989년에는 마이너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4] 벅 쇼월터 이전 암흑기 감독은 4년은 커녕 2년 버틴 감독도 없었다. 다만 벅 쇼월터가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조지 스테인브레너 구단주가 변덕이 죽 끓어서 감독들을 해임한게 혼란기의 원인이었는데, 그 보스가 야구계에서 영구퇴출된 상황이 벅 쇼월터 재직시기였기 때문에 해고되지 않은 것이다. 보스는 1990년 영구제명 당했고, 1993년 복권되었다. 그리고 벅 쇼월터는 1994년 리그 1위를 차지하 면서 수명을 연장했다.[5] 사실 1994년에도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시즌 중간에 선수들이 파업을 일으키면서 시즌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아시발꿈[6] 부임 첫 해 월드 시리즈 우승, 그 다음해에는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했지만 곧바로 3년연속 월드시리즈 우승, 그 다음해 월드 시리즈 준우승을 했다.[7] 애리조나라는 연고지의 특성상 빅마켓도 아니었으며, 이미 1999년 시점에서 다이아몬드백스의 주요 선수진은 김병현 정도를 제외하면 이미 30대 중반이었다. 즉 이대로 한두해 더 허송세월하면 팀의 노쇠화는 노쇠화대로 진행되고 페이롤은 페이롤대로 막히는 상황.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서 애리조나 프런트는 '어차피 ㅈ된거 한번더 화끈히 질러나보자.'라는 심정으로 레지 샌더스와 마크 그레이스를 영입했고, 그 결과 주전 야수진 전원 30대의 위업을 달성한다. 뭐 그래도 다음해였던 2001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으니 손해는 안본 딜. [8] 이 시기 퀄리티스타트라는 용어를 한국에 널리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알려진 계기가 상당히 눈물겨운데, 이 무렵 심각한 부진에 시달리던 박찬호 선수가 두세경기 걸러 반짝 호투를 보여줄 때마다 한국 기자들이 쇼월터에게 '박찬호가 부활한 것 아니냐'라는 식의 질문공세를 펼쳤고 이에 질린 쇼월터가 '다섯경기쯤은 연속으로 QS를 찍어야 부활한 것이다.'라고 단호박을 시전했다. 그리고 기자들이 이걸 기사에 퍼다나르면서 QS라는 용어가 일반 야구팬들에게도 널리 퍼지게 된다.[9] 사실 퀄리티 스타트가 유명해진 이유는 스캇 보라스가 박찬호가 FA가 되어서 홍보를 할 때, 퀄리티 스타트를 근거로 들어서 메이저리그 탑급 선수라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사중 하나. 사실 퀄리티 스타트 문서에도 적혀 있지만, 박찬호의 성적은 좋기는 한데, 어딜 기준으로 봐도 탑급이라기에는 애매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의 정복자 박찬호''' 같은걸 쓰려면 뭔가 포장할 거리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텍사스에서 망하기 전부터 퀄리티 스타트라는 용어는 널리 퍼져 있었다.[10] 사실 2004 시즌 자체는 마지막까지 와일드카드 경쟁을 하면서 올해의 감독상을 2번째로 받는 등 나쁘지 않았다. 2005년 이후로 에이로드의 공백이 확연해지면서 문제였지.[11] 좋게 말해 무관의 제왕이지, 좀 험하게 말하면 팀 전력을 상위권으로 끌어내는 것은 가능해도 우승까지 성취하는 역량은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번 시즌은 아예 팀 전력까지 막장이 됐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12] 사실 윤석민은 국내로 치면 몰라도 해외로 친다면 그냥 못던지고 몸값이 싼 이름 모를 외국인1에 불과하지만...[13]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김병현, 텍사스 레인저스 박찬호, 볼티모어 오리올스 윤석민 후로 4번째. [14] 이건 김현수 팬들이 착각한 게, 만시니는 팀 내 유망주 순위 5위까지 해 본 유망주였다. 그리고 대졸 유망주가 23세에 AA에 안착한 것이 노망주 소리 들을 만큼 성장이 느린 것이 아니다.[15] 8월 중순에 파업이 일어나서 플레이오프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