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플레밍
1. 개요
미국의 영화감독.
독일계 혼혈인으로, 그의 어머니가 독일계였다. 대표작으로는 오즈의 마법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있으며, 그야말로 3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인기 감독 중 한명이었다.
다만 후술할 여성 미성년자 배우에 대한 비인격적인 대우로 논란이 일어나면서 현재는 좋지 않은 쪽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생애
188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라카냐다플린트리지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진관련으로 복무했으며,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의 수석사진사로 활동했었다.
그의 영화 대부분은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같은 서양인을 주연으로하는 액션 영화였다. 야외 스포츠에 대한 그의 강한 태도와 사랑 때문에, 그는 "남자 감독"으로 알려지게 됐다. 그렇지만 여성배우로도 역시 영화를 잘 만들어서 비비안 리는 오스카상 여우 조연상을, 해티 맥대니얼는 서포팅상 여우 조연상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후보로 올랐다.
1932년에 그는 MGM에 입사하여 스튜디오의 가장 유명한 영화 중 일부작품의 감독을 맡았다. 보물섬(1934)과 용감한 선장들(1937), 붉은 먼지(1932), 폭탄 껍질(1933), 그리고 1939년, 무려 같은연도에 그의 최고 대표작인 오즈의 마법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같이 찍었다.
1949년 1월 6일 영화 잔 다르크의 제작을 마친 후 갑자기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3. 주디 갈런드에 대한 악행
오즈의 마법사 촬영 당시 도로시 역을 맡은 주디 갈런드에게 온갖 학대를 저질렀다. 스튜디오에서 시골 소녀 도로시를 연기하기에는 주디가 너무 토실하다며 메스암페타민(히로뽕)을 먹이고 하루 식사는 닭 수프 한그릇으로 제한하고, 심지어는 담배를 하루에 '''80개비(!!!)'''를 피우게 해서 힘들어 하던 주디를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사자 역할을 맡은 배우의 몸개그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면 뺨을 때렸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겨우 17세였다.
그런데 오즈의 마법사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다른 배우들도 갈런드를 푸대접했다. 이런 듣보잡 꼬맹이가 주연이라고 배우들이 트집잡고 큰 소리치며 구박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성추행까지 하였다. 역설적이게도 촬영 현장에서 주디 갈런드를 옹호하고 친절히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 극중 마녀로 악역을 연기한 마가렛 해밀턴이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