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분폭리사건

 


삼분폭리('''三粉暴利''') 사건 - 1964년에 폭로되었던 사건이다.
1. 개요
2. 경과
3. 파장
4. 여담


1. 개요


국민 생활, 경제(건설)의 필수품이었던 설탕, 밀가루, 시멘트를 유통하던 재벌 기업이 독과점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세금포탈 및 엄청난 폭리를 취했고, 이를 눈감아준 민주공화당 정권이 그 대가로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긴 사건이다.
이들은 모두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수입에 달러를 사용해야 하였다. 후진국에서 흔히 그렇듯이 공식환율과 시중환율이 큰 차이가 있어서 환전만 받아도 몇 배의 차익을 낼 수 있었다. 즉 공식환율로 원료를 수입해서 시중환율에 맞춘 가격으로 제품을 파니까 엄청난 폭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건의 본질은 외화 사용허가 특혜를 얻기위한 정치권 뇌물사건이었다. 그 당시는 한국의 외환사정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서 달러를 구하려면 정부의 재무부장관의 외환사용 특별허가를 얻어야 했고 그 허가 자체가 큰 특혜였다. 민간인의 달러소지는 불법이었고 전부 은행에 예금을 해야하고 유학생의 학비도 재무부장관의 사인이 필요했다. 그당시 미국에서 원조로 들어오는 달러를 제외하면 텅스텐광석인 중석 수출이 한국의 외화 수입의 6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건을 중석수출대금인 중석불(重石弗)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가 된 기업들은 설탕은 제일제당, 밀가루는 대한제분. 시멘트는 동양 시멘트와 대한양회.[1]
1964년 1월 15일 삼민회 대표 박순천 의원이 재벌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고, 여당인 공화당은 이를 이용하여 정치자금을 챙기고 있다고 국회에서 폭로함으로써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2. 경과


박순천 의원의 폭로 이 후, 진상규명에 나선 민주당 유창렬 의원과 삼성그룹[2]로 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그리고 민주당 측에서는 2월 5일 국회 제10차 본회의에 <특별국정감사 실시에 관한 결의안>을 상정했으나...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3. 파장


6.25 전쟁 후 불과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데다 극도의 혼란기[3]와 더불어 1962년에는 흉작으로 인해 심각한 식량난 속에 당장의 먹을 곡식도 부족하였던 실정이었으나, 천조국으로부터 싼 값에 수입되어 온 로 만들어진 밀가루로 겨우 연명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시멘트 역시 전쟁이 끝난지 고작 10년 조금 넘은 그 시점에 한창 부숴진 건물들을 복구하기 위해 엄청나게 쓰였음은 물론이고, 생필품인 설탕 역시 싸게 들여온 사탕수수로 만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생필품의 생산및 유통을 몇 몇 재벌그룹들이 독과점하고, 안그래도 굶어죽어가던 사람들이 넘치던 그 시절에 그 사람들의 고혈을 더더욱 짜내었다는 것이다. 특히 원료의 수입하기 위해 정치권에 불법정치자금을 뇌물로 주고 달러 사용허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력으로 집권박정희의 군사정권이 만든 여당, 공화당은 이를 견제해도 모자랄 판국에 뒷돈을 받아챙기며 국민들의 고통을 모른척 했다는 점에서 갓 출범한 군사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4]

4. 여담


국가의 간섭 없는 자유경쟁시장에서의 문제, 모순점이 잘 드러나는 사건으로써, 상법이나 경제법 관련 공부를 하다보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다.
2년 뒤인 1966년에 일어난 사카린 밀수 사건과 함께, 박정희 군사정권 및 공화당의 치명적 오점 중 하나로 자주 회자되는 사건이다.
[1] 양회(洋灰)는 서양의 흙 - 즉 시멘트라는 뜻이다.[2] 당시에는 삼성의 계열사 중 하나였다. 1993년에 삼성에서 분리, 1996년 제일제당 그룹이 되었고 현재 CJ그룹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에서 분리된 이유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자식들 사이의 상속권 다툼으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 '''이런 일'''이라든지 '''저런 일'''이라든지 '''그런 일'''이라든가 '''그렇고 저런 일'''같은, 평생 한 번도 겪기 힘든 매우 크고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 시기였다.[4] 물론 당시에는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