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스테파노 조약
1. 개요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뒷수습을 위해 1878년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
2. 내용: 러시아의 과욕
조약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명목상 오스만의 종속국이자 자치정부인 불가리아 공국을 세운다.[1] 또한 불가리아에서 오스만 군대는 철수하며 불가리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러시아 군대가 2년 이상 주둔한다.
- 오스만 제국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루마니아의 독립을 인정하며 이들에게 역시 일부 지역을 할양한다.[2]
-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에게 북부 도브루자 지역과 바투미, 올투, 카르스, 아르다한 등의 아르메니아 일부 지역을 할양한다. 이 때 루마니아는 러시아가 오스만이 러시아에게 할양한 북부 도브루자 지역을 루마니아에게 양도하는 조건으로 크림 전쟁 때 얻은 남부 베사라비아 지역을 러시아에게 반환한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자치 정부를 수립한다. 이외에도 크레타와 에피루스, 테살리아 등지에 자치적인 지방정부를 세울 것을 허용하는 조약안이 명시된다. 또한 기존에 오스만 정부가 약속했던,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을 박해로부터 보호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수립할 것을 보장한다.
- 오스만 제국은 전쟁 배상금으로 14억 1천만 루블을 러시아 제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지급한다.
-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은 모든 중립국에게 개방된다.
3. 결과: 토해내기 위한 베를린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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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스테파노 조약에 따른 각국의 영토 변화(왼쪽)와 베를린 회의를 통해 확정된 각국의 영토 변화(오른쪽)
전반적으로 러시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이었던만큼, 이 조약은 유럽 강대국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특히나 그레이트 게임으로 전세계에서 러시아와 대립하던 영국이 산 스테파노 조약의 결과에 가장 기겁을 했는데, 조약의 결과 러시아가 흑해를 거의 완벽히 장악했고 러시아가 사실상 러시아 영향권에 든 불가리아의 지중해 항구를 지중해 진출로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와 외무장관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은 러시아에게 '당장 이 조약 수정 안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단순히 영국 뿐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강대국 모두가 러시아에게 '너네 이 조약으로 너무 컸다? 좀 토해내지?' 식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결국 러시아도 이에 굴복하여 발칸반도에서의 세력 재조정을 위해 베를린 회의가 개최된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비롯한 발칸반도 일대에서 슬라브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것에 영국만큼이나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
4. 여담
- 역사가 중 일부는 '산 스테파노 조약이 그대로 실행되고 베를린 회의가 개최되지 않았더라면 보스니아가 실질적으로 독립했을 것이고[3] 그렇다면 1914년의 사라예보 사건도 없었을 것이고 1차대전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불가리아에게는 무려 500년에 걸친 오스만 지배를 종결시킨 역사적인 조약이니만큼 오늘날에도 열심히 기억되고 있다. 아예 산 스테파노 조약 수립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했을 정도. 반러 성향 국가가 많은 중유럽 및 동유럽권 국가 중에서 러시아에 대한 인식도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