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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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仁鎬
1927년 5월 6일 ~ 2016년 7월 16일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한국 트로트 1세대의 네임드격 인물'''.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자유당 후보인 이승만에 맞서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같은 해 5월 5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자 '''국민은 이 노래를 추모곡처럼 애창했다.''' 당시 이 노래가 '''민주당 당가로도 활용'''되고 '''노랫말을 신익희 선생의 부인이 썼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노래를 부른 손인호와 박춘석 씨, 작사가 손로원씨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때 경찰이 노래를 만든 배경 등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이 곡이 '''신익희 사망 3개월 전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혐의'를 벗고 풀려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사관 왈,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어떤 감정으로 불렀느냐"'''고 묻자, 손인호는 '''"가수는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지, 감정없이 노래 부르면 그건 가수가 아니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孫仁鎬
1927년 5월 6일 ~ 2016년 7월 16일
1. 소개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한국 트로트 1세대의 네임드격 인물'''.
2. 인물 정보
- 생몰년도 : 1927년 5월 6일 ~ 2016년 7월 16일
- 본명 : 손효찬(孫孝贊)
- 출생지 : 평안북도 창성군 창성면#
- 가족 : 아버지(손경룡), 배우자 이선자, 아들 손동준(손용식), 손종식, 손태식, 딸 손경주
3. 생애
- 어릴 적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기자 중국 지린성 창춘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 해방 후 귀국하였고,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생활을 했고, 6.25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 한국전쟁 당시에는 군 예대에 입대하여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 이후 그는 신세기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한많은 대동강> ,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남행열차>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 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작업을 했으며, 현재 그는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 2016년 7월 16일, 지병인 간경화로 오전 6시 39분에 강남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89세.
- 영화녹음 주요 작품
4. 대표적인 곡
- 한 많은 대동강 - 당시에 수많은 실향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곡으로 유명한 곡이다.
- 비 내리는 호남선
- 경원선 기적소리
- 해운대 엘레지 - 해운대 백사장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짝사랑
- 물새야 왜 우느냐
- 나는 울었네 - 정식 데뷔곡
- 하룻밤 풋사랑
- 울어라 기타줄아 - 57년 음반 최고판매량 기록
- 청춘등대
- 함경도 사나이 - 가수 데뷔전 취입곡(원곡자 나화랑)
- 동백꽃 일기
- 사랑찾아 칠백리
- 촉석루의 하룻밤
- 진주는 천리길 - 영화 " 원철의 노래"의 주제곡
- 남원땅에 잠들었네 - 김주열 열사를 기리는 곡으로 유명하다.
4.1. "비 내리는 호남선"의 일화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자유당 후보인 이승만에 맞서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같은 해 5월 5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자 '''국민은 이 노래를 추모곡처럼 애창했다.''' 당시 이 노래가 '''민주당 당가로도 활용'''되고 '''노랫말을 신익희 선생의 부인이 썼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노래를 부른 손인호와 박춘석 씨, 작사가 손로원씨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때 경찰이 노래를 만든 배경 등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이 곡이 '''신익희 사망 3개월 전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혐의'를 벗고 풀려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사관 왈,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어떤 감정으로 불렀느냐"'''고 묻자, 손인호는 '''"가수는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지, 감정없이 노래 부르면 그건 가수가 아니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5. 여담
- 송해 선생과 동갑이었고, 서로 고향이 이북이었다는것이 공통점. 다만 손인호 선생은 평안북도, 송해 선생은 황해도 출신이다.
- 김영삼 전 대한민국 대통령과도 동갑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손인호 선생보다 약 8개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 영화녹음기사 이경순씨(한양 녹음실 대표)가 처남이다.
- 1950~60년대에 명곡으로 히트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방송무대에는 한번도 출연하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의 원조로 불렸었는데, 2001년 6월, KBS1 가요무대에 74세의 나이에 첫 출연하였고, 어느날에는 아들 손동준씨와 가요무대에 같이 출연해 "비 내리는 호남선"을 같이 불렀다.
- 종로구 명륜동 1가 33 - 87에서 20년간 거주하였고, 이후 강남구 역삼동 선릉 부근에서 39년간 살다가 별세하였다.
- 동화경모공원(이북 5도민 묘원/파주 통일 동산 부근)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