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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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빈과일보 대만 빈과일보 홍콩 빈과일보 페이스북
1. 개요
2. 논조 및 성향
3. 대만판
4. 기타


1. 개요


蘋果日報/Apple Daily
1995년 홍콩에서 창간된 신문. 제호인 '빈과'는 사과를 뜻하는 중국식 한자어다. 창립자인 지미 라이(黎智英, Jimmy Lai)가 '''만일 아담하와금단의 사과를 먹지 않았다면 인류는 어찌 되었을까'''라는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제호를 지었다고 한다.
지미 라이는 본래 광저우 태생으로 국공내전 이후 홍콩에 건너온 케이스이긴 한데, 가족이 다 뿔뿔이 흩어져버려 혼자 남겨졌고 11살 때 무작정 돈을 벌겠다고 아버지가 넘어가 있던 홍콩으로 넘어갔다. 어렸을 때 홍콩에서 온 손님 짐을 들어주고 돈 대신 받은 초콜릿을 맛보고 반드시 홍콩에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1981년 지오다노를 창업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학생들을 지지했다가 중국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문사를 차리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신문사를 차렸다. 그리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창간 초기부터 올컬러 인쇄로 주목을 받았고, 동시에 신문값을 크게 내리는 전략을 썼다.[1] 덧붙여 중국 내부의 굵직한 이슈를 특종으로 발굴하면서 순식간에 홍콩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의 반열에 올랐다. 발행 첫해부터 흑자행진을 이어왔을 정도인데 빈과일보가 위낙 인기를 끌다보니 다른 홍콩 언론들도 선정성을 강화하고 올컬러 발행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을 빈과화라고 한다.
홍콩판 발행 부수는 매일 약 17만 부 가량으로, 모 기업인 Next Media에서는 넥스트 매거진(壹週刊)이라는 시사 주간지를 비롯한 여러 생활, 정보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2. 논조 및 성향


'''홍콩의 민주파 성향 언론의 대명사'''이다. 민주파에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나서, 2003년 홍콩 시민들의 7.1 반중(反中) 행진을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기사를 실어 5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반중 행진에 참여하게 했을 정도. 그렇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서는 검열된다.[2]
창업자인 지미 라이의 성향에 따라 반중 활동의 선봉장이 되고 있어 중국 공산당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미 라이는 2009년쯤에 중화민국 국적을 회복[3]하였고 영국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가한 바 있고 당시 법적인 조치를 받기도 했다. 이후 공교롭게도 넥스트미디어 대표직에서 자진사임한 바 있다.
2019년 9월 2일, 지미 라이가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 "지금 홍콩의 정세가 긴박해지고 있지만 우린 계속해야 한다"며 시위를 주도했다는게 알려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중국 언론들은 그를 '반역자', '폭동의 주도자'라고 비난했다. #1 #2 그리고 9월 5일 지미 라이의 자택에 화염병 테러가 발생하였다. 기사

2.1.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자 빈과일보 역시 중국 공산당의 민주파 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고, 결국 2020년 8월 10일 경찰이 사옥을 급습하여 사주인 지미 라이를 비롯한 임원들을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하였다. #1
이에 대한 반발로 8월 11일, 홍콩판 빈과일보는 1면에 사주가 체포당하는 사진을 싣고 끝까지 싸울 것을 선언했으며 평소 7-10만부에 그치던 부수를 무려 5배나 늘려서 발행했다. 그리고 홍콩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55만 부가 완판되었다.''' SNS에는 빈과일보 구매 인증샷이 범람했고, 평소 구독하지 않던 사람들도 신문을 사러 노점 등에 줄을 섰다. 심지어 새벽 2시부터 나와 밤새워 기다리다가 가판이 나오자마자 달려와 사간 사람들도 꽤 있었을 정도. 모기업 넥스트디지털의 경우, 주식을 사서 응원하자는 시민들의 열렬한 주식 매입 운동이 이어져서 주가가 이틀만에 '''1,000% 상승했다.'''# 주식 폭등에 대해서 자금 세탁 이유로 15명을 체포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식 매입 통해 지지받고 있다.#
그리고 하루 만에 보석금 37,600달러(약 4,450만 원)을 내고 풀려났다.# 풀린 뒤에도 '''민주화운동을 지속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9월 3일, 2017년에 있었던 친중 매체 기자를 협박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홍콩 법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해당 기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피고인이 고의로 위협했다기보다 우발적으로 이성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0월에 빈과일보 사무실이 또다시 압수수색을 당했다.
지미 라이의 자금이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비방하는 보고서 작성 프로젝트에 흘러간 것으로 드러났다. 라이는 자기 비서가 상의 없이 벌인 일이라면서 관여 의혹을 부인했다.# #
12월 11일 지미 라이가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흉악범들이 수용되는 스탠리 감옥으로 옮겨졌다.# 12월 23일에 보석으로 풀러났다.# 12월 31일에 다시 감옥에 갇혔다.# 2021년 2월 17일. 옥중 체포하였다.#

3. 대만판


반중 노선으로 인기를 끈 신문인 탓인지 2003년에는 타이완에도 진출했다. 창간 당시 발행부수는 '''42만부''' 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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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과일보 타이완판 역시 홍콩에서와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끌어 창간 5년만인 2008년에는 발행부수가 '''56만부'''까지 치솟았으며[5] 2009년 7월에는 아예 넥스트TV(壹電視)라는 뉴스채널을 개국하기까지 했다.
넥스트TV는 대만 뉴스채널 중 최초로 뉴스에 '''잡다한 CG와 BGM을 도입(...)한 방송사'''였는데 그 영향이 다른 뉴스채널에게까지 번진 현재는 대만에서 가장 깔끔한 뉴스채널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대만 빈과일보의 발행부수 감소로 인해 홍콩 빈과일보가 대만 넥스트TV를 매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빈과일보 진출 이전부터 대만 뉴스 프로그램의 선정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지적되었는데 거기에 불을 끼얹은 셈이다. 또한 대만 신문사들도 인기를 얻는 빈과일보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빈과일보를 벤치마킹했는데 이 때문에 대만 신문사들이 더욱 선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독으로 작용했다.
저런 기행은 관계회사 Next Animation의 TomoNews에서도 일어난다. 사실상 TomoNews의 전선수준.

4. 기타


다른 신문에 비해 연예 기사와 스포츠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때문에 주 독자층이 10~20대 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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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자체의 겉모습만 보면, 좋게 말하면 알록달록하고 나쁘게 말하면 '''찌라시 수준(...)'''으로 난잡하다. 이러한 편집 방식은 현재 홍콩과 타이완의 모든 신문에 확대되었다(...). 더군다나 기사 자체의 선정성도 심하기 때문에 1999년 케이블 방송 규제완화 조치와 함께 대만 언론계의 전반적인 수준에 악영향을 가한 원흉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위 사진은 대만판 창간호인 2003년 5월 2일 판인데 15원인 신문값을 5원으로 대폭할인하여 판매하였다. 제호 바로 옆에 있는 상단에는 미녀 화보 무료 증정(...)이라는 홍보 문구를 달았으며 사스와 관련 뉴스인 내용과는 달리 1면이 알록달록하다.
애니메이션 뉴스도 따로 제작하고 있는데, 그래픽 수준은 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동감이 있다는 점 때문에 이 또한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성폭행이나 살인사건''' 같이 굳이 생생하게 재현할 필요가 없는 사건들까지도 생생하게 재현한 것. 이러한 선정성이 하도 문제가 되어서 학교에서 빈과일보 홈페이지를 차단시킨 사건이 있었다.

[1] 다만 신문값을 내리는것은 지미 라이도 부담이 가는 일인지라 1년이 안가서 타 신문사와 협의해서 그만두었다.[2] 물론 빈과일보에게만 유독 심하게 검열하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홍콩 매체는 중국 본토에서는 검열당하며 중국에서는 홍콩 미디어 홈페이지 접속이 차단되어 있다.[3] 홍콩영주권자에게 주어지는 자격으로 회복하였으며, 광저우에서 출생 당시 국적 또한 중화민국이었다.[4] 2004년 10월 신문 1면으로 먼저 15원에서 10원으로 할인해서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문 1면 내용은 드디어 슝디왕조가 열렸다는 내용이지만 2004년에는 타이완시리즈에 가지도 못했다. 현재의 중신 브라더스인 슝디 엘리펀츠로 93, 01, 02, 03년도 4번 타이완시리즈를 재패(92, 94 통합우승으로 시리즈 무산)했다는 내용인데 정작 이 해에는 싱농 불스에 승차없이 순위가 밀려 타이완시리즈 탈락...[5] 다만 2015년 기준으로 발행부수는 29만부로 감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