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왕사

 


1. 개요
2. 연표
2.1. 문헌
2.2. 단군조선
2.4. 위만조선
2.5.
2.6.
3. 계보
4. 참고 항목


1. 개요


고조선의 역대 왕들에 대한 정보를 담은 문서이다. 현대 한국 사학계에서는 기자가 조선을 통치한 적이 없다는(=기자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류설이나, 단군조선 및 위만조선과의 별도 분류를 위해서 표기한다.

2. 연표



2.1. 문헌



2.2. 단군조선


'''순서'''
'''왕명(혹은 호칭)'''
''''''
'''재위 기간'''
'''생몰년도'''
'''비고'''
1대
단군

기원전 2,248년?[1] ~ 기원전 1,210년?[2]
? ~ ?
한민족의 시조

2.3. 기자조선*


'''순서'''
'''왕명(혹은 호칭)'''
''''''
'''재위 기간'''
'''생몰년도'''
'''비고'''
1대
기자
서여
수유
기원전 1,046년 ~ ?[3]
? ~ ?

불명
?대
?
,조선후(朝鮮侯),
?
? ~ ?
? ~ ?
기자의 ??세손.
기원전 7세기경 제(濟)와 교역함.[4]
불명
?대
?
,조선후(朝鮮侯)/조선왕,[5]
?
? ~ ?
? ~ ?
기자의 ??세손.
주나라가 쇠약해짐을 보고 스스로 왕을 칭하고 연나라와 대치하였다.
?대
?
?
? ~ ?
? ~ ?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칭왕한 조선후의 아들.
?대
?
,조선왕(朝鮮王),
?
? ~ ?
? ~ ?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칭왕한 조선후의 손자.
연의 침공으로 인해 패주함
불명
40여대
부왕

기원전 230년 경 ~
기원전 220년경
? ~ ?
기자의 40여세손.[6]
말대
준왕

기원전 220년경 ~
기원전 194년
? ~ ?
부왕의 아들.[7]

2.4. 위만조선


'''순서'''
'''왕명(혹은 호칭)'''
''''''
'''재위 기간'''
'''생몰년도'''
'''비고'''
1대
위만왕

기원전 194년 ~

□ ~ □년
1대 국왕
2대


□ ~ □년
□ ~ □년
2대 국왕, 단 한줄의 기록[8] 외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3대
우거왕
우거
□ ~
기원전 108년
□ ~ 기원전 108년
3대 왕이자 고조선 마지막 왕.

2.5.


아래 표는 북애자(北崖子)가 숙종 원년에 편찬한 규원사화[9] 단군기(檀君紀)에 나오는 왕사다. 그러나 규원사화는 알다시피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므로 상당히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책이다.
사실상 위서(거짓말)이기에 취소선 처리.
'''대수'''
''''''
'''왕호'''
'''재위 기간'''
'''비고'''
1
단군(檀君)
임검(壬儉)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2240년
다만 삼국유사에서는 동일한 기록 존재
2
부루(夫婁)
임검(壬儉)
기원전 2240년 ~ 기원전 2206년

3
가륵(嘉勒)
임검(壬儉)
기원전 2206년 ~ 기원전 2155년

4
오사(烏斯)
임검(壬儉)
기원전 2155년 ~ 기원전 2106년

5
구을(丘乙)
임검(壬儉)
기원전 2106년 ~ 기원전 2071년

6
달문(達文)
임검(壬儉)
기원전 2071년 ~ 기원전 2039년

7
한율(翰栗)
임검(壬儉)
기원전 2039년 ~ 기원전 2014년

8
우서한(于西翰)
임검(壬儉)
기원전 2014년 ~ 기원전 1957년

9
아술(阿述)
임검(壬儉)
기원전 1957년 ~ 기원전 1929년

10
노을(魯乙)
임검(壬儉)
기원전 1929년 ~ 기원전 1906년

11
도해(道奚)
임검(壬儉)
기원전 1906년 ~ 기원전 1870년

12
아한(阿漢)
임검(壬儉)
기원전 1870년 ~ 기원전 1843년

13
흘달(屹達)
임검(壬儉)
기원전 1843년 ~ 기원전 1800년

14
고불(古弗)
임검(壬儉)
기원전 1800년 ~ 기원전 1771년

15
벌음(伐音)
임검(壬儉)
기원전 1771년 ~ 기원전 1738년

16
위나(尉那)
임검(壬儉)
기원전 1738년 ~ 기원전 1720년

17
여을(余乙)
임검(壬儉)
기원전 1720년 ~ 기원전 1657년

18
동엄(冬奄)
임검(壬儉)
기원전 1657년 ~ 기원전 1637년

19
구모소(緱牟蘇)
임검(壬儉)
기원전 1637년 ~ 기원전 1612년

20
고홀(固忽)
임검(壬儉)
기원전 1612년 ~ 기원전 1601년

21
소태(蘇台)
임검(壬儉)
기원전 1601년 ~ 기원전 1568년

22
색불루(索弗婁)
임검(壬儉)
기원전 1568년 ~ 기원전 1551년

23
아물(阿勿)
임검(壬儉)
기원전 1551년 ~ 기원전 1532년

24
연나(延那)
임검(壬儉)
기원전 1532년 ~ 기원전 1519년

25
솔나(率那)
임검(壬儉)
기원전 1519년 ~ 기원전 1503년

26
추로(鄒盧)
임검(壬儉)
기원전 1503년 ~ 기원전 1494년

27
두밀(豆密)
임검(壬儉)
기원전 1494년 ~ 기원전 1449년

28
해모(奚牟)
임검(壬儉)
기원전 1449년 ~ 기원전 1427년

29
마휴(摩休)
임검(壬儉)
기원전 1427년 ~ 기원전 1418년

30
나휴(奈休)
임검(壬儉)
기원전 1418년 ~ 기원전 1365년

31
등올(登兀)
임검(壬儉)
기원전 1365년 ~ 기원전 1359년

32
추밀(鄒密)
임검(壬儉)
기원전 1359년 ~ 기원전 1351년

33
감물(甘勿)
임검(壬儉)
기원전 1351년 ~ 기원전 1342년

34
오루문(奧婁門)
임검(壬儉)
기원전 1342년 ~ 기원전 1322년

35
사벌(沙伐)
임검(壬儉)
기원전 1322년 ~ 기원전 1311년

36
매륵(買勒)
임검(壬儉)
기원전 1311년 ~ 기원전 1293년

37
마물(麻勿)
임검(壬儉)
기원전 1293년 ~ 기원전 1285년

38
다물(多勿)
임검(壬儉)
기원전 1285년 ~ 기원전 1266년

39
두홀(豆忽)
임검(壬儉)
기원전 1266년 ~ 기원전 1238년

40
달음(達音)
임검(壬儉)
기원전 1238년 ~ 기원전 1224년

41
음차(音次)
임검(壬儉)
기원전 1224년 ~ 기원전 1205년

42
을우지(乙于支)
임검(壬儉)
기원전 1205년 ~ 기원전 1196년

43
물리(勿理)
임검(壬儉)
기원전 1196년 ~ 기원전 1181년

44
구홀(丘忽)
임검(壬儉)
기원전 1181년 ~ 기원전 1174년

45
여루(余婁)
임검(壬儉)
기원전 1174년 ~ 기원전 1691년

46
보을(普乙)
임검(壬儉)
기원전 1169년 ~ 기원전 1158년

47
고열가(古列加)
임검(壬儉)
기원전 1158년 ~ 기원전 1128년


2.6.


아래 표는 청주 한씨, 태원 선우씨, 행주 기씨 등 기자를 시조로 하는 성씨의 족보, 그리고 기자지 등에 나오는 기자조선의 국왕 명단이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저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앙엽기(盎葉記)」나 이만운(李萬運, 1723~1797)의 1777년작 저서 『기년아람(紀年兒覽)』에도 등장하지만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족보는 후대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고, 다른 사서들에 있는 명단도 빨라야 16세기에 이르러 처음 등장한 것이므로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아래 표에서 실제 기록에 짜맞춘 내용의 배경은 짙은 회색()으로 표기
'''대수'''
'''시호'''
''''''
'''재위 기간'''
'''비고'''
1
문성왕(文聖王)
서여(胥餘)
기원전 1126년 ~ 기원전 1082년
고조선의 왕이었다는 증거가 불충분함
2
장혜왕(莊惠王)
송(松)
기원전 1082년 ~ 기원전 1057년

3
경효왕(敬孝王)
순(詢)
기원전 1057년 ~ 기원전 1030년

4
공정왕(恭貞王)
백(伯)
기원전 1030년 ~ 기원전 1000년

5
문무왕(文武王)
춘(椿)
기원전 1000년 ~ 기원전 972년

6
태원왕(太原王)
예(禮)
기원전 972년 ~ 기원전 968년

7
경창왕(景昌王)
장(莊)
기원전 968년 ~ 기원전 957년

8
흥평왕(興平王)
착(捉)
기원전 957년 ~ 기원전 943년

9
철위왕(哲威王)
조(調)
기원전 943년 ~ 기원전 925년

10
선혜왕(宣惠王)
삭(索)
기원전 925년 ~ 기원전 896년

11
의양왕(誼襄王)
사(師)
기원전 896년 ~ 기원전 843년

12
문혜왕(文惠王)
염(炎)
기원전 843년 ~ 기원전 793년

13
성덕왕(盛德王)
월(越)
기원전 793년 ~ 기원전 778년

14
도혜왕(悼懷王)
직(職)
기원전 778년 ~ 기원전 776년

15
문열왕(文烈王)
우(優)
기원전 776년 ~ 기원전 761년

16
창국왕(昌國王)
목(睦)
기원전 761년 ~ 기원전 748년

17
무성왕(武成王)
평(平)
기원전 748년 ~ 기원전 722년

18
정경왕(貞敬王)
궐(闕)
기원전 722년 ~ 기원전 703년

19
약성왕(樂成王)
회(懷)
기원전 703년 ~ 기원전 675년
기원전 7세기 초 제와 교역함
20
효종왕(孝宗王)
존(存)
기원전 675년 ~ 기원전 658년

21
천로왕(天老王)
효(孝)
기원전 658년 ~ 기원전 634년

22
수도왕(修道王)
립(立)
기원전 634년 ~ 기원전 615년

23
휘양왕(徽襄王)
통(通)
기원전 615년 ~ 기원전 594년

24
봉일왕(奉日王)
삼(參)
기원전 594년 ~ 기원전 578년

25
덕창왕(德昌王)
근(僅)
기원전 578년 ~ 기원전 560년

26
수성왕(壽聖王)
상(翔)
기원전 560년 ~ 기원전 519년

27
영걸왕(英傑王)
려(藜)
기원전 519년 ~ 기원전 503년

28
일민왕(逸民王)
강(岡)
기원전 503년 ~ 기원전 486년

29
제세왕(濟世王)
혼(混)
기원전 486년 ~ 기원전 465년

30
청국왕(清國王)
벽(璧)
기원전 465년 ~ 기원전 432년

31
도국왕(導國王)
징(澄)
기원전 432년 ~ 기원전 413년

32
혁성왕(赫聖王)
준(儁)
기원전 413년 ~ 기원전 385년

33
화라왕(和羅王)
위(謂)
기원전 385년 ~ 기원전 369년

34
설문왕(說文王)
하(賀)
기원전 369년 ~ 기원전 361년

35
경순왕(慶順王)
화(華)
기원전 361년 ~ 기원전 342년

36
가덕왕(嘉德王)
후(詡)
기원전 342년 ~ 기원전 315년
기원전 323년 이후에 왕을 칭함
37
삼로왕(三老王)
욱(煜)
기원전 315년 ~ 기원전 290년

38
현문왕(顯文王)
석(釋)
기원전 290년 ~ 기원전 251년
기원전 281년에 진개의 침입으로 영토를 크게 잃음
39
장평왕(章平王)
윤(潤)
기원전 251년 ~ 기원전 232년

40
종통왕(宗統王)
비(丕)[10]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20년
문헌을 참조하여 만들어진 표에 들어감
41
애왕(哀王)
준(準)
기원전 220년 ~ 기원전 195년
문헌을 참조하여 만들어진 표에 들어감

3. 계보


28대 태정
(상/계보)
'''1. 자서여/수유'''
.
.
.

?. 조선후,(기원전 7세기 경),
.
.
.

'''?. 조선후''',(전국시대 시기),
?. ?
?. 조선왕
.
.
.

?. 부(否)
'''?. 준(準)'''
조선후(B.C 7세기)와 조선후(전국시대 시기), 그리고 조선왕(후대)과 부왕 기부도 편의상 조상-후손으로 표기했으나 기록이 없어 부왕이 피를 이어받은 후손인지 아닌지 불분명하다.
'''1. 위만'''
(2. 왕명 미상)
'''3. 위우거'''
위장항(衛長降)

4. 참고 항목



[1] 하지만 고고학적으로는 단군이 있었다고 알려진 평양 지역에서는, 기원전 1000년 이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추정된다. 단군조선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단군조선 항목 참고.[2] 삼국사기에 따르면 1908년을 살았다고 전설로 전해지지만 당연히 실제적인 연대는 아니다.[3] 고고학적으로 기자는 한반도 내지 요동으로 온 적이 없다는 혹은 왔어도 큰 영향력을 끼치진 못했다는 설이 한국 사학계에선 주류라 기자의 즉위설은 부정되고 있다.[4] 《관자(管子)》에 ‘발조선(發朝鮮)’이 제(齊)나라와 교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5] 조선후로 불렸으나 조선왕의 칭호를 자칭. 왕명이 아니라, 에서 고조선의 왕을 부르던 호칭이다. 자체적 기록은 없다.[6] 출처 문헌은 정사 삼국지. 현대의 통념대로 기자조선을 부정하면 문헌상으로 이름(否)이 전해지는 한국사 최초의 왕.[7] 현대의 통념대로 기자조선을 부정한다면 고조선 토착 세력 최후의 왕.[8] 위만은 아들에게 왕위를 전하고 손자 우거(右渠: 안사고顔師古는 말하기를, 위만의 손자 이름이 우거右渠라고 했다)에게 이르렀다. 傳子至孫右渠 《師古曰 孫名右渠》- 『삼국유사』제 1권「기이」위만조선.[9]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10] 실제 문헌에는 아닐 부(否)로 적혀 있는데, 이 글자의 뜻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기자조선 계보에는 꼭 클 비(丕)로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