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하퍼

 



'''캐나다 제22대 총리
The Right Honourable[1]
Stephan Joseph Harper
PC
'''
'''본명'''
Stephan Joseph Harper
스티븐 조셉 하퍼
'''출생'''
1959년 4월 30일 (65세)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 리사이드[2]
'''재임기간'''
제22대 총리
2006년 2월 6일 ~ 2015년 11월 4일
'''서명'''
[image]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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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dc143c> '''배우자'''
로린 하퍼 (결혼: 1993년)
'''자녀'''
벤저민 하퍼
레이첼 하퍼
'''학력'''
토론토 대학교
캘거리 대학교 (경제학 / B.A.)
캘거리 대학교 (경제학 / M.A.)
'''종교'''
개신교
'''신체'''
188cm
'''정당'''
'''보수당''']]'''
'''의원 선수'''
'''8 (하원)'''
'''지역구'''
캘거리 웨스트 (1993.10.25~1997.1.14)
캘거리 헤리티지 (2002.1.28~2016.8.26)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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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다의 정치인으로 제22대 총리(2006.2.6~2015.11.4)를 역임하였다.

2. 생애


토론토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토론토 대학교에 들어갔으나 두 달만에 중퇴하고 앨버타주로 이주하여 석유회사에 근무하며 캘거리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진보보수당[3]에 가입했으나, 곧 탈당하고 개혁당으로 옮겼다. 1988년 캘거리에서 개혁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하였고, 1993년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의회 진출 후 개혁당의 중심적 인물로 부상하였으나, 1997년 선거에는 개혁당 지도부와의 마찰로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떠나 당시 여당이던 자유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칼럼 등으로 유명해졌다. 그런 가운데 2000년 개혁당을 모체로 한 보수 성향의 캐나다동맹(Canadian Alliance, 약칭 CP)이 창당되었고, 그는 2002년 그 당수로 선출되었다. 또한 그 해에 다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2003년, 캐나다동맹과 예전의 거대 보수정당이던 진보보수당이 합당하여, 보수당이 창당되면서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캐나다의 보수세력의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그는 그 당수에 선출되었다. 그 다음해 총선에서 보수당은 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었으나, 자유당 정권은 계속 유지되었다.
2005년, 여당인 자유당의 부패 스캔들로 보수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폴 마틴 총리를 불신임하였으며, 이에 따라 2006년 1월 조기 총선이 실시되었다. 보수당은 총선에서 자유당을 꺾고 하원 제 1당이 되었으며, 다수 의석은 확보하지 못했으나 내각을 구성하여 그는 2006년 2월 6일 제22대 총리가 되었다. 2008년 조기 총선을 실시하여 보수당은 19석을 추가하여 계속 제 1당의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그는 총리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보수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한 야당은 경제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를 불신임하여 새로운 연정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이에 그는 미카엘 장 총독에게 의회 개원정지 명령을 받아내 자신의 총리 자리를 간신히 지켰다.
이 분과 이 분의 당이 총선에서 1당이 된건 2006년이지만 단독 과반수를 통한 총리가 된건 2011년이다[4]. 따라서 그 사이에 고생을 많이했다. 뭐만하면 야당들이 연합해서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하겠다고 협박하고 조기총선을 열자고 하니깐.. 실제로 2008년과 2011년 총선도 야당의 협박에 못이겨 열린 총선이였다. 캐나다 하원의원 임기는 4년이기 때문에..2011년 때 총선을 위해서 의회해산을 진행하면서, 당시 캐나다 총독인 데이비드 로이드 존스턴 총독에게 직접 의회해산을 부탁하기도 했다. 명목상 총독에게 의회해산권이 있기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내각 총리에게도 의회해산 권한이 있으므로 불필요한 행위이다. 존스턴 총독의 의회 해산 선언도 실질적으로는 하퍼 총리가 해산을 진행하고 사후에 총독이 이를 승인한 형태에 불과하다. 즉 정치적 상징성을 위해 스티븐 하퍼가 행한 행동이라는 것.[5] 그 전에 2008년 총선 때도 같은 이유로 당시 미카엘 장 총독에게 의회해산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누가 보수 천지인 알버타 주 출신 아니랄까봐 의회에서 에너지 경제에 산업경제를 일으키는데 쓰라고 준 예산을 알버타 기름부자들에게 모조리 써버렸다. 그러면서 에너지 산업에 걸림돌이되는 과학자들에게 제갈을 물리고 캐나다 전역에 있는 대다수 농림부, 수산부, 그리고 국립공원관리공단 서고들을 폐쇄시키면서 캐나다판 분서갱유를 일으켰다.
그런데 그 직후 미국이 셰일가스를 풀고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캐나다 경제는 말 그대로 폭망 해버렸다. 그때문에 모두들 씀씀이가 줄어들었고 지역상권은 쪼들어가다 못해 붕괴하는 현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결정타는 2015년 불거진 F-35 도입 관련 문건 비공개였다. 이걸로 의회가 내각불신임결의을 제출하자 그해 8월 의회해산을 선언하고 총선거를 실시했다가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에 단독 과반의석을 내주는 참패를 당하고 사실상 정계 은퇴에 몰리게 되었다. 10년 동안 보수정권을 이끌었지만, 경제악화와 여러 악재에 열받은 국민들이 하며 변화를 촉구했다고 봐도 무방하다.[6]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앨버타 주는 스티븐 하퍼를 총선 당시 열렬히 지지했다.
20세기 초에 캐나다가 중국계 이주자들의 대량이민을 규제하기 위해 인두세를 부과하고 인프라 건설에 강제노역에 동원한 일에 대해서 2007년에 공식 사과한 적이 있다.
2016년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여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2018년 국제민주연합의 새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2020년 2월 5일에는 국제민주연합 의장 자격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예방했다.[7]

[1] 총리 본인에 대한 경칭[2] 비록 그는 토론토에서 태어났지만 실질적으로 정치적 커리어를 쌓은 곳은 앨버타 캘거리이다.[3]보수당의 전신으로 이름과 다르게 중도우파가 주를 이룬다.[4] 이 선거때도 운이 따랐는데 마이클 이그나티예프밑에서 자유당이 극도로 부진했었고 반면에 신민당은 엄청난 도약을 펼치면서 진보, Centre-left계열 표들이 분리됐었다. 물론 퀘벡연합당은 망했었고.[5] 하지만 의원내각제에서 국가원수는 총리와 별개이기에, 이 형식은 중요하다. 법적으로는 국가원수인 캐나다 국왕캐나다 총독에게만 의회해산권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6] 특히 이부분은 대서양 4주에서 두드러졌는데 그 이유는 국방부내 복지비 삭감. 유공자와 군인들이 많은 대서양 4주에서 보수당은 총선에서 한 의석도 못얻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7] 당시는 아직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기 이전이었다. 자유한국당이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것은 2월 17일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