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왕(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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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조선의 국왕. 혹은 비왕(丕王)이라고도 하며 (기자를 제외한다면) '''문헌상으로 이름이 전해지는 한국사 최초의 왕'''[3] 이다. 다만 이름이 전해지는 한국사 최초의 인물은 아닌데, 한 세기 앞 조선후의 신하였던 대부례라는 인물이 문헌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2. 행적
부왕 이전의 고조선의 왕 또는 단군의 이름은 시조인 단군 왕검이나 즉위 여부 자체가 의심스러운 기자같이 신빙성이 의심되는 것을 제외하면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왕은 기록은 소략하기 그지없지만, 한국사에서 이름이 전해지는 최초의 왕이라 행적에 비해 의외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국왕.
그 이전에 조선후가 왕을 칭했다느니, 연나라를 치려 한다느니 하는 대목이 정사 삼국지를 통해 전해지기는 하지만, 이름이 기록되지 않다 보니 문헌이 추가로 발굴되지 않는 이상은 이 때의 재위했던 왕이나 단군의 이름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기자 조선 계보도가 전해져 내려온다고는 하지만 이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신뢰성이 매우 떨어지며,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같은 저서에서도 역대 단군의 계보도가 기록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저서 자체의 사료적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입증'''되어 이 또한 신뢰성이 떨어진다.
기자조선을 인정한다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아버지가 되며, 기자 조선을 부정한다면 고조선 토착 왕계의 멸망 직전 왕이 된다.
진시황이 활동했을 무렵에 즉위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14년, 시 황제가 몽염을 시켜 만리장성을 쌓게 했고 이에 조선 왕 '''부(否)'''는 진나라가 쳐들어 올 것을 두려워해 진나라에 복종했다고 하나 입조하지 않았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준(準)이 즉위했다. 하지만 오히려 진나라의 멸망 직후에 팽창하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명목상으로만 속국을 칭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대체적으로 기원전 210년경에 사망한 걸로 보이지만 기록이 없다 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부왕에서 준왕으로의 부자 세습이 이루어진 것은 한국 사학계에서 국가의 일정한 발전으로 다루고 있다.
다만, 기원전 320년경에 조선후의 칭왕이 있었고, 이 시기에 고조선이 요녕성과 길림성, 한반도 북부의 패권을 장악하며 강력한 힘을 발휘하다가 연소왕대에 상황이 뒤집혀져서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의 조선 침공으로 인해 조선이 본래의 본거지인 요녕성 일대를 내주며 쇠퇴기를 맞이했었는데, 이후 조선 왕 체계가 다시 평양에서 자리잡는데 걸렸을 시간을 감안한다면, 부왕이 거의 처음으로 왕으로 구실했던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
문서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10년에 재위한 것으로 기록되었던 적이 있다. 이것은 대개 환단고기와 같은 재야 사학의 위조된 기록이나 족보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확인될 뿐이므로 신용할 수 없다.
3. 둘러보기(계보)
[1] 다만 당시에 성씨가 존재했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 기씨나 한씨로 표현하는 것은 대개 후대에 족보를 만들거나 유교적 관점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가져다 붙였을 것이다. 특히 기자조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기도 하는 마당에 기씨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기로 한다.[2] 즉, 대략적인 추정.[3] 단군이나 기자 같은 신화적 존재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왕을 칭했다고 문헌에 등장하는 사람은 부왕의 윗세대로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단지 "조선후"라는 직책으로만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