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훈(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선우훈은 1892년 11월 11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1년 9월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에 재학하던 중 일제가 신민회 회원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 석방될 때까지 가혹한 고문에 시달렸다. 출옥 후 1915년 중국 난징으로 망명해 금릉대학(金陵大學)에 입학해 학문을 닦았다. 1921년 11월에는 대한적십자사 총회에 참석해 안창호를 회장에 추대했고, 그는 양헌, 한진교, 이유필, 김구 등과 함께 상의원(常議員)에 선출되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그는 친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차장 선우혁의 밀명을 받고 독립자금 조달을 위해 국내에 파견되기도 했다.
1931년에 귀국한 그는 1931년 이후 고향인 정주에서 동아일보 지국장으로 지내며 군자금 조달 및 민족사상 고취에 전념했다. 그러나 1938년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1940년 태평양 전쟁 시기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항의했다가 자택에 연금되었다. 8.15 광복 후 조만식 등과 함께 평양직할시, 의주군. 개성특별시 등지에서 조선민주당을 조직해 공산화에 맞서다가 1946년 월남했다. 월남 후 재건 된 조선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민족의 수난-백오의 피눌물>, <사외비사-덕수궁의 비밀> 등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1961년 5월 18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선우훈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