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
1. 신의 경칭 또는 군주의 칭호
天王
천왕의 天은 (특히 군주의 칭호일 때) 영어의 celestial, heavenly, 즉 '하늘에 관한', '하늘스러운', '하늘의 권위를 받은' 정도의 뉘앙스로 해석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만약 천왕의 天을 '하늘의(of the Heaven)'라고 해석하면 말 그대로 하늘을 다스리는 최고 신(神)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천왕의 칭호를 쓰는 군주들이 동시에 '천자(하늘의 아들)'를 칭한 것[1] 이 되므로 모순이 된다. 그래서 天 부분을 영어로 직역할 때는 'celestial' 또는 'heavenly'로 옮기는 게 일반적이다.[2] 신을 천왕이라고 칭하는 경우는 of the Heaven으로 봐도 상관 없지만, 인간 군주의 칭호로 사용할 경우도 고려한다면 celestial, heavenly가 가장 무난하다.
천왕은 일본의 천황 칭호의 성립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여겨진다. 도교, 불교, 중국식 선민사상의 결합인 셈.
힌두교에서는 '데바라자'와 대응된다. 데바는 신이고 라자는 왕을 뜻한다.
1.1. 불교의 천왕
불교에서는 천신(天神)에 대한 경칭으로 천왕이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사(대)천왕(四(大)天王) 같은 용어가 그 예다.
1.2. 한국 신화
역대 한국 왕조에서 '천왕(天王)' 호가 공식 군주호로 채택된 적은 없다. 한국에서 천왕호는 전설, 설화, 토속신앙에선 자주 등장하는데, 천왕호가 등장하는 신화 중 가장 오래된 신화는 단군 신화이다.
- 가야 건국 신화의 등장인물 정견모주는 남성화되어 칭호가 '정견천왕(貞見天王)'이 된 적 있다. 정견천왕은 불교적 의미의 천왕으로 보인다.
- 고려 건국 설화의 등장인물 호경은 구룡산천왕(九龍山天王)이란 별호를 가졌다.[6] 또한 지리산천왕(智異山天王)[7] 이 등장하며 그녀가 왕건이 태어날 곳을 점찍어 주었다고 한다. 제왕운기에서는 위숙왕후와 동일시된다.
1.3. 주나라 왕의 별칭
주나라 왕은 천자(天子) 또는 천왕이라고도 불렸다고 전해진다.
1.4. 오호십육국·남북조 시대 유목 민족 왕조 군주의 칭호
중국에 '침투'해 나라를 세운 북방 유목 민족들은 황제라는 칭호 대신 천왕이라는 칭호를 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천왕이라는 칭호가 은·주의 제도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 이외에도 불교의 영향 등 복합적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최근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북방 유목 민족은 본래 중국의 천자에 대응되는 선우(單于)라는 칭호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족 왕조가 외부 유목 민족의 지도자에게 책봉해주는 제후 칭호처럼 변질돼서 이를 대체할 칭호로서 천왕이 등장했다는 것. 아직 통치 체제상 북방 유목 민족과 한족의 융합이 이뤄지기 전이라 전자를 위한 칭호를 천왕, 후자를 위한 칭호를 황제로 했으리라고 추정되고 있다.[8][9]
그래서 오호십육국과 남북조 시대의 북방 유목민 왕조의 군주들은 평생 천왕만 칭하고 사후에 황제의 시호를 받거나, 아니면 천왕을 했다가 아들에게 천왕 직위를 물려준 뒤 본인은 태상황제라고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있었다. 또 황제를 칭하고 있다가 중간에 천왕으로 바꾸거나,[10] 반대로 천왕을 칭하다가 황제로 바꾸는 등의 일들이 기록에 보인다.
참고로 역사학자들은 고구려가 자국의 왕을 태왕(太王)이라고 한 것이나 백제·왜가 자국의 왕을 대왕(大王)이라고 한 것 등이 이 천왕 칭호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관련성을 연구하기도 한다.
다음은 이 시대에 천왕을 칭한 사례들 중 일부이다.
- 전조(前趙)[11] : 318년 외척인 근준(靳準)이 황제 유찬(劉粲)을 죽이고 대한 천왕(大漢天王)을 자칭하였다.
- 후조(後趙)
- 전진(前秦): 357년 부견(苻堅)이 즉위하고 대진 천왕(大秦天王)을 칭하였다. 385년 부견 사후에 아들 부비(苻丕)는 황제를 칭하였다.
- 적위(翟魏): 388년, 적료(翟遼)가 대위 천왕(大魏天王)을 칭하였고, 391년에 그 아들 적소(翟釗)가 이어서 대위 천왕을 칭하였다.
- 후량(後凉)
- 후진(後秦): 399년, 요흥(姚興)이 황제 칭호를 천왕으로 바꾸었다. 416년 요흥이 사망한 뒤 아들 요홍(姚泓)은 다시 황제를 칭하였다.
- 후연(後燕)과 북연(北燕): 400년, 모용성(慕容盛)이 황제 칭호 대신 서인천왕(庶人天王)을 칭하였다. 그 후 모용희와 북연의 고운(高雲)[13] , 풍발(馮跋), 풍홍(馮弘)의 존호도 모두 천왕이었고 사후에 시호를 황제라고 하였다.
- 북주(北周): 557년 우문각(宇文覺)이 대주 천왕(大周天王)을 자칭했고, 559년에는 우문육(宇文毓)이 황제를 칭했다.
1.5. 그 외 중국사의 자칭 천왕
- 후한 시기에 복직(服直)이 145년에 파군에서 수백 명의 무리를 무어 천왕을 자칭했다.
- 남송(南宋)의 양요(楊幺)가 대성천왕(大聖天王)을 자칭했다.
- 금(金)나라 말년에 포선만노(蒲鮮萬奴)가 동진(東眞)이라는 나라를 세워 대진 천왕(大眞天王)을 자칭했다.
- 청(淸)나라 말기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일으킨 홍수전(洪秀全)과 그 아들 홍천귀복(洪天貴福)이 천왕을 자칭했다.
1.6. 동아시아의 황제와 유사한 칭호 목록
- 대군주(大君主)
- 대왕(大王)
- 성황(聖皇)
- 신성제왕(神聖帝王)
- 제왕(帝王)
- 천왕(天王)
- 천황(天皇)
- 태왕(太王)
- 패왕(霸王 또는 覇王)
- 황왕(皇王)
2. 지명
天王 또는 天旺 등.
3.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무기 천둥의 왕
천둥의 왕 항목 참조
4. 성전의 등장인물
해당 항목 참고.
5. 무협소설
황규영 작가의 무협소설. 총 7권 완결.
[1] 주나라의 왕은 천왕 또는 천자라고 불렀다.[2] 일반적으로는 의역해서 그냥 emperor로 쓰지만 천왕의 정확한 뜻을 풀어서 설명할 때는 heavenly prince/heavenly king(천왕)으로 직역한다. 또한 중화 제국을 번역할 땐 황제들이 천자를 자칭했으므로 celestial emipre라고도 한다. celestial이라는 단어가 중국의 용어를 번역하는 데 사용되는 빈도가 높아서 아예 이 단어에 '중국의'라는 뜻이 추가되었다.[3] 제왕운기 기록.[4] 조선의 개화기 이후 문헌에서는 천왕이 황제급 칭호라는 생각이 희박해졌는지 천왕 대신 천황으로 고쳐 쓴 예도 있다.[5] '천왕의 아들' 혹 '천왕 도령'이란 뜻이다.[6] 이승휴의 제왕운기 기록이다.[7] 여신이다. 별칭은 성모(聖母).[8] 최근 이 시대를 연구하는 한국의 중국사학자들이 이런 천왕/황제 이원화를 비롯하여 이 시대만의 독특한 사회 질서를 가리켜 호한체제(胡漢體制)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이 용어로 검색해 보면 한국에서 쓰여진 관련 논문들을 찾아볼 수 있다.[9] 또, 당시까지만 해도 '황제'는 한족 왕조만 사용했었기 때문에 이민족 군주가 사용하기가 이민족 피지배층에 대해서도, 한족 피지배층에 대해서도 껄끄러웠으리라는 추정도 존재한다. 실제로 중국 밖에서 군주들이 스스로 중국와 황제와 비슷하게 행세하긴 했어도 아예 칭호까지 '황제'나 '천황' 같은 칭호를 쓰는 예가 등장한 것은 오호십육국시대(304~439) 이후의 일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천황은 7세기 후반 덴무 덴노나 지토 덴노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베트남 딘 왕조의 시조 딘보린이 베트남 최초의 황제가 된 것은 968년이다. 한국사에서 '황제'라는 칭호를 대놓고 처음 쓴 것으로 보이는 군주는 고려의 광종인데(물론 그 이전 군주들도 국내에서는 사실상 황제와 다름 없었지만 아예 칭호를 황제라고 한 건 광종이 처음이라고 추정) 그의 재위 기간은 949~975년이다. 따라서 중국의 이웃나라나 이민족 입장에서 황제라는 칭호는 진시황 이후 한족 특유의 칭호로 인식해 거부감이 있었고, 그래서 황제 칭호의 채택이 늦어졌을 개연성이 지적되고 있다. 반면에 '왕'은 진시황 훨씬 이전부터 있었고 이미 한족 이외의 민족들에게도 전파돼서 일부 국가에서 쓰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배경에서 천왕 같은 칭호가 고안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10] 이 경우 역사서의 집필자들이 해석하길, 천왕으로 바꾼 것은 스스로 칭호를 낮춘 것으로 여겨서 그렇게 기재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최근 연구에서는 '낮춘 게 아니'라는 반론들이 있다. 황제와 천왕 사이에 단순하게 상하관계가 있다고 보아 스스로 '낮췄다'고 이해하기 곤란하다는 것. 대표적인 반례로 드는 케이스로는 전진의 부견이 있다. 부견은 일시적이긴 하지만 북조(北朝)를 통일했고 더 나아가 남방의 동진까지 흡수해 통일할 뻔했는데 끝까지 황제의 칭호를 쓰지 않았다. 부견은 자신의 출신 민족인 저족 뿐만 아니라 한족이나 다른 이민족들 모두를 포용하고 아우르려 했던 이상주의자로 평가되는데, 한족 중심의 황제 칭호보다는 천왕이라는 칭호를 통해 여러 민족을 통치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11] 본래 국호가 '한(漢)'이었으나 훗날 이름이 '조(趙)'로 바뀌어 흔히 전조라고 부른다. 다른 표현으로는 먼젓번 이름과 나중 이름을 합쳐서 한조(漢趙)라고도 한다.[12] 당시 후량이 황제 대신 천왕 칭호를 썼으므로 태상천왕(太上天王)이 맞는 게 아닌가 해서 그렇게 '정정'해 적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뭔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일부러 정말로 아들은 '천왕', 본인은 '태상황제'로 했을 수도 있다. 정식명칭은 이것.[13] 고구려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