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완창

 




蕭萬長(소만장) / Vincent C. Siew Wan-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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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설명


1. 개요


대만의 경제관료 출신의 정치인. 대만 경제부장과 행정원 경제건설위원회 주임위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을 지내고 입법위원을 거쳐 행정원장중국 국민당 부주석을 역임하였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마잉주 정부에서 부총통을 지냈다. 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였고 동 대학에서 외교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 설명


원래는 외교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66년 말레이시아 주재 중화민국 총영사관 근무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상무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다보니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국제연합에서 축출하는 장면도 경험했다.(...) 대만이 UN에서 쫓겨난 이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지역 과장으로 전임되었다. 1972년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 연수를 다녀온 후, 경제부로 전보되어 통상 관련 업무를 전담하였다. 1982년부터 6년간 경제부 국제무역국장을 지냈으며, 1988년 사직하고 중국 국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정계입문 초기에는 국민당 중앙위원과 조직부 주임위원을 맡았으나 그의 관료경험을 주목해 온 리덩후이 총통하오보춘 행정원장은 1990년 그를 대만 경제부장[1]으로 임명한다. 1993년 롄잔 행정원장은 그를 행정원 경제건설위원회의 주임위원으로 임명하였고, 1994년에는 행정원 대륙위원회의 주임위원[2]으로 임명하였다. 정계입문 이후에도 의도치 않게 관료역할을 했던 그는 1996년 입법위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며 자신의 고향인 자이시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정치활동을 하는가 싶었지만 1997년 리덩후이 총통은 그를 행정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관료의 수장이 되었다(.....)
1999년 대만 총통선거 국민당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부총통이었던 롄잔에게 밀려 낙선하였으나, 롄잔이 그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면서 2000년 대선에서 부총통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하지만 국민당 경선에 불복한 전 대만성 성장 출신의 쑹추위가 국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바람에 국민당 지지가 절반으로 찢어졌으며 결국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이 당선되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국민당의 롄잔-샤오완창 조는 3위에 그쳤다(...) 그 이후, 2005년까지 국민당의 부주석직을 역임하였으며 2008년 대선에서 마잉주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받아 부총통 후보가 되었다. 경제이슈를 중점적으로 내세웠던 2008년 마잉주에게 샤오완창의 경제관료로서의 경험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경제적으로 유능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마잉주가 당선이 됨에 따라 부총통이 된 그는 "양안공동시장 기금회"의 이사장을 맡았으며 2008년 4월에 중국을 방문하여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만나기도 하였다.
2011년 그는 다음 선거에 부총통으로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2012년 대선에 부총통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으며, 차기 부총통 후보로 우둔이 행정원장이 지명되었다. 마잉주 총통은 2013년에 다시 그를 APEC 대만 대표로 임명하였으며 2015년까지 역임 후 현재는 은퇴했다.

[1]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대만은 재정부가 한국의 기획재정부에 해당한다. 경제부는 통상부처다.) 장관[2] 한국의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