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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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11일 개봉한 영화. 넘버 3의 감독이었던 송능한이 두번째로 만든 영화. 김갑수, 이재은, 차승원, 이호재 등이 주연하였다.
전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이며, 마지막 장은 이전 챕터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정리하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첫째 장: 모라토리엄
시나리오 작가 두섭(김갑수)은 멜로드라마 한 편을 거의 완성했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내용을 다 날려버리고, 그를 담당했던 영화사 서실장(류태호)은 해고당한다.
둘째 장: 무도덕
천(이호재)은 무식하고 천박한 졸부로 여대생 소령(이재은)과 원조교제를 즐긴다. 오렌지족인 천의 아들 현일도 친구 소개로 소령과 성적 유희를 즐긴다. 아버지가 식물 인간인 소령은 어떤 출구도 없이 돈과 마약의 노리개로 변해간다. 요요 사내는 요요를 짓밟고도 돈만 집어던지고 가는 현일을 망치로 살해한다.
셋째 장: 모럴 헤저드
시간강사인 상우(차승원)는 해박하고 비판적인 강의로 유명하지만, 전임 자리를 따기 위해 안달하는 바람둥이다. 그의 아내(홍경연)는 매달리다 마침내 떠나고, 상우는 간통죄로 철창 신세를 진다.
마지막 장: Y2K
두섭은 투자자를 찾지 못해 만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천은 여대생에서 두 명의 여고생으로 노리개를 바꿨다. 소령은 마약에 빠져 완전히 망가졌고, 상우는 떠돌면서 잡문 써서 먹고 사는 신세로 전락했다. 두섭이 한강을 바라보며 서실장에게 새로운 시나리오를 이야기한다.
당시 송능한은 1997년 청룡영화제 각본상과 1998년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97년 데뷔작인 넘버 3를 통해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한국 영화계의 촉망받는 신예였다.
그러나 이 촉망받던 신예가 루시퍼 취급받으며 추락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두번째 작품인 세기말. 아래의 씨네21과의 불화 내용을 읽어보면 루시퍼 운운이 '''단순한 농담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
...의 정도. 송능한의 첫 작품인 넘버 3는 뚜렷하고 일관된 사회비판적 주제의식을 아주 매끄럽게 코미디로 승화시킨 작품이었다. 그런데 세기말의 경우, 그 사회비판적 주제의식은 여전한데 풍자는 싸그리 빼버린 작품. 간단히 말해 전작과 달리 매우 무거운 영화라는 것.
일단 제목은 왠지 병맛스럽다는 것이 당시나 지금이나 견해가 거의 일치한다(..). 왜냐면 이 영화가 개봉한 시점에는 세기말이라는 단어 자체가 클리셰 취급 당할 정도로 우릴대로 우려 먹었던 상황이다. 즉, '''개봉 당시에도 이 제목은 촌스러웠다.'''
다만 이 영화의 주제 의식, 즉 '''한국사회의 천민 자본주의와 속물근성, 부조리한 입만 산 지식인들, 가출해버린 양심'''은 당시에도 주효한 문제였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주효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즉,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시류에 영합하여 대목을 노린 영화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바로 이 점때문에 "세기말"이라는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즉, 영화가 그리고 있는 문제들은 "세기말"이라는 특정한 시대(당시에는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문제인데 이 문제들을 '세기말 문제'로 엮을 필요가 있는 것이냐는 것.
어쨌거나 대부분의 평론가들과 언론은 이 영화의 한결 같은 주제 의식과 그 표현이 대쪽 같음,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완성도 높다는 점을 어느 정도 평가해주었다. 심지어 이 영화를 까는 평론가들조차 그러한 부분들은 인정하였다. 아래에서 언급되겠지만, 이 영화를 까는 입장이었던 박평식조차,
그러니 간단히 말해 이 영화는, '''동감은 하는데 너무 직설적이다''' or '''뭔 말인지 알겠는데 이건 세기말이라서 문제가 되는게 아니잖아? 이런 문제들 너만 아는 게 아닌데, 지금 나를 가르치려는 거냐?'''라는 것. 김봉석의 경우, "야심에 비해 지나치게 축약된 1999년(1990년대)의 풍경"이라며 평가를 내렸다. ## 즉, 담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넘친 아쉬움이 있다는 것.
한편 인터뷰 형식으로 덧붙여진 '''결말(후일담)''' 부분에 대해서는 호오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대부분은 이 마지막 부분에 대해 그야말로 사족이라고 평가. 왜냐면, 영화 내내 신들린 듯이 까댄 탓에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마무리 지었으니 어이가 가출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때문에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조차 마무리 부분에 대해선 의견이 나뉘었다. 하지만, '너무 뻔한 결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감독의 진심이 드러난다'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흥행은....'''처절하게 망했다.''' 서울관객 수가 겨우 3만9천명. 이 수치는 감독의 전작인 넘버 3의 10분의 1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객은 넘버 3같은 미친듯한 코미디를 기대했는데, 막상 세기말은 신랄하고 삐딱한 정치도덕 교과서 같았기 때문. 비록 에로에로한 장면(..)이 가득하다지만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에로에로는 흥행에 도움이 되기보다 악재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데이트용으로 보기에도 민망하고 가족 단위로 관람할 확률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2차 시장에서도 역시 영 좋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비디오로 출시될 시점에 이미 대세는 웹하드와 와레즈로 상징되는 인터넷 다운로드 시대로 바뀌어 가던 참이기 때문. 즉, 대(大) 불법 다운로드의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볼 사람들은 다 보긴 봤다. 문제는, 공짜로 받아서 빨리 돌리기로 대부분의 장면을 스킵하며 에로에로만 찾아 봤다는 것(..).
위의 내용만이라면, 다소 아쉽지만 다음이 기대되는 작품 정도로 영화사에 남았을 것이나...
'''다음 따위는 없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뚜렷했다. 감독이 신나게 까댄 대상 중에 '''영화 평론가, 특히 씨네21의 별점 매기는 행태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정확하게는 영화 속의 인물인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속의 평론가에게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하였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까댄 감독과, 감독의 비판에 자신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별점과 20자평에서 3점 담합을 해버린 평론가들. 다만 감독의 입장에서 논한다면, 영화 속의 저 대사는 입만 살아 문화 권력으로 작용하려는 부조리한 한국 지식인들을 까는 과정 중에 도출된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송능한 본인은 이 영화 속에서 본인 스스로도 까는 대상으로 삼았다'''.[1]
사실 씨네21의 별점 시스템은 창간 당시부터 매우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당시 대부분의 별점 시스템은, 그 별점을 내린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유독 씨네21만 '꼴랑 20글자로 설명'해왔기 때문에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 사실 영화계 일부에선 송능한이 총대를 맸다며 통쾌해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 20자 별점 논란에 씨네21은 세기말에 대해 제대로 기사를 내는 것을 사실상 거부 내지 포기 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촉망받는 감독의 두번째 작품인데도 불구, 당시 나온 관련 기사는 단 셋. 당시 주연배우였던 이재은의 인터뷰, 음악을 담당한 신해철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당시 씨네21의 세기말에 대한 유일한 리뷰, 박평식의 까는 글이 전부였다. 당시 박평식의 리뷰 사실 박평식은 모두까기 답게 까긴 까면서도 이 영화의 잘된 점은 착실히 언급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실은 리뷰가 박평식의 리뷰였다는 것 자체가 씨네21의 세기말에 대한 대접이었다.'''
한편 별점이나 20자 평 비낫에서 한발 빗겨나간 평론가, 영화 전문지 , 다른 언론 등은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 영화를 평가했다. 대체적인 내용은 위의 언급한 내용과 비슷한 논조였다. 그러니까, '''뭔지 알겠는데 과하다. 아쉽다. 다음 영화가 기대된다'''라는 이야기. 물론 따지고 보면, 씨네21 20자평의 중평도 동일한 내용이었다. (괜찮은데) 아쉬운 점이 있다는 정도. 하지만 비야냥과 3점 담합이 문제였던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송능한은 평론가들과 싸운 탓에 신물이 나 이민을 가버렸다.....
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왜냐면 애초부터 송능한은 "관객에게 외면당한다면 감독으로서 진퇴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다." 라고 선언했었기 때문. 발언 당시에는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감독 본인은 진심이었다.''' 흥행이 몹시 저조하자 송능한은 정말로 이듬해 훌쩍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렸다.
이후에 벌어진 일도 그야말로 수수께끼. 캐나다로 간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 송능한이 돌아와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것도 송능한답게 '''<38광땡>'''이라는 쌈마이틱한 제목으로. 이데 대해 송능한은 "20세기는 신물난다. 이제 전망을 찾고 싶다. 이렇게 살면 근사하지 않겠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라는 포부를 밝혔고, 제작자인 이태원은 "송능한이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완성되는 대로 바로 촬영에 들어갈 것." 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이듬해도, 그 이듬해도 이 상태가 계속된 것. 즉, 영문은 모르겠으나 베이퍼웨어화 버린 것이다.
그러던 중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면서 시나리오보다 더 역동적이고 부패한(...) 한국 정치에 "현실이 내 상상력을 넘어선다"라며 다시 이민을 가버렸다고 한다. # 2004년 원래 각본가로 있었던 임권택 사단의 하류인생에 까메오를 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영화계를 떠났다.
비디오 대여점 등에서 에로 장르로 분류되어 여러 희생자(?)를 낸 영화라고 한다. 영화 자체는 완전하게 망했지만 이재은의 베드신이 등장해 노랑머리에 이어 일부 편집본이 인터넷 상에 공유되었던 영화 가운데 하나기도 하다. 숱한 시간이 흐른 뒤 영화 자체는 잊혀진 와중에도 영화 내의 정사 장면은 남성들 위주의 커뮤니티 등지에서 심심찮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차승원이 배우로서 처음 주목받은 작품이다. 물론 차승원이 이 작품 이전부터 슬슬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긴 했으나, 그저 모델 출신 초짜 배우나 예능인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열연 덕분에 영화계에서도 "어라? 차승원이 연기가 저 정도가 되네?!"로 인식이 확 달라졌으며, 주연 섭외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OST에 신해철이 참여했다. "내일로 가는문 pt1" # 뮤직비디오
1. 개요
1999년 12월 11일 개봉한 영화. 넘버 3의 감독이었던 송능한이 두번째로 만든 영화. 김갑수, 이재은, 차승원, 이호재 등이 주연하였다.
2. 줄거리
전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이며, 마지막 장은 이전 챕터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정리하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첫째 장: 모라토리엄
시나리오 작가 두섭(김갑수)은 멜로드라마 한 편을 거의 완성했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내용을 다 날려버리고, 그를 담당했던 영화사 서실장(류태호)은 해고당한다.
둘째 장: 무도덕
천(이호재)은 무식하고 천박한 졸부로 여대생 소령(이재은)과 원조교제를 즐긴다. 오렌지족인 천의 아들 현일도 친구 소개로 소령과 성적 유희를 즐긴다. 아버지가 식물 인간인 소령은 어떤 출구도 없이 돈과 마약의 노리개로 변해간다. 요요 사내는 요요를 짓밟고도 돈만 집어던지고 가는 현일을 망치로 살해한다.
셋째 장: 모럴 헤저드
시간강사인 상우(차승원)는 해박하고 비판적인 강의로 유명하지만, 전임 자리를 따기 위해 안달하는 바람둥이다. 그의 아내(홍경연)는 매달리다 마침내 떠나고, 상우는 간통죄로 철창 신세를 진다.
마지막 장: Y2K
두섭은 투자자를 찾지 못해 만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천은 여대생에서 두 명의 여고생으로 노리개를 바꿨다. 소령은 마약에 빠져 완전히 망가졌고, 상우는 떠돌면서 잡문 써서 먹고 사는 신세로 전락했다. 두섭이 한강을 바라보며 서실장에게 새로운 시나리오를 이야기한다.
3. 평가와 흥행
당시 송능한은 1997년 청룡영화제 각본상과 1998년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97년 데뷔작인 넘버 3를 통해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한국 영화계의 촉망받는 신예였다.
그러나 이 촉망받던 신예가 루시퍼 취급받으며 추락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두번째 작품인 세기말. 아래의 씨네21과의 불화 내용을 읽어보면 루시퍼 운운이 '''단순한 농담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
...의 정도. 송능한의 첫 작품인 넘버 3는 뚜렷하고 일관된 사회비판적 주제의식을 아주 매끄럽게 코미디로 승화시킨 작품이었다. 그런데 세기말의 경우, 그 사회비판적 주제의식은 여전한데 풍자는 싸그리 빼버린 작품. 간단히 말해 전작과 달리 매우 무거운 영화라는 것.
일단 제목은 왠지 병맛스럽다는 것이 당시나 지금이나 견해가 거의 일치한다(..). 왜냐면 이 영화가 개봉한 시점에는 세기말이라는 단어 자체가 클리셰 취급 당할 정도로 우릴대로 우려 먹었던 상황이다. 즉, '''개봉 당시에도 이 제목은 촌스러웠다.'''
다만 이 영화의 주제 의식, 즉 '''한국사회의 천민 자본주의와 속물근성, 부조리한 입만 산 지식인들, 가출해버린 양심'''은 당시에도 주효한 문제였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주효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즉,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시류에 영합하여 대목을 노린 영화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바로 이 점때문에 "세기말"이라는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즉, 영화가 그리고 있는 문제들은 "세기말"이라는 특정한 시대(당시에는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문제인데 이 문제들을 '세기말 문제'로 엮을 필요가 있는 것이냐는 것.
어쨌거나 대부분의 평론가들과 언론은 이 영화의 한결 같은 주제 의식과 그 표현이 대쪽 같음,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완성도 높다는 점을 어느 정도 평가해주었다. 심지어 이 영화를 까는 평론가들조차 그러한 부분들은 인정하였다. 아래에서 언급되겠지만, 이 영화를 까는 입장이었던 박평식조차,
>신파극 수준의 상투성과 작위성이 드러나는데도 이 단락이 한국사회의 풍경으로 읽히는 까닭은 구성이 정교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수표 한장이 돌고 도는 과정을 통해 여대생의 닳아지는 육신과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표현하는 수법은 탁월하다. 졸부 아들을 쫓아가 망치로 내려치는 요요장수의 안석환 연기는 관객 등줄기로 고압 전류를 흐르게 하고, 졸부 역의 이호재가 혼잣말로 오랫동안 주절거리는 장면은 먹은 게 되올라올 정도로 역겹고 징그럽다.
> ..장면마다 천민성으로 곪아가는 지금 이곳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서려 있다.
>..용맹스런 송능한은 자세를 낮출 필요가 있다. 그의 칼날 같은 언어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고 평하였다.> ..장면마다 천민성으로 곪아가는 지금 이곳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서려 있다.
>..용맹스런 송능한은 자세를 낮출 필요가 있다. 그의 칼날 같은 언어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그러니 간단히 말해 이 영화는, '''동감은 하는데 너무 직설적이다''' or '''뭔 말인지 알겠는데 이건 세기말이라서 문제가 되는게 아니잖아? 이런 문제들 너만 아는 게 아닌데, 지금 나를 가르치려는 거냐?'''라는 것. 김봉석의 경우, "야심에 비해 지나치게 축약된 1999년(1990년대)의 풍경"이라며 평가를 내렸다. ## 즉, 담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넘친 아쉬움이 있다는 것.
한편 인터뷰 형식으로 덧붙여진 '''결말(후일담)''' 부분에 대해서는 호오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대부분은 이 마지막 부분에 대해 그야말로 사족이라고 평가. 왜냐면, 영화 내내 신들린 듯이 까댄 탓에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마무리 지었으니 어이가 가출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때문에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조차 마무리 부분에 대해선 의견이 나뉘었다. 하지만, '너무 뻔한 결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감독의 진심이 드러난다'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흥행은....'''처절하게 망했다.''' 서울관객 수가 겨우 3만9천명. 이 수치는 감독의 전작인 넘버 3의 10분의 1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객은 넘버 3같은 미친듯한 코미디를 기대했는데, 막상 세기말은 신랄하고 삐딱한 정치도덕 교과서 같았기 때문. 비록 에로에로한 장면(..)이 가득하다지만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에로에로는 흥행에 도움이 되기보다 악재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데이트용으로 보기에도 민망하고 가족 단위로 관람할 확률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2차 시장에서도 역시 영 좋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비디오로 출시될 시점에 이미 대세는 웹하드와 와레즈로 상징되는 인터넷 다운로드 시대로 바뀌어 가던 참이기 때문. 즉, 대(大) 불법 다운로드의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볼 사람들은 다 보긴 봤다. 문제는, 공짜로 받아서 빨리 돌리기로 대부분의 장면을 스킵하며 에로에로만 찾아 봤다는 것(..).
4. 감독과 씨네21 평론가들의 불화
위의 내용만이라면, 다소 아쉽지만 다음이 기대되는 작품 정도로 영화사에 남았을 것이나...
'''다음 따위는 없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뚜렷했다. 감독이 신나게 까댄 대상 중에 '''영화 평론가, 특히 씨네21의 별점 매기는 행태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정확하게는 영화 속의 인물인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속의 평론가에게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하였다.
> "자네는 자네 마누라한테도 별을 주고 그러나? 마누라 얼굴은 두개 반, 젖퉁이는 별 세개.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신중해야지. 영화를 밥그릇으로 보니까 함부로 별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천박한 짓이야. 그런 짓 하지 마."
> "20자평이라면서 20자도 못 지키는 인간들.."
당연하지만, 씨네21에서 별점과 20자 평을 메겨 오던 평론가들이 모두 발끈하여 영화에 별점을 메기는 것을 보이콧해버렸다. '''전원이 일치단결하여 별 셋을 줘버린 것.''' 보이콧인데 0점도 아니고 1점도 아닌 3점을 준 까닭이 무서운데, 0점이나 1점은 오히려 사람들이 흥미와 관심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난하고 평범한 점수를 메겨 사람들이 보이콧 행위 자체를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20자평의 내용들은 아래와 같았다.> "20자평이라면서 20자도 못 지키는 인간들.."
>유지나 "목에 힘을 빼면 더 멋있었을걸(글자수 세지 말 것)"
사실 유지나의 평은 정상적이다. 단지 '글자수' 운운을 들먹여 한방 멕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심영섭 "정면승부할 줄 알았더니 막판에 꼬리를 내리네"
심영섭은 이 영화의 마지막을 대놓고 비판했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까는 것인지 비평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조차 없었다.>박평식 "세상은 시궁창, 나는 가련하고 당신들은 비열하다"
박평식은 박평식이었다(..).>김영진 "20자평을 거부할 만한 자질이 있는 영화"
김영진은 유일하게 호평했다. 하지만 호평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별 세개만을 줬다.'''>강한섭 "20자평은 세기말의 타락이 아니라 세기말적 유머입니다"
강한섭은 말꼬리 잡기를 시전했다(...)불쾌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까댄 감독과, 감독의 비판에 자신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별점과 20자평에서 3점 담합을 해버린 평론가들. 다만 감독의 입장에서 논한다면, 영화 속의 저 대사는 입만 살아 문화 권력으로 작용하려는 부조리한 한국 지식인들을 까는 과정 중에 도출된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송능한 본인은 이 영화 속에서 본인 스스로도 까는 대상으로 삼았다'''.[1]
사실 씨네21의 별점 시스템은 창간 당시부터 매우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당시 대부분의 별점 시스템은, 그 별점을 내린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유독 씨네21만 '꼴랑 20글자로 설명'해왔기 때문에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 사실 영화계 일부에선 송능한이 총대를 맸다며 통쾌해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 20자 별점 논란에 씨네21은 세기말에 대해 제대로 기사를 내는 것을 사실상 거부 내지 포기 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촉망받는 감독의 두번째 작품인데도 불구, 당시 나온 관련 기사는 단 셋. 당시 주연배우였던 이재은의 인터뷰, 음악을 담당한 신해철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당시 씨네21의 세기말에 대한 유일한 리뷰, 박평식의 까는 글이 전부였다. 당시 박평식의 리뷰 사실 박평식은 모두까기 답게 까긴 까면서도 이 영화의 잘된 점은 착실히 언급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실은 리뷰가 박평식의 리뷰였다는 것 자체가 씨네21의 세기말에 대한 대접이었다.'''
한편 별점이나 20자 평 비낫에서 한발 빗겨나간 평론가, 영화 전문지 , 다른 언론 등은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 영화를 평가했다. 대체적인 내용은 위의 언급한 내용과 비슷한 논조였다. 그러니까, '''뭔지 알겠는데 과하다. 아쉽다. 다음 영화가 기대된다'''라는 이야기. 물론 따지고 보면, 씨네21 20자평의 중평도 동일한 내용이었다. (괜찮은데) 아쉬운 점이 있다는 정도. 하지만 비야냥과 3점 담합이 문제였던 것이다.
5. 소동의 결말
소문에 따르면, 송능한은 평론가들과 싸운 탓에 신물이 나 이민을 가버렸다.....
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왜냐면 애초부터 송능한은 "관객에게 외면당한다면 감독으로서 진퇴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다." 라고 선언했었기 때문. 발언 당시에는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감독 본인은 진심이었다.''' 흥행이 몹시 저조하자 송능한은 정말로 이듬해 훌쩍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렸다.
이후에 벌어진 일도 그야말로 수수께끼. 캐나다로 간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 송능한이 돌아와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것도 송능한답게 '''<38광땡>'''이라는 쌈마이틱한 제목으로. 이데 대해 송능한은 "20세기는 신물난다. 이제 전망을 찾고 싶다. 이렇게 살면 근사하지 않겠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라는 포부를 밝혔고, 제작자인 이태원은 "송능한이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완성되는 대로 바로 촬영에 들어갈 것." 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이듬해도, 그 이듬해도 이 상태가 계속된 것. 즉, 영문은 모르겠으나 베이퍼웨어화 버린 것이다.
그러던 중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면서 시나리오보다 더 역동적이고 부패한(...) 한국 정치에 "현실이 내 상상력을 넘어선다"라며 다시 이민을 가버렸다고 한다. # 2004년 원래 각본가로 있었던 임권택 사단의 하류인생에 까메오를 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영화계를 떠났다.
6. 기타
비디오 대여점 등에서 에로 장르로 분류되어 여러 희생자(?)를 낸 영화라고 한다. 영화 자체는 완전하게 망했지만 이재은의 베드신이 등장해 노랑머리에 이어 일부 편집본이 인터넷 상에 공유되었던 영화 가운데 하나기도 하다. 숱한 시간이 흐른 뒤 영화 자체는 잊혀진 와중에도 영화 내의 정사 장면은 남성들 위주의 커뮤니티 등지에서 심심찮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차승원이 배우로서 처음 주목받은 작품이다. 물론 차승원이 이 작품 이전부터 슬슬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긴 했으나, 그저 모델 출신 초짜 배우나 예능인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열연 덕분에 영화계에서도 "어라? 차승원이 연기가 저 정도가 되네?!"로 인식이 확 달라졌으며, 주연 섭외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OST에 신해철이 참여했다. "내일로 가는문 pt1" # 뮤직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