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수

 


1. 밴드 더 바이퍼스의 리드 기타리스트
2. 前 야구선수


1. 밴드 더 바이퍼스의 리드 기타리스트



'''본명'''
손경수
'''출생'''
1995년 2월 17일 (29세), 서울특별시
'''신체'''
171cm, 80kg, B형
'''학력'''
한국교원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재학
'''소속그룹'''
더 바이퍼스
'''포지션'''
'''리드기타'''

2. 前 야구선수




임선동, 조성민과 함께 73년생, 또는 92학번 투수 트로이카로 불리던 바로 그 선수이다. 1973년에는 역대급으로 많은 한국야구 인재들이 탄생했는데, 이들의 이름만 적어봐도 박찬호[1], 조성민, 임선동, 박재홍, 차명주, 정민철, 염종석, 손혁, 송지만, 홍원기, 전병호, 이영우, 김종국 등 엄청나다. 이렇게 많은 역대급 인재풀에서도 고교 및 대학시절 초반까지 당당하게 투수 빅3안에 이름을 올렸던 선수.
다만 조성민, 임선동을 강타한 1991년 스카우트 파동을 그도 피해가지 못했다. 당시 KBO리그에는 "고졸 연고 자유계약" 제도가 존재했는데, [2] 연고지 출신 고졸 선수는 별도 지명 절차 없이 자유계약으로 입단시킬 수 있었다.[3] 이 해 서울권 대졸 선수 중에는 확실한 1차지명 후보가 없었던 터라[4] 당해 1차지명 1순위 픽을 가졌던 LG 입장에서는 일단 최대어인 임선동 또는 조성민을 지명하고, 2순위였던 OB가 나머지 한 명을 지명하면, 손경수까지도 경쟁을 통해 데려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고 실제로 LG가 임선동을 지명하자 2순위였던 OB입장에서는 난리가 났는데,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손경수와 임선동은 고졸 입단 가능성이 남아있었고 조성민은 대학행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조성민을 지명했다가 대학에 가버리면 LG는 1차급 두 명, OB는 빈 손이 되는 최악의 상황도 가능했던 것. 그래서 리스크를 감수하느니 그냥 손경수를 지명하기로 한 것.
그렇게 OB베어스로부터 1차 지명을 받은 것은 좋았는데, 정작 그역시 OB에 입단하지 않고 홍익대학교로 가 버렸다. 당시 OB가 제시한 계약금이 불만족스러웠던 반면 홍대에서는 넉넉한 장학금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손경수는 기량은 쓸만했지만 집안 사정이 너무 나빴고 자기관리 면에서도 의문부호를 달고 있었다. 대학 1학년 때에는 그래도 국제대회에도 나서는 등 괜찮은 활약을 펼쳤지만, 2학년이 되고부터는 잦은 개인 문제를 일으키며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후 부친의 교통사고와 맞물려 집안 사정이 더욱 심각해지자 어쩔 수 없이 홍대를 중퇴하고 OB에 입단했다. 이 때가 1993년 12월. 계약금 7800만원, 연봉 1200만원의 조건으로 그의 고교시절 명성을 감안하면 평범한 계약이었지만 손경수 입장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래도 프로행에는 성공했으니 OB에서 마음을 다잡고 기량을 갈고 닦았으면 기회가 남아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평이 좋지 않았던 자기 관리가 다시 한 번 그의 발목을 잡고 만다. 간염이 찾아온 것. 그리고 교통사고로 몸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가 끝내 수술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홍대시절에 범했던 팀 이탈 등의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고 만다. 결국 1군 데뷔조차 하지 못하고 1995년 말 임의탈퇴로 팀을 떠난 뒤 다시는 프로야구 무대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자영업 등을 하면서 지역 소규모 야구팀에서 인스트럭터 노릇을 간혹 하기도 했으나 2016년 결국 지병인 간염으로 사망하였다. 배를 탔다거나 운수업에 종사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박동희(기자)가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작성한 글에서 나온 얘기로 보인다.
185cm/85kg이라는 2020년대 기준으로 봐도 좋은 하드웨어와 140km대 후반까지 나오던 구속 등 야구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소질을 타고났지만 가정사 불운과 자기관리 실패로 소리없이 사라진 비운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1] 대학시절에는 손경수를 누르고 기존의 임선동, 조성민과 함께 빅3으로 불리기 시작한다.[2] 이후 도입되는 고졸 우선지명과는 다른 것이다.[3] 대신 입단 교섭 기간을 11월 1일 ~ 15일로 제한했다.[4] 동봉철, 차명석, 임수혁, 박철홍 등이 있었지만 1차지명감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