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복스/사건사고
1. 가요계의 길이 길이 남을 전설의 안티들
앞서 개요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베이비복스는 사실상 그 당시 활동했던 모든 남자 아이돌 팬들의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아이돌 가수가 안티에게서 자유롭겠냐만 베이비복스는 그 당시의 팬덤 문화를 감안해도 정도가 지나쳤고 그야말로 팬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 안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심한 안티에 시달렸다. 오죽하면 활동하고도 십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도 안티 하면 여전히 베이비복스가 회자될 정도이니...
2017년 2월 경, 베이비복스가 활동할 당시 팬이었던 사람이 당시 팬 생활을 하면서 털어놓은 고충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링크 글쓴이는 베이비복스의 데뷔 초창기부터 공방을 다니는 등 꽤 열렬한 팬이었다고 하며, 데뷔 연차가 차면서 여성 팬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데뷔 초창기에는 현장에 거의 없던 어린 여성 팬이라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알아보고 챙겨주기까지 했던 골수팬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의 충격이 너무 커서 아직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글쓴이뿐만 아니라 약 20년 가량이 지난 지금도 당시 팬들 중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글쓴이의 탈덕 이유가 ''''언니들이 한국 팬들 보면 테러 당하던 시절이 생각나는 게 보여서\''''라고 하니까 말 다 한 상황이다.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반박보다 공감하는 내용의 댓글이 훨씬 많은 상황인 데다'''[1] 링크된 글의 내용 중 대부분이 기사나 영상자료 등으로 남아있기에 증거를 함께 첨부하면서 정리해보았다.
2000년 7월 같은 방송에 출연한 신화팬들이 저지른 만행이다.'''1. 공개 방송마다 수백명의 남자 아이돌 팬들이 돌림 노래로 꺼져라, 혹은 입에 담기도 힘든 인신공격성 멘트를 외쳤고 사실이었다.'''
'''실제 공개방송 무대에도 있었던 꺼져라 테러'''
[2]
'''2. 베이비복스 출근길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의 스케줄이 없어도 찾아와서 음란 사진, 면도칼 등으로 협박. 이 중에는 죽으라는 협박 문서와 혈서는 일상다반사였다. 특히 베이비복스 멤버들한테 악수를 청하다가 면도칼을 집어넣어서 손을 다치게 하는 일도 있었다.'''
- 당시 신문 보도로도 나왔던 면도칼 테러
'''3. 베이비복스 숙소에 죽은 개 시체, 고양이 시체를 보내 매니저나 팬들이 치우는 건 자주 있던 일. 대문에는 각종 인신공격 등의 문구가 써있었다. 칼은 종류별로 배송되었다.'''
- 심은진이 인증하는 고양이 시체 테러, 커터칼 인증
'''4. 베이비복스 공연에 모두 몰려와서 꺼져라 테러. 최소 300여명 최대 수천명의 극렬한 안티들 앞에서 공연해야 했음. 베이비복스가 무대 나오면 풍선을 밑으로 숨긴다든지, 고개를 단체로 숙인다든지, 공개 방송이든, 콘서트든 꾸준히 계속되던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5. 어느 날, 출근길에서 또 안티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이들을 조롱하고 위협하자 당시 16살이었던 윤은혜는 차에서 한동안 내려오지 않다가, 결국 매니저한테 거의 질질 끌려나오면서 울분을 터뜨리며 오늘은 무대를 서지 않으면 안되냐고 애걸복걸. 그날도 결국 안티들이 무대 위에서 중지 손가락을 올리고, 침묵했음.'''
'''6. H.O.T. 팬들의 황산 테러 위협에 결국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팬들한테도 걱정되니까 공개방송 오지 말라고 당부.'''
'''7. 자신의 신상까지 올리며 찾아가서 베이비복스를 죽이겠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던 안티 팬.'''
베이비 복스 측이 자신들의 협박범으로 지목한 사람은 울산시에 거주하는 C모양. 그는 최근 베이비 복스 측에 간미연 등을 비방하는 글과 '''테러 위협 메시지를 담은 디스켓에다 자신의 이름과 주소 등이 적힌 편지까지 전달하는 등 대범하게 이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는 것.'''
베이비 복스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 차례 테러 위협이 있어도 철 없는 학생의 소행이겠거니 하며 그냥 넘겼는데 최근엔 자신의 소재까지 밝히며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나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이들은 베이비 복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자 '간미연 사건'은 자작극이란 소문을 퍼뜨리며 조직적으로 활동을 방해해와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경찰에 알렸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링크 안의 내용이 너무 많아서 모두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가히 충격적인 내용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거기다 이 글에 대해 반론은 커녕 당시를 기억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어서 더욱 충격적인 상황이다.''''''8. 결국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이런 격동을 함께 겪은 팬에게, "앞으로는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기억 못 줘서 미안하다. 우리보다 더 유명한 사람 좋아해"라고 언급.'''
- 링크 전문 中.
최근에 이 먹먹문이 화제가 되고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한 문희준의 팬이 베이비복스와 그들의 팬을 '''일본군 위안부'''에 빗대어서 표현한 댓글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 해당 팬은 안티성 어그로가 아니라 해당 사이트의 고정닉 사용자라는 게 더 충격적이다. 해당 팬덤은 아직도 추억팔이만 할 뿐 진정한 사과도 하지 않는 것에 혀가 차진다. 출처
유독 보이그룹 팬들의 견제가 심했던 1세대 걸그룹들 중 유달리 베이비복스가 타겟이 된 배경에는 걸그룹 중 섹시컨셉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도 한 몫했다. 비슷하게 센 컨셉을 내세웠던 디바는 섹시컨셉을 지향하지는 않았던 반면, 베이비복스는 노출이나 퍼포먼스에서 섹시를 강하게 강조했다. 때문에 '노는 언니들' 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이는 소위 머글이라 일컬어지는 일반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데 장애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핑클이나 S.E.S.는 상대적으로 부담없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을 공격하는 보이그룹 팬들을 '빠순이' 라고 지칭해 비난할 여지를 만들 수 있었지만 베복은 당시 기준으로는 앞서 언급된 이미지 때문에 대중의 호응을 얻는 게 힘든 상황이었다. 오히려 안티들의 공격에 덩달아서 동조하는 지경까지 몰렸으니 안타까울 따름.
2. 이하늘 베이비복스 성적 모독 파문
2007년 2월 2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어느 여자 스타의 일생' 편 캡쳐 요약.[4]
7집 타이틀곡인 'Xcstasy'는 힙합계에선 신적으로 추앙받던 2Pac의 죽기 전 감옥에서 힘든 심경을 담은 미공개 곡을 돈 주고 사서 샘플링하였고 그 중 한 멤버와 대화를 주고받는 식으로 가사를 붙인 곡이다. 장르의 순수성을 추구하던 시절이고, 아이돌 초창기라 아직 미약하게나마 자본 논리보다는 음악의 예술성이나 메시지를 존중하던 시절이었으며, 장르 문제와 함께 곡 자체의 수위도 있었고, 뭣보다 샘플링한 곡도 곡인 데다가 힙합과는 관련도 없던 베이비복스가 갑자기 죽은 투팍과 대화를 한다는 고인드립으로 엄청 까였다. 이 정도면 요즘 아이돌이 힙합과 록에 접근하는 걸 싫어하기 이전에 요즘 나와도 욕 먹는 일이 될 수 있었다.
DJ DOC의 이하늘은 이 샘플링 문제를 두고 당시 자신이 출연하던 엠넷의 힙합 프로그램 '힙합 더 바이브'에서 '2PAC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베이비복스는 빠따 좀 맞자'[5] 라 언급했고, 이 발언이 스포츠 신문을 통해 기사화되어 당시 7집 타이틀곡 엑스터시의 작업 및 랩 피처링을 맡았던 플로스 피(Floss P)의 귀에 들어가면서 사태가 커지게 된다. 플로스 피는 'DJ DOC도 미국 랩을 따라하는데 남의 것을 아니라 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고, '''이하늘이 이에 대한 반박글을 쓰면서 문제의 ' [6] 복스', ' 가수', ' ' 등의 폭언을 쓰게 된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이하늘의 잘못이겠지만, 이하늘이 문제의 발언 후 잠수를 타고 있는 동안 ' 복스'라는 단어를 계속 되새김질하는가 하면, 몇몇 연예 언론들은 진작 7집 활동 초반에 마무리된 표절 해프닝[7] 을 확대 해석하여 베이비복스에게 표절 가수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심지어 소속사인 DR 뮤직마저 이하늘과 싸우는 데 모든 신경을 기울인 나머지, 저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대처하지 않았고,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심은진이 직접 해명해야 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분명 자신들을 둘러싼 싸움인데 아무도 자신들을 배려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멤버들의 멘탈은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이하늘은 일식집에서 공개 회견을 가져 베이비복스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못차리고 '이건 나와 DR뮤직의 싸움이다'라는 뜻을 분명히 한데다 기자회견 이후 돌연 입장을 바꿔 베이비복스에게 사과할 뜻이 없다며 ' 복스'라는 표현 사실 니들한테 잘 어울린다며 끝까지 인간 쓰레기의 행보를 밟는다. 결국 DR뮤직 측은 이하늘을 고소하여 승소했지만, 베이비복스 멤버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 기사화되지 않았다. 만약 기사화됐다면 ' 복스 파문, 이하늘 패소' 같은 타이틀을 뽑아서 복스라는 단어로 또 되새김질을 했을 것이 뻔하니.
1세대 아이돌의 황혼기였던 이 시기 더블 타이틀곡이었던 'Xcstasy'와 'Play Remix' 부진에 이런 사태까지 겹쳐지면서 베이비복스의 7집 활동은 끝이 좋지 않게 막을 내렸고, 소속사와의 계약 기간 만료 후 재계약 논의도 없이 그냥 각자 갈 길을 갔다. 솔직히 저런 상황에서 누가 재계약을 하겠는가. 대놓고 공식 해체는 아니었지만, 활동 내내 시달렸던 안티 공격부터 시작해 뜬금포 간미연이 문희준과 열애설이 나는 바람에 무개념한 문희준의 팬들로부터 살해협박 및 각종 테러를 당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은 데다가[8] 2016년 기준으로는 그저 그렇겠지만 섹시 컨셉 푸쉬와 이하늘 사건, 소속사 문제 등을 겪으면서 멘탈이 거의 다 박살나버린 멤버들이 심은진의 탈퇴를 시작으로 뒤를 이어 계약 기간이 끝난 사람부터 나간 것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해체 후 윤은혜가 잘 나갔고 나머지 멤버들도 미약하게나마 연예 활동을 계속하니까 망정이지, 베이비복스 자체만 놓고 보면 이하늘의 폭언 한마디가 다섯 명 인생을 말아먹은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이하늘은 미아리복스 발언은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투팍의 노래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그를 두 번 죽였다'라는 발언은 사과할 의향이 없음을 밝혔다. 사건 몇 개월 후 발매된 본인들의 새 앨범에 '베이비복스 디스곡'을 넣으려고 했다고 홍보하거나, 본인들 콘서트에 '미복 데려와서 빨간 조명이라도 틀걸 그랬다'며 찌질한 행보를 계속 보였다.
확실히, 투팍은 흑인 음악계에서 특별한 명예와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갱스터 힙합이 주를 이루고 진지하고 사회를 통찰하는 가사가 마이너일 때, 투팍은 흑인의 삶이 가지는 입체성을 가사로 써냈던 사람이다. 투팍이 냈던 음악들이나 그가 해왔던 행보를 볼 때 단순히 막장스러운 흑인 랩퍼라고 일축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고, 한국 음악사에 비견될 사람이 있다면 서태지가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2000년대 중반이면 사실상 동 시대의 사람으로, 소위 말하는 무덤가 흙이 아직 따뜻한 상황이다.
당연히 조심스러워져야 하는데, 만약 2016년인 지금으로 예를 들어 보자면 고인이 된 신해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돌이 신해철의 미발표곡을 샘플링해서 신해철과 대화하는 곡을 냈다고 하면, 인터넷 반응은 안 봐도 뻔할 뻔자다. 다시 얘기하지만 심지어 투팍은 단순한 랩퍼라고 보기에 영향력이 상당히 컸다. 베이비복스 측이 경솔했던 점은 차라리 힙합에 대한 뭔가를 하고 싶었다면 그냥 닥터 드레나 스눕 독 같은 살아있는 사람의 곡을 샘플링했어도 상관 없었다.
그리고 이 건이 당시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지금 느껴지는 것보다 좀 더 복잡해 보이면서도 DR 뮤직의 속이 빤히 보이는 부분도 있긴 하다. 투팍과 비기의 충격적인 죽음,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진 여러 사건사고와 해프닝 등에 있어서 투팍과 비기에 대한 상업적 이용이란 주제는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투팍과 비기가 전설이 되고 명성이 하늘 높게 치솟으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온갖 사람들이 그들의 유산이나 남겨진 명성치를 이용하기 위해서 달려들었는데 심지어 그들의 죽음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보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역겨운 케이스들이 많았다. 당시 힙합 팬들의 경우 이런 류의 시도에 대해 혐오감이 무척 강했고 주제 자체에 대한 피로감도 심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통해서 돈을 많이 벌어들인 케이스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도가 많았는데 뒤늦게 DR뮤직이 한국에서 이 흐름에 뛰어들었던 것이니 속이 들여다보이는 짓거리였다. 그러나 사실 일반 대중들은 투팍이나 비기가 누군지도 잘 모르니 아이돌 팬들 입장에서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상업적이니 뭐니 하는 비판을 들으면, 상업적인 것은 대중가수 모두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한 이야기기도 했다.
물론 이 설명들이 절대 이하늘의 발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왜냐면 이하늘 자신은 힙합에 대한 자부심은 그렇게 높으면서 한 예능에서 그룹 백두산의 유현상과 부활의 김태원이 있는 앞에서 '락음악의 최고봉은 문희준이다'라며 다른 장르는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이건 당시 락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문희준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얘기였지만 문제는 자기 자신은 힙합 자부심에 후배가수에게 단순 악플과는 비교가 안 될 더한 짓을 해 놓고 이중적 행태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복스 발언은 아무리 힙합계의 전설인 투팍의 음원을 샘플링했어도 절대 해서는 안 될 쓰레기 같은 발언이었다.''' 물론 앨범 제작을 사장이 추진한 것이긴 해도 베이비복스 역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멤버들의 나이대나 아이돌 가수로 살아왔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하늘이 좀 더 온건하게 발언을 했어야 한다. 또한 당시 DR 뮤직의 대처와, 스포츠 신문으로 대표되는 막장 기레기들의 행각도 베이비복스의 해체에 큰 지분을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이하늘은 베이비복스 멤버들에게 가수로서의 명예훼손 이전에 여자로서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줬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으니, 그냥 영원한 이하늘의 흑역사이자 죽을 때까지 까여도 부족한 최악의 구설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하늘은 결혼 발표하면서도 계속 까이지만, 베이비복스에게 욕설한 것은 잘못 없다는 뉘양스를 풍기기도 했다.
이 사건 당시 인터넷에서 이하늘을 지지하는 여론도 많았다. 여성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 각종 성적 비하[9] , 모욕, 무시를 일삼는 일들이 지금보다도 많았던 시절이며, 또한 지금보다 아이돌의 이미지가 더 나빠서 각 음악 장르의 매니아들의 허세 섞인 부심, 스노비즘이 더 컸던 시절이기도 하다.[10] 그리고 이제는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편이지만, 당시까지는 철없는 마초적 동경심에 빠져 이하늘을 멋진 형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기도 했다.
3. 문희준 극성팬 간미연 살해협박 사건
1999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H.O.T.의 문희준과 간미연 사이의 스캔들로 인해 다량의 협박 편지가 배달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들의 존재가 각인됐었다. 1세대 사생팬이 일으킨 사건들 중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로, 다량의 커터칼날 + 피로 쓰여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문구 + 간미연의 눈을 모조리 파낸 사진 등.
결국 뉴스 등에서 자작극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로 두각되자, '''해당 극성팬들은 간미연 측이 꾸민 자작극이라며 헛소문을 퍼뜨려서 실제로 간미연이 자작극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2000년 당시 베이비복스의 안티팬이 "간미연 사건은 자작극이다!"라며 조직적으로 이들의 활동에 지장을 주자, 베이비복스 측이 해당 학생을 고소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베이비복스가 이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아 선처했다. 아직도 간미연 사건이 자작극이라는 터무니 없는 루머를 재생산하는 안티들도 있으니까 조심하자. 상식적으로 방송 3사 메인 뉴스에 보도된 사건이 자작극이었다면 왜 어느 언론에서도 반론을 보도하지 않았을까? '간미연 자작극 루머'는 '''무식함과 과도한 팬심이 불러온 희대의 촌극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십몇년 후인 2014년까지도 이들이 간미연 자작극 물타기를 하고 있는 행적을 찾아냈다.''' # '''이쯤 되면 정신병이 우려되는 수준.'''
SNS도 활발하고 연예인들이 악플 읽어본 이야기도 쉽게 하는 요즘과 달리, 당시는 아이돌의 경우 자신들의 팬클럽 외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고, 아이돌들은 인터넷으로 팬사이트만 확인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보니 안티들의 공격이 단순히 악플이나 루머 양산, 안티카페 개설 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신체적 위협(폭행, 의상훼손)이나 협박(살해 협박)처럼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11]
사실, 문희준이 안티가 급속도로 늘어난 이유는 베이비복스의 간미연을 악의적으로 괴롭힌 H.O.T. 극성팬들의 악행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들어있었다는 역풍도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에 과도한 비방이 더더욱 커졌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분위기가 사라지는 끝물에 일어난 것이 유노윤호 본드 음료수 테러 사건이다.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코어 팬덤 이외에 일반인들에게까지 번진 요즘은, 팬덤들 사이에서만 도는 "그랬다더라" 수준의 소문 외에 아이돌이 실제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경우는 공식적으로 없다. 요즘 같으면 당연히 감방에 보낼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세계적으로도 테러 같은 것과 관련된 범죄도 엄청나게 민감한 시대라서 처벌도 어린애들 장난 수준으로 끝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