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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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amsung Anycall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삼성전자가 대한민국과 중국, 홍콩, 대만에서 사용했던 피처폰 브랜드며, '''삼성전자를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만든 상표다.''' 삼성전자를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로 끌어올린 것은 갤럭시 시리즈지만 애니콜 시절부터 갖춰진 탄탄한 기술력이 없었다면 삼성의 1위 신화는 불가능했다고 보는 이들이 대다수다.
애니콜이 피처폰 브랜드이긴 하지만, 초기 스마트폰 출시 때에는 피처폰과 스마트폰의 개념이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창기 스마트폰에 해당되는 MITs, 옴니아와 갤럭시 S, 갤럭시 K, 갤럭시 U, 갤럭시 A, 갤럭시 탭의 경우에도 애니콜 상표가 붙어있다. 참고로 애니콜 로고가 들어간 마지막 스마트 기기는 2011년 1월에 출시된 갤럭시 S 호핀이다. 2011년 2월에 출시된 갤럭시 에이스부터는 스마트폰에는 삼성 로고만 들어간다.
존속 시절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anycall.co.kr이었다. 현재는 삼성전자 홈페이지로 리다이렉트된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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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아날로그 휴대폰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1994년에 ''''한국 지형에 강하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애니콜'이라는 상표를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애니콜의 의미는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잘 된다'는 뜻으로, 당시 선발주자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모토로라를 겨냥하여 만든 상표다. 하지만 당시 세계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모토로라보다, 기술이나 기능 면에서 뒤쳐지며 삼성 핸드폰의 품질은 소비자들에게 나쁘게 각인되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심지어는 설을 맞아 직원들에게 선물된 2천여 대의 휴대폰마저 제대로 통화가 되지 않는 등 말썽을 부렸으니...
이 때 이건희 회장이 "고객이 두렵지도 않나, 돈 받고 불량품을 팔다니!"라며 진심으로 분노하여 '''"시중에 판매 중인 핸드폰 전량 수거 후 소각하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른다. 1995년 3월 구미 공장 직원들이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 자존심!'이라고 내걸린 현수막 아래 '''500억 원 어치의 자사 무선 전화기, 키폰, 팩시밀리 등을 해머로 때려 부수고 소각하게 된다.''' 자사의 생산품 수백억원어치를 스스로 소각하는 화형식 시행 후 삼성전자 임원진 및 관련 부서 사람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후 출시되는 삼성전자 휴대폰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내구성과 완성도면에서 만큼은 당시에 까방권을 얻었으며, 이듬해인 1996년에 삼성전자는 드디어 51.5%의 점유율을 달성하며 한국 휴대폰 시장의 선두에 처음으로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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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에 CDMA 방식의 디지털 휴대 전화인 '''애니콜 디지털'''(SCH-100S)을 출시하였고, 이듬해인 1997년 플립형(SCH-200F)을 출시하며 핸드폰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전속모델로 영화 배우 안성기를 기용해 임팩트를 발휘했다. 같은 해인 1997년 PCS 서비스가 시작됨에 따라 애니콜 PCS 모델(SPH-1100)을 출시했으나, 애니콜은 당시 검정색상 원톤의 투박한 디자인으로 아저씨폰 이미지가 상당히 강했고[1] , 기기 가격도 고가였던데 반해,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저렴한 가격의 모델에 대한 신생 업체 모델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참신한 디자인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신 모델들이 경쟁사로부터 쏟아져 젊은층 및 알뜰고객 공략에 실패하며[2] PCS 쪽의 시장 점유율은 주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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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여파가 엄청났던 1998년에 삼성전자에서 폴더형과 플립업이라는 혁신적인 스타일로 야심차게 준비한 애니콜 폴더(SCH-800)와 애니콜 플립업(SPH-5000) 모델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모델이 되었다. SCH-800의 경우 PCB 회로 기판에 '''"할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것이 10년 뒤인 2008년에 한 누리꾼의 분해기를 통해 알려져 신선한 감동을 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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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999년 장혁이 첫 광고 모델로 활약한 '''깍두기폰'''으로 불리는 '''애니콜 미니폴더'''(SCH-A100/SPH-A1000)가 출시되었는데, 당시로서는 가히 혁신적인 초경량, 초소형 설계임에도 성능은 향상된 대혁신[3] 을 가져왔으며, 외관 케이스에 알루미늄을 도금함으로써 밀레니엄 스타일의 세련된 최고급 분위기를 연출해 중장년층과 젊은층 고객들을 모두 사로잡으며 비싼 판매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여 애니콜의 명성을 되찾게 된다. 현재까지도 애니콜의 명작 1순위로 들어갈 정도로 시대를 풍미했던 애니콜의 전설적인 모델이다. 이듬해인 2000년 기존의 각진 디자인을 다소 라운딩 처리하고 폴더 전면에 LCD를 추가한 후속작 '''애니콜 듀얼폴더'''(SCH/SPH-A2000)를 출시하여 다시 한 번 대히트를 치면서 그 명성을 이어갔고, 그해 11월에 메인 LCD의 표시량을 기존 4라인에서 7라인으로 넓히고 디자인 또한 이전 미니폴더의 사각 디자인을 반영하고 2000 시드니 올림픽을 기념하는 모델로 폴더 전면의 올림픽 로고 부분을 24K 금도금으로 처리한 듀얼폴더인 '''올림픽폰'''(SCH-A350)도 출시했다.[4]
특히 1999년과 2000년 사이는 삼성전자가 '''한국 또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당당하게 달 수 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아스트랄한 콘셉트로 파격적인 디자인과 최첨단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실험적인 모델'''들을 쏟아 내던 매우 특별한 시기다. 이 모델들 대부분은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시판되었다 해도 당시에는 그닥 인기를 많이 얻지는 못한 편이지만, 이 다음 세대의 양산 모델에 들어갈 새로 개발된 최신 기능 및 멀티미디어 복합 기술들을 선행 개발의 성격으로 적용시켜 보면서 그에 대한 기술적인 노하우를 축적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오늘날의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삼성전자가 마켓 리더로 활약하는 밑거름이 된다.
- 세계 최초의 여성 전용 휴대폰(SPH-A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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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KTF(당시 한국통신프리텔)와 합작하여 개발한 일명 '''드라마폰'''.[5] 생리 주기, 칼로리 계산, 외장형 연결 신호 램프[6] 등 여성 고객들에게 필요한 기능들이 추가로 탑재되고, 붉은 장미를 형상화한 우아한 레드 색상에 골드톤 무늬를 적용한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남성 위주의 디자인이 주류였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여성 전용 휴대폰'''이라는 수식어를 들고 전면에 등장했다. 이 모델 이후 후속작 모델[7] 들도 계속 나왔을 정도로 호응이 괜찮은 편이었다.-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 폰(SPH-W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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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파워레인저가 사용할 법한 '''아스트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모델.''' 1999년에 개발된 제품으로 '''기네스 북에 등재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 폰'''이 되겠다. 음성 인식장치를 이용해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시계에다 대고 번호를 부른후, '통화' 라고 말하면 자동 연결된다고 한다. 소음이 많은 장소에서는 물론 다이얼식 버튼을 통해 손으로 번호를 입력해도 된다. 통화 대기 시간은 당시의 기존 제품보다 조금 웃도는 48시간 정도인 반면, 통화 가능 시간은 기존 휴대폰보다 짧아 겨우 90분 정도(…) 다만 손목에 차고 귀에 갖다대어 통화한다는 게 영화에서는 멋있게 보여질지는 몰라도 실사용 시에는 불편해서(특히 문자메세지) 양산은 되었으나 판매량은 매우 적었다. 게다가 일반인이 사용시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쉬웠다. 10년 뒤인 2009년에 동일한 모델명으로 후속모델인 워치폰이 출시되었다. 전작과 달리 블루투스 헤드셋이 기본지원 되기에 그나마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듯 했으나, 이 해에 3G 서비스가 안정화되고 iPhone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 열풍이 본격화 되면서 삼성전자도 이 열풍에 가세하여 결국 워치폰은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대신 손목에 차는 기기라는 개념은 훗날 자사 스마트 워치인 갤럭시 기어를 통해 부활하게 된다. 단 갤럭시 기어는 단독으로 사용 가능한 기기가 아닌 스마트폰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기기이므로, 진정한 단독 사용이 가능한 기기로서의 부활은 기어 S 및 기어 S2 3G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MP3 폰(SCH-M210 / SPH-M2100)
- 세계 최초의 TV 폰(SCH-M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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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에 발표된 '''세계 최초로 TV 기능을 내장한 핸드폰'''. 애니콜 폴더 초기 모델인 SCH-800을 기반으로 설계한 모델이며, 높은 기술력과 비싼 생산 단가의 컬러 LCD를 TV 기능 때문에 탑재했다. 다만 워낙 비싼 가격으로 인하여 실제로 판매된 댓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10] 2003년 후속작인 SCH-X820이 나왔으며 이후에 DMB 기능이 탑재된 모델로 계보가 이어진다. 아날로그 신호를 받기 때문에 당연히 2021년 현재는 시청이 불가능하다.- 한국 최초의 카메라 폰(SCH-V200 / SPH-V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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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T-2000 통신 기술을 한국에 도입하면서 멀티미디어 통신의 잠재적 수요가 예상되어 2000년 7월에 개발한, 휴대폰에 디지털 카메라가 적용된 '''한국 최초의 카메라폰.'''[11]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보급화 되기 훨씬 전의 시기에 이런 제품을 내놓았다는 것. 당시로서는 높은 기술력과 비싼 생산 단가의 컬러 LCD를 탑재하고, 한국 최초로 휴대폰에 내장 카메라를 탑재했으며, 해상도는 '''35만 화소'''로 무려 20장 촬영이 가능[12] 했고 매크로 촬영도 지원했다. 하지만 당시에 인기가 떨어지고 있었던 플립형인데다, 컬러 LCD에 카메라까지 달려 가격이 비싸, 실제로 판매된 댓수는 극소수에 불과했으며[13] , 대신에 준폰으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 프리미엄 모델이었던 동기식 IMT-2000을 지원하던 SCH-V300이 후속으로 대를 이어 나가더니 결국 핸드폰에 카메라는 필수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2000년 말에 2G와 3G의 과도기였던 CDMA2000 1x 기반의 SCH-X100도 출시되었다.- 한국 최초의 풀 터치스크린 PDA폰이자 스마트폰의 시초(SCH-M100 / SPH-M1000)
스마트폰의 시조격인 IBM 사이먼은 시제품의 성격이 강한 데다 완전 벽돌 모양이었던 것에 반해, 이 모델은 당시의 주류였던 플립형 휴대폰에 준하는 사용성 및 휴대성을 가졌기 때문에,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의외로 인기가 꽤 있었으며 후속모델인 SCH-M200 / SPH-M2000도 출시되었고, 이후 당시 PDA에서 많이 쓰이던 운영 체제인 Palm OS가 설치된 SCH-M330, 윈도우 모바일의 선조라고 볼 수 있는 Pocket PC 2000를 운영 체제로 적용한 SCH-M400이 나오기도 했다.(옴니아의 시조다!) 모델명으로만 본다면 '''옴니아 II가 같은 계열의 마지막 후속작'''이다. 굳이 SHW 네이밍까지 따지자면, LTE 미만의 네트워크, 즉 WCDMA 또는 CDMA EV-DO Rev.0[15] 이상을 지원하는 안드로이드/바다 OS 탑재 스마트폰 및 안드로이드 태블릿 컴퓨터 라인업인 SHW-MxxxS[16] /K[17] /L[18] /D[19] /W[20] 내에서는 SHW-M500W가 최후의 후속작이다. 참고로 이때 삼성은 'MITs'라는 이름의 PDA폰 상표를 출시했다. 지금은 운영이 중단된 스마트폰 사용자 모임인 마이미츠가 바로 MITs PDA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동호회였다.
여담으로 한국 최초의 폴더형 PDA폰도 삼성이다.(SCH-M500) 운영 체제는 Palm OS가 적용되었다. 이는 한국 시장에 한해서 갤럭시 골든[21] , 갤럭시 폴더(SM-G150 & SM-G155), 갤럭시 폴더 2(SM-G160 & SM-G165)[22] 가 대를 잇고 있으며, 중국 시장까지 범위를 넓혀 보자면 삼성 심계천하 시리즈가 대를 잇고 있다.
- 세계 최초의 전자동 폴더(SPH-A5000)
2001년에 출시된 '''세계 최초의 전자동식 폴더폰'''. 모터를 사용하여 폴더를 열고 닫는다. 기기 우측에 있는 버튼으로 동작하며, 휴대폰 관리에서 설정 및 해제가 가능하다. 이런 방식의 단말기는 2004년에 후속작(SPH-E3300 / SPH-E3350 / SCH-E430)이 나왔고[23] , 2009년 매직홀폰(SCH-W830 / SPH-W8300 / SPH-W8350)[24] 까지 이어진다.
2000년대에 들어서 대화면 및 컬러 LCD 등을 탑재하기 시작하며 멀티미디어 기능을 중시하는 휴대 전화로 진화한다. 이 당시의 슬로건은 '''디지털 익사이팅 애니콜'''로, 카메라, MP3, 동영상 촬영 등을 지원했고, 2005년부터는 싱글 앨범 수준의 광고 음악 발표와 함께 광고와 뮤직 비디오를 결합한 애니 시리즈 마케팅이 화제거리였다. 사실 이 시기에는 애니콜이라는 상표가 '어른들이 쓰는 폰'이라는 인식이 젊은 소비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젊은 소비자층에 더욱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의 모델 출시와 함께 이에 어울리는 마케팅이 이루어졌다.[25]
- 세계 최초 VOD폰(SCH-X200, SPH-X2000)
2001년 5월 15일에 출시되었으며 CDMA2000 1x 망을 이용하여 세계 최초로 VOD와 AOD를 지원했다. 놀라운 점은 그 당시에 240×240 해상도의 당시로써는 고해상도 컬러 디스플레이를 사용했다는 것.[26] 덕분에 그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미려한 UI와 폰트를 보여주었으며, 한동안은 이 해상도를 능가하는 피쳐폰 기종이 한국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가 3년이 지난 2003년이 되어서야 320×240 해상도의 스카이 IM-7100이 나오면서 그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 한국 최초 EV-DO폰 (SCH-V300, SPH-V3000)
- 한국 최초의 WCDMA 폰 (SCH-W110)
2003년에는 한국 최초로 WCDMA('''3G''') 휴대 전화인 SCH-W110를 선보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2008년 이전에 MITs 라인을 제외한 좌메뉴 우확인 방식이 적용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기기 중 하나다.[27] 다른 하나는 SPH-S4300[28] 인데, 이쪽은 기기 구조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메뉴 버튼이 측면으로 이동했고 가운데 버튼은 확인 버튼으로 바뀌었다. WCDMA 통신망 문제로 CDMA 2000을 동시에 지원하며 단말기 가격은 당시에 무려 '''120만원'''[29][30] 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SCH-S540이 마지막으로 좌메뉴 우확인 방식을 사용했다.
- 매트릭스 폰
특히 2003년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 삼성전자에서 특별 제작한 '''매트릭스폰'''이 깜짝 등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에서 콘셉트 모델을 가지고 모토로라와 노키아에 제작 의뢰를 했으나 상용화에 무리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그 와중에 삼성전자는 콘셉트 모델과 매우 흡사하게 설계한 안을 내보여 채택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 북미 시장에는 SPH-N270이라는 모델명의 '''매트릭스폰 콜렉터스 에디션'''으로 '''5천대 한정'''으로 시판되었다. LCD도 영화에서의 흑백 화면이 아닌 당시 기술 트렌드를 반영하여 컬러 LCD를 탑재했다. 하지만 나머지 해외를 비롯한 한국에서는 아쉽게도 선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의 블로그 포스트를 참조하는 것도 좋다. 매트릭스폰 구입 및 개봉기
- 가로본능(SCH-V500)
2004년 8월 출시된 피처폰으로서, 상단 디스플레이를 90도 회전시켜 가로로 볼 수 있는 폰이었다. 이후 수년간 후속작들이 판매되었다. 당시 광고에서 가로등에 지탱해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포즈가 인기를 끌었다. 여담이지만 이후 2020년에는 다른 회사가 비슷한 형태의 '스마트폰'을 출시 한다.
- 세계 최초 500만 화소 카메라 탑재 휴대폰
2004년 10월에는 이 매트릭스폰의 슬라이딩 방식을 응용한 SCH-S250이라는 기종을 양산했는데, 이 기종 또한 '''세계 최초 500만 화소 카메라 탑재 휴대폰'''이었다. 그 후 130만 화소의 당시 고화질 카메라에 지상파 DMB에 음악까지 들을 수 있는 컬러 재킷 폰이 나오며 제법 인기를 끌었다.
2008년 4월에는 애니콜 햅틱 시리즈를 출시했다.
2010년 8월에는 애니콜 노리 시리즈를 출시했다.
여담으로 와이브로 지원 UMPC도 SPH-P9000과 SPH-P9200 두 종을 KT용으로 출시했다. 현 시점에서는 KT에서 와이브로 서비스를 종료해 와이파이로만 써야 한다. 단 P9200은 WCDMA도 쓸 수 있긴 하다. 삼성전자 무선 사업부에서 개발한 Windows 탑재 기기는 이거 말고도 아티브 탭[31] GT-P8510이 있으며 갤럭시로 통합 이후에는 갤럭시 탭프로 S, 갤럭시 북 10.6/12.2(SM-W62x, SM-W72x), 갤럭시 북2가 있다.
이후 1994년부터 등장해 한때 한국 휴대폰 상표 가치 1위였던 애니콜은 2011년 갤럭시 S II부터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가 조용히 그 자리를 삼성 갤럭시에게 물려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3. 출시 제품 목록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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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콜의 성공은 단순히 준수한 기기 성능에만 기댄 것이 아니라, 테마 음악을 중심으로 한 광고 콘텐츠의 성공을 통해 이루어졌다. 앞서 말한 안성기 외에도 2001년 'Digital Exciting' 시절 차태현-이나영 콤비의 열연, 2005년 당대 최고 인기 가수였던 이효리를 기용한 애니모션, 애니클럽, 애니스타의 광고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핸드폰 시장의 절대 부동 1위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같은 해에는 한국 광고 사상 최초로 북한 무용수 조명애를 기용해 화제를 모았다.
광고의 음악이나 영상, 기획 등이 전반적으로 당대 최상급이었다. 제일기획과 삼성전자 홍보팀의 모든 역량을 집약해 만든 '애니시리즈' 광고의 성공으로 전 국민이 선호하는 핸드폰 상표가 된 것이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는 TPL(Talk, Play, Love)로 슬로건을 변경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애니밴드 참조. 이후로도 삼성전자는 뛰어난 광고 기획과 기기 품질을 바탕으로 애니콜에 대한 국민적 선호도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애니콜'이란 상표는 그 광고를 떼어 두고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후에는 햅틱 시리즈를 필두로 한 풀 터치스크린 폰의 비중이 높아졌다.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Windows Mobile의 한계와 부족한 최적화 등으로 인하여 비난을 받아왔으며, iPhone의 한국 진출 이후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에 사업 역량을 쏟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매직홀 폰 등의 아예 디자인에만 올인한 제품 몇 개를 제외하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딱 무난한 물건이 대부분. 게다가 다른 회사에 비해서도 같은 디자인 우려먹기가 좀 심하다. 디자인을 중시하여 휴대폰을 고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점도 좀 까인다. "새 것을 사도 중고를 사는 느낌"이라고 혹평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신상품이 나와도 어차피 디자인이 똑같기 때문에 구매욕이 줄어든다"라는 관대한(…) 평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W8400은 W5200의 Personal GUI 버전이라고 봐도 될 듯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으며, 햅틱1(W420, W4200)과 햅틱 팝(W750)은 대충 보면 다른 듯 하지만, 배터리 커버 까보면 완전히 똑같다! 컴팩트 슬라이드 폰 시리즈는 전체적인 디자인이 비슷하고[32] , W410, W4100, W4150과 S510, S5150은 터치키 유무와 LCD 크기 빼고는 거의 같다.[33] 더 극단적인 예로는 S480/S4850은 Flash GUI이 기반인 짝퉁 Black GUI[34] 가 들어갔고 배터리 구조가 바뀌고 모바일 뱅킹 기능이 추가되고 카메라 화소수가 아주 조금 상향된 거 빼면 E3200과 완전히 같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벨소리 우려먹기도 심한 편인데,[35] '그대와의 왈츠'[36] , '몽상의 비행(Imagination)', 2004년에 적용된 '수줍은 고백'은 멜로디가 비슷하고 '추억 속의 오르골'을 편곡해 '장난감 상자'로도 탑재했으며 '구름'='솜사탕', 'Exciting Bass'='Moonlight Dance', '춤추는 비눗방울'='조각꿈'='꿈 속 여행', '놀이동산'='가벼운 발걸음', '로봇'='외계인', '바람'='돌고래의 수다' 등 매우 많다.[37] 다만 벨소리에 맞춰서 진동이 울리게끔 하는 리듬믹스 벨 등 애니콜만의 특색이 드러난 벨소리도 있다. 가끔 효과음도 우려먹는데, 약 2004년에 탑재된 버튼음 중 '실로폰'은 Flash GUI의 '맑은음'과 같으며 B340, W200에 적용된 버튼음 중 '맑은음'은 Black GUI의 '실로폰'과 같다. 즉, 2004년의 실로폰과 2006년의 실로폰은 다른 것이다.
원가 절감으로도 악명 높다. 예를 들어 2008년에 들어서도 저가 폰은 QCIF(176×144) LCD를 우려내거나[38] 기본기조차도 개판인 등. 핸드폰을 그냥 기능만 보고 사거나 공짜폰으로만 쓰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원가 절감 행보는 삼성 갤럭시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초창기부터 효과음 등의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당시의 타사 동급 기기와 비교하면 애니콜의 사운드가 더 고품질이었다. 다만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회사들도 사운드 개선에 신경을 쓰기 시작함으로써 점점 비슷해졌다.
한국에 출시되는 휴대 전화의 상표 중에서 동급 사양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내거는 경향이 있는 대신, 살 때는 비싸더라도 가격 방어가 잘 돼서 시간이 지나도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시대가 된 2009년 이후 옛날 얘기가 됐다. 출고가가 '''135만원'''이던 명품 폰인 '조르지오 아르마니'조차 버스폰으로 나왔다. 그리고 옴니아 2도 출시 1년 6개월만에 버스로 나왔다.
이후 애니콜에서 확장된 상표로는 삼성 옴니아, 애니콜 햅틱, 햅틱 아몰레드, MITs가 있으며 후속 상표로 '''갤럭시''', 웨이브, 아티브가 있다.
애니콜의 문자 입력 방식은 천지인 자판이다.
외국에서 팔리는 제품에는 Anycall이 아닌 Samsung Mob!le[39] 또는 FUN Club 상표가 들어가는데 이유는 이 단어가 콜걸(전화로 연락하면 오는 창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외적으로 중화권에서는 애니콜의 초창기 로고[40] 와 Samsung Mob!le을 둘 다 사용했다.
야구 선수 임창용의 경우 삼성 라이온즈 서정환 감독 시절 혹사를 당할 때 구단의 모기업인 삼성과 맞물려 '애니콜'로 불렸다.
모델명은 2009년까지는 SCH[41] , SPH[42] , SGH[43] 로 시작했으며, 그 뒤에 붙는 알파벳은 안붙는 경우는 IS-95A 지원모델 A I[44] M[45] 과 W[46] 를 제외하면 기능이나 특성 등에 따라 달라졌다.[47] 2010년 중반부터 2013년 중반까지는 SHC-ZxxxS/L[48] , SHW-AxxxS/K/L[49] 을 사용하다가[50] SM- 네이밍[51] 으로 통합된 뒤부터는 SM-Bxxx를 배정받는다.
1997년부터[52] 2011년까지 MBC 뉴스데스크의 시보를 맡아왔었다.[53] 그러다가 갤럭시에 애니콜 상표를 떼면서 자연스럽게 갤럭시 시보로 전환되어 2020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2003년부터 한국경제신문 1면 돌출광고도 맡기 시작했다.
배터리 아이콘은 2010년 이전까지 3칸이였으나, 이후 터치위즈를 채택하면서 5칸으로 바뀌었다.[54] 애니콜 상표가 아니라 삼성 로고를 달고 출시된 피처폰이긴 하지만 마스터 듀얼은 이전까지 쓰던 5칸 아이콘이 아닌[55] 안드로이드 킷캣부터 볼 수 있는 흰색 배터리 아이콘을 왼쪽으로 돌린 듯한 모습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칸이 나누어지지 않았으나, 배터리가 닳을 때마다 5분의 1 단위로 줄기 때문에 5칸이라고 볼 수 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애니콜 마스코트도 있었다. 이름은 애니였고 손에 안테나를 들고있는 여러가지 색의 박쥐였다. 주로 사용설명서에 등장했으며 휴대폰 부팅 화면에도 나타났다.
갤럭시 버즈 프로의 출시 이벤트로 애니콜 T100(이건희폰)과 E700(벤츠폰)의 디자인을 적용한 케이스를 증정한다.
5. 역대 슬로건
- 한국지형에 강하다 (1994~1997)
- 또 하나의 PCS (1997~1999)
- 휴대폰도 PCS도 애니콜 (1998~1999)
- 언제 어디서나 한국인은 애니콜 (1998~1999)
- 내 손안의 더 큰 세상 (1999~2000)
- 내 손안의 디지털 세상 (2000~2001)
- 초고속 무선인터넷의 표준 (2001)
- Digital Exciting (2001~2007)
- TALK PLAY LOVE (2007~2011)
6. 제품별 UI
[1] 이 당시 애니콜 디지털 모델을 지원하는 CDMA 디지털 방식의 SK텔레콤의 '''스피드 011''' 역시 PCS 보다 넓은 통화 권역을 제공하는 대신 그만큼 비싼 요금으로 중장년층의 고객들이 대부분이라서 '''아저씨들의 이동통신 서비스'''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SK텔레콤은 1999년에 와서야 젊은층을 위한 요금제인 TTL을 상표화하는 전략을 통해 기존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데 성공한다.[2] 당시 젊은층 고객들은 통화권역이 다소 협소하나 통화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단말기 가격도 착한 PCS 통신사 쪽으로 많이 몰렸기에 보수적인데다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했던 애니콜은 이들 젊은층 고객 공략에 불리했다.[3] 전작 모델이자 애니콜 폴더의 초기모델인 SCH-800 대비 부피는 26% 감소되고, 무게도 89g에 불과할 정도였음에도, 기존 모델보다 부가 기능도 향상되고 배터리 시간은 기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4] 당시 미니폴더와 듀얼폴더로 연이은 히트를 치며 애니콜 폴더는 한국 휴대폰 시장의 프리미엄 상표로 자리잡았고, 거기에 삼성전자가 2000 시드니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었던지라 끝물 격으로 금도금 장식까지 하는 등 상당히 고급스럽게 치장하여 출시했다.[5] 이 폰과 연계된 KTF의 여성 전용 휴대폰 서비스 명칭이 '''드라마'''였기 때문. 광고 [6] 외출 시 핸드백 속에 핸드폰을 넣어두는 여성들의 성향을 잘 파악한 장치로, 핸드백 외부에 램프를 연결해 달아두면 핸드폰 신호가 올 때마다 자기 것인지 꺼내서 일일이 확인 할 필요가 없게 되고, 진동 모드나 무음 모드로 전환해도 신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7] 전부 KTF를 통해 출시되었으며, 모델명은 SPH-X4500, SPH-X8000이다.[8] 이쪽은 프리스타일이 대를 이었으며, 스마트폰 시대까지 가보자면 B&O 튜닝이 된 것들로 한해서는 LG G5 Hi-Fi 모듈, LG V20, LG V20 Pro, LG G6+ ThinQ(舊 LG G6+), LG V30 ThinQ(舊 LG V30)가 대를 잇고 있으며, 단순히 쿼드 Sabre DAC 탑재 기기만 따지자면 LG Q8 & V20 Pro와 LG G7 ThinQ도 대를 잇고 있다.[9] 이 모델의 광고를 보면 모델로 출연한 가수 조PD가 MMC 카드를 시리얼 부어먹듯 그릇에 부어서 숟가락으로 떠먹으려 하고, "메모리 칩이 多, 음악이 多"라는 문구로 확장성을 내세우며 마지막에 혓바닥을 내밀며 혓바닥에 붙어있는 MMC 카드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10] 아래의 SCH-V200과 함께 그당시에 판매된 극소수의 물량 중에서 현존하는 개체들이 아주 가끔 소장용으로 고가에 거래되기는 한다.[11] 세계 최초로 카메라를 탑재한 휴대폰은 1999년 9월 출시된 [image]이다.[12] 이 당시 매우 빈약하던 휴대폰 내장 메모리 용량을 감안한다면 '무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13] 그당시에 판매된 극소수의 물량 중에서 현존하는 개체들이 아주 가끔 소장용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희소성으로 인하여 시세가 꽤나 비싸다.[14] 세계 최초로 개발된 풀 터치스크린 폰은 1994년 8월에 출시된 IBM 사이먼 이다.[15] LG U+. CDMA2000 1x 기기는 SHC로 배정받는다.[16] '''S'''K텔레콤[17] '''K'''T[18] '''L'''G U+[19] 자급제. SM- 네이밍은 N0으로 배정된다.[20] '''W'''i-Fi로만 무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태블릿 컴퓨터.[21] 한국에 선출시 후 글로벌 시장에서도 출시.[22] 2016년에 중국에 선출시 후 2017년에 한국 출시. 참고로 2016년에 중국에 선출시된 기기와 2017년에 한국에 출시되었으면서도 중국에 재출시된 기기는 내비게이션 키의 위치가 다르다.[23] 모터 소리가 줄어들고 여닫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한다.[24] 단 매직홀은 앞의 두 기기와는 달리 모터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장된 스프링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닫기도 자동으로 가능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열기만 자동으로 되고 닫기는 수동으로 해줘야 한다.[25] 대표적으로는 박정아와 함께 출연했던 소녀시대로 데뷔하기 전 수영의 모습을 광고 속에서 볼 수 있다.[26] 2001년 당시에는 120×160 해상도만 되어도 고해상도 취급받던 시절이었고, 2003년 까지만 해도 고급 기종에는 176×220 해상도가 사용되었다. 또한 2009년까지 저가 기기에 들어간 흐리멍텅한 QCIF(176×144) 해상도보다도 높다.[27] 대충 봐도 답 나온다. 네이트 버튼이 딴 곳으로 이동하고 원래 네이트 버튼이 있을만한 자리는 '확인'이라고 쓰여 있으며, UI도 아랫부분이 배경화면으로 채워지거나 텅 빈 다른 기종과는 다르게 아랫부분이 출시 시점 기준으로 3년 후 등장할 Personal GUI마냥 메뉴 - 카메라 - 검색으로 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해외(SAMSUNG mob!le) UI를 커스텀한 것이지만.[28] 당시 나름 큰 용량이었던 1GB 메모리를 탑재한 뮤직폰.[29] 참고로 2003년 당시 애니콜 최고가 폰인 V410 이 75만원 정도였다.[30] 2020년 기준으로도 120만원이면 갤럭시 노트 최신형 아이폰 가격대이다 이것보다 더 비싼 핸드폰은 갤럭시 Z플립이나 폴드 정도밖에 없다.[31] 윈도우 RT가 탑재된 그냥 아티브 탭. 3, 5, 7 이런 거 아니다.[32] W330, W3300과 W580은 전면 디자인 빼면 완전히 똑같다.[33] 그러나 사양은 W410, W4100, W4150이 훨씬 좋다.[34] Black GUI 특유의 특징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당연히 하이라이트 메뉴는 장식이다.[35] 반면에 싸이언은 벨소리 표절이 심했다.[36] 특히 C230에 적용된 그대와의 왈츠는 수줍은 고백에서 보컬만 빼고 완전히 같다![37] 여담으로 '회색 도시'의 앞부분은 갤럭시 S2에 탑재된 'Wine Bottle'과 비슷하며, Flash GUI 매너모드음 중 맑은음은 갤럭시 S10의 알림음 'Voyager'과 같다.[38] QCIF 해상도는 2009년 후반에 들어서야 완전히 포기하였다. 최후의 White GUI 탑재 기기이자 QCIF 해상도 기기는 SCH-S540. 이마저도 GT-S5200에서 사양을 떨어뜨려 발매한 것이다.[39] Mobile 부분의 i가 거꾸로다. 즉 느낌표가 된다.[40] 삼성 심계천하 시리즈에도 사용되었다. 또한 한국에 출시된 일부 기종은 초창기 로고의 A에 있는 점만 뺀 로고를 사용한 적도 있다.[41] '''S'''amsung '''C'''ellular '''H'''andset. 한국에서는 SK텔레콤이 사용했다. 해외에서는 1.0GHz 이하의 주파수(셀룰러 네트워크)로 CDMA를 서비스하는 통신사에서 사용되었으며, 일본에서는 KDDI au에 납품되는 기기에 제조사 측 모델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갤럭시 S II WiMAX의 제조사 측 모델명이 SCH-J001이다.[42] '''S'''amsung '''P'''CS '''H'''andset. 한국에서는 KTF와 LG텔레콤이 사용했다. 해외에서는 1.0GHz 이상의 주파수(PCS 네트워크)로 CDMA를 서비스하는 통신사에서 사용되었다.[43] '''S'''amsung '''G'''SM '''H'''andset. GSM을 사용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는 사용했던 적이 없다. 일본에서는 NTT 도코모와 소프트뱅크 모바일로 납품되는 기기에 제조사 측 모델명으로 사용하고 있다.[44] IS-95B 지원모델 [45] PDA 및 스마트폰 전용 모델명. CDMA/GSM/WCDMA 상관 없이 전부 M으로 시작했다.[46] WCDMA 지원 모델. LG U+는 EV-DO Rev.A/B를 사용하지만 편의상 W로 분류했다.[47] 예를 들어 B는 DMB를 지원하는 기종('''B'''roadcast), C는 크기가 작은 기종('''C'''ompact), E는 별도의 특화 기능 없이 EV-DO만 지원하는 기종('''E'''V-DO), V는 VOD를 지원하는 모델('''V'''OD 또는 '''V'''ideo)에 쓰였다. S와 X는 CDMA2000 1x만 지원한다.[48] '''S'''amsung '''H'''andset '''C'''DMA. CDMA2000 1x 까지 지원하는 피처폰. 기존의 SCH-Sxxx/SPH-Sxxxx의 후신이라고 보면 된다.[49] '''S'''amsung '''H'''andset '''W'''CDMA. WCDMA까지 지원하거나 LG U+의 경우 EV-DO Rev.A/B까지 지원하는 기기. 기존의 SCH-Wxxx/SPH-Wxxxx가 SHW-Axxx로 옮겨졌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3G 스마트폰은 A 대신 M으로 시작한다.[50] 참고로 삼성 갤럭시 중 2013년까지 출시된 LTE 스마트폰에도 비슷한 규칙이 사용되었다. SHV-ExxxS/K/L이며, 여기서 V는 LTE를 풀어쓴 Long Term E'''v'''olution에서 따온 것이다.[51] '''S'''amsung '''M'''obile의 앞글자를 따왔다.[52] 1988년부터 1997년까지는 삼성시계(훗날 SWC)가 맡았다.[53] 2007년에는 백진희가 시보소녀 시리즈를 연기하기도 했다.[54] 삼성 햅틱 첫 제품 당시엔 '''3칸'''이었다. 이전에 출시된 기종 중 일부도 업데이트를 통해 5칸으로 바뀌었으나, 당시 펌웨어 업데이트를 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런지 보기 힘들다.[55] 마스터 2G/3G는 기존의 아이콘을 그냥 흰색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