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 가톨릭교회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전통 가톨릭과의 혼동
5. 관련 문서

復古 가톨릭敎會
Old Catholic Church

1. 개요


19세기가톨릭교회에서 독립한 기독교 교파.
일반적으로 '''복고(復古) 가톨릭교회''' 또는 '''고(古) 가톨릭교회'''라 하고, 개신교에서는 '''구(舊) 가톨릭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교단 명칭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전의 옛 모습으로 돌아간 가톨릭교회'''를 의미한다.
이름에서 받을 수 있는 인상(印象)과는 달리 오히려 성공회처럼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나아가 현재는 아예 성공회와 완전한 상통 관계에 있다.

2. 역사


1869년 교황 비오 9세의 주도로 일어난 제1차 바티칸 공의회교황무류성수위권을 교의적으로 최종 확립했으며, 공의회가 교황권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공의회 중심주의와 교황권 제한론을 밀어냈다.
그러자 독일 등지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신학자와 사제부터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공의회가 단지 교황의 자문기관에 불과한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교황무류성을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결국 이런 주장을 펼친 이들은 교황무류성이 결정되기 이전의 가톨릭교회 체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명분을 표방하게 되었다.
1871년에 이르러 독일 대학교 신학과 교수들이 교황무류성에 반발하여 시위와 항의를 일으켰고 이것이 독일 각지의 가톨릭교회들로 퍼져나가면서 결국 독일 가톨릭의 자유주의적 신학자들인 될링거·프리드리히·로이시·슐테 등의 주도로 뮌헨에서 복고 가톨릭교도 대회를 열고 독립 교단의 창설을 선언했다. 독일에서 복고 가톨릭교회가 창립되자 이런 분위기는 유럽 각지로 퍼져나가 오스트리아·프랑스·스위스는 물론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까지 복고 가톨릭교회 교단이 창립됐다.
1873년 유럽 각국의 복고 가톨릭교회들은 교황청과 관련없이 독자적으로 주교를 성성했고 1889년에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각국 복고 가톨릭교회들이 모여 위트레흐트 연맹을 결성하고 위트레흐트 선언을 통해 교황 수위권 부정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여전히 명예 수장으로 교황을 인정한다고는 했지만, 명예 수장 인정은 성공회에서도 논의했던 사안이므로 별 의미는 없었다.

3. 특징


교리적으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정한 내용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성모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와 교황무류성교황수위권 등이 그것이며 사제의 의무 독신제도 부정한다. 반대로 가톨릭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야 인정했던 자국어 미사는 일찌감치 인정하였다. 고해성사에 있어서도 그 필수불가결함을 부정하는 입장을 일찍이 취했다.
교회 조직은 각 나라마다 국교회가 있고 이 국교회를 한 명의 주교가 관할하며 전세계적으로는 각국 국교회의 주교들이 모인 주교회의가 연합체 위트레흐트 연맹으로서 존재한다. 주교회의가 최고 의결권을 가지고 있으며 성공회 대표격인 캔터베리 대주교처럼 위트레흐트 대주교가 수장이지만 어디까지나 명예직에 불과하다.
복고 가톨릭교회의 각 국교회들은 성직자와 평신도가 공동으로 구성하는 교구회의에서 교회의 모든 사안을 결정한다. 각 교회의 주임신부는 신자들이 선출한다.[1] 교회의 구조와 형태는 성공회와 유사하고, 교리적으로도 현 가톨릭보다 성공회(특히 '앵글로가톨릭' 성공회)와 유사하다.
1932년부터 성공회와 활발하게 교류협력을 하며 완전한 상통[2] 관계를 맺었다. 일반적으로 복고 가톨릭교회와 현 가톨릭교회 간 차이보다 복고 가톨릭교회와 성공회 고교회파간 차이가 더 적다.
복고 가톨릭교회는 스스로 교황 수위권을 부정하면서 독립한 교단이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라고 볼 수 없으며, 다른 개신교 교단 중에도 'Catholic' 이름을 사용하는 교단이 없지 않으므로 '복고 가톨릭'이라는 명칭 때문에 가톨릭이라는 근거는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더군다나 이미 1920년대에 루터교·성공회 등 다른 개신교 교단과 교류를 하고 있었고, 1990년대부터는 여성을 사제로 서품[3]하고 있었으며, 성공회와 상통 관계를 맺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복고 가톨릭교회와 성공회 및 북유럽 루터교와 교회론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공통된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청으로부터의 독립 및 상통 단절이 개신교 신앙(즉, 종교개혁 정신으로부터 이어져 온)을 규정하는 유일한 잣대는 아니이에 이것만으로 복고 가톨릭을 개신교단이라고 딱 잘라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사실 복고 가톨릭과 상통 관계를 맺은 성공회, 루터교가 표방하는 공교회주의(가톨릭주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저교회파 성공회 신자들을 포함하여) 개신교인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으며 거부감과 반발을 표명하는 집단이 적지 않다. 게다가 복고 가톨릭 교회는 비단 역사적 주교제 뿐 아니라 주류 개신교인들이 이질적으로 간주하는 성모신심, 묵주, 성체성사의 신비(Real Presence), 성인공경, 수도원 전통 등을 그대로 유지시켰다. 상술한 자유주의적 경향도 그 역사적 배경을 보면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근대 로마 가톨릭 교회 내에 자생적으로 존재하던 모더니즘 운동과 연관이 깊다. 이러한 역사적인 연속성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성공회의 서품성사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로마 가톨릭 교회도 복고 가톨릭 교회의 서품의 효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단, 여성 사제의 경우 해당 안됨)
사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서방 그리스도교에 뿌리를 둔 교회 중에서 로마와 상통관계에 있지 않으면서도 '가톨릭'으로 분류되는 교회들이 꽤 있다. 현대 종교학계에서는 이들 교회들을 로마 가톨릭 뿐 아니라 개신교와도 구별되는 별개의 흐름인 '독립 가톨릭(Independent Catholicism)'으로 지칭하고 있다.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도 복고 가톨릭 교회를 독립 가톨릭으로 분류해 놓았다. 만약 '가톨릭'을 로마 가톨릭 교회에 국한시킨다면 복고 가톨릭 교회는 기존의 가톨릭, 개신교와 구별되는 그리스도교의 또다른 줄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개신교 여러 교단과 각국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등이 가입한 세계교회협의회(WCC) 정회원 교단이다. 성공회와는 이미 완전한 상통 관계를 맺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여성 부제/사제의 안수 문제를 가지고 용인하는 파와 용인하지 않는 파 사이에 대립이 표면화되었지만 1990년대부터 견해 차이가 남아있는 가운데 각지에서 여성 서품이 허락되었다.
한 때 교세가 50만에 이르렀으나 현재에는 11만 5천여 명으로 교세가 급속도로 추락하여 실로 존재감이 희미한 교단으로 전락하였다는 말이 있었다. 만약 이것이 복고 가톨릭의 전신이자 성공회와 사실상 일치 관계를 맺은 '위트레흐트 연합'에 대한 이야기라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복고 가톨릭 교회 전반에 대한 것이라면 이 역시 좀 과장된 이야기다. 이후 여성사제 서품 관련 논란 등 여러 부침과 논란을 겪으면서 위트레흐트 연합과 상통 관계가 단절된 교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폴란드에는 위트레흐트 연합과 상통 관계가 단절된 복고 가톨릭 교회가 있는데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4. 전통 가톨릭과의 혼동


몇몇 사람들은 전통 가톨릭과 복고 가톨릭교회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실수를 하곤 한다. 전통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가톨릭교회 내 깊어진 자유주의 성향에 반발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로 대표되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수호하겠다고 주장하는 성향·운동·집단이라면,[4] 복고 가톨릭교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후 가톨릭교회 진보 성향 성직자와 신자 일부가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스스로 이탈하겠다고 선언한 완전히 별개의 교회이다. 즉 복고 가톨릭교회는 그 맥락과 방향성에서 전통 가톨릭과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5. 관련 문서



[1] 성공회의 일부에서도 본당 평신도들이 새 주임신부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2] '서로의 주교가 상대 교단의 서품식에서 서로 안수하며 서로의 성직자를 교환하여 파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교단의 신자들이 상대방 교회에서 성사를 받는 것에 제한이 사라지게 된다.[3] 가톨릭교회에서 여성 사제 운동을 이들 중 일부는 복고 가톨릭교회 주교를 통해 서품을 받곤 한다.[4] 대부분의 전통 가톨릭인은 가톨릭교회와 별개의 교회임을 표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