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누마 다케오

 



'''일본 경제산업대신'''
''신설''

'''제1~2대
히라누마 다케오'''

'''제3~5대'''
나카가와 쇼이치
'''일본 중의원 (오카야마 3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7대
히라누마 다케오'''

'''제48대'''
아베 도시코
'''일본 제1~2대 경제산업대신'''
'''平沼(ひらぬま (たけ(
히라누마 다케오
'''
'''이름'''
히라누마 다케오 (平沼(ひらぬま (たけ()
'''출생'''
1939년 8월 3일 (85세)
[image] 도쿄도 시부야구
'''국적'''
[image] 일본국
'''신체'''
175cm, 75kg, A형
'''학력'''
시부야구립 니시하라 소학교
아자부 중학교
아자부 고등학교[1]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
'''직업'''
정치인
'''가족'''
양아버지/작은외증조부 히라누마 기이치로
아버지 히라누마 교시로
어머니 히라누마 세쓰코
부인 히라누마 마사코[2]
아들 히라누마 쇼지로, 그 외 1남 1녀
'''소속 정당'''

'''현직'''
정당인
'''경력'''
사토 에이사쿠 비서
나카가와 이치로 비서
일본국 운수대신
일본국 통상산업대신
일본국 경제산업대신
일어나라 일본 대표
일본 유신회 대표 대행
차세대당 대표
중의원
1. 개요
2. 생애
3. 소속 정당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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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치인. 법조인이자 35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이었던 히라누마 기이치로의 손자다. 교통대신, 통상산업대신, 경제산업대신, 일어나라 일본 대표, 일본 유신회 대표 대행, 차세대당 대표, 오카야마현 제3구 중의원을 역임했다. 중의원을 1980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12번'''이나 역임했다.

2. 생애


1939년 8월 3일, 도쿄부 도쿄시 시부야구 오오야마정(현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마현 지사를 역임한 나카가와 도모지로의 아들 히라누마 교시로[3]였고, 어머니는 히라누마 요시로[4]의 손녀 히라누마 세츠코였다. 게다가 무려 양아버지는 35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이었던 히라누마 기이치로였다.
그는 시부야구립 니시하라 소학교, 아자부 중학교, 아자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사토 에이사쿠, 나카가와 이치로의 비서가 되고, 1976년 제3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하나 낙선, 1979년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재출마하나 또 낙선했다. 하지만 1980년 제3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구 오카야마현 제1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면서 그는 이시하라 신타로 등 우익인사와 가까이 지냈다.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에서 운수대신, 모리 요시로 내각에서 통상산업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아소 다로, 고무라 마사히코, 고가 마코토와 시시노회라는 모임을 창설했다.
하지만 2005년 우정민영화에 반대표를 던져 자유민주당에 버림 받고 같은 해 9월 11일의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공천을 얻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 자민당의 아베 도시코를 깨고 당선됐다.[5] 결국 자민당에서 제명되고 2009년 자신의 파벌모임인 히라누마 그룹을 결성했으며, 중의원 선거 전 신당 창당을 선언, 또한 다함께당와타나베 요시미 중의원과의 제휴를 했다.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는 무소속 출마해 아베 도시코를 이겼다.
2010년 4월에는 자민당을 탈당한 요사노 가오루, 소노다 히로유키와 함께 일어나라 일본을 결성하고 나카야마 나리아키,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나카야마 교코 등 의원들을 영입하지만 선거에서 패배하게 된다. 이후 8월 15일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친분이 있던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와 연대를 하고, 당명을 태양당으로 변경, 히라누마는 이시하라와 함께 공동대표가 된다. 2012년 11월 17일, 태양당은 제3세력 결집을 위해, 일본 유신회와 합병, 해산하게 되었다. 그는 대표 대행이 된다. 12월 16일에 열린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일본 유신회 공천을 받아 출마해 3번째 도전하는 아베 도시코를 깨고 당선했다.
2014년 의견 갈등으로 일본 유신회에서 탈당해 나카야마 나리아키, 나카야마 교코, 마쓰자와 시게후미 등과 함께 이시하라 신타로을 지지하는 차세대당을 결성, 대표에 취임했다. 12월 14일에 열린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또다시 아베 도시코를 깨고 당선했다. 그러나 차세대당 당선자는 히라누마와 소노다 2명밖에 없었다. 결국 2015년 9월 25일, 소노다와 함께 차세대당을 탈당해 자민당 복당을 요청했다. 또한 가와무라 다케오와 노다 세이코 등도 이 날 히라누마 다케오의 복당 요청서를 다니가키 사다카즈 간사장에 제출했다. 10월 2일 자민당에선 복당을 승인했다.
하지만 2017년 9월 22일, 고령과 뇌졸중을 이유로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은퇴했다. 자신의 후계자로는 차남 히라누마 쇼지로를 추천했으며, 쇼지로는 아베 도시코와 경선을 치뤘으나 당 내에서 결정이 되지를 않자 둘 다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아베가 당선되었다. 2018년 욱일대수장을 수상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6 - 2005
정계 입문

2005 - 201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0 - 2012
창당

2012
당명 변경

2012 - 2014
합당

2014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4 - 2015
창당

2015
탈당

2015 -
복당

4. 기타



[1] 하시모토 류타로, 요사노 가오루, 다니가키 사다카즈, 스즈키 슌이치, 후쿠다 야스오, 야마다 다로, 쓰무라 게이스케 등이 여기 고등학교 출신이다.[2]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증손녀[3] 사업가로, 원래 성은 나카가와. 결혼하면서 성씨를 고쳤다.[4] 와세다대학의 총장이었으며, 히라누마 기이치로의 형이다.[5] 당시 히라누마 다케오는 호리 고스케(保利耕輔, 전 중의원 의장 호리 시게루의 아들)와 함께 자민당 탈당인사중 최강의 지역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 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