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와 더불어

 

영어 제목 - Reminiscences: With the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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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통일뉴스.
1. 개요
2. 상세


1. 개요


1992년 4월~1998년 7월에 쓰여진 김일성의 회고록. 김일성 본인이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 그리고 항일운동 까지의 자신의 인생사를 구술한 책이다. 김일성 생전에 발간된 6권의 '항일혁명편'과 사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김일성의 유고들과 각종 자료들을 기초로 발간한 2권의 '계승본'까지 총 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중앙TV 등의 북한 방송에선 이 책의 본문의 일부를 읽어주기도 한다. 여담으로 책의 제목이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 있다.

2. 상세


다만 이런 류의 책이 으레히 그렇듯 상당한 과장과 윤색, 날조가 들어가 있어서 객관성은 상당히 의심받는다. 더구나 김일성을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하면서 오직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에 정권의 정통성을 기대고 있는 북한에서 펴낸 책이니 그 뻥튀기와 왜곡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일부에선 아예 불쏘시개라고 폄하할 정도. 특히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회고 부분은 아래에도 서술되있지만, 한국, 일본은 물론 중국 공산당 쪽 기록과도 대부분 맞지 않는다.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그냥 '''양판소 무협지''' 혹은 '''군대 무용담''' 모음집 읽는 기분으로 볼 것을 권한다.
그래도 김일성의 집안 이야기나 북한의 주요 인사, 사건들에 대한 김일성의 생각들이 담겨 있어서 이런 부분을 연구할 때는 참고 자료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선 히틀러나의 투쟁과 공통점이 있다. 북한 정권을 수립하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김일성 집권기의 기록을 알고자 한다면 다른 자료를 찾아야 한다.
김일성 사후 주사파 파동이 불어닥친 1994년에 도서출판 가서원 측이 이 <세기와 더불어>를 우리나라에 만들어 팔려고 했다가 8월 8일에 출판사와 인쇄소가 압수수색되고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다. 현재 이책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이적표현물로 규정되어서 시중에서 구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책의 내용을 찾는다면 국립중앙도서관통일부 북한자료센터를 찾아서 열람하는 방법이 있다.
  • 제1권 - 김일성의 어린 시절부터 1930년에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의 인생이 서술돼 있다. 이 책에서 그가 그리스도교 신자의 가정에서 자랐다는 게 밝혀진다.
  • 제2권 - 1930~1933년까지의 일을 회상한다. 그를 돌봐 주었던 손정도 목사가 얼마나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는가를 서술하였다. 그것 때문에 정은 있었는지 미국에 살던 손정도의 차남 손원태 박사를 초대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손정도 목사의 장남 손원일 제독대한민국 해군의 창설자로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과 적대했다. 그의 원래 이름이 김성주이며, 그의 선배가 쓴 <조선의 별> 이라는 시에 영향을 받아서 김일성이라고 개명했다고 말한다.
  • 제3권 - 가장 긴 책이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의 독립운동을 한 걸 회고한다. 당시 한국 독립군 게릴라, 중국 빨치산들과의 관계를 서술하였다. 자신의 독립운동 당시의 전투를 언급한 것들이 있는데, 일본 공식 문헌에 있는 것과 없는 것도 있다. 김일성이 만주에 있는 반일 인민유격대를 통합하여 1934년 3월에서 5월까지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고 하였고, 조선인민혁명군이 나중에 동북항일연군에 제2군이 되었다고 주작한다.[1]
  • 제4권 - 1935년 2월부터 1936년 5월까지 항일전투 기록을 담고 있다. 중국인한국인인종차별 문제를 서술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김일성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대황위회의 기록에는 김일성의 존재가 없다. 또한, 이때는 김일성의 만주항일무장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시기인데, 자신이 조국광복회를 조선 국내와 만주에 창설하였다고 하는데, 조국광복회에 대하여는 많은 역사적 문헌들이 있고, 이 회의 본명은 ‘재만한인조국광복회’이며, 창설자와 조직망도 잘 조사되어 있다. 여기에도 김일성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 제5권 - 1936년 5월부터 1937년 3월까지 김일성이 일본군과 싸운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여기에 몇몇 빨치산 인물들이 언급된다.[2] 그리고 김일성은 남만에서의 싸움이 자랑스러웠다고 썼다. 이때 김일성이 우리말로 <삼일월간>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없다. 자신과 천도교와의 관련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일성은 자기가 항일운동에 유용하게 이용한 조국광복회와의 관련을 설명하면서 천도교를 민족종교라고 주장하며, 끝으로 김일성은 자기들의 투쟁이 인민들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운동이라고 평가하고, 인민과의 유대성을 강조하면서 제5권을 마친다.
  • 제6권 - 이때부터 김일성이 사망 뒤에 책들이 나온다. 그가 쓴 유고를 모아 사망한 후에 출판했다는 추정이 가능, 시기적으로는 1937년 3월부터 11월까지에 일어난 일을 김일성이 회고했던 것이다. 북한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회상이 적혀있다. 5권까지는 생소했던 김일성의 별칭 김사령도 나오고, 김일성과는 달리 북만에서 활동했던 김책이 김일성과 함께 "따바리잠"[3]을 잤다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특히 김일성이 김일을 회고하면서 그가 죽을 때 김정일을 잘 모시라는 말을 했다는 것까지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아직 출생하지도 않은 김정일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 제7권 - 1937년 11월부터 1940년 3월까지 김일성의 만주에서 한 마지막 항일운동을 회고하고 있다. 열하 원정도 얘기하고, 양징유를 만났던 것도 회고한다. 여기서 제1차 고난의 행군이 언급된다.
  • 제8권 - 1940년 3월부터 1945년까지 김일성의 활동이 회고된다.
2020년 7월 후속편인 <민족과 더불어>가 출간되었다. # 해방 후부터 사망 전까지 김일성의 행적을 다뤘다고 하지만 늘 그렇듯 말도 안되는 허위와 과장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다.

[1] 북한 자료 외에 일본 자료나 중국공산당 자료에는 이러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기록은 없다. 또한, 동북항일연군의 총사령관은 중국공산당의 양징유이고, 제2군 군장도 중국인 왕더타이였다. 김일성은 이 당시 제2군 제6사의 사장으로 싸우고 있었다.[2] 이들 중 몇 명은 북한에서 중요한 요직에 앉은 이들의 부인 자리에 앉게 된다.[3] 한 장의 모포를 놓고 여럿이 한 덩어리 가 되어 자는 것. 문화어로 "똬리잠"이라 하며 "따바리잠"는 이의 준말. 출처 : 현대조선말사전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