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요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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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한국 관련
4. 여담


1. 개요


SANYO(三洋).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3개(일어로 3은 "산"으로 읽는다.) 대양에서 딴 이름이라 하며 한자 독음으로는 삼양전기이다. 에네루프 충전지와 Xacti 캠코더로 유명하다.

2. 역사


본래 마쓰시타 전기를 설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처남인 이우에 도시오가 1947년에 세운 기업. 일본 경제 발전과 함께 잘 나갔으나 일본 경기 침체로 인해 도산 위기에 처하자 친척 기업인 마쓰시타가 인수합병하여 파나소닉으로 거듭났다.
산요 설립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처남 이우에가 회사를 설립할 무렵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다른 것은 다 해도 전지산업은 하지 마라. 리스크가 너무 크다'라고 말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이우에가 회사 설립 이후 중점적으로 해 온 산업이 바로 전지 산업, 그것도 이차 전지. 파나소닉이 적자 투성이에, 가전 분야에서 브랜드 가치도 바닥을 기고 반도체 분야에서도 한물 간 산요를 인수한 이유 또한 산요가 2차전지 및 태양전지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혈연 관계로 인한 인정이 아니다. 그리고 파나소닉은 최근까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점유했었다.
1977년부터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고판에 본사 로고를 박았고, 1980년대에는 일본 내에서 듀라셀을 라이센스 생산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찍이 듀라셀 버니를 광고에 내세우고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산요의 입김 때문인지 전혀 다른 컨셉의 광고를 선보였는데 1984년판 광고는 바리캉으로 40명 중 32명분의 머리를 동자승처럼 밀어버릴 수 있다는 컨셉이었다. 그리고 90년대에야 듀라셀의 상징인 토끼가 등장했다.
마쓰시타 전기가 브랜드 통합 작업을 추진 중이라 모든 브랜드를 파나소닉 이름 아래로 통합하고 있다. 거기다가 산요 인수 직후에 터진 리만 브라더스 사태 덕분에 3년 연달아 그룹 실적이 죽을 쑤면서 결국에는 버틸 수가 없다를 선언하고 회사를 해산시켜 버리기로 결정했다. 브랜드명에 이어 회사 자체가 사라질 상황. 2011년에는 백색가전 부문을 중국하이얼이 인수했으며, 피카딜리 광고판마저 한국 현대자동차에게 내줬다.

3. 한국 관련


국내에 '한국동경시리콘'이라는 법인명으로 마산자유무역지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이 있었으나, 모기업의 실적 악화로 2008년에 문을 닫았다. 이 때 임직원 300명에게 5년치 임금을 일시불로 지급했다고 한다.
일본 전자 회사 중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에 우호적인 기업이었다. 대부분의 일본 전자기업이 1970~1980년대 당시 대만에 주로 투자한 것에 비해 산요는 한국에 주로 투자했다. 대만에서의 산요는 1963년에 설립하였으며 2013년 'SANLUX'로 변경되었다. 기술이전도 제법 했고 한국에 투자도 기업 규모에 비해 많이 한 편으로 산요와 합작 설립된 삼양전기가 1957년에 설립된 것으로 시작되었다. 영문표기는 일본과 동일한 'SANYO'가 아닌 'SAMYANG'이었다. 선풍기와 전기난로를 주력으로 생산하였으며 60년대 초반에는 합작으로 TV도 생산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삼양전기는 삼성전자가 설립된 이후로 자금난을 겪다가 결국 1975년에 최종 부도처리되었다.
70년대에는 한일전기와 기술제휴를 맺어 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산요의 피가 흐르는 환풍기를 아직까지 생산 중이다. 선풍기도 산요를 따라해서 EF로 시작하는 모델명을 사용했으며, 한일의 레드모터 브랜드도 사실 산요에서 1969년부터 선풍기에 쓰던 브랜드였다.# 한일전기는 사명 HANIL을 산요의 위 60~70년대 로고타입과 같은 글씨체로 썼다. 계열사로 오인할 수도 있었다. 산요가 1986년 로고타입을 바꾼 후에도 한참동안 그 글씨체를 썼다가 2000년대 와서야 바꿨다. 이후 고딕체 형식의 폰트를 거쳐서 현재는 필기체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한일전기는 산요라는 상표를 달고 오디오를 한국에서 만들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쓰여진 제품도 팔았다. 물론 국내에 정식 판매하지는 않고 100% 수출했다. 한국샤프가 이런식으로 만든 오디오를 한국 시장에서도 출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삼성전자도 설립 초기인 1969년부터 '삼성-산요전기' 시절부터 이 회사의 기술을 도입하거나 모델을 라이센스하여 제품을 만들기도 했으며, 그래서 1981년까지 삼성전자 영문 로고가 산요 영문 로고와 비슷했다. 이 '삼성-산요전기'는 1975년 삼성전기로 변경했다가 1977년 삼성전자공업에 합병되었다. 삼성전기의 모태도 삼성과 산요의 합작사였다. 일본 언론들도 한국 전자업체의 성공과 자국 전자업체들의 몰락을 보도하며 항상 언급하는 일화다. 현재 삼성과 산요의 위상을 생각하면 참으로 상전벽해와도 같다.
국내에서 휴대전화(피처폰)도 판매했었다. 산요 이름으로 판매했던 기종은 C111SAS(SA는 일본 내수용 SAS가 국내용), SCP-B017, SCP-A011이 있었으며 통신사는 SK텔레콤이었다. 이후 휴대전화 사업이 카시오&히타치로 합쳐지며, 카시오 지즈원 CA201L이 한국에 마지막으로 판매된 휴대전화다. 통신사는 LGU+.

4. 여담


1965년 <정글대제> TV애니판 스폰서를 맡았고, 시마 과장 시리즈 속 고요전기의 모델이 된 회사이다. 셰프 9권에 나오는 야요산업도 이 회사가 모델인 듯하다.
휴대용 라디오와 탁상용 카세트를 생산, 판매한 적이 있으나 산요 브랜드 자체가 명맥이 끊기면서 라디오, 카세트 시장에서 손 뗀 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90년대 아시아 축구 연맹(AFC)의 스폰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90년대 아시아 축구 연맹이 주관하는 각종 대회나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에서 산요의 광고판을 볼 수 있었으며 대회 MVP 선수에게는 산요 전자제품을 부상으로 주기도 했다.
정식 사명은 산요전기(三洋電機)였으나 サンヨー라는 가타가나 표기를 더 좋아하는지 제품 광고 등에는 サンヨー로 썼다. 반드시 한자로 썼던 東芝, 日立 등과 대조적이다. 심지어 京セラ, 東レ 같이 한자와 가나가 섞인 기업도 한자부분을 꼭 한자로 쓰는 기업도 있다. 東芝, 日立 같은 경우는 차라리 로마자인 TOSHIBA, HITACHI로 쓰면 썼지 가나표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여담으로 산요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자음접변 탓이 "사뇨"가 되어버리기에 "상요"로 읽는 것이 현지 발음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