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노회
1. 개요
士志の会(ししのかい)
시시노회는 일본 자유민주당의 고가 마코토, 아소 다로, 히라누마 다케오, 고무라 마사히코와 만든 정치그룹이다. 우연찮게도 아소를 제외한 3명은 1980년의 제36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 동기로, 초선이었다. 이름은 에도 막부 말기에 활동했던 사람들을 부르는 지사에서 따왔다. 흔히 애국지사라고 말할 때 쓰이는 것으로, 말하자면 본인들 보고 애국지사라고 하는 것.
넷 중에서 당 총재를 내기 위해 협력하는 의미였고, 실제로 아소 다로는 총재가 되어 내각총리대신 자리에 올랐다.
2. 역사
2.1. 멤버
- 아소 다로: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외무대신, 재무대신.
- 고무라 마사히코: 자유민주당 부총재, 외무대신, 방위대신, 법무대신.
- 히라누마 다케오: 운수대신, 통상산업대신, 경제산업대신.
- 고가 마코토: 운수대신, 자유민주당 간사장.
- 규마 후미오: 방위청 장관, 방위대신.
2.2. 분해 과정
'''2005년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우정 민영화 법안에 대해 4명이 갈라지게 되었다.'''
히라누마 다케오는 법안에 반대해서 무소속으로 버림받아졌고, 고가와 고무라 역시 반대였으나 중간에 기권하여 당에서 겨우 살아남게 되었지만 영향력이 약해지게 된다. 그러나 아소는 당시 총무대신이였으며, 고이즈미 내각의 중추였기에 찬성했고, 포스트 고이즈미에 이름이 오르게 되는 등 '''4명의 관계는 공중분해 되버렸다.'''
2007년, 방위대신인 규마 후미오가 시시노회에 가입하고, 향후 5 명으로 모임을 개최하기로 '''합의하는 듯 싶었지만...''' 2007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고가 마코토와 고무라 마사히코가 후쿠다 야스오를 지지하고, 규마가 아소 다로를 지지해 버리는 등 의견이 갈리게 되면서 결국 규마 후미오와도 관계가 파탄나버렸다.
2.3. 현황
아소 다로는 2008년 내각총리대신이 되지만, 임기 중 경제 침체 등 여러 실책으로 1년이 안 되어서 퇴임, 그의 퇴임과 동시에 민주당이 집권하며 내리막을 겪게 된다. 하지만 2012년 아베 신조가 재집권을 하게 되면서 아베에 의해 재무대신, 금융청장,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에 임명되어 현재까지도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
무소속이 된 히라누마는 일어나라 일본을 창당한 뒤, 태양당을 거쳐, 일본 유신회, 차세대당에 입당했다가 차세대당이 쫄딱 망하자 자민당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48회 총선 때 뇌졸중을 이유로 지역구인 오카야마현 제3구에 불출마, 장남 쇼지를 내보내지만 쇼지가 지역구에서 오랫동안 도전했던 아베 도시코와의 경선에서 패배, 히라누마는 현재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
고무라는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본인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제1구를 지켜내면서 후쿠다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맡게 된다. 그러다가 아베 신조가 2012년 총재가 되자 아베에 의해 자민당 부총재 직까지 맡게 된다. 위의 히라누마와 마찬가지로 48회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하며 아들 마사히로를 내보내고, 아들이 당선이 된다. 이후 2018년에는 욱일대훈장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다 부총재 직을 사임, 현재는 고문으로 있다.
고가는 후쿠다 야스오에게 붙어서 이부키 분메이와 자리 다툼을 하던 중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에 취임, 45회 총선 때도 지역구인 후쿠오카현 제7구에서 당선된 뒤,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규마는 45회 총선에서 지역구인 나가사키현 제2구를 민주당 신인에게 빼앗긴 뒤 46회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 정계 은퇴를 했으며 2013년 욱일대훈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