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하원군
1. 개요
碧霞元君
중국 신화에서 태산을 거하는 여신 혹은 여선(女仙). 호칭도 많아서 천선옥녀(天仙玉女), 태산노모(太山老母), 태산성모(泰山聖母), 태산내내(太山奶奶)[1] 라고도 부르며, 한국에서는 '''태산낭랑'''(泰山娘娘), 태산할미라고도 부른다. 11세기 초, 중국에서 북송의 진종이 이 여신을 봉하여 '''동악태산천선옥녀벽하원군(東岳泰山天仙玉女碧霞元君)'''이라고 했는데, 이후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이 여신을 가리키는 가장 표준적인 호칭이 벽하원군이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천선낭랑(天仙娘娘)'''이란 호칭이 통용되어 일본의 게임, 만화 등 서브컬처계에서 이 여신은 천선낭랑(天仙娘々)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영향으로 본 문서도 천선낭랑이란 이름으로 개설되었으나 벽하원군으로 이동되었다.
중국의 전설에서는 벽하원군의 생일이 음력 4월 18일이라고 하므로, 이 날이 되면 태산이나 벽하원군 사당에서 성대하게 제사를 거행한다. 음력 4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에 걸쳐 묘회(廟會)라 하여 성대하게 기리기도 한다.
2. 상세
벽하원군은 중국의 고유한 여신들인 낭랑 신앙이 산악 신앙과 결부되어 태어났다고 추정된다. 중국 화북 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중국 신화 체계에서 가장 높은 여신인 서왕모를 넘는 듯이 대우하여, 안광낭랑, 송자낭랑 등을 제치고 마조낭랑과 함께 낭랑신들 중에서 영향력이 가장 크다.[2] 벽하원군은 결혼, 출산, 액막이, 출세를 비롯해 여성의 수호신으로 깊이 숭배받는다.
오악 중 으뜸이라는 태산에 대한 신앙은 고래로부터 뿌리 깊은 것이라 진시황 이래로 중국의 황제들은 태산에서 봉선(封禪)이라는 제사의례를 거행했다. 17세기 명나라 때 나온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북송의 진종이 봉선을 치르려는데 옥녀지(玉女池)라는 연못에서 손을 씻자 돌연 돌로 된 석상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송진종은 이를 보고 옥으로 옥녀상을 다시 조각하라 명령하고 사당을 세워 소진사(昭眞祠)라 이름하였는데, 이때가 1009년이었다. 소진사가 나중에 이름을 벽하사(碧霞祠)라 바꾸어 태산 꼭대기로 이동하자, 소진사의 옛 터는 태산에 행차한 황제들이 석각을 남기는 곳이 되었다.[3]
중국학계는 태산에 원래 옥녀 신앙이 있었는데, 이것 벽하원군 신앙의 전신이라고 추정한다. 원나라 때부터 벽하원군이 태산부군의 딸이라는 믿음이 퍼졌다.
벽하원군이 아버지 태산부군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는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태산부군이 길흉화복 모두를 담당하는 엄하고 무서운 인상인 것에 비해 벽하원군은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이로운 면을 부각한 덕이라고 추측한다.
3. 전설
3.1. 유래에 관한 전설
벽하원군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는 중국 산둥성에 있는 태산을 관장하는 신령 태산부군의 딸이라는 것이다. 태산은 오악 중 동악으로 손꼽히고, 예부터 죽은 자의 영혼이 모이는 명계로 여겨져 영산(靈山)으로서 이름 높았다. 태산이 신격화된 것이 바로 동악대제 · 태산부군인데, 그 딸 옥녀대선이 북송의 진종에게 주목받아 신앙이 크게 번성하여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선 아버지 태산부군을 넘는 인기를 누렸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태산을 관장하는 신은 벽하원군이 첫 번째로 꼽힐 정도이다.
옥녀고(玉女考)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옥녀권(玉女卷)이란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황제(黃帝)가 태산에 대악관(岱岳觀)을 지을 때 일곱 선녀를 파견하였다. 구름 관을 쓰고 날개 옷을 입고 태산으로 내려가니, 서곤진인(西昆眞人)이 맞이하였다. 옥녀(벽하원군)는 그중 한 명이 득도한 신선이다.
4월 18일 자시, 선우국 손녕부 봉부현(西牛國 孫寧府 奉符縣) 선비 석수도(石守道)의 아내 김씨가 여아를 낳았는데 이름을 옥엽(玉葉)이라 하였다. 외모가 단정하고 머리가 총명하여 3살에 인륜을 알았고 7살에 법[5] 을 이해하였으며 일찍이 서왕모를 모셨다. 14살에 서왕모의 계시를 받아 산에 들어가 조선장(曹仙長)의 지도를 받아 천공산(天空山) 황화동(黃花洞)에 들어갔다. 천공산은 태산이며, 황화동은 산 꼭대기에 있는 석실이다. 3년간 수도하여 단(丹)을 이루니, 원정(元精)이 발하여 빛이 선명했다. 이후 태산에 몸을 의탁하였다. 이때부터 태산에 옥녀신(玉女神)이 있게 되었다.불교가 얽힌 전설에서는 벽하원군을 관음보살의 현신이라고 전한다.
3.2. 불교에 관련된 전설
벽하원군이 여선, 즉 선인으로 취급 받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벽하원군은 민간신앙에서 출발해 도교로 흡수된 도교 계통의 신이지만, 중국 민중들은 신이나 신선과 부처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다. 고전소설 《서유기》를 보아도 알 수 있듯 도교와 불교의 세계관은 서로 섞일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벽하원군의 전설 중에서도 불교와 관련된 것이 존재한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태산에 목어(木魚)[6] 를 묻고 태산이 자신의 것이라 선포하려 든 적이 있었는데, 벽하원군이 이를 먼저 알고 목어 아래 자신의 신발을 묻는 수법으로 태산을 차지했다는 일화가 있다.
3.3. 여우와 관련된 전설
전설에서 여우는 수행을 쌓아 여우의 선인이라 할 수 있는 선호(仙狐)가 될 수 있는데, 이 선호가 되기 위해서는 수행 이전에 먼저 과거 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수행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 여우 시험을 주최하는 것이 태산낭랑(벽하원군)으로, 이 때문에 태산낭랑은 여우의 신으로도 여겨진다.
4. 이야기
베이징에는 오정(五頂)이라 하여 동정낭랑묘(東頂娘娘廟), 서정낭랑묘(西頂娘娘廟), 남정낭랑묘(南頂娘娘廟), 북정낭랑묘(北頂娘娘廟), 중정낭랑묘(中頂娘娘廟)가 있다. 사당의 주신은 당연히 벽하원군이며, 태산부군이나 관우 등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다른 신들도 모시는데, 특히 북정낭랑묘가 크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사용할 베이징 국가수영센터(워터큐브) 건설예정부지가 북정낭랑묘와 겹쳐서, 문화재를 지켜야 한다는 파와 낭랑묘를 철거해야 한다는 파가 격하게 대립하였으나 결국 철거하기로 하였다. 2004년 8월 27일에 철거하려고 장비를 준비하였는데, 갑자기 공사장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건설장비들이 파손되고 철거하려고 모인 일꾼들이 죽거나 다쳤다. 회오리바람은 북정낭랑묘 쪽으로 가더니 사라졌는데 기왓장 하나 부서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이 모종의 영험으로 생각되었는지, 예정을 바꾸어 국가수영센터를 북정낭랑묘에서 100 m 떨어진 곳에 세웠다. 중국 TV에 회오리바람이 부는 상황을 찍은 영상이 공개되는 등 중국에서는 나름대로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5. 관련 항목
[1] 태산 할머니라는 뜻이다.[2] 왕모낭랑이라고도 불리는 서왕모를 낭랑신에서 제외할 경우.[3] 대관봉에 있는데 흔히 태산석각(泰山石刻), 혹은 당마애(唐摩崖)라 불린다.[4] 한명제는 중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적이 없다. 선황인 광무제가 건무(建武), 건무중원(建武中元)이란 연호를 사용했는데, 중원 7년이 건무 7년을 가리킨다면 서기 31년인데 신묘년이다. 명제 시절 영평(永平) 7년은 간지가 갑자로 서기 64년이다. 후자가 맞을 것이다. [5] 여기서는 법률이란 뜻이 아니라 도교나 불교의 가르침이란 의미[6] 나무를 깎아 잉어 모양으로 만들고 속을 비게 파 낸 불구(佛具). 목탁의 원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