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영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image]
'''이름'''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Victor Fleming 1939)
produced by Metro-Goldwyn-Mayer
'''국가·소장'''
국가: 미국 [image]
소장: 뉴욕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
'''등재유형'''
기록유산
'''등재연도'''
2007년
'''제작시기'''
1938~1939년 (개봉 1939년)

''' 오즈의 마법사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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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3. 평가
4. 여담



한국에서는 저작재산권 보호기간(공표 후 50년[1])이 지났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1. 개요



할리우드황금기에 제작되어 당시 획기적인 촬영기법을 선보였던 명작 판타지 뮤지컬 영화다.[2]
소설 오즈의 마법사는 인기에 힘입어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그 중에서 역시 빅터 플레밍[3]이 감독하고 주디 갈란드가 주연한 이 영화가 제일 유명하다. 이 영화의 주제곡인 '''Over the Rainbow(무지개 넘어)'''는 세월을 초월하는 명곡. 특히나 '''컬러영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캔자스에서의 장면은 세피아색 흑백 화면으로 비춰지다가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가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컬러 화면으로 바뀌는 연출[4]이 대중에게 잘 먹혔기 때문이다. 사실 컬러 영화는 본작 이전에도 존재했었다.[5]
원작의 캐릭터를 코믹하게 재해석하여, 전반적으로 매우 밝은 분위기이다. 원작의 경우 세계관이 동화적이긴 하지만 의외로 어두운 내용이 많은데(대표적으로 나뭇꾼이 인간의 몸을 조금씩 잃어버리는 부분), 영화에서는 나뭇꾼의 춤이나 허수아비와 사자의 몸개그, 노래 등을 이용해 극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것을 막았다. 원작 소설도 유명하지만 이 영화가 워낙 레전드라, 많은 이들이 "오즈의 마법사"라 하면 이 영화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1930년대는 아역 배우의 인권이 처참하게 유린되던 시기였다. 주디 갈란드 역시 그녀의 어머니와 MGM의 소유물 취급을 받으며 돈 버는 기계로 철저하게 착취당했다. 주디뿐만 아니라 셜리 템플, 재키 쿠건[6], 미키 루니 등 당시 대부분의 할리우드 아역 배우들이 모두 이런 취급을 받았으며, MGM은 모친의 묵인 하에 주디를 십여년 간 학대하며 부려먹었다. 오즈의 마법사 촬영 당시에도 시골 소녀 도로시를 연기하기에는 주디가 너무 토실하다며 '''메스암페타민(히로뽕)'''을 먹였고[7], 하루 식사는 닭 수프 한 그릇으로 제한했으며, 하루에 담배를 80개피씩이나 피우도록 강요받았다. 허수아비, 나무꾼, 사자 역을 맡은 배우들도 꼬마 여자애가 주연을 맡은 데 불만을 품고 주디 갈란드에게 매몰차게 굴며 촬영 중에도 주디를 자기들의 뒷편으로 몰아붙였다. 감독인 빅터 플레밍 역시 냉혹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주디가 사자의 몸개그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면 뺨을 때렸다고 한다. 주디 갈란드에게 친절했던 사람은 단 한 명, 나쁜 서쪽 마녀 역을 맡았던 여배우 마가렛 해밀턴 뿐이었다.[8][9]
1939년작 영화가 워낙 레전드인지라 이후에도 TV 영화 혹은 TV 드라마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영화 쪽에서 오즈의 마법사 관련작은 잘 나오질 못했다. 그러다가 1985년에 디즈니에서 제작한 공식 후속작인 돌아온 오즈가 만들어졌는데, 1편의 밝은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완전 어두운 노선을 택해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참고로 감독은 편집자로서 더 유명했던 월터 마치.[10]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도로시 역을 맡았던 주디 갈란드가 죽은 날, 이 작품의 시작점이었던 캔자스에서는 거대 허리케인이 불었다고.

2. 특징


이 영화는 당시 엄청난 기술이었던 특수효과를 활용하여 촬영했는데, 회오리 장면은 스타킹을 이용해서 움직였다.
등장인물의 분장이 특이하여 특히나 고생하였다고 한다. 서쪽마녀는 구리와 석유로 분장했다고 하는데, 한편은 배우의 불에 불이 붙었는데 석유로 분장한 피부 탓에 화상을 매우 크게 입었었다고 한다. 허수아비는 허수아비의 그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고무마스크를 썼는데 분장을 벗길 때 피부가 벗겨졌다고 한다.
사자의 꼬리는 연결실을 통해 움직였다.

3. 평가


'''메타크리틱'''
'''스코어 100/100'''
'''유저 평점 8.3/10'''
'''로튼 토마토'''
'''신선도 99%[* 평론가들이 매긴 평점이 무려 '''9.4점'''에 달한다!]'''

'''관객 점수 89%'''
'''IMDb'''
'''평점 8.1/10'''
(IMDb Top 250 '''232위'''[11])

4. 여담


  • 영화 개봉 1주일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다만 이는 유럽의 상황이었고, 미국은 1941년에나 참전했기에 자국 내 영화계에 이렇다 할 영향은 주지 못했다.
  • 주역 캐릭터인 사자, 나무꾼, 허수아비, 마법사, 마녀 모두 현실 세계에서 도로시가 알고 지내던 지인의 얼굴이며 배우도 같다.[12] 이 지인들은 영화 결말부에서 허리케인에 휩쓸렸다가 살아 돌아온 도로시의 병문안을 온다. 이때 우린 모두 믿어지지 않는 꿈을 꾸곤 한다며 아픈 도로시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도로시와 함께 에메랄드 시티에 다녀왔는지 모를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 원래 도로시의 마법 구두는 은색이지만, 이 영화에선 컬러 촬영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붉은 색으로 바꾸었다. 이 붉은 구두는 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역사적인 소품으로 남아 경매로 매우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 총 몇 컬레가 만들어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현재는 다섯 짝의 구두가 남아있다. 그런데 그 중 한 짝이 2005년 도난당해 행방 불명이었다가, 다행히 2018년 FBI를 통해 신발을 되찾았다.(정보출처)
  • 사우스파크에서도 패러디했는데, 오즈가 벤쿠버이고 가다가 만나는 동료들은 하나같이 나사가 빠져있다.(마법사가 남자 어린이들이랑 성교를 못하게 해서 화가 난다던가)그리고 오즈의 마법사는 무려 사담 후세인(...)
  • 1965년에 대히트하여 록 음악의 대중화에 공헌을 한 애니멀즈의 "We Gotta Get Out Of This Place(우린 여길 벗어나야 해)"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부대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어수선한 사회에서 각 계층, 각 개인이 처한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이 곡을 불렀다. 마치 도로시처럼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꿈꿨을 텐데, 시골소녀 도로시는 지루한 시골을 벗어나 현실도피적으로 저 무지개너머 어딘가에 있는 환상속의 세계를 꿈꿨으나, 결국 집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목표가 된다. 사이렌2의 여고생 야구라 이치코는 수학여행을 하다 배가 침몰하여 죽었으나, 자신이 죽은 지도 모른채 떠돌아다니는 그녀의 명대사는 "집으로 돌아가고싶어(이에니 카에리따이)"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나, 도로시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 이 영화의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2차 창작에서 도로시는 주로 허수아비와 많이 엮인다. 아무래도 가장 오랫동안 여정길에 함께 했고, 그에게만 가장 그리울 것 같다고 말하는 도로시의 대사 때문인듯.[13] 또한 삭제된 대본에서는 도로시가 허수아비의 지인 버전인 헝크와 이어지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 영화 개봉 31년 만에 주역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절반이나 고인이 된 탓에 허수아비 역할의 볼저, 나무꾼 역할의 헤일리, 마녀 역할의 해밀턴만 모였다. [14] [15]
  • 구글에서 제공하는 이스터 에그로 이 영화에 대해 검색하면 붉은 구두 한 켤레의 이미지가 나타난다.[16] 구두를 누르면 화면이 흑백으로 전환되며 구두가 있던 자리에는 허리케인이 남는다. 허리케인을 다시 누르면 컬러 화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

  •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반복 전곡재생 시도할 시 이 영화와 완벽하게 싱크가 맞는다.[17] 상당히 신기한 우연으로 이 영화와 그 앨범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시대를 앞선 최고작임을 생각하면 더욱 신기해진다. 심지어 앨범 커버마저 백색광이 프리즘에 맞아 컬러로 바뀌는 것과 이 영화의 상징적 장면도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것, 그리고 처음의 태풍 장면에서의 The Great Gig of the Sky와의 싱크가 완벽하게 맞고 심지어 컬러로 바뀌는 장면에서 Money가 완벽하게 튀어나오는 등 싱크가 말 그대로 '완벽하게' 맞는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출연 배우들과 이 영화를 딥페이크로 합성한 것이 있다. 톰 홀랜드를 도로시에 합성시킨것이 압권(...)[18]. 나머지 캐릭터들도 이미지에 맞는 배우들을 붙여넣어서 그런지 완전히 딱 맞는다. 특히나 맨 마지막의 오즈는 얼마 전 사망한 스탠 리 옹의 얼굴이 합성되었다.
[1] 2013년 법 개정 이전에 공표된 저작물이므로 70년이 아닌 50년을 적용받는다.(뭐 물론 이미 법 개정 당시에도 70년이 넘은 상태었으니 아무 상관 없겠지만...) 가끔 유튜브에서 저작권 신고로 인하여 내려가는 경우가 있는데, 국가마다 보호기간이 달라서 오인 신고가 들어가기 때문이다.[2] 당시에는 어마아마한 수준이었던 277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환상적인 화면과 촬영기술을 선보였다.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가는 동안 창 밖에 나타난 하늘을 나는 자전거 장면은 훗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의 테마와 이미지에 그대로 반영되는 등 후대 판타지 영화에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3]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그 감독[4] 이는 이후에 디즈니에서 제작한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에서도 오마주했다. 또한 수많은 영화에서 이런 연출에 대해 오마쥬로 언급이 나온다.[5] 인터넷에서는 '최초의 컬러 영화라서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연출을 넣었다'라는 식으로 소문이 와전되기도 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오즈의 마법사 이전에도 컬러 영화는 있었고 컬러 영화를 구현하는 테크니컬러 기법 자체도 1단계 과정은 시연된 지 30년도 더 되었고(1917년),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용된 테크니컬러 4단계 과정마저 영화 개봉 당시(1939년) 이미 등장한 지가 5년이 넘은 상태였다.[6] 찰리 채플린과 호흡을 맞췄던 아역 배우. 미국의 아역 배우 보호를 위한 법인 "재키 쿠건법"이 바로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7] 이 당시에는 히로뽕을 요즘 카페인 마냥 써댔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 폭격기 조종사가 많이 썼고,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라는 친위대의 수필을 보면 운전병들에게 이것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8] 관련 기사.[9] 우연인지 악연인지 주디의 딸 라이자 미넬리는 나무꾼을 맡았던 배우 잭 헤일리의 아들 잭 헤일리 2세와 결혼했다. 따라서 주디와 잭은 사돈 관계가 되겠지만 당시 주디는 고인이었고 둘의 결혼 생활도 길지 않았다.[10] 돌아온 오즈가 감독 데뷔작이었으나, 그게 망해서 다시 편집자로 되돌아갔고, 주연은 강렬한 외모로 유명한 어린 시절의 페어루자 보크가 출연하였다. 흥행에는 망했으나 작품 자체는 장점이 많기 때문에 평론가 NC는 좋은 평가를 내렸다.[11] 모두 한국 시각 2017년 8월 10일 기준[12] 사자, 나무꾼, 허수아비는 농장의 일꾼이고 마법사는 교수였으며 마녀는 도로시를 괴롭히는 이웃집 노처녀.[13] 참고로 이 대사는 원래 잘해줬던 마녀 역할의 해밀턴을 제외하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 유일하게 나중에서라도 관계를 개선한 허수아비 역할의 볼저에 대한 주디의 헌사라는 얘기가 있다.[14] 해밀턴은 예외. 흉흉한 촬영장 분위기에서도 주디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히어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주인공 배우를 괴롭혔고 빌런 역할을 맡은 사람만 잘 해준 셈이다.[15] 오즈의 마법사 출연진 중에서는 유일하게 주디의 장례식에 참가한 사람이 볼저였다고 한다. 훗날 볼저는 주디의 딸 라이자와 함께 That's Dancing!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의 작가는 양철나무꾼 역할을 맡았던 헤일리의 아들 잭 헤일리 2세였다.[16] the wonderful wizard of oz movie 1939 로 검색[17] 2회 이후 4번 트랙까지 재생되고 나서 영화가 끝난다.[18] 원래 마블 딥페이크에서 가장 애용받는 배우가 단연 톰 홀랜드이고(...) 그 다음이 로다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