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士大夫
본래 중국에서 전래한 문관 관료층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사(선비 士)+대부(관료 大夫)''',[1] 앞에 사는 학문으로서의 선비고 뒤에 관료는 행정적인 실무 능력을 뜻한다.[2]
고려시대 최충헌의 무신정변 이후 그의 아들인 최우(최이)가 집권을 하게 되고 우락부락한 무신들보다 문신들과 다니기 좋아한 최우가 등용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서방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문학적 소양과 행정 실무 능력를 우선시했으며[3] 3번으로 교대하여 국왕의 고문과 조언을 담당했다.
어디까지나 최씨 정권의 옹호하에 형성된 집단이었기 때문에 최의가 김준에게 살해당하면서 치명타를 입었고 무신정권이 몰락하여 원간섭기가 시작되면서 대다수는 정계에서 밀려났으며 일부 살아남은 자들은 권문세족이 되었다.
유명한 인물로는 이규보 등.
본래 중국에서 전래한 문관 관료층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사(선비 士)+대부(관료 大夫)''',[1] 앞에 사는 학문으로서의 선비고 뒤에 관료는 행정적인 실무 능력을 뜻한다.[2]
고려시대 최충헌의 무신정변 이후 그의 아들인 최우(최이)가 집권을 하게 되고 우락부락한 무신들보다 문신들과 다니기 좋아한 최우가 등용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서방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문학적 소양과 행정 실무 능력를 우선시했으며[3] 3번으로 교대하여 국왕의 고문과 조언을 담당했다.
어디까지나 최씨 정권의 옹호하에 형성된 집단이었기 때문에 최의가 김준에게 살해당하면서 치명타를 입었고 무신정권이 몰락하여 원간섭기가 시작되면서 대다수는 정계에서 밀려났으며 일부 살아남은 자들은 권문세족이 되었다.
유명한 인물로는 이규보 등.
[1] 사대(事大)+부(夫)가 아니다! 사대주의(事大主義)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표현.[2] 즉 박사(학자)+정치인[3] 물론 둘 다 없어도 뽑긴 했다. 고려사 사료에 의하면 문학적 소양을 우선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