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슬라브주의

 


영어: Pan-Slavism
러시아어: Панславизм
1. 개요
2. 여담
3. 관련 항목


1. 개요


1830년대에 처음으로 주장된, 모든 슬라브족들이 같거나 모든 슬라브족들이 합쳐서 외세를 막자는 사상. 독일범게르만주의를 이용했다면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이용했다. 본격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인 사라예보 사건이 터진 이후, 발칸 반도슬라브족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강력해지기 시작했고, 세르비아가 독립하려고 했다. 세르비아 역시 범슬라브주의를 외치면서 독립운동을 강력히 주장했고, 이에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동포라 여기면서 세르비아를 도와줬다. 물론 같은 슬라브라서 도운 것도 있었지만 발칸반도의 자원이나 지정학적 이유, 혹은 부동항과 패권진출 등 다양한 이유도 있었다.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발칸 반도 서남부에 유고슬라비아가 나타나게 되었다.
한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나타난 범게르만주의, 터키에서 나타난 범투란주의와의 대립, 분쟁도 나타나게 되었다.

2. 여담


범슬라브주의에 심취하다 못해 옛 동유럽 전역이 거의 슬라브의 땅이라고 확신하는 팽창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걸핏하면 이웃 나라 사람들의 어그로를 끌기도 한다. 헝가리, 루마니아몰도바, 알바니아, 그리스 정도가 주된 피해자이고 심하면 라트비아리투아니아까지 슬라브족의 땅이라 주장하거나 슬라브 문화권에도 속한다고 주장한다(...). 이 나라들은 민족 구성 자체가 다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슬라브족과의 혼혈 등으로 동화된 사람도 있고, 일부 지역에 한해 슬라브족 분파가 거주하기도 하지만 엄연히 정체성이 슬라브와 다르고, 스스로 슬라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같은 슬라브 국가이면서도 그런 동류의식이 없는 나라들도 존재한다. 체코 같은 나라들은 '''천 년 가까이''' 독일계 국가의 일부로 살아오면서 유럽의 중심부에서 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동쪽의 슬라브인들과는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다. 폴란드 역시 슬라브 국가이지만 오히려 같은 슬라브 민족의 국가인 러시아와 몇백년 동안 치고 받으며 살아와서 반러 감정이 팽배하다.
그리고 슬라브도 자리잡은 위치와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그 하위분파인 동슬라브[1], 서슬라브[2], 남슬라브[3][4]로 중세시대에 진작에 분화되어서, 그 안에서는 세부민족 내지는 국가가 달라도 언어 호환이 잘 되는데[5], 그렇지 않으면 언어가 많이 달라져서 호환율이 많이 떨어지거나 심하면 아예 호환이 안 된다. 그래서 이들에겐 슬라브인 = 형제 같은 논리는 씨알도 안먹힌다.

3. 관련 항목



[1]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세 분파 중 바이킹이나 몽골-튀르크의 유목 계열과의 접촉이 많아서, 가장 북구적이면서 아시아(유라시아)적이고 대륙적이다. 종교는 폴란드-오스트리아의 지배로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이 다수인 극서부 우크라이나 지역을 제외하면 모두 정교회.[2]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이 쪽은 독일어권 게르만 계열과의 접촉이 많아서 맥주 문화 등 독일어권 문화와 통하는 것이 많고, 구체적으로는 독일어권 중에서도 북독일 쪽보다는 남독일-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쪽과의 접점이 많아서 그런지 종교가 모두 가톨릭이다. 그리고 역사가 역사인 탓에 서슬라브권 국가의 역사를 연구할 때는 '''독일어는 필수다.'''[3] 주민 대부분이 알바니아계인 코소보를 제외한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과 불가리아. 이 쪽은 7세기 동로마 헤라클리우스 시절에, 제국의 포커스가 페르시아와 아랍 때문에 동쪽에 완전히 꽂혀 있을 때 그 틈을 노려 아바르 칸국의 지휘 하에 다뉴브 강 방어선을 뚫고 발칸 반도로 내려온 것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4] 종교는 기독교(가톨릭, 정교회), 이슬람이 모두 있다. 9세기에 이 발칸 반도의 남슬라브족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가톨릭(로마 교회)과 정교회(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어떻게 나눠먹을까가 첨예한 화두였고(교황청 측이 동로마의 국력 상태에 따라 간을 봤다. 그 전투력 측정기는 바로 옆의 불가리아였다.), 정교회 측의 선교 과정에서 키릴로스 선교사는 슬라브족에게 선교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글라골 문자를 만들었고, 그 제자들이 글라골 문자를 다듬었는데, 그것이 바로 키릴 문자다.[5] 동, 서, 남슬라브 그 안에서 국가별로 갈린것은 근세 이후였기 때문에 언어 분화가 별로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