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나히코나

 

1. 개요
2. 고서의 묘사
2.1. 고사기에서
2.2. 일본서기에서
2.3. 풍토기에서
2.4. 몬토쿠천황실록에서
3. 상세
4. 매체에서
4.1. 여신전생 시리즈
4.2. 보루토에 나오는 오오츠츠키 잇시키의 동술

스쿠나비코나(スクナビコナ), 또는 스쿠나히코나(スクナヒコナ)라고 쓴다. 한자표기는 고서마다 달라서 고사기에서는 少名毘古那, 일본서기에서는 少彦名라고 하고, 다른 고서에서는 또 다르게 쓴다.

1. 개요


스쿠나히코나는 고사기일본서기에 기록된 일본의 신으로, 오오쿠니누시의 쿠니즈쿠리(국토 조성)에 참여했다고 한다. 신화나 민속에서 오오쿠니누시와 스쿠나히코나는 거의 한 쌍으로 붙어 다닌다.
일본서기에서는 타카미무스비의 아들, 고사기에서는 카미무스비의 아들이라고 묘사한다.

2. 고서의 묘사



2.1. 고사기에서


고사기에서는 스쿠나히코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오오쿠니누시가 이즈모의 미호곶(美保岬)[1]에 있을 때, 스쿠나히코나가 나방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박주가리 배[2]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다. 오오쿠니누시가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스쿠나히코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오쿠니누시가 다른 신들에게 저 신을 아는지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때 두꺼비가 나와서 "쿠에비코(久延毘古)라면 틀림없이 알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고사기에 따르면 쿠에비코는 산의 밭에 세운 허수아비를 뜻한다.) [3]
오오쿠니누시가 이 말을 듣고 쿠에비코를 불러 물어보았더니 "저 신은 카미무스비(神産巣日) 신의 아들 스쿠나히코나(少名毘古那)가 틀림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오오쿠니누시가 카미무스히에게 물어보니 "내 자식이 맞다. 허다한 자식들 중에서도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아이이다. 그리고 너(스쿠나히코나)는 아시하라시코노오(葦原色許男: 오오쿠니누시)[4]와 형제가 되어 나라를 만드는 데 노력하도록 해라."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두 신은 힘을 합쳐 나라를 만드는 데 열중했지만, 얼마 후에 스쿠나히코나는 토코요(尙世)로 건너갔다.

2.2. 일본서기에서


일본서기 권1 제8단 일서6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오오쿠니누시가 나라를 평정하고 이즈모(出雲) 이사사(五十狹狹) 바닷가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바다에서 문뜩 목소리가 들렸다.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자그만 남자가 박주가리[5] 껍질로 만든 배를 타고 굴뚝새[6] 깃털로 지은 옷을 입고 파도 위로 둥둥 떠내려왔다. 오오쿠니누시가 손바닥에 올려놓고 장난을 치자 뛰어올라 뺨을 깨물었다. 오오쿠니누시가 하늘에 사자를 보내어 물어보니, 타카미무스비(高皇産霊) 신은 "내가 자식을 낳아 1500여 위나 되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성격이 나빠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떨어진 것은 그 아이였음이 분명하니 사랑으로 길러주길 바란다." 하였다. 이 신이 스쿠나히코나(少彦名)이다.
두 신이 협력하여 천하를 다스리고 사람들과 가축을 위해 병을 낫우는 법이나 곤충 따위로부터 해를 입지 않는 주술을 만들었으니, 지금까지도 백성들이 그 은혜를 입었다. 옛날 오오쿠니누시가 스쿠나히코나에게 "우리들이 만든 나라가 정말 잘 만들어졌을까?" 하고 묻자 스쿠나히코나는 "잘된 것도, 잘 안 된 것도 있지." 하고 대답했다. 이후 스쿠나히코나는 쿠마노(熊野)의 바닷가로 가서 토코요(尙世)로 떠났다. 아와시마섬(淡嶋)[7]에 가서 의 줄기에 올라가 그 탄력으로 토코요에 갔다고도 한다.
또한 일본서기 권9 신공기에는 진구 황후 섭정 13년(213?)에 태자(미래의 오진 덴노)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 신하들에게 술을 권하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虛能彌企破, 和餓彌企那羅儒, 區之能伽彌, 等虛豫珥伊麻輸, 伊破多多須, 周玖那彌伽未能, 等豫保枳, 保枳茂苔陪之, 訶武保枳, 保枳玖流保之, 摩菟利虛辭彌企層, 阿佐孺塢齊, 佐佐.

이 술은 내가 빚은 술이 아니라, 술을 주관하시며 토코요(尙世)에서 돌(石)로 서 계시는 스쿠나히코나 신께서 미친 듯이 춤추고 도시면서 빚어 헌상하신 술입니다. 남기지 말고 마시세요, 자아.


2.3. 풍토기에서


8세기에 야마토 조정에서 명하여 각 율령국의 풍습이나 지리를 기록한 풍토기(風土記)를 작성했는데, 그중 일부가 현존한다. 풍토기에도 스쿠나히코나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천하를 만드신 큰신 오나무치와 스쿠나히코나께서 천하를 돌아다니실 때 벼의 씨앗(種)이 떨어졌다. 그래서 타네(種)라고 한다. (이즈모국 풍토기)

오나무치와 스쿠나히코나 두 신이 가미사키군(神前郡)의 하니오카리(埴丘里) 이쿠노(生野) 봉에 오셔서 이 산을 멀리서 보시며 말씀하셨다. "이 산에는 볍씨를 두어야겠다." 그래서 볍씨를 보내시어 산 정상에 쌓으니, 산도 벼를 쌓은 듯이 보였다. 그래서 이름하여 이나타네산(稻種山)이라 하였다. (하리마국 풍토기)

옛날 오나무치와 스쿠나히코나께서 서로 다투기를 '점토를 등에 지고 멀리 가기와 대변을 보지 않고 멀리 가기 중 어느 쪽이 더 멀리갈 수 있을까.' 하였다. 오나무치께서 "나는 대변을 보지 않고 가고자 한다." 하시자 스쿠나히코나께서는 "나는 점토를 지고 가보겠다." 하셨다. 며칠이 지나자 오나무치께서 "난 더 이상 못 참겠다." 하시며 그 자리에 앉아 대변을 보시자, 스쿠나히코나께서도 웃으시며 "그럴 줄 알았지. 나도 힘들었다." 하시며 지고 있던 점토를 언덕에 던져버리셨다. 이때부터 이 언덕을 하니오카(堲岡)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대변을 보실 때 작은 대나무가 솟아올라 입으셨던 옷에 묻으니 하지카촌(波自賀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리마국 풍토기)

오나무치께서 후회하도록 부끄러워하시며 기절한 스쿠나히코나를 다시 살리시고자[8]

오키다(大分) 하야미(速見)의 온천 물을 지하수로로 끌어와 온천욕을 시키시자, 스쿠나히코나께서 잠시 뒤 살아나셔서 "잠깐 잤구나!" 하시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시고 발로 밟으신 흔적이 지금도 온천 속 돌에 남았다. 본디 온천이 귀하고도 신비한 것은 옛 신들의 시절만이 아니라 지금도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의 병을 낫우고 오래 살려는 중요한 약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요국 풍토기)


2.4. 몬토쿠천황실록에서


<몬토쿠 천황실록(文德天皇實錄)> 사이코(斉衡) 3년(856) 음력 12월 부분에 이런 기록이 있다.

히타치국(常陸国)에서 상소를 올렸다. 카시마군(鹿島郡) 오아라이 이소사키(大洗磯前)에 신령이 새로이 강림하였다. 처음에는 군민 중에 바다에서 소금을 만드는 자가 있어 한밤중에 바다를 바라보는데 찬란히 빛이 났다. 이튿날 보니 기묘한 돌이 두 개가 있었다. 높이는 1척쯤 되는데 신령이 나타난 것이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듯하였다. 소금 만드는 자가 하루 뒤에 보니 주변에 작은 돌 스무 개 남짓이 돌을 향하여 좌우로 있었는데 마치 하인처럼 보였고 색 또한 범상치 않았다. (앞서 나타난 돌 두 개는) 형상은 승려와 비슷하였는데 다만 눈과 귀가 없었다. 이때 신령에게 씐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나는 오나무치(大奈母知)와 스쿠나히코나(少比古奈) 신이다. 옛날 이 나라를 조성하는 것을 끝내고 동해(태평양)로 사라졌지만, 지금 다시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찾아왔다."라고 하였다.

히타치국 카시마군이란 오늘날 이바라키현 오아라이정(大洗町) 일대를 말한다. '이소사키(磯前)'는 한국식 한자음으로 '기전'이라 읽는데, 기(磯)란 본디 물가에 드러난 돌지대, 돌여울을 가리킨다. 오아라이 바닷가에는 바위가 많은데 이 때문에 기(磯)란 한자를 넣어 이소사키(磯前)라 부르게 된 듯하다. 여기서 두 신령이 강림했다고 하는 바위 근처에 신사를 세워 이름을 오아라이 이소사키 신사(大洗磯前神社)라 하였다.[9] 신령이 내려왔다는 그 바닷가 바위 위에는 도리이를 세웠는데 지역의 명소이다.
927년에 씐 연희식신명장(延喜式神名帳)에는 '오아라이 이소사키 약사보살 신사'라고 기록되었다. 이는 오나무니와 스쿠나히코나가 의약의 신으로 통했고, 이 속성이 불교의 약사여래와 습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3. 상세


스쿠나히코나는 오오쿠니누시와 함께 산과 언덕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는 신이었다. 전설에서 스쿠나히코나는 거의 대부분 오나무치와 함께 행동했다. 그래서 일설에는 신명의 스쿠나(須久那 또는 少)라는 부분이 오오쿠니누시의 오오(大)와 대비되어 '(몸집이) 작은 신'이란 뜻이라고 해석한다.
고사기 등에서 구체적인 묘사야 다르지만 스쿠나히코나는 지속적으로 '몸집이 매우 작다.'고 강조된다. 고사기에 따르면 박주가리 배를 타고 나방 가죽 옷을 입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박주가리의 껍질을 벗겨 만든 배를 타고 굴뚝새의 깃털로 지은 옷을 입었다. 무엇을 타고 무엇을 입었는지 구체적인 묘사야 다르지만, 무진장 작지 않으면 그런 배를 타고 그런 옷을 입을 수 없다. 심지어 일본서기에서는 오오나무치가 스쿠나히코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장난을 쳤고, 타카미무스비 신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 아이'라고 설명하는 판이다. 이러한 묘사를 문자 그대로 상상한다면 키가 한 10 cm쯤 되었을까....
스쿠나히코나는 오나무치가 행한 '국토 조성'의 협력자, 토코요[10]에 있는 신, 의약과 온천[11], 곡물(특히 조), 주조(술 빚기)[12], 지식, 돌(石)의 신 등 여러 가지 면이 있다. 일본서기에서 진구 황후가 불렀다는 권주가의 가사에도 '토코요에서 스쿠나히코나가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술을 빚어 헌상했다.'고 말한다.
이렇듯 고사기/일본서기에서는 스쿠나히코나의 몸집이 매우 작다고 일관되어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_풍토기 속 기록에서는 스쿠나히코나의 몸집이 작다고 생각할 만한 묘사나 암시가 없다. 또한 바다를 건너왔다느니 토코요로 건너갔다느니 하는 전승도 없다._ 여기서 오나무치, 즉 오오쿠니누시와 스쿠나히코나는 곡식의 신이자 온천/의약의 신이고, 또한 온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명을 정하거나 땅을 다지는 신이었다. 상당히 소박한 농경문화적인 신격인데, 아마도 이 모습이 두 신의 본디 성격이었던 듯하다. '나라를 만들었다.'는 말 또한 대지를 창조했다거나 국가를 세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여러 가지 이로운 술법을 전해주었음을 칭송하는 뜻에 가깝다.
한편 몬토쿠천황실록의 오아라이 신사 연기담에서는 오나무치와 스쿠나히코나가 '동해(태평양)으로 갔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기록된 신화가 후대의 지역신화에 영향을 끼진 듯하다. 하필 태평양으로 건너갔다고 하는 이유는 오아라이가 태평양과 맞닿은 해안가 마을이라서이다.
스쿠나히코나가 바다를 건너왔다고 하므로 도래인을 신격화한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근거가 부족하다.

4. 매체에서



4.1. 여신전생 시리즈


구 여신전생 시리즈에 등장한 이후 페르소나 4 시리즈에서 시로가네 나오토의 페르소나로 등장. 아르카나는 운명. 나비 또는 나방의 날개를 단 아주 작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실질적인 모티브는 한치 동자이다. 하마 계열, 무드 계열, 메기도 계열을 주로 익히며 운명 커뮤니티 MAX 후 야마토 타케루로 전생한다.
[image]

'''상성표'''
[image] 물리
[image] 총격
[image] 화염
[image] 빙결
[image] 전격
[image] 충격
[image]
[image] 어둠



'''내성'''
'''약점'''
'''내성'''
'''내성'''
'''습득 스킬''' (기본 레벨 34)
스킬명
코스트
효과
습득 레벨
상세로부터 내리는 우박

빙결 속성으로 적 전체에 중 대미지 및 명중/회피 저하 효과
(기본)
바늘의 칼바람

충격 속성으로 적 전체에 중 대미지 및 상태이상 어지러움 부착
(기본)
마카쟈마

마봉 상태이상을 부착시킨다
Lv. 35
컨센트레이트

마법 공격의 위력이 오른다
Lv. 36
정신이상무효
패시브
정신 이상 계열 상태이상에 면역이 된다
Lv. 38
진 여신전생 4 FINAL에는 또 새로운 디자인으로 등장. 메인 퀘스트인 아크를 해방하라 퀘스트에서 싸우게 되며, 킹 프로스트 이후로 초보들의 난관이 되는 최초의 보스로, 카쟈 계열, 운다 계열메디아의 중요성을 친절히 가르쳐주신다. 종족 분류는 쿠니츠카미이며 오오쿠니누시, 머메이드, 고획조를 재료로 특수합체하여 동료악마로 만들 수 있다. 보스로서 사용하는 전용 스킬은 2가지로, 상세로부터 내리는 우박(부흐 속성, 적 전체에 중위력 공격 1회 및 명중/회피 저하) 및 바늘의 칼바람(잔 속성, 적 전체에 중위력 공격 1회 및 상태이상 어지러움 추가) 를 가지고 있다.
라쿤다로 방어력을 깎고 상세로부터 내리는 우박으로 명중/회피를 깎고 마카카쟈로 자신의 마법공격력을 올린 후 컨센트레이트 후 날아오는 전체대상 공격 때문에 수차례 황천을 넘나들었던 유저도 있을듯. 여신전생 시리즈에 적응하지 못한 유저는 특히 그럴텐데, 일단 스쿠나히코나의 주력기인 부흐와 잔 속성 공격에 대해 내성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약점'''으로 공격당하는 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또한 여유가 된다면 스쿠나히코나의 공격력을 감소시키는 타룬다나 牙折り 같은 기술을 사용해 주는 것도 좋다. 바늘의 칼바람이 상태이상 어지러움을 걸기 때문에 주인공으로 칼같이 풀어주지 못할 것 같으면 동료마에게 회복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패시브를 넣어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정 안되겠으면 파트너 아사히가 메디아를 배울 때까지 레벨업을 하자. 아니면 파트너로 나바르를 데려가서 버프의 공백을 메우는것도 좋다. 이는 비단 스쿠나히코나는 물론 앞으로의 보스전에서도 공통된 방식이다.
동료 악마로서는 사용하는 스킬대로 빙결, 충격, 상태 이상 계열 순으로 +를 갖고 있다.

4.2. 보루토에 나오는 오오츠츠키 잇시키의 동술


오오츠츠키 잇시키 문서 참조

[1] 오늘날 시마네현 마쓰에시(松江市) 시마네 반도(島根半島)의 동쪽 끝 미호노세키(美保関)를 뜻한다. 1927년 미호노세키 사건이 이곳 앞바다에서 일어났다.[2] 고사기 원문에선 아메노카가미노후네(天乃羅摩船)라고 했는데, 이중 카가미(羅摩)가 박주가리를 뜻한다. 羅摩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나마'인데, 한의학에서 박주가리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한다.[3] 쿠에비코는 '(모습이) 망가진 남자'라는 뜻이다. 세운 지 오래되어 비바람에 형태가 망가진 허수아비를 묘사하는 이름이다.[4] '아시하라시코노오'는 오오쿠니누시의 별칭인데, '갈대 가득한 땅(일본)의 강한 남자 신'이라는 뜻이다.[5] 일본서기 원문에서는 백렴(白蘞)이라 쓰고 '카가미'라 읽는데, 한자는 다르지만 카가미(羅摩: 박주가리)를 뜻한다고 한다. 백렴(白蘞)이란 단어를 우리나라에선 가회톱이란 식물의 뿌리를 가리키는 한약재명으로 쓴다.[6] 일본서기에서는 초료(鷦鷯)라 쓰고 '사자키'라 읽는다. 초료를 우리나라에서는 뱁새란 뜻으로 쓰지만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굴뚝새를 가리킨다. 물론 뱁새든 굴뚝새든 분류학적으로 참새목이고 몸집이 매우 작다는 점은 똑같다.[7] 오늘날 일본 돗토리현 요나고시의 카미아와시마(上粟島)・시모아와시마(下淡島) 일대라고도 하고 세토 내해에 있는 섬이라고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 그래도 요나고시 쪽이 맞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은 듯. 요나고시의 카미아와시마・시모아와시마 일대는 지금이야 내륙이지만 지명으로 봐서는 과거엔 섬이었던 모양이다.[8] 기록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왜 스쿠나히코나가 기절했고 왜 오나무니가 후회하도록 부끄러워했는지는 알 수 없다.[9] 2012년에 방송된 걸즈 앤 판처의 성지로 유명해진 이바라키현 오아라이정의 그 신사가 맞는다.[10] 일본 신화나 민속에서 말하는, 바다 건너 저편에 있다는 이상세계를 이른다.[11] 옛 일본인들은 온천에도 치유의 효험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의약의 신이 온천의 신이기도 함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12] 곡물 중에서도 조의 신이기 때문에, 조로 빚은 술의 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