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

 


'''신대철
申大澈 | Shin Dae Chul
'''
'''출생'''
1967년 2월 16일 (57세), 서울특별시
'''혈액형'''
O형
'''본관'''
평산 신씨[1]
'''소속'''
에코브리드 대표이사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부장)
한국가온예술종합학교 (학부장)
'''소속 그룹'''
시나위(리더, 기타리스트)
'''가족'''
아버지 신중현, 남동생 신윤철, 남동생 신석철
'''학력'''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 졸업

1. 개요
2. 가족
3. 활동사항
3.1. 음악활동
3.1.1. 데뷔
3.1.2. 참여
3.1.3. 교직
3.1.4. 방송활동
3.1.5. 수상경력
4. 이야깃거리
4.1. 성격과 음악적 성향
4.2. 발언
5. 바른음원협동조합


1. 개요


대한민국기타리스트겸 작곡가, 프로듀서. 밴드 시나위의 리더이다.
'한국 락의 대부' 신중현의 장남으로, 신중현의 생모가 일본인이라서 일본계 쿼터이다. 기타도 아버지에게서 직접 배웠다. 신중현이 대마초 파동과 더불어 대다수 곡이 금지곡으로 묶이는 등 사실상 활동이 불가능했던 때가 신대철이 초등학교 4학년에서 5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즈음이었는데 항상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었던 아버지가 집에 계속 계시길래 "아버지, 기타 좀 가르쳐 주세요" 라고 부탁하고 3개월간 매일 개인 레슨을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후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기타로는 국내에 적수가 없었다고.. 고2 때인 1983년에 시나위를 결성하고 1986년에 데뷔했지만, 그 전부터 인지도는 상당했다.[2] 이후의 행적은 시나위 문서 참조.

2. 가족


아버지가 '한국 록의 대부'인 신중현, 동생이 신윤철, 신석철이다. 신해철이 이름이 비슷해 동생인 줄 오해하는 사람도 있으나 아니다.[3] 참고로 둘째 신윤철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타리스트이며, 막내 신석철도 국내의 대표적인 탈 장르 드러머다. 참고로 어머니 명정강은 1960년대 초반, 미 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9인조 여성 재즈 밴드인 '블루 리본' 출신으로서, 한국 최초의 여성 드러머였다. 부모님과 삼형제, 가족 모두가 대단한 음악가인 셈.
신대철 본인은 아버지에게 직접 맨투맨으로 처음부터 기타를 배웠지만, 동생 신윤철은 신대철에게 처음 기타를 배웠다고 한다.[4] 이를 두고 신대철은 본인의 책에서 "그러고 보면 동생들은 천재인 것 같아. 그냥 어깨 너머로 배웠으니까."라며, 동생들은 설렁설렁 배우고도 고수가 되었다고 놀라워 했다.
가족이 모두 조용하고 과묵하다. 신대철이 그나마도 방송에 많이 나오는 사례다.[5] 다른 형제들은 더 과묵해서, 삼형제가 모여 인터뷰를 할 때 보면 신대철 혼자 아웃사이더급 속사포 랩을 하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김도균, 김태원과는 다르게 예능 활동이 적다. 신대철이 "예", "아니오"로만 답을 하기 때문(...)

3. 활동사항



3.1. 음악활동



3.1.1. 데뷔


1986년 시나위 1집 앨범 Heavy Metal Sinawe

3.1.2. 참여


김종서, 서태지, 이승철, 박광현, 이현우, 임재범, 박상민, 손성훈, 김장훈, 이상우, 이소라, 이은미, 크라잉 넛 등 80여 명의 가수, 뮤지션 음반 작곡, 편곡, 작사, 연주 및 프로듀싱.
이선희 11집 'Dream of Ruby(98)'의 수록곡 '너에게 가면' 작사, 작곡. '너에게 가면'은 이선희의 역대 앨범의 곡들 중 애드리브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음역대를 자랑한다.
영화 '황무지(미개봉)' '나에게오라', '북경반점', '현상수배', '기방난동사건' 음악감독.
EBS 다큐멘터리 '시베리아 호랑이', 역사 복원 시리즈 '두만강에서 흑룡강까지' 음악감독.
시나위(밴드) 전집, 신대철 독집앨범 코로나(Corona), 신대철과 자유 1집, D.O.A
도시락특공대 2집 참여 등

3.1.3. 교직


2010.12~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학부장
2013.12~ 한국가온예술종합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학부장
前 동덕여대, 호원대 겸임교수

3.1.4. 방송활동


KBS 밴드 서바이벌 TOP밴드에 코치진으로 출연. 시즌3에도 코치로 출연한다.
2012년 9월 MBC 나는 가수다 2시나위(밴드)를 재결성하여 출연.

3.1.5. 수상경력



4. 이야깃거리



4.1. 성격과 음악적 성향


성격은 리더십이 강하고 음악적인 고집도 좀 있는 편이라고 한다.[6] 그래서 시나위의 역대 보컬인 김종서임재범보다 동생이면서도 시나위의 리더를 맡았다.[7] 더불어 시나위에 있었던 서태지도 신대철을 많이 무서워 했다고 한다.[8]
3대 기타리스트인 김태원과 김도균은 나름 감성적인 면이 있으나 신대철은 다소 냉철한 편이다. 과거 공감토크쇼 놀러와 3대 기타리스트 특집으로 나왔을 때 김태원과 서로 편지를 읽으며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을 때 혼자 오글거려하며 빵 터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타연주에 있어서의 감성은 김태원, 김도균보다 나으면 나았지 절대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블루스와 메탈을 기반으로 한 1980년대 뮤지션임에도 의외로 음악적 성향이 진보적인데, 나는 가수다 2와 새 앨범 Mirrorview에서 보여준 일렉트로닉 사운드나 '슬픔의 이유' 등에서 사용된 우쿨렐레 등의 악기를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힘든 나이 임에도 스스로 배워서 수준급의 연주를 보여주었다. 물론 기타를 오래 쳐서 운지법 등이 익숙한 건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국산 하이엔드 기타를 메인 기타로 사용 중이다.
그리고 역시 한국의 명 기타리스트들인 김도균, 김목경과 함께 Fender에서 커스텀 기타를 헌정 받았다.# 아버지 신중현에 이어 부자가 펜더 사에게 기타를 헌정받은 셈이다.
신대철의 음악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크게 라디오를 켜고인듯 하지만, 실상은 91년도에 했던 밴드 자유에서 작사 작곡 그리고 직접 부르기까지한 멀어져간 사람아이다. 물론 박상민의 리메이크로 잘 알려지게 된 것이지만. 신대철을 아는 사람이라면 몰래 아는 명곡이다. 박상민 판보다 화려한 기타 연주와[9], 기교없이 수수하지만 진솔한 목소리에 팬들이 좋아한다.

4.2. 발언


신중현과 더불어 말이 하도 없어, 시나위 데뷔 후 부자 락커로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거의 "예, 아니오"로만 대답을 하여 인터뷰 진행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실 말은 별로 없는 편이라고 한다. 사실 말수가 적은 건 동생들도 마찬가지라서 이 네 부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 입장에선 매우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가족들 중에 신대철이 제일 말수도 많고 말도 잘하는 편이다(!).[10] 아버지 다음으로 대중에게 많이 노출됐을 뿐만 아니라 2010년대 들어 여기저기 방송출연도 많아졌기 때문인지 자기 소신을 조리있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적응이 됐는지 할 말은 다 하는 달변가가 됐을 정도다.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명언으로 알려진 '''"기타가 펜더면 뭐하나. 손가락이 펜더여야지"'''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나름 명언으로 TOP밴드 시즌1 코치 결정전에서 남긴 '''"후회하지 말고 저한테 오시면 됩니다"'''가 있다. 코치 결정전에서 게이트 플라워즈와 리카밴드 둘을 선택한 상황에서 후반부에 '갈 길 잃은 밴드'들을 포섭하기 위한 말이었다.
지인의 꼬임에 힘입어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매일 자신의 장비 사진을 올리거나 개인적인 감상 등을 적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팔로워가 10,000명이 넘은 상황이다. 조용필의 빼앗긴 저작권 이야기나 이철호의 사랑과 평화 상표권 등록 문제 같은 음악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거나 송포유를 까는 등 페이스북을 시사적으로도 잘 쓰고 있다.
게다가 지적인 수준이 상당하다. 한번 읽어보자. #[11] 본인 말처럼 지속적으로 알고자 노력하는 듯하다.
그런데 가끔 '해장국에 들깨를 넣으면 술이 들(덜)깨' 같은 개드립도 치거나 '넘을 수 없는 벽이라면 부숴버리겠다!' 같은 말을 하는 등[12] 어째 개그 캐릭터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박근혜 게이트 관련한 박사모의 집회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른 것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해당 글의 말미에서 촛불집회에서 본인을 섭외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고 집회 측도 이를 받아들여 12월 31일에 보컬 전인권과 함께 공연을 성사시켰다.인터뷰 링크
2017년 2월 16일에 쇼파르뮤직의 소속사 대표가 식당에 만취된 채로 쇼파르뮤직의 한 매니저와 함께 찾아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폭언을 하고 폭행을 했는데, 해당 아르바이트생들은 신대철이 교수로 재직 중인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출신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신대철이 SNS상에서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링크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에서 윤미향의 편을 들고,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나이 90을 넘으면 판단력이 논리력에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이 할머니는 잘못이 없고, 남들이 부추기니 폭로를 한 것이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5. 바른음원협동조합


페이스북에서 한창 활동하는 중 조용필, 사랑과 평화 등 선배 뮤지션들의 저작권 문제를 제기한 이후, 이에 대한 연속선상으로 현재의 음원 유통 방식에 대한 쓴소리를 남겼다.# 그리고 말 한마디에 그치지 않고 '바른음원유통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음원 유통조합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2014년 11월 현재 홈페이지가 열렸다. 조합원 가입신청을 받고있으며 출자금 5만원을 납부하면 정식 조합원이 된다. 창립하면서 '바른음원유통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이 길었는지 '바른음원협동조합'으로 다소 짧아졌다. 그렇지만 유통을 안 하는 것은 아닌듯, 홈페이지에 따르면 음원 MP3 서비스 사업과 음악의 유통사업, 그리고 공연 사업을 '다른 회사보다 이윤을 적게 남기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말 돈 없는 인디 음악인들에겐 단비 같은 말이다. 2015년 10월 현재 유통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1] 평산 신씨 34세손 '澈'자 항렬이다. 참고로 아웃사이더와는 같은 본관이자 같은 항렬이다. 이것은 아웃사이더의 노래 20에 가사에서 '''평산 신씨 사간공파 34대손 신옥철'''이라는 가사가 있다.[2] 기타에 손을 대지 않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황당한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3] 대신 이름이 비슷해서 서로 의형제를 맺으면서 지냈다고 한다. 사실 이 둘은 '''평산 신씨 34세손 '澈'자 항렬'''을 쓴다. 족보와 문중을 제대로 따진다면 종형제뻘인 관계다.[4] 물론 나중에는 신윤철도 아버지에게 틈틈이 기타 레슨을 받았다고.[5]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나마'이다. 신대철도 보통의 기준으로 보면 무척 조용한 사람이다. 학교에서 그에게 배웠던 제자들은 "워낙 조용해서 어찌 처신할지를 몰랐다."고 하소연했다.[6] 까딱 흥분하면 꼰대로 진화하기도 하는데 스스로도 젊을 때 그런 기질이 매우 심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나이 먹으면서 조금씩 유순해져서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7] 신대철과 임재범은 실제로 서울고 동창이다. 신대철은 빠른 년생이라 66년생들과 같은 학년이었고, 임재범은 62년생인데 가정사 때문에 4년 늦게 학교를 들어갔다고 본인이 주장한다.[8] 서태지시나위에서 탈퇴할 때 정식으로 선언하고 탈퇴한 게 아니라, 담배 심부름하러 나갔다가 그대로 돌아가지 않고서 탈퇴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9] 박상민 판에서의 기타연주도 신대철이 직접했다.[10] 사실 그나마라고도 할 수 없는 게 김창완의 라라라(2010년대 초반 MBC에서 진행하던 음악프로그램)에 서울전자음악단이 출연했을 당시 신대철의 형제들이 얼마나 말이 없던지 김창완도 많이 힘들어했다(...). 사실 친하기도 친하니까 다 알았겠지만 그럼에도... 농담이 아니라 신대철은 그에 비하면 진짜 투머치토커라고 봐도 될 정도...[11] 일반인으로는 남다르게 라플라스의 악마와 불확정성 정리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고 썼다. 교양을 지향해도 나이 먹을수록 과학에 대한 관심은 어려워서 기피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훌륭한 수준이다.[12] 근데 저 말은 나중에 신곡 가사가 된다.