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천

 




<colcolor=#ffffff><colbgcolor=#878787> '''이름'''
박순천 (朴順天)
'''본명'''
박명련 (朴命連)
'''출생'''
1898년 9월 10일
대한제국 경상남도 기장군 [1]
'''사망'''
1983년 1월 9일 (향년 84세)
'''십이지'''
개띠
'''종교'''
개신교가톨릭,(세례명 : 요안나),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2, 4, 5, 6, 7'''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4. 여담
5. 선거 이력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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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여성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여성 최초의 당수'''[2]를 지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말기 친일반민족행위자 행적과 유신정권 옹호로 명암이 갈리는 인물이다.
헌정 사상 최초로 영수회담을 성사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대통령은 박정희. 박순천 의원과 박정희 대통령간의 1:1 영수회담은 1965년에 열렸다.
여성 최다선(5선) 의원 중에 하나. 이 기록은 자그마치 50년 전인 1967년에 세운 것이다. 이 기록은 2012년에 와서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미경 전 의원이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된다. 2020년까지 역대 최다선이며, 추미애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2024년까지도 깨지지 않을 예정이다.

2. 생애


1898년 경상남도 기장군(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대변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명련(命連)이었으나, 후에 박순천으로 개명하였다.
1917년 동래의 일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마산의 의신여학교 교사로 있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해 3.1 운동에 참가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수배되어서 일본에 피신하였으나 일본에서 검거되었다.
이후 결혼을 하였고 1939년 상경하여 경성 가정 여숙을 설립하고 교육자가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황신덕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었다. 1943년 3월께 제자들에게 정신대에 지원할 것을 종용해 제자 1명을 정신대로 보냈다. 그리고 친일 단체인 황도 학회 결성식에 발기인으로 참여, 조선 임전 보국단 부인대에는 박마리아, 김활란, 모윤숙, 노천명 등 쟁쟁한 여성 친일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참여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가 되었다. 그러나 정신대 지원이 없으면 학교가 폐교된다는 일제의 협박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이기 때문에, 황신덕이나 박순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8.15 광복 후 중앙여자중학교 부교장이 되었고 1947년부터 독립촉성애국부인회 회장을 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서울 종로구 갑(1대 ~ 3대), 부산 동구 갑(4대 ~ 5대), 서울 마포구(6대) 등에 출마해 2대, 4대, 5대, 6대, 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치 1번지인 종로구에서 당선되었으며,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1번으로 당선, 5선 고지에 올랐다. 무소속이었던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4.7%의 안습한 득표를 올렸지만, 4대 ~ 6대 총선에서는 50%를 훌쩍 넘는 압도적 득표를 했다. 특히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그마치 67%의 득표를 했다.
20대 국회 기준 추미애, 박근혜, 이미경과 함께 '''여성 최다선 국회 의원'''으로,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낮았던 50년 전 당시를 고려하면 엄청난 기록을 남긴 셈이다. 민주당계 정당(민주당, 민중당, 신민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였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과 '''첫 여야 영수 회담'''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1966년에는 직접 베트남 전쟁 때 월남에 가서 파월 장병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 당시 함께 동행한 대변인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
다만 1972년 10월 유신 후 국토통일원 고문, 육영수여사추모기념사업회 이사장[3] 등을 맡으며 친정부 인사로 전향하여 청암 송건호로부터 곽상훈과 더불어 "박정희에게 붙었다"며 비난을 받았다.
1980년 전두환 집권 후에는 국정자문위원을 역임하며 1982년 8월 초대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았다가 위에 서술한 친일행위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달도 못 돼서 사퇴[4]하였고, 이듬해 1월 9일 밤 10시 30분,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고혈압신부전증뇌졸중으로 사망했다.

3. 대중매체에서


2003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사카린 밀수 사건과 관련하여 국회에 똥물을 뿌리는 장면에서 김두한이 들어왔을때 옆에 앉아 그게 뭐냐고 묻고, 사카린이라고 대답하자 무슨 사카린 냄새가 이렇게 지독하냐고 하고, 김두한이 똥물을 뿌린 뒤에는 동남 방언을 쓰며 어쩔 줄 몰라하는 한 할머니가 있는데, 그 할머니가 바로 이 박순천이다. 배우김지영인데 '''실제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심지어 김지영도 박순천과 똑같이 천주교 신자였다.
1981년 MBC 드라마 제1공화국에서는 전양자가 맡았지만 각본상 임영신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존재감이 약했다.
이후 역대 공화국 시리즈에서는 대체로 성우 출신 배우 김소원이 맡아왔다. 1998년 SBS 삼김시대에도 출연했다. 위의 사진과 비교하면 완전 복붙이다!
[image]
MBC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심양홍이 맡은 유진산과 투샷. 둘 다 복붙으로 유명했다.

4. 여담


  • 1990년대 후반에 나온 한국군 베트남 전쟁 파병에 대하여 비판한 책자에서 언급이 된 바 있다. 박순천은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고 심지어 저 넓은 땅(베트남)을 우리가 이 기회에 차지할 수 없느냐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친일논란과 같이 이런 말을 경솔하게 했다고 비판적으로 언급했었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48
제헌 국회의원 선거(서울 종로구 갑)

5,518 (15.10%)
낙선(2위)

1950
제2대 국회의원 선거(서울 종로구 갑)

'''11,251 (54.98%)'''
'''당선 (1위)'''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서울 종로구 갑)

4,306 (14.68%)
낙선 (3위)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부산 동구 갑)

'''22,907 (59.95%)'''
'''당선 (1위)'''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부산 동구 갑)

'''22,668 (57.53%)'''
'''당선 (1위)'''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서울 마포구)

'''50,250 (67.67%)'''
'''당선 (1위)'''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전국구)

'''3,554,224 (32.7%)'''
'''당선 (1번)'''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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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산광역시 기장군[2] 최초의 여성 장관은 이승만 정권에서 상공장관을 지냈던 임영신이다.[3] 육영수 여사가 생전에 그녀를 찾아와 유신에 대한 견해를 물어왔었다고 한다.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살갑게 굴었던 일화가 있어서 그런 친분이 영향을 줬던 걸로 추정된다.[4] 1982년 초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이 터지자, 정통성 논란에 시달리던 전두환 정권은 독립기념관을 짓겠다면서 박순천을 추진위원장으로 선임했는데, 한달도 안 돼서 친일논란이 터진 것이다. 곤혹스럽던 군부정권은 곧바로 박순천을 경질하고 후임으로 안중근의 조카인 안춘생을 선임했다. 다만 친일논란이 아니더라도 건강 때문에 어차피 오래가지 못했을꺼라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