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태후
1. 개요
신종의 왕후이자 희종의 모후. 안혜태후의 조모이다.
2. 가족관계
선정태후의 증조부는 문종 인효대왕 왕휘, 조부는 조선국 양헌왕 왕도, 아버지는 강릉공 왕온이다.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선정태후가 김씨를 따랐으므로 모계가 김씨 가문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매로 장경왕후, 광정태후가 있다. 인종의 아들인 의종, 명종, 신종 삼형제가 왕온의 딸인 장경왕후, 광정태후, 선정태후 세 자매와 결혼한 것이다. 참고로 왕온의 둘째 딸도 인종의 차남 대령후와 혼인하였으며, 아들인 왕영은 인종의 딸 승경궁주와 결혼했다. 고려 왕실 특유의 근친혼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남편과의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희종과 양양공 왕서이며, 딸은 효회공주[1] 와 경녕궁주다.
3. 생애
신종이 황태제가 되기 전, 평량(平凉)[2] 의 공작일 때 결혼했다. 신종이 황태제가 된 후에 등극하자 궁주 원비에 봉해져 정식 왕후가 된다. 허나 어떤 궁을 하사받았는지는 고려사에 나와있지 않다.
늙은 남편이 태자 희종에게 양위하자 아들로부터 1204년 4월에 왕태후로 올려졌다. 18년 동안 태후로 존재했으며 중간에 아들 희종이 최충헌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폐위되고, 조카 강종이 등극했다가 고종이 등극하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히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서의 점잖은 모습을 보여주니,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1222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를 선정태후라 하고 이후 고종이 신헌(信獻)이라는 시호를 추가하였다.
고종 안효왕은 이규보를 시켜 선정태후를 기리는 시를 짓게 했다. 동국이상국전집 제 16권에 기록된 '왕태후 만사'가 바로 그 시인데, 선정태후가 생전에 태상황모(太上皇母) 존호를 받았다고 설명을 덧붙혔고 손녀가 왕후(王后), 아들이 상황(上皇)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선정태후가 힘든 시절 정치에 관여하기보단 왕실 안정에 힘을 쓴 것을 찬양했다.
4. 마지막 시조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은 양양공 왕서의 직계 후손이다. 양양공 왕서는 바로 선정태후의 둘째 아들이다. 고려의 마지막은 선정태후의 피가 끝마침을 맺은 셈이다.
5. 시호
선정태후의 시호는 신종 靖효대왕과 靖 자 돌림이다. 그러나 고려사 기록 상으론 희한하게 신종 '정'효왕과 선'정'태후는 뒤의 시호를 맞췄다. 원 간섭기 이전의 고려왕실은 시호를 맞출 때 보통 앞의 시호를 맞췄다. 선정태후의 자매들을 봐도 의종 '장'효왕과 '장'경왕후, 명종 '광'효왕과 '광'정태후 등 모두가 앞의 시호를 맞췄다.
고려사절요 제14권 희종 성효대왕엔 선정태후의 시호가 '정선태후(靖宣太后)'로 앞뒤가 바뀌어 있는데, 고려왕실이 모두 앞 시호를 돌림으로 썼다는 걸 감안하면 이 시호가 정확한 시호일 가능성이 더 높다.
고려사 고종 세가엔 고종이 1223년 10월에 황태후를 태황태후로 올렸다는 기사가 있다. 세가엔 황태후가 누구인지 설명을 해놓지 않아 선정태후인지 원덕태후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선정태후라면 선정태후의 공식 시호는 선정황태후(宣靖皇太后)가 아닌 선정태황태후(宣靖太皇太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