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도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송상도'''
'''宋相燾'''

[image]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야성 송씨[1]
'''자'''
성소(聖韶)
'''호'''
기려자(騎驢子)·미헌(眉軒)·연파(蓮坡)
'''출생'''
1871년 4월 12일
경상도 영천군 봉향면 광승리
(현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 광승마을)[2]
'''사망'''
1947년 4월 15일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3. 『기려수필(騎驢隨筆)』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유학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송상도는 1871년(고종 8) 4월 12일 경상도 영천군 봉향면 광승리(현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 광승마을)에서 아버지 송학영(宋學永)과 어머니 박재천(朴齋天)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수학하며 권상익·송준필·김창숙 등과 교유하였다. 또 당대의 유학자로 명망 있던 곽종석·전우 등을 찾아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그는 경전학보다는 역사학에 깊은 관심을 두어, 일찍부터 중국 역사 서적을 탐독하였고 조선왕조사 편찬에도 뜻을 두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명나라 멸망 후 나귀 한 필을 타고 중국 전역을 돌며 충신들의 행적을 찾아 기록했던 기려도사(騎驢道士)[3]를 본받아, 자신도 스스로 호를 '기려자(騎驢子)라고 짓고 우리나라 팔도의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찾아 사적을 편찬하기로 했다. 이에 그는 1910년부터 1945년 8.15 광복 때까지 35년간 전국을 도보로 유랑하며 그들의 유족 및 친지를 방문하며 행적을 찾고 조사하였으며, 사건 당시의 신문·잡지 등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엮어 광복 후인 1946년 12월 26일 『기려수필(騎驢隨筆)』 5책을 완성하였다.
이후 해외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의 행적도 수집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7년 4월 15일 별세하였다.
198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3. 『기려수필(騎驢隨筆)』


[image]
송상도가 조선 말기부터 1945년 8.15 광복 때까지의 애국지사들의 사적에 관해 기록한 책으로, 1866년 병인양요 때 자결·순국한 이시원(李是遠)[4]을 시작으로 개항기 의병전쟁, 안중근·김지섭·윤봉길 등 독립운동가 239명의 행적, 대한민국 임시정부, 고려혁명당사건, 조선공산당 사건, 6.10 만세 운동,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등을 유학자 출신인 저자의 유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여 서술하였다.
다만, 1945년까지의 상황을 썼다고 하나 국내에서 조사한 것이기에 일제의 통제가 극심하였던 1930~1940년대 민족말살통치 시기의 사실 및 해외의 독립운동에 관해서는 소상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권상익이 서문을 지었으며, 책의 안전을 위해 원고를 보관하기도 했다.
이 책은 1910년 집필을 시작하여, 1930년 초고가 완성되었고, 1946년 12월 26일 5책으로 편찬되었는데, 송상도가 별세한 후 5권 5책 외에 일부 미정리된 원고가 남아 있던 것을 그의 장남인 송인혁(宋仁赫)이 그 원본을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 제공하여 『한국사료총서(韓國史料叢書)』제2권 "기려수필"로 출판되었다.

[1] 정랑공파 26세.[2] 인근의 문정동과 함께 야성 송씨 집성촌이다.[3] 騎(말 탈 기), 驢(당나귀 려), 道(길 도), 士(선비 사)[4] 양명학이건창의 조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